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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북한 vs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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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탈리아북한의 4조 상황3. 경기 진행4. 소련과 칠레와의 경기5.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16강 조별리그 4조의 최종 순위6. 각종 기록들7. 이후 북한은8. 이후 이탈리아는9. 유사 사례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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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처음으로 월드컵에 나와 월드컵 우승팀인 이탈리아를 이기고 8강에 진출한 경기다.

2. 이탈리아북한의 4조 상황

먼저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3개 대륙을 대표해서 잉글랜드 월드컵에 진출하였다. 북한은 소련, 칠레, 이탈리아와 함께 16강 조별리그 4조에 속했다. 영국에서는 스포츠 도박이 합법이었는데 당시 도박사들의 예측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는 브라질이었고 그 다음은 잉글랜드, 3번째가 이탈리아였다. 반면, 북한은 본선 16개국 진출국 중 가장 낮은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즉, 당시 북한은 이 경기에서 완전히 언더독에 불과했던 것이다.

북한은 3년 동안 선수단 전원이 합숙 훈련을 하고 조선인민군 특수부대와 같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 체력과 조직력을 다지고 같은 공산권 국가인 동유럽을 돌며 꾸준히 전력을 다졌다. 출국 전 김일성에게 "우리가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이 3개 대륙을 대표해서 16개국 본선에 진출하는 것인 만큼 월드컵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만, 가서 1~2팀이라도 이기고 돌아오라."는 부담백배 격려까지 받은 이들은 영국에 도착하고 잉글랜드 북동부의 공업 도시 미들즈브러에서 소련과 1차전을 치렀다. 북한이 동유럽 국가들과 자주 평가전을 치렀다 보니 소련은 북한이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속공으로 나선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고 우세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완력을 앞세운 더티 플레이를 했다.[1] 결국, 북한은 소련에 허무하게 0 : 3으로 패배했다. 2차전 상대는 전 대회 개최국이자 3위를 차지했던 남미의 강호 칠레였다. 북한은 칠레를 맞아 스피드를 앞세운 속공으로 괴롭혔으나 좀처럼 골을 넣지 못했고 오히려 전반 26분에 루벤 마르코스페널티 킥 선제골을 허용해 0 : 1로 끌려갔다. 북한은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칠레를 몰아붙였으나 골을 넣지 못했고 패색이 짙어지던 중 후반 43분, 박승진이 터뜨린 천금 같은 동점골로 1 : 1로 비겨 첫 승점을 획득했다.[2] 이 때까지 북한은 4-2-4 포메이션을 주로 썼다. 이탈리아와의 경기 전 상황은 1무1패다. 따라서 북한이 8강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그와 동시에 소련이 칠레를 상대로 최소 무승부 이상을 거둬야했다.

이탈리아는 첫경기인 칠레를 2:0으로 이기며 지난 대회에서 칠레에게 진 것을 스코어 그대로 반품하며 가볍게 1승을 따냈다. 문제는 2차전 소련과의 경기였다. 소련은 이미 북한을 3:0으로 이겨서 1승을 따놓은 상태니 이 경기에서 이긴 팀은 99% 8강에 진출하게된다. 그렇지만 이탈리아는 소련에게 0:1로 지게 된다. 이제 이탈리아는 8강에 진출하려면 마지막 경기인 북한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자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며 비겼을 경우에는 소련이 칠레를 상대로 최소 무승부 이상을 거둬야 한다. 북한에 졌을 경우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100% 탈락이다.

이제 운명의 3차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가 벌어졌다. 우승 확률이 3번째로 높은 우승후보와 우승 확률이 가장 낮은 팀의 대결. 한마디로 다윗골리앗의 싸움인 경기였다.

