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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21:50:32

마야 문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alacmul.png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Kopan.png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Qirigua.png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iedras_Negras.png
Kalakmulis(칼라크물)Kopanas(코판)Kirigua(키리과)Piedras Negras

1. 개요2. 특징3. 역사
3.1. 해독

1. 개요

마야 문자는 과거 마야 문명에서 쓰인 문자였다. 당시의 마야어족 언어를 표기하는 데에 사용되었던 문자이며, 현대에 살아 남은 마야어는 마야 문자를 더이상 사용하지 않고 로마자를 이용하여 표기한다.

2. 특징

마야는 아주 철저한 기록 중심 사회로 한 해의 조세 기록과 호구 조사 등등을 모두 기록으로 남겼으며, 마야 문자는 기본적으로 표어문자이지만 표음문자를 섞어서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알파벳처럼 각각의 발음에 해당하는 문자를 풀어쓰는 것이 아니라 한글에서처럼 발음을 나타내는 여러 개의 기호를 조합하여 사각형의 공간에 맞춰서 표기했다. 마야 문자는 표기가 대단히 유연해서 한 개의 문자가 사실은 한 개의 단어를 나타낼 수도 있고, 음절로 쓰인 몇 개의 문자가 단어를 따로 표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또한 하나의 상형문자가 여러 개의 뜻을 가지고 있었으며, 교체사용될 수도 있었기에 같은 뜻을 적는 데에 다양한 문자를 이용한 표기가 가능했다. 게다가 온갖 종류의 약칭들을 사용하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탄생한 것이 대단히 복잡하고 말장난으로 가득찬 문자 체계였다. 게다가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마야의 코덱스, 즉 남아있던 두루마리들과 책들을 모조리 태워버리면서 기껏 있던 자료들이 소실되었고, 남아있는 마야의 책은 단 4권밖에 없다.[1] 이때문에 현대 마야 언어학자들은 대부분 석조 신전에 새겨진 문자들을 위주로 연구하고 있다.
파일:attachment/마야 문명/mayan-block.gif
파일:마야문자 조합방식.png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조합은, 대체로 하나의 단어 전체를 나타내는지라 한글에서보다 조합이 더 복잡하다. 그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마야 문자는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하나의 발음을 나타내는 기호도 여러 개며, 여러 개의 기호가 조합될 때 몇몇 기호는 기호 전체를 표기하지 않고 기호의 일부분만을 앞의 기호 뒤에 붙여서 표기하는 등 표기법이 상당히 복잡하다. 표의문자적 성격이 있는 점, 복수 기호 조합 시에 부호의 축약형이 쓰인다는 점 등은 한자의 부수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게다가 하나의 문자가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뜻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 비유성과 상징성도 대단히 심해서 후대 언어학자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들 중 하나로 꼽는 것이 바로 이 마야 문자이다.

다음 비석은 과테말라의 이스투츠 유적지에서 발굴된 비문으로 전쟁에서의 승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야인들의 언어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썼던 것이 아니라, '돌을 심고 물방울을 흩뿌렸다' 따위의 표현을 써서 말했기에 현대인이 보기에는 저게 무슨 뜻인가 싶다. 참고로 '돌을 심다'라는 행위는 돌로 된 건물들을 무너뜨렸다는 의미이고, '물방울을 흩뿌린다'라는 표현은 하늘에 있는 신의 행위로서 신의 힘을 빌어 적들을 물리쳤다는 뜻이다. 마야의 상형문자들을 해독해보면 태반이 이런 식이다.
파일:마야문자비석.jpg
lajunchan ajaw
waxakte’ paxiil
utz’apaw tuun
uchokow ch’aaj
aj yayaxjal
baak ucha’n bohb
k’uhul ho’kab ajaw
yila aj k’uhul mutul ajaw
yila waxak winak ajawtaak
12 아하우 8 파쉬(780년 12월 2일), 아흐 야야쉬할 바크, 코요테(보브)의 수호자, 호캅의 위대한 왕이 돌을 심고 물방울을 흩뿌렸다. 그것은 무툴의 신성한 왕과 28명의 왕들에 의해서 목격되었다.[2]
조금 더 언어학적으로 들어가보면 더 복잡하다. 마야인들은 독특하게 생긴 상형문자들을 사용해 뜻을 표현했다. 원래는 수많은 책과 벽화들에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지만 스페인의 반달리즘과 자연적인 풍화 작용 때문에 대부분이 사라져 고고학자들은 대부분 건물들에 새겨진 것들을 기준으로 문자들을 해독하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대략 마야 문자의 60%가 해독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고, 약 80%의 소리를 알아내는 데에 성공했으니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마야 문자를 해독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문자를 해독할 줄 안다고 해도 해독한 내용이 확실한 것은 아니고, 워낙에 문자 체계가 복잡하다보니 번역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는 있다.

