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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30 10:35:10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시센나

이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시센나
(라틴어: Lucius Cornelius Sisenna)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67년
직위 법무관

1. 개요2. 행적3.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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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의 군인, 정치인, 역사가.

2. 행적

고대 로마의 명문 귀족 집안인 코르넬리우스 씨족의 일파인 시센나 일족의 일원으로, 술라의 내전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기원전 78년 법무관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시칠리아 총독을 맡은 것으로 추정되나 분명하지 않으며, 기원전 70년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에 의해 시칠리아 속주민들을 착취한 혐의로 고발당한 가이우스 베레스의 변호인을 맡았으나 키케로에게 패배했다. 이후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해적 소탕 전쟁에 부관으로 참여해 크레타로 보내졌다가 기원전 67년에 그곳에서 병사했다.

3. 저서

그는 말년에 최소 12권의 책으로 구성된 연대기를 저술했다. 그의 저서는 셈프로니우스 아셀리오의 연대기 서술이 끝난 시점부터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의 사건을 다뤘다. 서문에는 로마 신화가 간략하게 나오지만,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첫번째 사건은 기원전 91년에 발발한 동맹시 전쟁이다. 그는 접미사 -im/-tim와 같은 희소한 부사와 별로 쓰이지 않던 단어를 자주 사용했고, 신조어를 풍부하게 활용했다. 그러면서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배격하며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고로 현실의 사건을 조명했다.

후대의 역사가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는 그의 저서 내용을 자주 인용했고, 그의 저술이 끝난 시점부터 역사를 집필했다. 그는 시센나가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를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서술했다고 칭찬했지만, 술라를 비롯한 옵티마테스파 인사들에게 지나치게 우호적이라고 비판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그가 역사가로서 모든 전임자들을 능가한다고 칭송하면서도 수사학자로서는 별로라고 비평했다.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는 그의 저서 '역사에 대하여'에서 역사를 설명하는 서술자의 이름을 '시센나'로 정했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 마르쿠스 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타키투스. 아피아노스, 디오 카시우스도 술라 시대에 관해 논할 때 그의 기록을 참조했다.

시센나가 기술한 역사서 원본은 현존하지 않으나 137개의 단편이 후대의 저자들의 인용으로 전해진다. 대부분은 4세기의 문법학자인 노니우스 마르켈우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는 이외에도 밀레투스의 아리스티데스가 쓴 서사시 '밀레시안 이야기'를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전해지며, 네로 치세 때 활동한 작가 페트로니우스의 사티리콘(Satyricon)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