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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10-25 20:45:20

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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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e Young

1. 프로필2. 소개3. 데뷔 전4. 프로레슬링 커리어5. WWE에서의 주요 활약상6. 기타7. 둘러보기

1. 프로필

파일:Mae_Young_pro.png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조니 메이 영
Johnnie Mae Young
별칭 Queen Of The Canvas
The First Diva
The Great Mae Young
The Matriarch of the Mat
The Original Diva
출생일 1923년 3월 12일
출생지 미국 오클라호마 주 샌드스프링스
사망일 2014년 1월 14일 (향년 90세)
사망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
신장 163cm
체중 82kg
피니시 무브 엘보 드롭
보스턴 크랩
유형 올드 스쿨
테마곡 Ooh Baby!
주요 커리어 NWA 플로리다 위민스 챔피언십 1회
NWA 유나이티드 위민스 챔피언십 1회
NWA 위민스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 1회
미스 로얄 럼블 우승 (2000년)
명예의 전당 (2008년)
WWE 슬래미 어워드 - Knucklehead Moment of the Year (2010년)
프로페셔널 레슬링 홀 오브 페임 앤 뮤지엄 - 여자 레슬러 부문 (2004년)


2. 소개

써니와 함께 오리지널 디바[1]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여자 프로레슬링의 전설.

3. 데뷔 전

1923년 3월 12일.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샌드스프링스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 릴리 메이 영은 대공황 시기에 혼자 아이들을 길렀다.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더불어 그녀의 언니는 아주 어린 나이에 심한 기침을 하여 장애를 갖게 되는 등 매우 어려운 살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다. 그녀가 본인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아마추어 레슬링 팀(당시 남학생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에 들어가고 싶어하자 오빠인 프레드, 유진, 로렌스, 에버렛이 레슬링을 가르쳐주고 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오빠들의 도움 덕분에 15살부터 고등학교 아마추어 레슬링 팀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또한 소프트볼에도 재능을 보여 털사의 국가 선수권 팀과 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프로레슬링을 구경하러 갔다가 글래디스 길렘과 경기를 치르러 지역을 방문한 밀드리드 버크에게 도전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프로모터들로부터 ‘챔피언과는 겨룰 수 없다’라고 거절당하고 대신 글래디스 길렘, 엘바이라 스노드그라스와 실전 경기를 벌였는데, 실전 경험이 없는 영이 불과 몇 초 만에 두 선수를 이겨버린다. 이를 본 밀드리드 버크의 남편이자 프로모터인 빌리 울프가 그녀에게 프로레슬러 데뷔를 제안했다.

그리고 2년 후 프로레슬링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 이후 여행을 다니다가 노스 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페뷸러스 물라를 만나 함께 훈련을 받았고, 에드 루이스와도 친분을 쌓았다. 루이스는 영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난 여자 레슬러들을 좋아하지 않아. 여자들은 부엌에 있어야지. 그런데 너는 레슬링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아.”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그녀의 경력에 대해서는 상반된 자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본인의 데뷔 경기가 1939년 8월 20일이라고 주장했고, WWE도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의 데뷔가 1940년 3월 22일이었다고 얘기한 적도 있으며, 앞서 언급한 첫 상대 글래디스 길렘은 1942년에 데뷔한 선수로 알려져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프로레슬링 저널리스트인 데이브 멜처는 그녀가 1939년에 레슬링을 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으며, 1941년에 데뷔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멜처는 “그녀는 본인이 루 테즈처럼 70여년의 경력을 가졌다고 믿고 있다. 그녀가 2010년에 치른 (레이쿨과의) 경기도 경기다운 경기였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녀는 열여섯살이던 1939년에 데뷔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1941년 이전에 그녀가 활동했었다는 어떠한 자료도 찾을 수가 없다.”

