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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크 던트 Mike Dirnt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 마이클 라이언 프릿처드 Michael Ryan Pritchard |
출생 | 1972년 5월 4일 ([age(1972-05-04)]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장 | 178cm |
직업 | 베이시스트 |
악기 | 베이스 기타, 보컬 |
소속 | 그린 데이 (1986년~현재) |
가족 | 아내 브리트니 케이드 (2009년/결혼 ~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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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이크 던트(Mike Dirnt)'라는 예명[1]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본명은 '마이클 라이언 프릿처드(Michael Ryan Pritchard)'이다. 빌리 조 암스트롱과 함께 그린 데이를 결성한 원년 멤버로, 베이스 기타와 백업 보컬을 맡고 있다.[2] 'Governator'나 'Homecoming'[3] 등 일부 노래에서는 리드 보컬을 맡기도 한다.[4] 빌리 조와는 10살부터 동고동락한 절친이자 형제 같은 사이로, 30년 넘게 밴드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2. 생애 및 활동 내역
평소 성격이 워낙 조용하고 낙천적이다보니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굉장히 불행한 가정사를 가졌다. 마이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버클리에서 태어나 갓난아기일 때 버려졌는데, 그의 친모는 헤로인 중독자였다. 아기였던 그를 백인 아버지와 아메리카 원주민 어머니가 입양하지만 그의 양부모는 마이크가 7살 때 이혼을 한다. 잠시동안 양아버지와 함께 살던 마이크는 다시 양어머니에게 돌아와서 캘리포니아 주 로데오(Rodeo) 지역에 살게 되는데, 이때 너무나도 빈곤한 가정형편을 견디지 못한 13살 누이가 집을 나간다. 한동안 집을 안 들어오던 양어머니는 마이크가 10살 쯤 어느날 처음 보는 남자를 집에 들이고 재혼한다. 그러나 그 생활도 몇 년 안 가서 양어머니는 아예 집을 나가버린다. 이후 마이크는 새아버지와 가까워지게 되고, 그런 마이크를 안쓰럽게 여긴 새아버지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몇 해 가지 않아 새아버지마저도 사망하면서 마이크는 17살에 혈혈단신이 되어버린다.빌리 조 암스트롱과 마이크가 만난 건 둘이 10살 때로, 둘은 만나자마자 친해져서 곧잘 빌리 조의 집에서 함께 기타를 치며 놀았다고 한다. 이 당시의 둘이 제일 좋아한 밴드가 '라몬즈(The Ramones)'와 '밴 헤일런(Van Halen)'이었다고. 15살 때부터 트럭에서 숙식하는 생활을 하던 마이크는 이후 빌리 조가 자신의 어머니를 설득하면서 빌리 조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된다. 동네 음식점 알바를 하며 생활비도 벌고 빌리 조와 함께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마이크는 끝까지 고등학교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에 확신이 없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마이크의 생각을 존중해준 빌리 조는 자신은 밴드를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면서도 마이크는 졸업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이후 둘은 함께 오클랜드의 무허가 건물에서 살면서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의 활동에 본격적으로 임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다 보니 빌리 조와는 죽마고우를 넘어서 지음(知音) 같은 사이이다. 밴드 뿐만아니라 가정사도 서로 챙겨주고 사업[5]도 같이 하는 등 본인들도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인정(...)할 정도.
어린 시절은 불행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잘 사는 중이다. 2009년에 아내 '브리트니 케이드(Brittney Cade)'와 결혼하여 현재까지 잘 살고 있다. 2014년에 아내가 유방암 판정을 받으면서 3부작 앨범 기념 "99 Revolutions" 투어 도중 모든 일정이 중단되기도 하였지만, 간병에 집중하여 2015년에는 아내의 건강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3. 음악성
3.1. 베이시스트
단순한 리프를 반복하는 펑크 락의 특성상 실력이 저평가받기 쉬운데, 마이크 던트는 오히려 어떠한 락 밴드의 베이시스트에게도 밀리지 않는 실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칭송받고 있다.[6] 펑크 밴드에서 활동하는 만큼 피킹으로 베이스를 주로 연주한다.[7][8][9]3.2. 사용 악기
▲ 인터뷰 영상 |
밴드 극초창기 시절[10]에는 피비(Peavey)의 패트리어트 베이스를 사용했었다가 1990년 경에 스트랩이 끊어져 바디가 파손 된 이후 깁슨 그래버 G3를 구입해서 1991년부터 1997년, 6년 간 녹음과 공연때 사용 했다.[11]
1997년부터 펜더 프레시전 베이스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2004년 American Idiot 시점부터 팬들에게 익숙한 시그니처 베이스[12]를 사용하는 중이다.[13]
정말 가끔 뮤직맨 스팅레이나 깁슨 리퍼, 펜더 머스탱 베이스 등을 쓴다. 매우 특별한 경우이거나 백업으로 사용하는 듯 하다.
