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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2:49:28

문석균

<colbgcolor=#152484><colcolor=#fff> 숭문당 대표
문석균
文晳均 | Moon Seok-kyun
파일:문석균.jpg
출생 1971년 10월 5일[1] ([age(1971-10-05)]세)
경기도 의정부시
본관 남평 문씨[2]
현직 숭문당[3] 대표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 기획위원
김대중재단 의정부시지회장
학력 경의국민학교 (졸업)
의정부중학교 (졸업)
의정부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 / 학사)[4]
병역 제2국민역 (근시)[5]
가족 아버지 문희상, 어머니 김양수
여동생 2명
배우자, 자녀 2명
고종사촌 이하늬
소속 정당
파일:zsdkl3gasdg.svg
약력 한국청년회의소 중앙회장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특별위원 (문재인 정부)
더불어민주당 경기 의정부시 갑 상임부위원장

1. 개요2. 상세3. 논란
3.1. 세습 논란3.2. 의정부 시의회 야합
4. 기타5.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문희상의 장남이다.

2. 상세

일찌감치 지역구 출마를 준비했지만, 2020년 1월 23일 지역구 세습 논란[6]이 불거지자 총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오영환 전 소방관의 전략공천에 반발하여 출마포기 선언 54일만인 3월 16일에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고 하루 뒤인 17일에 부친의 지역구인 의정부시 갑 지역에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문석균의 지지자들인 오범구·김정겸·김영숙 의정부 시의원들도 3월 16일에 민주당 경기도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 이해찬 대표가 이미 경선 결과 불복으로 탈당한 이들에 대한 복당을 불허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문석균과 지지자들의 복당은 어려울 전망이다.[7] 앞선 3월 2일 핵심 당직자 400여명이 집단 사퇴한 데 이어, 3월 12일 안병용 시장이 사실관계를 전혀 무시한 채 오영환 민주당 후보를 향해 “보따리 싸서 당장 꺼져라”라는 막말을 내뱉은 것을 보면 갈등이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 당원들의 지지가 무색하게도 여론조사에서는 계속해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데, 2020년 3월 24~25일, 알앤써치가 실행한 여론조사에서 13.1%, 3위라는 충격스러운 결과를 받아보게 됐다. 1위 오영환 후보의 37.7%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후 3월 29~30일, 리얼미터가 실행한 여론조사에서도 11.5%라는 더 하락한 결과가 나타나면서 오영환 후보의 42.6%와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되었다. 3월 31일 매트릭스리서치에서 실행한 여론조사에서는 9%까지 하락했다. 1위인 오영환 후보와 30% 이상 차이가 난다. 4월 5일 KBS-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서는 아예 7%까지 떨어지며 더 어려워졌다. 결국 8.5%의 지지율을 얻고 3위로 낙선, 선거비용 반액 보전에도 실패했다.

여러모로 아버지의 투철하고 선명한 정치 역정과는 너무나도 다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명성과 조직에만 기대는 모습으로 유권자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 게 결정적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아빠찬스를 거부하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출마를 위해 집필한 책 제목은 '그 집 아들'이다.

결국 실리도 명분도 모두 잃고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비호감만 쌓인지라 앞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가긴 어려워 보인다.[8][9][10]

일단 21대 대선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의 대통합 사면 방침에 따라 민주당에 복당하였다. 22대 총선에서 현 지역구 의원인 오영환 의원과 경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다. 지역구 세습 비판에도 불구하고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던 행적에 대한 비토 여론을 얼마나 극복해내는 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11]

이후 오영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문석균 입장에서는 더 유리해졌으며, 당에서 총선 예비후보 적격 판정을 받으면서 출마가 유력해졌다.# 하지만 당에서 의정부갑을 전략 선거구로 지정하면서 마냥 유리한 상황은 아니게 되었다. 영입인사 1호인 박지혜 변호사가 출마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최종적으로 박지혜 변호사와의 2인 경선으로 결정났다.[12] 그러나 2024년 3월 9일 박지혜 변호사가 문석균을 꺾으면서 경선에서 탈락했다. 지역구 세습을 막겠다는 여론과 지난 의정부시의회 야합을 비롯한 트롤링으로 인해 당원들이 문석균에 대한 비토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13]