4. 프로레슬링 커리어

1941년. 밀드리드 버크와 함께 캐나다로 건너가 스튜 하트를 도우며 프로레슬링을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7일. 테네시 주 멤피스에서 경기를 가졌다. 이 날은 진주만이 일본에 의해 폭격을 당한 날이었다. 그녀는 남성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 나가 싸우는 동안 여성들이 스포츠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실제로 이 시절부터 여자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갖지 않던 프로모터들이 그녀를 비롯한 여자 레슬러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는 주로 밀드리드 버크의 세계 여자 레슬링 협회(World Women's Wrestling Association. WWWA)에서 활동했다. 1951년. 초대 NWA 플로리다 위민스 챔피언에 등극했다. 1954년. 밀드리드 버크와 일본 투어를 진행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서 경기를 가진 최초의 여성들이었다. 1956년 9월 18일. 공석이 된 NWA 월드 위민스 챔피언십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13인 배틀 로열에 출전했으나 아쉽게 탈락. 친구인 페뷸러스 물라가 우승하여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바로 이 챔피언십이 훗날 물라가 WWF에 팔아넘겨 WWF 위민스 챔피언십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그 챔피언십이다.

1968년.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트 위민스 챔피언십을 획득했다. 타이틀은 공석이었고 경기 상대가 누구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레슬링 업계를 잠시 떠났었거나 (아니면 지역의 소규모 흥행에 출전하는 등) 매우 소극적인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전의 자료도 사진으로 존재할 뿐 영상으로 접한 적이 없는데, 이 시기엔 사진 자료조차 찾기 힘들다. 1991년엔 레슬링을 잠시 접고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며 아픈 어머니를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나중에는 전도 활동을 접었다.)

5. WWE에서의 주요 활약상

계속 NWA 여성디비전등에서 활동한 매 영이 WWE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70세가 넘어서였다.

1999년 9월 9일. 스맥다운을 통해 WWE에 등장했다. 제프 제럿에게 기타로 얻어맞고 쓰러진 페뷸러스 물라를 도와주려다가 피겨-포 레그락에 당하는 역할이었다. 이후 영과 물라는 WWE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제프 제럿이 여자들을 무시하는 기믹으로 차이나를 비롯한 여자 선수들과 대립할 때, 여자 프로레슬링의 레전드인 물라와 함께 슬쩍슬쩍 얼굴을 비추던 역할. 처음엔 지극히 정상적인 기믹이었고 물라에 비해 비중도 적었다. 사실 WWF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명예의 전당에도 오른 물라에 비하면 영은 레슬링을 꾸준히 시청한 팬들에게도 생소한 인물이었다. 일단 이전까진 방송 출연이 거의 없었으니

같은 해 9월 27일. Raw is War에서 WWE 데뷔전을 치렀다. 물라와 팀을 이뤄 당시 WWF 위민스 챔피언이던 아이보리를 상대로 핸디캡 이브닝 가운 매치(상대방의 가운을 모두 벗기면 이기는 경기)를 가졌는데, 아이보리에 의해 옷이 홀랑 벗겨지며 팬들에게 웃음과 당혹감을 주었다. 경기는 물라의 활약으로 승리했다.

10월 17일 노 머시. 아이보리의 챔피언십에 도전하는 물라의 매니저로 나섰다. 경기 내내 얼쩡거리다가 아이보리에게 공격 당하기만 했지만, 마지막엔 아이보리의 주의를 끄는데 성공하여 물라의 타이틀 획득을 도왔다. 그 다음 주엔 물라의 챔피언십에 욕심을 보이고 도전하려다가 물라에게 얻어맞는다. 11월 14일. 서바이버 시리즈 태그 팀 경기에 출전. 물라, 토리, 데브라와 팀을 이루어 아이보리, 루나 바숑, 재클린, 테리 러널스 팀을 상대했다.