3. 경기 진행

파일:1966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4조 제5경기
1966년 7월 19일 19:30(UTC+0)
에어섬 파크 (영국, 미들즈브러)
주심: 피에르 슈빈테 (프랑스)
파일:북한 국기.svg 1 : 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북한 이탈리아
42′ 박두익 득점 -
관중: 17,829명


캡션


북한의 16강 조별리그 3차전 상대는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을 연속 우승했으나 1950년 수페르가의 비극이란 비행기 사고로 인해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을 잃으면서 그 여파로 암흑기를 보냈다. 그러나 4부 리그 팀 만토바 FC를 1부 리그까지 승격시킨 젊은 명장 에드몬도 파브리 감독의 지휘 아래 다시 옛날의 전력을 회복하며 이번 대회에서 브라질, 잉글랜드에 이어 3번째로 우승 확률이 높은 강력한 우승후보로 부상하게 되었다. 주장 지아코모 불가렐리를 필두로 지아니 리베라, 산드로 마촐라, 자친토 파케티 등 내로라 하는 세리에 A의 슈퍼스타들로 도배된 팀이 바로 이탈리아였다. 하지만 정작 본선에서의 모습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16강 1차전에선 칠레를 가볍게 2 : 0으로 제압했으나 2차전 소련과의 경기에선 무기력한 경기 끝에 0 : 1로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3차전 상대는 대회 최약체인 북한이었기에 많은 이들은 이탈리아가 북한을 상대로 압승을 거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경기를 찾은 관중은 17,000여 명에 불과했다. 굳이 찾아가서 안 봐도 이탈리아가 이길 게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북한은 8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잡아야 했고 비기거나 지면 무조건 탈락이었다. 명례현 감독은 이 경기에서 회심의 작전인 사다리 전법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북한과 이탈리아의 8강 진출의 운명이 걸린 한 판 승부가 시작되었다. 경기는 예상대로 이탈리아의 일방적인 페이스로 흘러갔다. 짜리몽땅한 북한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 더 큰 떡대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은 볼을 공중으로 띄우며 농락했고 금방이라도 골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찌된 것인지 문전에서 슛을 하기만 하면 족족 빗나가거나 북한 골키퍼 리찬명의 선방에 막히며 좀처럼 북한의 골문을 열지 못했다. 약체 팀이라 쉽게 무너질 것 같았던 북한이 의외로 쉽게 무너지지 않자 이탈리아 선수들은 점점 평정심을 잃고 조급해졌다.

이탈리아의 초반 결정적인 3차례의 슈팅이 빗나간 후 북한의 반격이 들어왔다. 북한의 빠른 역습에 발이 느린 이탈리아 수비수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라이트윙 한봉진의 주력은 마치 번개 같아서 카테나치오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 수비진들이 우왕좌왕할 정도였다. 그리고 전반 34분, 북한의 역습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주장 지아코모 불가렐리박승진을 향해 태클을 걸었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는지 박승진의 몸이 불가렐리의 다리 위로 떨어졌고 결국 불가렐리는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당시엔 선수 교체 제도가 없었기에 이제 이탈리아는 10명이 뛰게 되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전반 42분, 센터서클에서 북한의 림승휘가 전방으로 볼을 띄운 것을 이탈리아 수비수가 걷어냈다. 다시 넘어온 볼을 북한의 하정원이 공중볼을 따내며 헤더로 다시 이탈리아 진영으로 보냈고 이 볼이 바운드가 되면서 페널티 박스로 흘렀다. 그리고 이 볼을 박두익이 받아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하며 오른발 땅볼로 강슛을 날렸다. 이탈리아의 수문장 엔리코 알베르토시가 몸을 날렸으나 볼은 이미 골문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간 뒤였다. 그리하여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북한이 1 : 0으로 앞서갔다. 주장이 부상으로 실려나가고 선제골까지 허용하자 이탈리아 선수들은 더욱 평정심을 잃고 무리하게 돌격을 해댔다.