3. 논란

3.1. 세습 논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친이자 현직 국회의장문희상의 지역구인 의정부시 갑에 출마하려고 하여 지역구 세습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본인은 '아빠 찬스\'는 쓰지 않겠다고 말하며 총선 출마를 강행했다.[14]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등 보수 야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김해영 최고위원 등의 비판이 나왔다.# 당내에서도 높아지는 반대 목소리에 부담을 느꼈는지 결국 1월 23일, 총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으나 3월 12일 # 이를 번복하고 무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한편 지역구 세습 논란 이외에도 자녀의 편법 전학 논란도 불거졌다. 부친 문희상이 국회의장이 된 직후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으로 전입하면서, 아들이 의정부에서 서울로 전학한 사실이 드러나 편법 전학이라는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본인은 아내가 부친을 모시기 위해 전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역구 세습 논란이 더욱 거센 이유는 의정부시 갑이라는 지역구를 보면 답이 나온다. 본래 한국 정치에서 부자 간의 지역구 세습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김영호, 이재한, 홍문종, 정호준, 장제원, 남경필, 정우택, 정진석 등 부자 세습 사례는 많다. 이 중에서 정호준은 3대가 서울 중구에서 정치를 했고, 조부와 부친의 지역구에서조차 낙선했던 경험이 있다. 김영호의 경우, 아버지인 김상현이 지역구를 광주로 옮기고 나서 지역 거물 정치인인 정두언에 맞서 두 번이나 낙선하며 도전자의 위치에서 버틴 경우이다. 심지어 이재한이용희의 강력한 지역구 기반에도 불구하고 총선에 3번 나와서 3번 다 떨어지고 21대 총선은 피선거권을 잃어서 출마조차 못했다.[15]이 세 사람의 경우, 비록 부친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았지만 결코 정치를 하면서 꽃길만 걸은 게 아니다. 장제원, 홍문종, 김세연의 경우 똑같이 세습 논란이 있지만 지역에서도 인지도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고 나서[16] 출마했었기 때문에 20대 총선에서 현직 국회의원으로 있는 부친의 지역구로 21대 총선에 출마한 문석균과 달리 세습 논란이 적었다.[17] 게다가 본인들도 무소속으로 나와서도 본선에서 경쟁력을 보여줬다. 장제원은 부친도 부친이지만 일가가 동서대학교, 부산디지털학교, 경남정보대학교 등을 운영하는 사학재단으로서 부산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유지 집안이고, 당장 장제원 친형이 동서대학교 총장이다. 때문에 이 쪽은 세습이라기보다 가문의 유리함을 이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남경필의 경우는 본인의 부친이 국회의원 재임 도중 사망해서 치러진 보궐선거[18]에 부친의 지역구로 나와서 당선된 케이스라서 아버지 후광으로 당선됐다고 비아냥을 듣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논란은 크지 않았다. 본인도 자신이 부모 덕에 이 정도까지 올라갔다며 인정하고 넘어갔다.

정우택은 무려 30여년만에 진천지역에 출마하여 두번째 도전끝에 당선되었다. 진천에 전혀 연고도 없는데 [19] 아버지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30대 경제관료가 총선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이름값 정도의 도움은 받았다고 볼 수는 있겠으나, 부친 정운갑은 진천 지역에서 58년에 한 번 당선되고 60년, 63년 내리낙선하고 타 지역에서 4선을 한 경우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조직이나 기반을 물려 받았다고 할 여지는 없다.[20]

하지만 문석균은 의정부 번화가에 위치한 '숭문당'이라는 서점을 물려받아 운영하였을 뿐, 지역구에서 뚜렷한 정치적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리고 의정부는 강력한 상대가 있는 지역도 아니고, 쉬운 지역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의 험지라기도 애매한 곳이다.[21] 아무리 아빠 찬스를 안 쓰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이미 지역구를 의정부로 삼은 한 의미가 없는 소리다. 의정부는 자기 조상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일 뿐만 아니라, 국회의장인 아버지의 지역구이다. 게다가 지역구 당직자들의 절대다수[22]가 정치적 커리어가 없는 문석균을 따라가는 등 지역구를 의정부 갑으로 정한 것 그 자체가 아빠 찬스라는 것이 중론이다. 상기의 영상에서는 아빠찬스 안 받는다고 했지만, 본인이 낸 자서전이 《그 집 아들》이라는 점에서 뭘 더 설명할 수 있을까?

