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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만 Norman | |
대항해시대, 외교 위주 군사 중심 | |
문명 특성 | |
노르마니타스 (Normannitas) | 지상 유닛이 승선 시 이동력이 +1 증가하고 해안에 인접한 지상 유닛은 전투력이 +5 증가합니다. 화이트 타워 건설 시 |
특유 유닛 | |
노르만 기사 (Chevaler) | 노르만 특유 기병 유닛입니다. 더 느린 유닛 상대 시 전투력이 +3 증가합니다. 통제 지역을 무시합니다. |
소크만 (Sokeman) | 노르만 특유 개척자입니다. 새로운 마을을 만들 수 있는 민간인 유닛입니다. 새로운 마을을 만들면 도심부에 중세 성벽을 얻습니다. |
특유 구역 | |
돈종 (Donjon) | 노르만 특유 구역입니다. 하나의 특수지구에 중세 성 안뜰과 중세 성 체성을 지으면 생성됩니다. 구역 생성 완료 시 노르만 기사 유닛 1기를 무료로 얻습니다. |
특유 건물 | |
중세 성 안뜰 (Bailey) | |
중세 성 체성 (Motte) | |
시대 잠금 해제 | |
근대 시대에서 근대 시대에서 근대 시대에서 |
1. 개요
문명 7의 오리지널 등장 문명으로, 노르만족을 모티브로 하였다. 중세 영국과 노르망디 공국의 요소가 섞여 있다.노르만 제국
노르만은 바위투성이 해안에서 정복을 꿈꾸며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노르만'이라는 이름은 이들의 고향인 스칸디나비아를 뜻하지만, 프랑스에 정착한 동안 이들의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고, 이후 다시 항해를 시작하여 1066년 영국을 정복했습니다. 노르만 기사들은 석조 성에서 머물며 성 밖으로 나가 기사도를 추구했습니다. 노르만은 영국의 지배층이 되었다가 종국에는 영국 사회에 통합되었습니다.
노르만은 바위투성이 해안에서 정복을 꿈꾸며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노르만'이라는 이름은 이들의 고향인 스칸디나비아를 뜻하지만, 프랑스에 정착한 동안 이들의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고, 이후 다시 항해를 시작하여 1066년 영국을 정복했습니다. 노르만 기사들은 석조 성에서 머물며 성 밖으로 나가 기사도를 추구했습니다. 노르만은 영국의 지배층이 되었다가 종국에는 영국 사회에 통합되었습니다.
2. 역사적 배경
-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 사람들은 중세 영국을 떠올릴 때 종종 노르만족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노르만 왕권은 기사도를 확립했고, 노르만 통치로 영국은 서유럽이라는 문화권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으며, 노르만 기사들은 근동의 십자군 국가 몇 개와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노르만족의 뿌리를 찾으려면 먼저 스칸디나비아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노르만족은 대륙 체제를 통해 다시금 영국 사회를 정비하고 훈련했습니다. 방패 벽과 허스칼은 사라지고 귀족 노르만 기사와 대기병 색슨족 보병이 등장했습니다. 법률 체계가 정비되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과 석재 성이 표준이 되었습니다. 아서 왕과 기사들이 나오는 켈트족 전설을 비롯한 지역 설화 또한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형태로 새로운 청중을 위해 각색되었습니다.
정복 후 윌리엄은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의 목록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규모 토지 인구 조사인 둠스데이 북의 작성을 의뢰했습니다. 이 기록은 세금 납부액을 통해 토지에 가치를 매겼고, 국가는 윌리엄 개인에게 할당할 수 있는 사유지, 즉 봉토가 아닌 땅을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노르만족은 영국을 바꾸었습니다. 게르만과 켈트족의 충돌을 방해하는 동시에 영국을 대륙과 하나로 묶었습니다. 노르만족의 기술과 언어는 영국인의 삶을 정의하는 특징이 되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경쟁은 계속되었지만, 오늘날 영국은 스칸디나비아보다는 서유럽과 문화적으로 더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노르만족은 '몰락'하지 않았습니다. 노르만족은 섞여 들어갔습니다. 1066년부터 백년전쟁(1337년)이 발생하기 전까지 영국의 앵글로-색슨 인구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배 노르만족 계층은 분열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백년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영국은 후퇴했고, 국가는 다시금 발전했습니다. 장미전쟁 같은 다른 문제가 더 시급해지고 내부 민족 분열은 계급 분리로 크게 바뀌었습니다.