2000년 로얄럼블에서 열린 비키니 컨테스트에 등장. 실제 가슴을 노출[2] 하는 것을 계기로 변태 기믹이 본격화된다. 1999년 말부터 2000년까지 ‘섹슈얼 초콜릿’ 마크 헨리와 연애 각본을 가지며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포커로 APA의 돈을 몽땅 털어간 뒤 돈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헨리를 도와주도록 만든 적도 있고, 임신 발표를 하고 얼마 뒤 사실은 임신이 아니라 손 모양의 실리콘 딜도가 박혀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스토리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은 버버레이 더들리에게 무대 아래로 테이블 파워밤을 당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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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들리 보이즈에 의해 엔트런스에서 테이블 위로 낙차 몇 미터는 되는 싯아웃 파워밤을 맞는 등 70대 할머니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험악한 각본에서도 다치지 않고 활동해 주시는 노익장을 과시한다. 더들리는 각본을 받고 나서 계속 걱정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77세 노인에게 그런 스턴트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더들리가 리허설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는 자신을 다른 남자 선수과 똑같이 대하라며 크게 혼을 냈다고 한다. 나이를 잊은 그녀의 프로 정신과 열정을 논할 때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이다.[3][4][5]

2000년 1월 23일. 로열 럼블에서 열린 수영복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미스 로열 럼블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콘테스트에서 가슴을 노출한 사건이 유명한데, 실제로는 가짜 가슴을 붙인 것이다.[6]

4월 2일. 레슬매니아 2000에 더 캣의 매니저로 나섰다. 더 캣의 상대는 페뷸러스 물라를 매니저로 대동한 테리. 경기는 영이 스페셜 레퍼리 발 비너스에게 추근거리는 사이 물라의 반칙으로 테리가 승리했다. 이후 영은 물라에게 브롱코 버스터를 가하며 복수했다.

2002년 7월 29일. 자서전을 출간한 물라와 함께 오랜만에 RAW에 등장했다. 악역 단장을 맡고 있던 에릭 비숍은 자말과 로지에게 두 사람을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160kg의 거구 자말은 그녀에게 다이빙 스플래시를 시전했다.[7]

2003년엔 WWE의 PPV 배드 블러드에 출연, 에릭 비숍에게 립스틱이 다 번질 정도로 진한 키스를 퍼부은 뒤 치마를 벗어제끼고 브롱코 버스터를 선물했다. 그리고 직후 스티브 오스틴에게 스터너를 당한다. 9월 15일. RAW에 출연. 빅토리아와 경기를 치르는 물라를 따라 나왔다가 줄곧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11월 11일. 스맥다운에서 열린 터프 이너프 세그먼트에 출연해 훈련생들 일부를 덮치며(...) 진한 키스를 나눴다. 2004년 9월 23일. 스맥다운에서 물라와 함께 스쿨걸 룩(...)을 입고 스맥다운에 출연해 토리 윌슨 & 던 마리와 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2005년. 물라를 비롯한 여러 여자 레슬러들과 함께 1950년대 여자 프로레슬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Lipstick and Dynamite에 출연했다. 3월 23일엔 물라와 함께 코난 오브라이언 쇼에 출연하여 영화를 홍보했다.[8]

같은 해 레슬매니아 21은 할리우드에서 개최된 관계로 레슬러들이 각종 영화의 명장면들을 패러디하여 홍보 영상을 찍었다. 그녀는 스테이시 키블러, 물라와 함께 ‘원초적 본능’ 패러디 영상에 출연했다.

2006년엔 WWE 뉴 이어즈 레볼루션(2006)에서의 디바들의 건틀렛 브라 앤 팬티즈 매치[9]에 물라와 함께 깜짝 출연. 평소처럼 옷을 벗다가 그녀를 공격한 빅토리아의 티셔츠를 벗기고 퇴장했다.[10] 이후 RAW 백스테이지에도 등장했는데 미키 제임스에게 기습 키스를 했다!!! 트리쉬 스트래터스의 광팬이던 미키가 트리쉬에게 기습 키스했던 것을 재현한 것. 4월 2일에 열린 레슬매니아 22에선 백스테이지에서 스니츠키의 발 페티쉬 대상으로 등장, 스니츠키에게 발 마사지를 받으며 싫어하는 척하면서 느낀다(...)