후반전이 되자 이탈리아는 계속해서 북한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조급함을 이기지 못한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직력이 와해되며 제각각 따로 놀았고 그 탓에 제대로 된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의 간헐적인 역습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휘청거렸다. 자신감을 얻은 북한 선수들은 전원 수비에 나서며 철저하게 이탈리아의 공격을 막아내고 또 막아냈다. 북한 골키퍼 리찬명은 잇단 슈퍼 세이브로 팀을 위기에서 구하며 이탈리아를 더욱 좌절시켰다. 결국 경기는 그렇게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북한이 이탈리아를 1 : 0으로 격파했다. 이것은 아시아 팀이 월드컵에서 거둔 최초의 승리였고 최초의 클린시트였다. 그러나 북한이 그 이후로 본선 월드컵에 거의 나오지 못했기에 이 경기가 아직도[3] 그들의 월드컵에서 유일한 승전이자 유일한 무실점 경기로 남게 되었다. 2014년까지는 이 경기가 유일하게 아시아 팀이 유럽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유럽 팀을 이긴 경기였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2 : 0으로 이기며 52년 만에 갱신되었다.

한편, 이탈리아는 북한에 0 : 1로 패배하며 16강 조별리그에서 탈락(9등)으로 8강 진출 실패 하자 큰 충격에 빠졌다. 자신들이 원조 축구 종주국이라 할 정도로 축구에 엄청나게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인들은 자국이 월드컵에서 최초로 핫바리 아시아 팀에 패배한 팀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쓴 것에 크게 분노했고 축구 강국으로서의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잔뜩 구겨졌다. 이탈리아 대표팀은 성난 자국 팬들의 난동이 무서워 귀국 장소를 제노바로 바꾸고 한밤 중에 몰래 입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축구팬들은 그 곳에서도 이미 잔뜩 진을 치며 기다리고 있었고 선수들이 오자마자 썩은 토마토날계란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에드몬도 파브리 감독은 즉각 경질은 물론 1년 간 어떤 팀 감독도 맡지 말고 근신하라는 처벌까지 받고 말았으며 북한전에서 잇달아 결정적인 기회를 놓쳐 패배로 이어지게 만든 마리노 페라니를 비롯한 3명의 이탈리아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영구 퇴출되는 처벌까지 받고 말았다. 이후 30년도 훨씬 넘은 지금도 이탈리아 노인들이 박두익을 기억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오랫동안 이탈리아인들의 마음 속에 아픈 상처로 남기까지 했다.

이탈리아 식당에서 수습으로 일해본 요리사 박찬일은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썼다.
언젠가 해물집 주인은 내게 '박두이크를 아느냐?'고 물었다. 박두이크? 아하 박두익.
(중략)
어쨌든, 주인은 남이냐 북이냐 차이를 모를뿐더러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이딸리아를 무너뜨린 주인공 박두익이야말로 너희 민족의 영웅 아니겠냐는 투로 내게 동의를 구했다. 으흠, 박두익은 정말 대단하지 않았느냐는 제스처로 말이다. 물론 나는 어렴풋이 이름이야 알고 있었지만 1966년의 그 영국에서 있었던 전설적인 사건을 꿰고 있지는 못했다.
(중간 내용: 해물집 주인이 박두익의 슛을 재현하자 저자가 일하던 식당의 주방장이 박두익은 헤딩으로 골을 넣었다고 정정한다.)
주인은 길게 탄식했다. 당시 30년도 더 지난 세월을 그는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후략)
박찬일. 2009.: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창비. 2009. pp.229-230

그 외에도 36년이 지나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16강전에서 이탈리아와 맞붙게 되었을 때 붉은 악마들이 'AGAIN 1966'란 카드 섹션으로 또 다시 이 경기를 언급하자 이탈리아 측에서 노발대발하며 카드 섹션을 중지하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1994년 MBC로 축구 열풍이라는 제목으로 더빙 방영한 51부작 이탈리아와 일본 합작 애니메이션 <사커 포에버>[4] 34화 <예상하지 못한 팀>에서는 주인공[5]과 이탈리아인 친구, 둘이 1966년 월드컵 당시, 영국 어느 시골길을 친구랑 가던 길에 어느 범죄자가 형사로 오해하여 두 사람이 할머니로 변장한 이 범죄자의 집 지하에 미로같이 되어있는 곳에 갇혀 고생하게 된다. 나중에 알고보니 여긴 불법 축구 도박관련 기지였다. 이 미로같은 지하길을 계속 가던 둘은 어느 좁은 길로 얼굴이 겨우 나올 정도로 구멍을 발견해 다가가보니 바로 이 경기가 열린 에이섬 파크 경기장 구석에 난 구멍이었다. 나가진 못하고 여기로 축구경기 결과를 볼 수 있었는데 박두익 골이 터져 북한이 이기는 결과에 주인공의 이탈리아인 친구[6]가 북한에게 이탈리아가 졌다는 것에 절망한다. 나중에 경찰이 오고 뭐하고 소동 끝에 이 곳이 일망타진되는데 이 불법 도박한 곳에서 이탈리아가 북한을 7 : 1로 이긴 걸 예상한 결과가 적힌 글을 보고 이탈리아인 친구는 원래 이럴 것이라고 봤다며 한탄한다.[7]

