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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2:39:37

마라난타


摩羅難陀 [maraṇanta]

?~? (4세기 말)
1. 개요2. 이름3. 생애4. 전승지

1. 개요

백제에 불교를 전한 인도의 승려. 삼국유사해동고승전에 이름이 실려 있다.

2. 이름

해동고승전에서는 천축의 말로 마라난타라는 이름은 동학(童學, 사미승)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해동고승전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maraṇanta는 maraṇa–anta의 합성어로 maraṇa death + anta final 즉, 죽음의 끝을 의미한다. 죽음의 끝은 태어남의 끝과 같으므로 윤회의 끝 즉, 열반을 의미한다.[1]

3. 생애

침류왕이 즉위한 384년 9월에 동진에서 백제로 왔으며, 침류왕은 그를 맞아다 궁중에 머물게 하고 예로써 공경하였으며, 마라난타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이 마치 왕의 명을 받고 몰려드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385년 백제의 수도 한성에 절을 지어서 승려 10인을 출가시켰다고 한다.

현재 몽촌토성이나 풍납토성 등 백제 유적에서 불교 관련 유물들이나, 목탑 터가 발굴되고 있는 등, 한성시대 침류왕 때에 백제에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것 자체는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4. 전승지

전라남도 영광군의 법성포(法聖浦)는 마라난타가 온 뒤로 '성인이 오신 포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하고 있으며, 영광군의 불갑사나주시의 불회사(불호사),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의 불지사도 마라난타가 와서 지은 절이라는 전승이 있다. 1996년부터 영광군과 불교계에서 합동으로 법성포를 '백제 불교 최초 전래지'로서 기념하고 성역화 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마라난타가 처음 도착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마라난타사와 간다라 유물관 등을 조성하기도 했는데,# # 영광을 비롯한 전라도 지역은 현재 개신교가 강세인 동네다 보니 마라난타존자상을 세울 때 현지에서 개신교계의 반발이 좀 있기도 했다고.## 개신교인 2천 명이 모여서 반대 기도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이러니한 게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던 김봉열 당시 영광군수는 본인이 장로교 집사(!)였으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신교계의 반발이 있자 본인이 가진 집사직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오히려 현지 가톨릭계에서는 원불교계와 마찬가지로 "종교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사업의 배경과 목적을 이해하고 찬성한다."며 지지했다고.# #

당시 개신교계는 '마라난타가 실존 인물인지도 확실하지도 않은데 특정 종교 때문에 혈세를 낭비하겠다는 거냐'고 비판했는데,[2] 마라난타가 실존인물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말은 일단 틀린 말은 아니다.[3] 2001년한양대 민희식 명예교수가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아슈라프 칸 박사의 고문헌 선집에서 마라난타가 간다라 지방인 지금의 파키스탄[4]의 쵸타 라흐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고, 이후 30세에 고향 마을을 떠나 실크로드를 따라 탁실라, 폐샤바르를 거쳐 14년 간 우전국, 돈황, 동진, 장안, 낙양 등지에서 불교를 전파했다는 내용의 고문헌을 찾아냈다는 기사가 불교신문에서 보도되었고,* 2001년에 이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졌는데, 민희식 박사가 말한 이 고문헌이라는 것이 학계에 공개되거나 이를 다룬 논문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 애초에 민 박사는 불문학자이지 불교학자도 아니다.

다만 침류왕대에 불교가 백제에 전해진 것 자체는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침류왕은 재위기간이 정말 짧은데, 마라난타를 위시한 신진 불교세력을 배경으로 왕권을 강화하려다 토속신앙에 근거하고 있어 이에 반발한 귀족세력이 밀어준 동생인 진사왕에게 암살 및 찬탈당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따라서 어찌 보면 마라난타는 재위기간이 짧아서 불교 도입 외에는 제대로 된 기록이라 할 만한 것이 사실상 없는 침류왕에게 은인이기도 하다.
[1] 니까야에서의 설명은 이하와 같다.
jātisamudayā jarāmaraṇasamudayo, jātinirodhā jarāmaraṇanirodho,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jarāmaraṇanirodhagāminī paṭipadā, seyyathidaṃ - sammādiṭṭhi ... pe ... sammāsamādhi. [M9 sammādiṭṭhisuttaṃ\]
태어남이 일어나면 늙음과 죽음이 일어납니다.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도 소멸합니다. 이 성스러운 팔정도가 늙음과 죽음의 소멸로 가는 길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의향,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사띠, 바른 고정됨입니다.
[2] 다만 이 사람들도 경상북도 경주시불국사에서 십자고상과 성모상이 나왔다고 한국에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실제로 당나라몽골 고원까지 퍼져 있었다)가 전래된 때가 남북국시대 신라부터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인지라...[3] 애초에 백제사가 발해사와 더불어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자료가 부족하기로 악명이 높은 시대다. 성왕(백제) 때의 고승이라는 겸익도 '미륵불광사사적'이라는 기록에 나온다고는 하는데(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서 언급), 이 미륵불광사사적의 원문이 현존하지 않아서 겸익이라는 인물이 실존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다만 백제사만 그런 게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난리통에 소실되거나 해서 한국사에서 고대사 기록 자체가 비교적 많이 적고, 중세사인 고려시대부터 체계적인 보존이 잘 되어 기록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폭 늘어난다.[4] 이쪽도 현재는 이슬람교가 강세인 동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