서기 793년, 노르드 해적들은 기독교 유럽의 부를 발견했습니다. 바이킹은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항구에서 출발하여 강과 해안을 따라 정착지를 약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지만 노르드의 업적은 수도원을 불태우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탐험가, 상인, 장인, 농부이자 전사였습니다. 많은 곳에서 바이킹은 자신들이 싸운 곳에 터를 잡았으며, 이러한 현상은 말기에 두드러집니다. 가장 확연한 사례로 롤로(흐롤프)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바이킹 지도자는 911년에 서프랑크 왕국을 위협했습니다. 단순왕 카롤루스 3세(지성이 아닌 정직함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는 노르만인의 세례와 충성 서약의 대가로 롤로에게 땅을 하사했고, 그렇게 노르망디 공국이 생겨났습니다. 사실 영어 'Norman'은 북부인을 뜻하는 노르드 단어 'norrmaðr'를 프랑스어가 차용한 표현에서 나왔습니다.
노르만족은 안 그래도 복잡한 프랑스의 인종 구성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랑스인'은 소수의 이질적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갈리아인은 대체로 로마의 양식에 동화되었지만, 프랑스 북부에는 여전히 켈트족 브르타뉴인이 있었습니다. 빠르게 갈리아 양식에 적응하기는 했지만, 프랑크족은 게르만 집단이었습니다. 노르만족은 박식했지만, 아첨과 자기 자랑에 약하며 순간적으로 욱하여 싸우는 경향이 있어 이웃 국가들의 평판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음 흐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롤로 시대보다 한 세기가 더 지난 후, 노르만족은 해상 습격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북부 프랑스에서 퍼져나간 노르만족은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이베리아와 튀니지의 무슬림 토후국들과 싸웠습니다. 하지만 노르만족은 영국 침공으로 가장 유명합니다.
노르만족이 예고 없이 그냥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영국 통치자 무책왕 에설레드는 노르만족 공주와 결혼했고 그들의 아들인 참회왕 에드워드는 노르망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066년 에드워드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의 매제인 해럴드 고드윈슨이 왕실 평의회인 위탄에서 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두 명이 왕위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왕위를 약속했다고 주장한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작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노르웨이의 하랄드 하르드라다 왕(오늘날에는 '엄격한 통치자'라는 뜻의 'harðráði'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음)으로, 그는 1038년에 죽은 조카의 왕위를 이어받았고 고드윈슨의 사이가 멀어진 형제도 이를 지지했습니다. 해럴드 고드윈슨의 통치는 첫걸음부터 불안정했고, 시기는 무르익어 왕좌는 정복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윌리엄과 하르드라다는 둘 다 같은 해에 공격에 나섰습니다.
고드윈슨은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랐습니다(세 번째 위협은 해안을 습격하던 그의 형이었습니다). 절박해진 고드윈슨은 북쪽으로 달려가 하랄드의 군대를 만나 그들을 해산시켰고, 목에 화살을 꽂아 노르웨이 왕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고드윈슨은 전장에 너무 오래 있었습니다. 그가 노르만족을 상대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했을 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노르만족은 이미 헤이스팅스에 임시 성을 지었던 것입니다. 고드윈슨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유명한 이야기에서는 눈에 화살을 맞았다고 하지만, 전투 중 윌리엄에게 죽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죽었든 영국은 이제 노르만족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노르만족은 영국 땅을 안정화하고 통합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즉 앵글로-색슨족을 엄중히 단속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들 대다수는 유럽 본토로 도피하거나 비잔티움의 정예 용병 부대인 바랑인 친위대에 합류했습니다. 옛 색슨 귀족도 노르만 귀족의 이익을 위해 축출되었습니다.