다음 해인 2007년 레슬매니아 23의 백스테이지에도 출연했다. 8월 24일. 스맥다운에서 열린 비키니 콘테스트에 깜짝 등장. 도전자로 참가하여 우승까지 차지했다. 이때 과거의 가슴 노출 사건을 재연하려 하다가 토리 윌슨, 미셸 맥쿨 등 다른 참가자들에게 저지 당했는데, 맥쿨에 의하면 영의 힘이 너무 세서 말리기가 힘들었다고 한다.[11] 8월 26일. 서머슬램의 백스테이지에서 빈스 맥마흔을 덮치는 역할로 출연했다. 이때 물라는 그녀를 말리는 역할이었는데, 이 장면이 물라의 생전 마지막 WWE 출연분이다.

같은 해 15주년 기념 RAW에선 멜리나, 써니와 함께 빈스 맥마흔의 숨겨진 내연녀로 등장하기도 했다(...)

2008년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팻 패터슨의 추천으로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여성으로서는 페뷸러스 물라와 센세이셔널 셰리에 이어 3번째. 같은 해 800회 특집 RAW에선 16인 디바 태그팀 매치에 출전하지만 베스 피닉스에 의해 패한다.

2009년 4월 5일. 레슬매니아 XXV에서 열린 25인 디바 배틀 로열에 특별 타임 키퍼로 등장했다.

2010년 올드스쿨 특집 RAW에 출연. 레이쿨(미셸 맥쿨 & 레일라)에게 늙었다고 조롱받다가 폭발해 생방송 중에 욕을 하고 No DQ 경기를 제안, 선역 디바들의 도움으로 승리한다. 앞서 위에서 멜처가 언급한 ‘경기다운 경기라고 말하기 힘든 경기’가 바로 이 경기다. 경기장이 아닌 어디서든 폴과 3 카운트가 가능한 ‘폴스 카운트 애니웨어’ 룰에 반칙패가 없는 ‘No DQ’ 룰이 적용되어서 선역 선수들이 레일라와 맥쿨을 때려눕히고 영은 커버만 했다. 그녀의 나이와 경기의 룰을 감안하더라도 그녀가 한 것은 뺨을 한 대 때린 것 밖에 없는 이 경기가 진정 ‘경기’라고 부를만한 것인지에 대해선 멜처의 의견에 동의한다. 아무튼 이 경기는 그녀의 생전 마지막 경기로 기록되며, 193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90년대(nine different decades) 내내 경기를 치른 유일한 선수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 경기는 슬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멍청한 순간(Knucklehead Moment of the Year)상을 수상했다.

2011년 4월 3일. 레슬매니아 XXVII의 백스테이지에 출연하여 더 락, 이브 토레스와 세그먼트를 가졌다.

더 락의 생일인 2011년 5월 2일 RAW의 백스테이지에서 열린 더 락의 생일파티에선 돌프 지글러와 비키 게레로가 락에게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며, 매 영을 소개한다. 더 락을 놀리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정작 더 락은 매 영에게 미소와 함께 키스를 하며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

2012년 4월 10일. 스맥다운에 출연해 그레이트 칼리와 키스했고, 2012년 7월 23일엔 RAW 1000회 특집에서 자신이 출산했던 성인이 된 아들[12] 손(...)과 함께 등장했다.

9월 24일. 대니얼 브라이언과 케인의 분노 조절 프로모 영상에 출연했다. 이 영상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패러디로, 레슬매니아 21 시즌에 크리스티 헤미와 커트 앵글도 패러디했던 유명한 장면이다.[13]

12월 31일. RAW에 출연. 당시 디바스 챔피언이었던 이브 토레스와의 경기를 준비하던 도중 산통을 느끼고 쓰러지게 되는데, 이윽고 “Baby New Year” 혼스워글을 출산한다. 과거 손을 낳았던 것에 대한 패러디이자 신년을 하루 앞둔 WWE의 독특한 새해맞이 세그먼트였다.