4. 소련과 칠레와의 경기

이로써 북한은 8강에 진출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을 달성했다. 이제 북한은 칠레가 소련한테 이기지 못하면 1승1무1패 승점 3점[8] 조 2위로 8강에 갈 수 있다.
파일:1966 FIFA World Cup Official logo.png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4조 제6경기
1966년 7월 20일 19:30(UTC+0)
로커 파크 (영국, 선덜랜드)
주심: 존 아다이르 (북아일랜드)
파일:소련 국기.svg 2 : 1 파일:칠레 국기.svg
소련 칠레
28′, 85' 발레리 포르쿠얀 득점 32′ 루벤 마르코스
관중: 22,000명

칠레는 앞서 열린 최종전 이탈리아의 패배로 조 1위가 확정되어 동기부여가 줄어든 소련을 이기기만 하면 승점은 동률이 되지만 북한을 무조건 골득실비[9]에서 앞서 8강에 올라갈 수 있었으나 소련의 벽은 높았고, 결국 패배하며 앞서 탈락이 확정된 이탈리아에도 밀린 승점 1점, 조 최하위로 탈락(13등)하고 말았다.
칠레가 패배하면서 북한이 16강 조 2위로 8강행이 드디어 확정되었다. 북한은 아시아 국가 첫 월드컵 본선 승리와 함께 3조의 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첫 16개국 본선 진출에 2라운드 8강 진출, 그리고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본선 2라운드를 진출한 첫 팀이라는 기록도 작성하게 되었다. 유럽/남미가 독식하던 본선 2라운드에 최초로 유럽/아메리카가 아닌 변방의 팀이 올라가는 대형 사건이었다.[10][11] 그 다음 유럽/미주가 아닌 팀이 2라운드에 올라간 사례는 2라운드가 16자리로 많아진 20년 후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12] 11위 모로코(16강 2라운드)가 기록한다.

5.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16강 조별리그 4조의 최종 순위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비 승점
1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3 3 0 0 6 1 6.000 6
2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3 1 1 1 2 4 0.500 3
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3 1 0 2 2 2 1.000 2
4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3 0 1 2 2 5 0.400 1

6. 각종 기록들

북한은 이 경기를 통해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 중등의 기록을 수립했다. 반면 이탈리아는 아시아 국가를 월드컵에서 맞아했다는 굴욕을 뒤집어써야 했다.

7. 이후 북한은

이탈리아가 쓰기로 예약된 호텔을 대신 쓰며 푹 쉰 북한은 8강에서 포르투갈과 만났다.

초반부터 포르투갈을 강력히 몰아붙였고, 전반 1분만에 터진 박승진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전반 22분 리동운의 추가골, 25분 양성국의 사실상의 쐐기골로 3:0 리드를 잡으며 전 세계 축구계를 다시 한번 경악시켰다. 이대로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오를거라고 생각했었으나…[13] 포르투갈에는 흑표범 에우제비우가 있었다.