노르만 프랑스의 민족 구성을 짧게 묘사했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영국에 대해서도 동일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영국은 원래 켈트족(구체적으로는 브리손인으로 브르타뉴인, 웨일스인, 콘월인, 스코틀랜드인 등을 의미함)이었지만 중세 초기에 동쪽의 침략을 받으면서 이 구성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게르만 부족인 앵글로족과 색슨족, 그리고 노르만 정착민들이 나라를 나누었고, 각자의 문화유산을 혼합했습니다. 노르만족은 바이킹 조상으로부터 고작 한 세기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전쟁 방식과 기술에 크게 동화되었습니다. 실은 노르만 언어조차도 노르드어보다는 프랑스어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3. 고유 요소
3.1. 문명 특성
<keepall> 노르마니타스 Normannitas |
지상 유닛이 승선 시 이동력이 +1 증가하고 해안에 인접한 지상 유닛은 전투력이 +5 증가합니다. 화이트 타워 건설 시 |
3.2. 특유 유닛
3.2.1. 노르만 기사
<keepall> 노르만 기사 Chevaler | ||||||
| ||||||
능력치 | ||||||
<rowcolor=#fff> 근접 전투력 | 이동력 | 시야 | ||||
<rowcolor=#fff> 40 → 45 → 50 | 3 | 2 | ||||
비용 | ||||||
<rowcolor=#fff> 생산 비용 | 구매 비용 | 유지 비용 | ||||
<rowcolor=#fff> 150 → 190 → 240 | 600 → 760 → 960 | 2 → 3 → 4 | ||||
{{{#!wiki style="margin:0 -11.25px -5px; min-height: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중세의 고전적인 기사인 노르만 기사단(슈발리에)은 토지와 농노를 받는 대가로 일시적인 군 복무를 수락한 귀족이었습니다. 노르만 기사는 말, 방패, 창, 검, 호버크(체인메일 셔츠)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풀 플레이트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전투에서 이 슈발리에들은 중장갑을 착용하고 기동성이 뛰어나며 장비와 훈련 면에서 모자랐던 보병을 상대로 파괴적인 랜스 돌격을 가할 수 있는 중세의 전차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는 엘리트들은(특히 교황의 석궁 금지령 이후) 보호를 받으며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던 반면, 농노들은 순발력이나 운에 의존해야 했던 중세 시대의 신분제에 대한 강력한 메타포이기도 했습니다. 기사단 내에서는 지위, 의무, 토지, 폭력이 전장 안팎에서 한데 어우러집니다. |
유닛 특성 | |||||
노르만 특유 1~3티어 기병 유닛입니다. 더 느린 유닛 상대 시 통제 지역을 무시합니다. | |||||
다음을 대체 | |||||
|
3.2.2. 소크만
<keepall> 소크만 Sokeman | ||||||
| ||||||
능력치 | ||||||
<rowcolor=#fff> 이동력 | 시야 | |||||
<rowcolor=#fff> 3 | 1 | |||||
비용 | ||||||
<rowcolor=#fff> 생산 비용 | 구매 비용 | 유지 비용 | ||||
<rowcolor=#fff> 50~ | 200~ | 0 | ||||
{{{#!wiki style="margin:0 -11.25px -5px; min-height: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소크만은 노르만 잉글랜드에서 토지를 소유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동시에 궁정 지원을 통해 영주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일종의 소작인이었습니다. 소크만의 기원은 앵글로색슨 법이 아닌 노르드 법에 따라 운영되던 영국의 넓은 영토였던 초기 데인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농업 소작인에는 영주의 토지를 소유하는 대신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 농노, 토지를 임대하고 특정 법률에서 면제되는 자유 소작인의 두 형태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소크만은 이 두 유형 사이에 존재했으며, 궁정의 추가 지원을 받아 영주를 섬기면서 토지를 더욱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지녔습니다. |
유닛 특성 | |||||
노르만 특유 개척자입니다. 새로운 마을을 설립할 수 있는 민간인 유닛입니다. 새로운 마을을 만들면 도심부에 중세 성벽을 얻습니다. | |||||
다음을 대체 | |||||
|
3.3. 특유 구역
3.3.1. 돈종
돈종 Donjon | |||||
| |||||