2013년 3월 4일 RAW에선 슈퍼스타들과 디바들이 모여 그녀의 90번째 생일을 축하를 받던 도중 CM 펑크가 등장하며 축하 파티가 중단되었다. 이것이 그녀의 생전 마지막 WWE 출연이다. 이날 백스테이지에서 빈스 회장과 트리플 H가 그녀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그녀의 이름을 새긴 WWE 디바스 챔피언십 벨트를 선물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31일, 건강악화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졌고, 급기야 사망했다는 오보까지 나돌았다. 사망소식이 오보라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결국 2014년 1월 9일에 세상을 떠난다. 매 영이 늘 다짐해왔던 "100세가 되면 빈스의 딸 스테파니 맥마흔 또는 오로라[14]와 경기를 치를 것이다."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위에 기재한 내용들은 대충 인상적인 장면들만 추린 것이고, 백스테이지 세그먼트, 광고 출연 등등 WWE의 여러 분야에서 크고 작은 많은 활약을 했다.


WWE에서 공개한 매 영의 추모 비디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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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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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오리지널 디바 칭호를 먼저 얻은 건 써니다.[2] 방송에선 가려졌지만,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은...OME[3] 리허설에서 버버레이 더들리가 이걸 정말 해야 하냐며 갈등하고 있자 날 뒷방 늙은이 취급하지 말라며 호되게 혼을 냈다는 일화가 있다. 정작 버버도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버버레이는 매 영만이 아닌 누구에게든 기술을 매우 강하게 시전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레슬러라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성격도 매우 거칠기로 유명한 그 버버레이가 갈등을 한 것만으로도 매 영의 위상을 알 수 있다.[4] GIF에서는 잘렸는데, 이때 영상의 2분 8초 분량을 보면 스턴트 후 더들리의 손을 만지며 OK 사인을 보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움짤에서도 팔이 곧장 버버 레이쪽으로 향하는 걸 알 수 있다.).[5] 잘 보면 시전 후의 버버레이의 표정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테이블의 위로 정확히 낙하한 것이 아니라서 큰 충격이 가해졌을 상황이기 때문이다. 버버 레이의 싯아웃 파워밤은 시전 후 멍한 표정을 짓는 것이 포인트인데 평소보다 그 텀이 길었던 것도 제대로 시전되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가 매 영이 괜찮다는 듯이 버버 레이의 손을 주물러 준 후에야 본인의 원래 포즈를 취한 것이다.[6] 모자이크 없는 사진을 보면 색상으로 보나 길이로 보나 가짜임이 티가 난다.[7] 배를 덮치는 스플래시 계열 기술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당하기 꺼리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열정을 다시 한번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다.[8] 이 방송에서 그녀는 가슴 패드, 일명 뽕을 꺼내어 코난의 얼굴에 부비다가 바닥에 던지는 기행을 보였다.[9] WWE 역사상 최초의 여성 건틀렛 매치이다.[10] 같이 등장한 물라는 평소처럼 옷을 벗는 영을 말리는 역할이었는데, 영이 치마 지퍼를 못 내리자 직접 내려주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탐탁지 않은 척 표정 연기를 하는 것이 관전 포인트.[11] 한편 이때 토리 윌슨은 그녀에게 "정 벗고 싶으시다면 중계석에 앉은 JBL을 향해 벗어달라"라는 농담했다고.[12] 과거에 낳았던 그 손이 자랐다는 설정으로, 애티튜드 시대 시청자만 이해하는 개그다.[13] 참고로 헤미와 앵글이 찍은 영상에선 영의 대사를 린다 맥마흔이 한다.[14] 스테파니의 딸.[15] 밀드리드 버크는 WWE와 접점이 없고, 물라는 논란이 너무 많으며, 센세이셔널 셰리나 웬디 릭터, 얼룬드라 블레이즈는 경력이 애매하고 트리쉬나 리타는 너무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