마야인들은 문자를 쓸 때 2개의 세로줄을 기준으로 문자를 기록했다. 읽는 방향은 오늘날의 많은 문자들처럼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읽는 방식이었는데, 합자도 가능해서 앞의 문자가 바로 뒤의 문자와 합쳐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문자를 기록할 때는 2개의 세로줄을 바탕으로 썼지만,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어서 여백 공간에 맞게 T자형이나 L자형으로 문자들을 기록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앞서 말했지만 마야 문자는 기본적으로 표음문자였지만 표의문자의 성질도 일부 가지고 있었다. 마야인들의 문자는 상당히 유연한 편에 속해서 하나의 동일한 문자가 하나의 형태소를 의미할 수도 있었고 하나의 음절을 뜻할 수도 있었다. 표의문자의 성질을 띈 문자들의 경우, 주로 모음이나 y, w, h 같은 약한 자음, 아니면 성문 파열음으로 끝나는 단음절 단어들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fish fin'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자. 이 단어를 해석할 때 단순히 '물고기 지느러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로 해석도 가능하다. 마야어로는 이 단어를 '카(kah)'라고 읽었는데, 이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카(ka)' 음절을 표시하는 단어로 완전히 굳어져버린 것.

이렇게 표음문자가 만들어진 이유에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여러 개의 음을 가진 하나의 문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 지 모를 때 이를 구별해주기 위한 까닭이 있었고,[3] 나머지 하나는 특정 문자가 없었던 혼합문자체계의 경우에 문법적으로 정확히 표기하기 위한 것이었다.[4] 예를 들자면 마야어로는 재규어를 '발람(b'alam)'이라고 불렀다. 당연히 마야어에는 재규어를 의미하는 표음문자가 존재했지만 그 방법 외에도 음절을 덧붙여 '바-발람(ba-b'alam)'이나 '발람-마(b'alam-ma)', 아니면 '바-발람-마(ba-b'alam-ma)'로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표시할 때 표음문자를 사용해서 음절 하나하나를 표시했다. 아니면 '바-라-마(b'a-la-ma)'처럼 아예 싹다 음절 단위로 나누어서 구분하는 방법도 있었다.

마야 문자는 굉장히 복잡한 문자 체계이기 때문에, 현대 프로그래밍 기술로도 전산화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굳이 스페인 침공의 영향으로 소멸하지 않고 남았다 하더라도, 전산화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어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었으리라는 가정도 존재할 정도이다.

3. 역사

마야 문자는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마야 문명에서 쓰였으며,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쓰이는 절대 다수의 문자들에게 영향을 준 이집트 상형문자갑골문[5]와는 기원을 달리하는 독창적인 문자이다. 그런 만큼 마야 문자는 생김새도 매우 독창적으로 생겼고 문자의 체계 역시 다른 문자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로 가득한 매우 특이한 문자이다.

마야 문자가 정확히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원전 3세기 경부터 쓰였다는 것은 산 바르톨로 유적지에서 초기 마야 문자의 형태로 검증이 된다. 그 후 16~17세기까지 약 1800년 간 쓰였다가,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들에 의해 마야 문명이 멸망하면서 소멸되었고, 그 후에 마야 문자는 읽는 법이 소실되어버리고 말았다.

3.1. 해독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야 문명 멸망 이후 마야 문자는 읽는 법이 실전되었으며, 때문에 마야 문자는 그 후로 사람들에 의해 신비의 문자로 여겨졌다.

마야 문자가 해독되기 전까지는, 놀랍도록 발달된 역법(曆法), 천문학 등의 요소들 때문에 마야 문명이 조용하고 평화적이며 철학적인 문명일 것이라는 추측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으로는 대표적으로 당시 마야 문명 연구의 권위자로 꼽혔던 영국의 에릭 톰슨(Eric Thompson)이 있는데, 그는 마야 문명이 한없이 평화롭고 낭만적인 문명이었을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다녔으며, 마야 문자는 언어를 기록한 음소 문자가 아니라 순수한 표의 문자이거나 그냥 장식용 기호 같은 것이므로 마야 문자를 해독하려는 시도들은 모조리 의미 없는 짓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었다. 당시로서는 그의 영향력이 워낙 컸기에, 이러한 그의 주장들에 따라 그가 살아있는 동안 마야 고고학계는 마야 문자를 해독하려는 시도를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따라서 마야 문자는 그냥 장식이라는 설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소련의 유리 크노로조프 등을 필두로 한 학자들이 연구 끝에 톰슨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 마야 문자가 음소를 표기한 문자이며 그에 따라 마야 문자로 쓰인 일부 글들을 해독해내었다고 주장하면서 마야 문자 연구에 일대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그가 일명 '마야 문자의 로제타 석'이라고 불리는, 마야 문자 해독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 『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유카탄 지역 문물들의 제관계)』라는 기록물을 기반으로 연구한 끝에 해독해냈다는 것이었다.