선거 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계속 밀리더니, 결국 소방공무원 출신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밀려 낙선하고 말았다. 21대 총선 결과 오영환은 과반을 훌쩍 넘은 53%를 얻었고, 문석균은 고작 득표율 8%에 그쳐 선거비를 단 한 푼도 보전받지 못했다. 그나마 문석균의 의정부 갑 출마와 낙선에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문희상이 점거하면서 사실상 수십 년 간 고착화된 지역 당협위원회의 당직자나 대의원들 세 명을 제외한 모두가 탈당한데다, 탈당자들의 복당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해찬 대표의 선포 덕에 손쉽게 인적 물갈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문석균이 그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후보였다면 민생당에서 의왕시·과천시김성제송파구 병최조웅처럼 이삭줍기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한 반면교사의 학습이 있었는지, 22대 총선 때는 경선 탈락 직후 승복하고 자신을 이긴 박지혜 후보에게 찾아가서 지원을 약속했다. #

3.2. 의정부 시의회 야합

2020년 8월 4일 김민철 국회의원, 오영환 국회의원의 SNS에 "문석균과 같이 탈당한 무소속 시의원들이 통합당과 짜고 시의회 의장, 상임위원회를 다 먹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심지어, 이 때는 한반도 폭우 사태가 일어난 때라서 의정부시가 꽤 피해를 입었을 때였다.

지역구 세습을 시도하지 않나, 토라져서 탈당하고 표를 갈라먹은것도 모자라 국민의힘과 붙어먹은 모습까지 보이며 비호감의 끝을 보여주는 중이다. 시의회에서 여러모로 오영환, 김민철 의원을 발목잡을 건 당연한 상황이다.[23][24] # #

이 일로 복당은 불가능하다 여겨졌지만 2022년 더불어민주당 대사면 때 김정겸 시의원과 같이 복당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 오영환이 이낙연계로 분류된다는 점 때문에 이재명계가 그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복당을 받아준 것 아니냐는 눈초리도 있는 듯.

4. 기타

5. 선거 이력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152484><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rowcolor=#fff><rowbgcolor=#152484>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의정부 갑

[[무소속(정치)|
무소속
]]
8,844 (8.55%) 낙선 (3위)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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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경기 의정부시 갑) }}}}}}}}}