4. 여담
- 노안이다. 빌리 조와 동갑인데도 불구하고 빌리가 동안이라 더 비교되어서 엄청 늙어 보인다(...). 멤버들도 인정할 정도로 블라디미르 푸틴과 굉장히 닮았다.
- 스타워즈의 광팬이다.
- 본인 말에 따르면 젊은 시절 손목 터널 증후군 수술을 한 이후로 베이스를 칠 때마다 삑사리가 좀 난다고 한다.
- 2018년부터는 빌리 조와 함께 'The Coverups'라는 커버 밴드도 시작했다. 무명 시절 때처럼 집 동네 클럽이나 작은 음악 관련 행사에 불쑥불쑥 나타나서 활동한다고 한다. 특이점은 마이크가 베이스가 아닌 기타를 잡는다는 것. 트레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만 빼면 밴드원들이 전부 그린데이와 관련된 인물들이지만,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가 아니라 여가 시간의 취미 활동(...)이라고 한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1] 이 예명은 그의 학교 친구들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마이크가 베이스 소리를 흉내낼 때 항상 "Dirnt, dirnt" 거려서 붙여준 별명이라고.[2] 5번째 정규 앨범 《Nimrod》에 수록되어있는 곡 'Walking Alone'을 들어보면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온다. 이 때문에 앨범 라이너 노트의 멤버 소개를 보면 '마이크 던트 - 베이스, 백업 보컬, 야구 방망이 담당'이라고 적혀있다.[3] 정확히 말해 Homecoming 제 3장 'Nobody Likes You' 에서.[4] 목소리가 빌리 조 보다도 더 펑크스럽다는 평도 간간히 있다. 목소리가 빌리 조에 비해서 투박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통상적으로 펑크의 신조 중 하나가 "Anyone can do it(누구나 할 수 있다)"이기에 가창력이 뛰어나지 않고 목소리가 투박한 펑크 보컬리스트가 꽤 있어서 펑크에 어울리다는 평을 듣는 듯. 노래 자체는 꽤나 잘 한다.[5] 함께 'Oakland Coffee Works'라는 커피 사업을 하고 있다. 유기농 커피콩을 파는 회사라고.[6] <Minority> 등의 곡을 들어 보면 보컬/기타의 근음을 연주하지 않고 독자적인 멜로디 라인을 구성하는 연주를 상당히 잘 한다고 할 수 있다.[7] 펜더 사의 마이크 던트 프레시젼 베이스 소개영상을 보면 슬랩도 찰지게 한다.[8] 2005 Rock Am Ring 공연을 보면 피킹과 슬랩을 동시에(!) 하는 걸 볼 수 있다.[9] 기프가 단조로우면 핑거로 충분히 소화 할 수있지않냐 이럴 수 있지만, 테크닉적인 부분보단 피킹으로만 낼 수 있는 톤 때문에 피크를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메가데스의 전 베이시스트 데이브 엘렙슨은 원래 핑거 주법으로 연주하던 베이시스트지만 밴드가 지향하는 사운드와 조화를 이루기위해 과감하게 핑거 주법을 포기한 케이스다.[10] 39/Smooth를 녹음한 1990년[11] 참고로 어느 날 공연 도중에 트레 쿨의 실수로 인해 넥이 부려졌었다가 수리해서 지금도 라이브때 들고 나온다[12] 51년식 프레시전 베이스에 59년식 픽업을 장착한 그 베이스[13] 펜더 앰버서더 아티스트이다.[14] 참고로 밴드 결성 초기에는 마이크가 리드 기타를 맡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