{{{#!wiki style="margin:0 -11.25px -5px; min-height: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모트 앤 베일리 성의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르만족의 통치자 정복왕 윌리엄이 1066년 침략 이후 영국에 이 건축 양식을 도입하면서 대중화되었습니다. 흙과 목재로 지은 이 성은 제작 과정이 저렴하고 빠르면서도 정복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윌리엄은 영국 전역에 이런 성을 수백 개나 쌓아 통치를 공고히 하는 권력 거점으로 활용했습니다. 모트 앤 베일리 성은 참으로 효과적이었기에 왕실의 허가 없이 성을 짓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곽을 건설할 때 금방 썩고 쉽게 불이 붙는 목재 대신 석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요새는 훨씬 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건설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초기 설계에 비해 많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잘 보호된 돈종(내성, 중앙 요새화 탑)은 공격에 더 잘 저항했고 방어 능력을 강화할 새로운 구성도 가능했습니다. 성을 직접 정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으며 공성 포위 공격이나 사보타주를 통해서만 함락할 수 있었습니다. 석조 요새는 위풍당당하고 권위 있는 건물로, 그 안에 사는 귀족의 부와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결국 성의 시대는 화약 때문에 저물었지만,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많은 성들은 건축가가 상상했던 아름다움과 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
구역 특성 | |
노르만 특유 구역입니다. 하나의 특수지구에 중세 성 안뜰과 중세 성 체성을 지으면 생성됩니다. 구역 생성 완료 시 |
3.4. 특유 건물
3.4.1. 중세 성 안뜰
중세 성 안뜰 Bailey | |||||
| |||||
{{{#!wiki style="margin:0 -11.25px -5px; min-height: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성은 단순한 주둔지가 아닙니다. 성은 마구간, 창고, 작업장, 예배당이 있는 작은 마을과 같은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시설들은 모트의 기슭을 감싼 요새화된 정착지, 베일리(안뜰) 안에 건축되었습니다. 울타리나 성벽의 보호를 받는 베일리는 성곽 단지의 가정적, 경제적 요구에 부응하며 성채에 들어갈 수 없는 시설이나 들어가면 안 되는 서비스(예를 들어 부엌은 화재에 취약하기 때문에 주요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지음)가 자리 잡을 공간을 추가로 제공했습니다. 아성은 모트에 뚫린 계단이나 공격 중에 올릴 수 있는 플라잉 브리지(도개교의 일종)를 지나서 갈 수 있었습니다. 와드라고도 불리는 베일리(안뜰)는 모트 앤 베일리 성채의 시대 이후에도 계속 성의 시설로 남았습니다. 큰 요새에는 종종 여러 개의 베일리가 있었는데, 외부의 베일리는 방어 수단과 소모성 구조물을 전담했고 내부 와드는 장기간의 공성 포위 공격을 받을 때 생존에 필요한 시설을 수용했습니다. |
건물 상세 | |
요구 조건 | |
생산 비용 | |
입지 조건 | - |
유지 비용 | |
건물 산출 | |
건물 효과 | 중세 성벽 및 불가사의 인접 시 요새 역할을 함 시대를 초월함 |
3.4.2. 중세 성 체성
중세 성 체성 Motte | |||||
| |||||
{{{#!wiki style="margin:0 -11.25px -5px; min-height: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높은 지대는 성을 쌓기에 유리하지만, 때로는 인공적으로 고지대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땅을 깎아 인위적으로 가파른 측면과 평평한 꼭대기가 있는 언덕인 모트를 만들었습니다. 모트는 기존 언덕을 깎아내거나 흙으로 언덕을 쌓아서 만들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구조물 바닥에 만들어진 방어용 도랑에 물(또는 뾰족한 통나무)을 채워 해자가 생겨났습니다. 해자는 공격자가 오르기가 매우 어려웠고 건설 비용이 저렴하며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모트는 평평한 지형에서도 빠르고 쉽게 방어 상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모트 꼭대기에는 성의 중앙 방어 시설인 아성이 있었습니다. 작은 아성에는 소규모 수비대가 주둔하는 반면, 큰 아성은 가문 하나를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아성 아래층에는 방과 보급품으로 가득한 지하실이, 윗층에는 귀족 가문과 귀족의 직원, 경비병들을 위한 방이 있었습니다. |
건물 상세 | |
요구 조건 | |
생산 비용 | |
입지 조건 | - |
유지 비용 | |
건물 산출 | |
건물 효과 | 거친 지형에 배치하면 불가사의 인접 시 요새 역할을 함 시대를 초월함 |
3.5. 특유 사회 제도
3.5.1. 관습과 정의
관습과 정의 Consuetudines et Justicie | ||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약속하지 마라." - 예절 교범 | ||