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은 16세기 스페인 제국마야 문명을 침공하였을 당시, 디에고 데 란다(Diego de Landa, 1524~1579)라는 선교사만이 유일하게 마야 문자의 자료를 기록으로 남긴 문서이다. 란다는 마야 현지인들에게 마야 문자 읽는 법을 물어서 몇몇 마야 문자들의 음가를 대응되는 라틴 문자로 적었으며 몇 가지 예시 단어들과 예문들을 수록했는데, 이런 기록을 남긴 건 당시 란다가 유일했다.[6] Relación de las cosas de Yucatán은 매우 부정확한 기록이었지만,[7]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야 문자의 음가를 알아내어 기록으로 남긴 유일한 자료였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마야어 어휘들의 음가에 대입하는 방법론을 통해 마야 문자를 해독법을 제시한 것이다.

톰슨은 평소 자신의 의견에 대치되는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에게 공격적으로 비판을 가하는 인물이었는데, 당연히 그는 크노로조프의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완전한 엉터리라며 엄청난 맹공격을 가하였다. 마야 문명 학계 최고 권위자가 이렇게 강하게 비판하니, 당연히 당시 마야 고고학계는 그의 눈치를 보느라 그가 살아 생전에는 크노로조프의 연구를 애써 무시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크노로조프의 방법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소수지만 있었고, 톰슨이 사망한 이후 마야 고고학계는 본격적으로 크노로조프의 해독법에 따라 마야 문자 해독 연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독한 기록물들을 살펴보니, 마야 문명은 인신공양은 기본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마약류의 환각제에 중독된 이들이 만연한 등 평화와는 거리가 먼 난세의 문명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마야 고고학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8] 당연히 에릭 톰슨을 비롯한 기성 학자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마야 문명에 대한 환상은 완전히 박살났다.

상술했듯이 마야 문자는 매우 복잡한 체계의 문자인 데다가 은유적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등 해독에 있어 난해한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마야 문자를 해독하는 것은 무척이나 고되고 지난한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크로노조프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노력 끝에 현대에 들어서는 마야 문자의 상당 부분을 해독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현대 인류는 마야 문명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되었다.


[1] 현존하는 마야 문서에 대한 내용은 위키피디아를 참조.[2] 모든 비문들의 내용이 다 이런식이니 마야학자들은 일단 내용을 1차적으로 해석했다고 해도 그 진짜 뜻이 무엇인지 짜맞추어야만 한다.[3] 마치 일본어후리가나를 생각하면 된다.[4] 이 경우 일본어의 오쿠리가나를 생각하면 된다.[5]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쓰였던 문자들 중에서 이 두 문자들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은 문자는 거의 없을 정도로 이 두 문자들이 끼친 영향은 매우 넓었다. 단적인 예시로 오늘날 쓰이는 문자들 중에서는 로마자, 키릴 문자, 그리스 문자, 아랍 문자, 히브리 문자, 데바나가리 문자 / 한자, 히라가나, 가타카나 등이 이 두 문자들에게서 파생된 문자들이다.[6] 여담으로 란다라는 인물 자체는 나쁜 인물이었는데, 마야인들을 우상숭배라는 명목으로 종교재판에 처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수감시키고 고문하도록 명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중에는 마야 문자가 악마의 문자라며 마야 문자로 기록된 것들을 모조리 파괴하라고 지시하는, 이전에 자신이 세운 업적을 완전히 역행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애초부터 마야 문자를 기록으로 남겨둔 것도 마야인들의 언어를 습득해 두어 선교를 용이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으며, 그는 마야인들이 쓰는 문자가 어떤지 따위에는 아무런 사적인 관심도 없었다. 란다도 처음에는 마야인들에게 온건하게 기독교 교리를 전파했지만, 동조하지 않고 인신공양을 계속 하는 마야인들의 행동을 보고 분노해서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뭐가 어찌되었건 간에 종교 재판으로 수많은 무고한 마야인들을 탄압한 건 반인륜적인 만행이며, 마야 기록물들의 분서를 주도하여 자신이 후대에 마야 문자 해독에 기여한 것이 거의 의미가 없게 만들어버린 아이러니한 행동으로 인해 란다는 평가는 양면적이며,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7] 음소문자+음절문자+표의문자라는 복잡한 체계를 갖춘 마야 문자를 라틴 문자와 같이 단순하게 글자를 나열하는 문자라고 설명하는 등 심각한 오류들이 많았다. 그래서 학계에서 마야 문자 해독을 시도할 당시 란다의 기록이 엉터리라며 회의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았다. 다만 해당 기록을 보면 란다 본인도 자신의 정보가 부정확하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8] 하지만 오히려 이런 난세였기에 눈부신 문명 발전도 가능했다. 기본적으로 고대 그리스 같은 소도시 국가의 연맹 형태를 보이고 있었으며 그중 가장 뛰어난 자가 '위대한 왕'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 지배를 하는 체제였다. 게다가 한 종족만으로 이루어진 문명도 아니라서, 이 당시에 쓰였던 마야어는 총 33개의 매우 이질적인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마야 문자로 된 비석을 해독할 때에도 그것이 어떤 언어로 쓰였는지부터 알아야 했기 때문에 매우 난해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현대 마야인들은 같은 부족끼리 소통할 때는 그 지역의 마야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부족과 소통하기 위해 지역에 따라 스페인어 혹은 영어를 사용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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