16강 조별리그에서 3골로 부진(?)했던 에우제비우는 전반 27분 첫 골을 시작으로 전반 43분 페널티 추격골, 후반 11분의 동점골, 후반 14분의 페널티 역전골로 그야말로 북한을 멘붕시켰다. 북한은 날뛰기 시작한 에우제비우를 제대로 막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페널티 킥을 두 차례나 헌납했고 끝내 역전을 허용, 후반 35분 쐐기골까지 터지며 결국 기적의 두팀이 만난 8강전 경기는 포르투갈의 5:3 대역전승으로 마무리되었고 북한의 8강 신화도 여기서 끝났다.[14] 44년 후 두 팀이 다시 월드컵에서 만났는데 포르투갈은 이번에는 실점 없이 7골을 퍼부으며 자비없이 대패한다.

이 경기는 북한의 유일한 월드컵 승리로 남아있다.[15]

8. 이후 이탈리아는

20년 후에 1986년 멕시코 월드컵 24강 조별본선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고전하면서 간신히 3:2로 승리하였고, 16년 후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결국 연장 후반 막판에 안정환에게 헤딩 골든골을 허용하여 패배하고 탈락(15등)했다. 이로써 전 세계 축구팀 중 유일하게 월드컵에서 남한북한 코리아에게 패배와 탈락을 당한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16]