[1]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생년월일 등이 공개되었다.[2] 의안공파 이곡-참의공파 31세손이나, 족보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파일:문희상 일가 족보.png[3] 정당 이름이 아니라,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서점이다.[4] 출처, 동명의 의사가 있어 의사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5] 병무청공고제2004-18호(병역사항공개대상자병역사항공개)[6] 문희상 의원의 집안은 의정부시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대지주 집안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지역 내 유명한 서점의 창업주이자 6선 국회의원 출신의 국회의장이라면 이 지역구를 경선으로 할 경우 누가 경선을 이길지는 불보듯 뻔하다.[7] 4명의 시의원들은 선거가 끝난 후 스리슬쩍 복당을 신청했다.# 이들 중 오범구·김영숙은 국민의힘으로 가버렸고 김정겸만 나중에 가서야 민주당에 복당했다.[8] 똑같이 공천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한 민병두도 초반에는 까이긴 했지만 나중에 당에서 공천한 장경태 후보가 지지율 1위를 기록하자, 뒤늦게나마 약속대로 장경태 지지 선언 후 사퇴를 한 점에서 그나마 문석균에 비하면 낫다는 평을 받고 있다.[9] 그리고 8% 득표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인해 본인이 자랑하던 지역구 관리 또한 별 볼일 없었다는 게 증명되었다. 정말 지역구 관리를 개판으로 하지 않는 한 적어도 두 자리수 득표율을 받는다. 심지어 지역구 관리를 신경쓰지 않고 이부망천 망언으로 파장을 일으킨 정태옥도 19% 가량을 얻었다.[10] 문석균을 따라 탈당한 시의원들이 미래통합당에 붙어 본인이 의장직을 차지하는 대가로 모든 상임위와 부의장직을 넘겨주는 등 민주당에 절대 복당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같이 탈당했던 오범구, 김영숙 시의원은 아예 국민의힘에 입당해버렸다. 이로 인해 의정부시의회는 아예 국민의힘에 넘어가고 말았다. 2년뒤 8회 지선에선 아예 시장부터 국민의힘에 함락당하고 말았다.[11] 다만 현직인 오영환 역시 이낙연계로 활동하면서 민주당 지지층들의 비토가 늘어난 탓에 차기 총선에서 오영환과 경선에서 붙는다면 문석균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해볼 만한 상황이다.[12] 앞서 언급했던 사실이지만 경선을 할 경우 지역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문석균 쪽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1호 영입인재를 세습 정치인에게 맥없이 내주는 거냐며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전후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인데, 4년 전과 현재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4년 전에 민주당이 여당일 때는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정부지원론 바람이 거셌고, 문희상은 현직 의장이라 문석균을 적극 지원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며, 전략공천된 오영환은 전국민에게 이미지가 좋은 소방관 출신에 인지도가 높은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의 남편이라는 화제성도 있었기 때문에 지역 조직이 이탈해도 찍어 누르고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박지혜는 기후 변화를 의제로 영입한 인재긴 하지만 그만한 화제성은 없기 때문에 오영환 만큼 유권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고, 전략공천을 또 한다면 이제 야인이 된 문희상이 불복을 적극 지원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데다가, 문석균과 민주당 중앙당 간의 갈등의 여파가 지난 지방선거까지 이어져서 국민의힘에 의정부시장, 의정부시의회를 죄다 헌납해버렸기 때문에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문석균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고육지책으로 대신 지역 조직의 영향력이 최소화되는 국민 경선에, 여성+신인 가산점 25%에 승부수를 걸고 경선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13] 그래도 경선에서 패해서인지 문석균은 바로 승복하고 박지혜 캠프를 방문해서 지지를 공언했고, 4년 전 오영환 전략공천에 극언을 퍼부은 전 의정부시장 안병용도 캠프를 먼저 방문했고, 박지혜는 오영환은 선거 후에야 만날 수 있었던 지역 원로 문희상도 선거 전에 만날 수 있어서 당이 욕을 먹으면서 경선을 실시한 효과는 제대로 봤다(...). 그리고 4년 전보다 더 큰 득표율로 이겼다. 물론 이건 문석균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8%를 갈라먹은 지난번과 달리 출마를 안한 영향이 크다.[14] 이런 논란 때문인지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의정부시 갑 국회의원 지역구를 전략공천 대상 지역으로 지정했다. 경선으로 진행할 경우 부친의 영향으로 지역구 내 입지가 강한 문석균에게 유리하기 때문.[15] 이런 이재한의 낙선을 통해 건설사 회장이던 지역 유지 박덕흠이 4선 중진 국회의원으로 성장했다.[16] 장제원은 아버지 장성만의 임기가 끝나고 20년이 지나서 첫 당선을 겪었으며, 홍문종도 8년의 공백이 있다. 김세연 역시 4년의 공백이 있는 것은 물론, 초선 당선 당시에는 아버지 김진재가 사망하고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17] 홍문종15대 총선에 처음 나왔는데 부친 홍우준13대 총선이 마지막이었다. 김세연18대 총선에서 처음 나왔는데 부친 김진재16대 총선이 마지막이였다. 장제원은 18대 총선에 처음 나왔고, 부친 장성만12대가 마지막이었다. 거기다 같은 지역구도 아니었는데, 장성만북구 갑 쪽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장제원은 당시 북구 을이었던 사상구에 기반을 뒀다.[18] 심지어 남경필은 당시 미국에서 박사 과즹 유학을 하다가 갑자기 온 사례였고, 본인은 원래 정치보다는 학자의 길을 걸으려고 했다. 그러나 남평우가 사망하면서 갑자기 귀국해야만 했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소장파를 키워 정치 쇄신을 한다는 명분으로 남경필을 공천하기로 한 것이다.[19] 부산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쭉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음.[20] 더군다나 정우택은 충북도지사를 지낸 이후에는 아예 지역구를 아버지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청주시 상당구로 옮겼기 때문에 아버지의 후광은 사실상 없다.[21] 차라리 의정부시 갑이 아니라 의정부시 을에 나갔으면 비판이 훨씬 덜했을 건데 여기는 문희상의 지역구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버지 문희상 이상으로 지역기반이 탄탄한데다 집권여당 사무총장까지 지낸 홍문종의 지역구였기 때문에 여기 나가면서 아빠찬스를 거부하겠다고 했으면 적어도 명분이라도 살릴 수 있었다. 실제로 김영호 의원이 그랬는데, 부친인 김상현 의원의 지역구가 서대문 갑이었지만 통합민주당으로 합당 후 서대문구 갑은 우상호 의원이 버티고 있다보니 정두언 의원이 버티고 있는 서대문구 을에서 출마했다. 하지만 결국 20대 총선에서 여당소속으로 수도권 다선의원을 했던 정두언을 잡아냈고 이 후 어느 누구도 김영호 의원이 아빠빨로 국회의원 되었다고 핀잔 준 사람은 없었다.[22] 무려 415명 중 412명이 문석균을 따라갔다고 한다.#[23] 문석균과 같이 탈당한 무소속 시의원 3명 중 2명은 복당이 여의치 않자 아예 미래통합당 후신인 국민의힘에 입당해버렸다.[24] 결국 오영환은 불출마 선언,김민철은 경선탈락으로 22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