{{{#!wiki style="margin:0 -11.25px -5px; min-height: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노르만 공작의 권력은 성문법이 아닌 관습을 통해 전승되었습니다. 때문에 정치적인 변화가 발생했을 때 권위를 말로 보전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정복왕 윌리엄의 장남인 로버트 커토스는 1096년 제1차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노르망디의 통치를 맡을 섭정을 찾았습니다. 그의 동생인 잉글랜드 왕 윌리엄 루퍼스는 은화 1만 개를 내고 섭정직을 맡았지만, 노르만 통치자의 관습적 권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원활한 이양을 보장하고자 로버트와 윌리엄은 이러한 권리를 서면으로 확립하기 위해 검토를 의뢰했습니다. 노르망디의 남작들과 주교들이 캉에서 모여 현재 '관습과 정의(Consuetudines et Justicie)'로 알려진 문서에 자신들의 지식을 기록했고, 이 이례적인 기록을 보면 정복왕 자신이 설정한 권력의 책임과 한계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사회 제도 상세 | |
요구 문화 | |
선행 사회 제도 | - |
후속 사회 제도 | 보통법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 |
사회 제도 숙련도 | |
요구 문화 |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3.5.2. 보통법
보통법 Common Law | ||
"실수와 무지를 핑계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덮는다." - 정의의 거울 | ||
{{{#!wiki style="margin:0 -11.25px -5px; min-height: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노르만인이 도착하기 전 영국인은 지역 법원과 관습에 의존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문서화되지는 않았지만, 수 세기에 걸쳐 공동체에서 받아들이고 사용했습니다. 노르만인은 이러한 전통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인식하고 노르만의 법률 체계 내에서 이러한 전통을 장려했습니다. 지역 사건을 심리하는 판사들은 지역 관습에 따라 판결했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취급되어 후대의 판결에 대한 선례가 되었습니다. 노르만인은 지역 관습에서 해결책을 도출하고 이를 왕국 차원에서 성문화하여 모든 영국 법원에 적용되는 '보통법'을 만들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대영제국은 이 체계를 여러 식민지에 퍼뜨렸으며, 관습법은 전 세계에 선도적인 법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
사회 제도 상세 | |
요구 문화 | |
선행 사회 제도 | 관습과 정의 |
후속 사회 제도 | 둠스데이 북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
사회 제도 숙련도 | |
요구 문화 |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3.5.3. 둠스데이 북
둠스데이 북 Domesday Book | ||
"고대부터 이곳은 도시였다." - 영국에 대한 설명 | ||
{{{#!wiki style="margin:0 -11.25px -5px; min-height:calc(2em + 2.5px)" {{{#!folding 역사적 배경 [ 펼치기 · 접기 ] |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새로운 정권이 영국의 통치권을 얻으면서 왕과 왕이 지배하는 영토 사이의 관계가 흔들렸습니다. 1085년, 정복왕 윌리엄은 소유한 영토에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종합적인 조사를 시행하여 왕과 영토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각 영주가 왕실에 얼마의 세금을 납부하고 몇 명의 기사를 군대에 파견해야 하는지 파악하고자 했지만, 왕국의 총가치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는 훗날 둠스데이 북으로 명명된 원고에 매우 축약된 라틴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책은 앵글로-노르만 잉글랜드 전역의 부와 권력 분배를 담은 이 시대의 가장 완벽한 공공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
사회 제도 상세 | |
요구 문화 | |
선행 사회 제도 | 보통법 |
후속 사회 제도 | -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
사회 제도 숙련도 | |
요구 문화 | |
잠금 해제 | |
사회 제도 효과 |
3.6. 전통
<keepall> 바이외 태피스트리 우리 문명이 건설하지 않은 정착지에서 |
<keepall> 봉건제 봉사 의무 기병 유닛의 |
<keepall> 울타리 치기 요새 건물 건설 시 |
<keepall> 중세 시대 왕가 정부 슬롯에 장착된 전통 하나마다 |
<keepall> 쥐레 궁전에서 |
4. 운영
기병과 행복도, 문화 기반 내정 보너스가 조합된 강력한 육군 문명이다. 구대륙 판도를 바로잡거나 육상을 든든하게 평정하고 천천히 신대륙에 진출하고 싶다면 무난하게 고를 수 있다. 승선 보너스와 성벽 제공 덕분에 신대륙 확장도 시작만 하면 빨라진다.역사적 픽으로 샤를마뉴와 궁합이 매우 좋다. 기병+행복도 보너스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돌아간다. 슈발리에를 일부러 사거나 생산하지 않아도 풀군단 채울 정도로 튀어나온다.