9. 유사 사례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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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결승전
파일:체코 국기.svg (1934)
vs 체코슬로바키아 2:1 승
파일:헝가리 국기.svg (1938)
vs 헝가리 4:2 승
파일:브라질 국기.svg (1970)
vs 브라질 1:4 패
파일:독일 국기.svg (1982)
vs 서독 3:1 승
파일:브라질 국기.svg (1994)
vs 브라질 0:0 무
(PSO 2:3 패)
파일:프랑스 국기.svg (2006)
vs 프랑스 1:1 무
(PSO 5:3 승)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
파일:스페인 국기.svg (2012)
vs 스페인 0:4 패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021)
vs 잉글랜드 1:1 무
(PSO 3:2 승)
기타 경기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934)
vs 잉글랜드 2:3 패
파일:칠레 국기.svg (1962)
vs 칠레 0:2 패
파일:북한 국기.svg (1966)
vs 북한 0:1 패
파일:브라질 국기.svg (1982)
vs 브라질 3:2 승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
vs 대한민국 1:2 (연장) 패
파일:슬로바키아 국기.svg (2010)
vs 슬로바키아 2:3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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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스웨덴 0:1 (합계)
파일:북마케도니아 국기.svg (2022)
vs 북마케도니아 0:1 패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2022)
vs 아르헨티나 0:3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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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덕에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은 영국 언론의 맹비난을 받았다고 한다.[2] 참고로 이것은 아시아 팀이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기록한 승점이고 이 박승진의 골은 아시아 최초의 득점이 되었다.[3] 한때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지역예선(아시아)/2차예선에서 북한이 기권하였고 이로 인해 2026년 월드컵 참가 자격이 박탈된 것으로 보였기에 최소 2030년까지로 보였으나, 이후 그게 취소되기라도 한건지 2026 월드컵 예선에 멀쩡히 출전했다.[4] 1994년작으로 최신작이었다.[5] 1930 월드컵 당시 어렸을 적부터 월드컵을 보고 겪었다. 한국어판 성우는 김현직.[6] 성우가 손원일[7] 다만 영어로 ITALY 7-1 KOREA라고만 적혀 있어서 국내 방영당시 북한이란 한글 자막이 달렸었다.[8] 이 당시에는 승리시 승점이 2점이였다.[9] 지금과 달리 득실의 비율을 따지는 것이다. 소련과의 1차전에서 3실점을 한 북한이 매우 불리했다.[10] 유럽/남미 아닌팀 중 가장 꾸준히 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한 멕시코도 이때까지 본선 2라운드는 꿈도 못꾸고 있었다. 유럽 남미 이외 1930 월드컵 3위 미국과 1938 월드컵 8위(8강) 쿠바 까지 두번 뿐이였다.[11] 대한민국은 5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해외 월드컵에서 8강 이상 올라가본 적이 단 한번도 없기에 이념을 떠나서 북한의 8강 진출은 당시 전세계 지역예선에서 본선 월드컵에 들어 갈 자리가 단 16자리로 현재 32자리~48자리 월드컵보다 월드컵 본선에 들어가는 것 조차 매우 어려웠던 시절로, 북한은 월드컵 최종순위에서 이탈리아(9등), 스페인(10등), 브라질(11등), 프랑스(13등)의 쟁쟁한 강팀들을 넘고 1966 월드컵에서 기록한 북한의 8위(8강) 기록은 굉장히 의미있는 성과이기도 하다. 그 성과로 인해 이후 아시아의 월드컵 본선의 문이 비로소 넓어졌고 이후 대한민국은 많은 혜택을 보았다.[12] 1982 ~ 94 월드컵까지는 전세계 지역예선에서 본선 월드컵에 들어갈 자리가 24자리로 많아졌다.[13] 이후 대한민국이 36년 후 한일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연파하며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진출했다.[14] 대회 최종 8위[15] 역대 전적 7전 1승 1무 5패[16] 이후 독일이 이탈리아와 흡사하게 2018년에 대한민국에게 패배와 동시에 탈락, 2022년에 일본에게도 역전패하여, 결국 월드컵에서 양국에게 모두 패배한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게다가 두 경우 모두 월드컵 1라운드 32강 조별리그 탈락까지 덤으로 받는 수모도 겪었다.(독일 2018년 22등, 2022년 17등)[24개국] 본선 진출 대회[24개국] [19] 이후 절치부심하며 소련을 꺾었고 루마니아에게 비기며 겨우 16강에 올라간 뒤, 최종적으로 준우승을 했다.[20] 1998 ~ 2022월드컵까지 32강 조별리그 진출 체제[21] 그 후, 우루과이전 무승부와 덴마크전 패배로 인해 1무 2패로 32강 조별리그 광탈(28등)을 맛봤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프랑스가 조별리그 경기에서 단 1골도 넣지 못했다는 것이며, 2022년 현재까지도 역대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 중 유일하게 무득점으로 조별리그(32강)에서 광탈(28등)당한 사례로 남아있다.[22] 특히, 선제골이 뉴질랜드의 몫이었던데다가 동점골도 페널티 킥을 통해 겨우 얻은 골이었다.[23] 이로 인해 2패를 기록했던 잉글랜드가 탈락(26등)이 확정되기도 했다. 예상대로 이탈리아가 이겼다면 잉글랜드는 다음 경기인 코스타리카와의 경기에서 이길 경우 16강에 갈 수도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생길 수 있었겠지만.....[24] 전자는 대한민국 기준, 후자는 독일 기준.[25] 참고로 그 80년전의 월드컵은 15개국이 본선에 진출하여 조별리그 없이 1라운드 15강 토너먼트부터 진행하였다.[26] 이 경기도 북한과 엇비슷하다. 남한의 경우 4포트 60위권이었는데 이 조에서의 독일은 톱시드였다. 결국 남한이 잡아내렸는데 공고롭게도 북한도 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톱시드인 칠레를 상대로 비기며 완성되었지만 대한민국이 가져갔고 이 월드컵에서 8강을 이룬 북한은 4강을 간 대한민국에게 털리며 북한은 톱시드도 뺏기고 최고기록도 모두 빼았기고 말았다는 결말.[27] 심지어 이탈리아와도 엄청 흡사한데, 독일도 역시 첫 패배는 영봉패, 두번째 패배는 역전패로 끝났기 때문이다.[28] 또, 그로부터 10개월 뒤에는 자신들의 안방에서 일본을 친선 경기로 다시 만나 그보다 더더욱 비참한 대패를 당해버렸고 결국 그 경기를 치른 다음 날에 당시의 그 독일 감독이 아예 잘리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29] 독일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멕시코와 대한민국에게 잇달아 져서 독일 축구 역사상 초유의 월드컵 1라운드 32강 조별리그 탈락(22등)이라는 큰 수모를 받은 적이 있다.[30] 심지어 이때의 북한과 같은 원정이자 대한민국과 같이 홈에서의 조 1위와 북한에 이어 20년만에 원정에서 1위를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