특성 유닛인 슈발리에 역시 기본적으로 전투력 보너스를 받고 다니며, 전통 카드로 더욱 강해진다. 자신보다 느린 유닛에 대한 전투력 보너스가 보장되는데, 기병보다 빠른 육상 유닛은 없으므로 결국 같은 기병을 빼면 상시 보너스를 누린다. 게다가 전통 카드로 사회정책 비례 보너스도 받아먹고 유지비 할인까지 받는다.
특히 같은 기병 강국인 몽골에게는 하드 카운터이다. 다른 병종 보너스는 없지만 케식 역시 전통 찍히기 전엔 슈발리에보단 느려서 전투력으로 압도할 수 있고, 또한 전통 쌓아올린 슈발리에 보너스가 몽골의 깡 보너스 5보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노르만 고유 전통만 다섯개나 되는데, 거기에 고대 문명들은 전통이 최소 3개 이상 보장되므로 작정하면 몽골 기병보다 강해진다. 기병만 피해서 타 유닛이나 지휘관만 먼저 잘라 주면 훨씬 유리해진다. 몽골보다 내정 보너스도 안정적이다.
소케만으로 지은 도시에 성벽이 제공되는 것도 장점이다. 심지어 기술 연구 이전에도 중세 성벽이 제공되는데다, 중세 성벽 자체가 빠름 기준으로도 일시불 400원이나 하기 때문이다. 도시 펴고 원거리 병종 하나만 박아도 튼튼한 마을 알박기가 가능하다. 당연히 신대륙에서도 더욱 유리하다.
무한 확장과 전쟁의 부작용을 잡아줄 정도로 행복도와 문화가 굴러들어와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특구 문명 자체가 안 그래도 강세인데, 돈종은 방어 지구로 취급되기까지 한다.
고대에 무난하게 강한 로마를 고르면 선택지가 보장된다는 점도 장점이다. 잔뜩 확장한 마을들을 도시화하면 돈종을 깔아 행복도를 챙길 수 있고, 겸사겸사 기병 유닛도 잔뜩 수급해 정복 기조를 이어나갈 수 있다.
5. 도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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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수도.
- ★ 루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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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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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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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룬드레스
- 도보레
- 쥐소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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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랑슈
- 노팅엄
- 옥센포드
- 카티넨제
- 스태퍼드
- 리스
- 알른윅
- 카타셈
6. 연관 지도자
7. 연관 불가사의
8. 연관 자연 환경 명칭
9. BGM
원곡은 Le Roi Anglois, Branle de Champaigne, Suite Renascentista.
10. 스플래시 아트
시대가 종료할 때 각 길의 유산 달성 시, 문명의 스플래시 아트와 함께 각 유산에 따라 나오는 나레이션이 달라진다.10.1. 문화 황금기 달성 시
10.2. 군사 황금기 달성 시
10.3. 과학 황금기 달성 시
10.4. 경제 황금기 달성 시
11. 여담
- 멀쩡히 번역된 슈발리에, 모트, 베일리가 1.1.0 업데이트를 통해 뜬금없이 노르만 전사, 중세 성 안뜰, 중세 성 체성으로 바뀌어 악평을 듣고 있다. 심지어 예전 명칭과 바뀐 명칭이 이곳저곳에서 혼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