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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엘리자베트 도를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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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E0B2><colcolor=#000000> 스페인 루이스 1세의 왕비
루이즈 엘리자베트 도를레앙
Louise-Élisabeth d'Orléans
파일:1280px-Luisa_Isabel_de_Orleans.jpg
이름 프랑스어 루이즈엘리자베트 도를레앙
(Louise-Élisabeth d’Orléans)
스페인어 루이사 이사벨 데 오를레안스
(Luisa Isabel de Orleans)
출생 1709년 12월 9일
프랑스 왕국 베르사유 궁전
사망 1742년 6월 16일 (향년 32세)
프랑스 왕국 파리 뤽상부르 궁전
배우자 루이스 1세 (1721년 결혼 / 1724년 사망)
아버지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
어머니 프랑수아즈 마리 드 부르봉
형제 루이즈 엘리자베트, 아델라이드, 샤를로트 아글레, 루이, 필리핀 엘리자베트, 루이즈 디안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
2.1. 어린시절2.2. 결혼2.3. 아스투리아스 공비2.4. 스페인의 왕비2.5. 말년
3. 가족관계
3.1. 조상

[clearfix]

1. 개요

스페인 루이스 1세의 왕비.

2. 생애

2.1. 어린시절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와 프랑수아즈 마리 드 부르봉[1]의 다섯째 딸로 1709년 12월 11일에 태어났다. 부르봉 왕조의 일원[2]이었기에 혈통여친왕으로 봉해지기도 했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엘리자베트라고 불렸다.

자매들인 샤를로트와 아델라이드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매우 열악했으며 여동생 루이즈 디안과 마찬가지로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2.2. 결혼

1715년부터 엘리자베트의 아버지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루이 15세의 섭정으로서 프랑스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이후 1718년에 사국 동맹 전쟁이 발발했고 1720년 루이 15세의 숙부인 스페인 국왕 펠리페 5세는 평화 협정을 맺고자 했다. 이때 펠리페 5세의 딸 마리아나 빅토리아가 루이 15세와 약혼하여 프랑스 궁정으로 가고, 오를레앙 공작의 딸 엘리자베트는 펠리페 5세의 장남 아스투리아스 공 루이스와 약혼하는 이중 결혼 협상을 체결했다.

1721년 11월 엘리자베트는 프랑스 파리에서 결혼했다. 결혼식 이후 엘리자베트는 여동생 필리핀 엘리자베트와 같이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났다. 당시 펠리페 5세의 왕비였던 이사벨 왕비[3]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스페인 왕실로부터 무례한 대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722년에 레르마에서 결혼식을 진행했다. 남편 아스투리아스 공 루이스와는 부계로는 7촌, 모계로는 5촌간이기도 했다.

2.3. 아스투리아스 공비

스페인의 왕세자비가 된 엘리자베트는 아스투리아스 공비가 되었으며, 스페인식으로 '루이사 이사벨(Luisa Isabel)'로 불리게 된다. 이미 껄끄러웠던 루이사 이사벨과 필리핀의 자매 관계는 미모와 매력, 지성으로 인해 필리핀이 스페인 왕실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더욱 당혹스러워졌다. 왜냐하면 루이사 이사벨은 스페인에 가서도 그런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사벨의 여동생 필리핀은 나중에 언니의 시동생인 인판테 카를로스약혼했지만 무산되었고, 프랑스로 돌아간 뒤 19세의 나이로 천연두로 생을 마감했다.

2.4. 스페인의 왕비

1724년 1월 15일, 시아버지 펠리페 5세는 장남 아스투리아스 공 루이스에게 양위함에 따라 루이사 이사벨은 남편과 함께 스페인의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재위 7개월만에 남편 루이스 1세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루이스 1세가 자녀 없이 요절했기 때문에 시아버지 펠리페가 다시 스페인 국왕이 되었다. 루이사 이사벨 왕비는 남편이 사망한 후 한동안 마드리드에 머물렀지만, 남편이 사망하기 전에 기이한 행동으로 인해 스페인 왕실에서 매우 인기가 없었다. 그녀가 스페인 왕실에 시집을 온 이후, 그녀의 행동은 대개 불규칙적이고 극도로 충동적이었다. 그녀는 공식 석상에서 옷을 입지 않은 채, 트림을 하고 납작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거나, 궁전 복도를 뛰어다니거나, 나무 위에 올라가기 위해 말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 의학계에서는 그녀의 행동 특성 중 성격장애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을 했다.

루이사 이사벨은 더럽고 악취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곤 했고 속옷 사용을 거부했으며,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보여줌으로써 궁정인들을 자극하려고 했다. 그녀는 식탁 위에 놓인 음식에 손을 대는 것을 거부하고는 숨어서 먹을 수 있든 없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강박적으로 먹어 치웠다. 그녀의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빠진 것 같았다. 루이사 이사벨은 자신의 옷으로 궁전의 창문과 타일을 닦아 신하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이에 대해 남편 루이스 1세는 상왕이었던 펠리페에게 편지를 보냈다.
"가능한 한 빨리 그녀를 가두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어요, 그녀의 문제가 계속 커지고 있으니까요."
루이사 이사벨의 상태에 대해 남편 루이스 1세가 펠리페 5세에게 보낸 편지.

루이스 1세는 결국 아내 루이사 이사벨을 수도원에 감금시켰다. 이에 루이사 이사벨이 울면서 남편 루이스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내자 루이스는 루이사 이사벨을 풀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루이스 1세가 천연두에 걸리자 루이사는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편의 간호를 정성껏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서 인기가 매우 없었다.

2.5. 말년

루이스 1세가 사망한 이후 마리아나 빅토리아가 루이 15세와 파혼하자 맞교환 형식으로 프랑스로 돌아갔다. 선왕비였던 루이사 이사벨이 프랑스로 돌아갔을때 스페인의 왕비로 알려져 있었다. 이로 인해 의전에서 마차가 지나가는 순서가 왕비 다음으로 공작부인의 마차가 지나가야 했기에 스페인의 왕비였던 루이사 이사벨과 루이사 이사벨의 언니이자 모데나 공작부인이었던 카를로타 아글라이아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다.

이후 루이사 이사벨은 프랑스 파리로 가서 빈첸 궁전과 룩셈부르크 궁전에 거주하다가 향년 32세의 나이로 1742년 6월 16일에 사망했다. 루이사 이사벨의 유해는 자신의 이복 형제인 루이 샤를이 주교였던 룩셈부르크 궁 근처에 있는 파리의 에글리제 생 설피체 교회에 묻혔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오를레앙의 루이즈 엘리자베트
(Louise Élisabeth of Orléans)
<colbgcolor=#fff3e4,#331c00>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
(Philippe II, Duke of Orléans)
<colbgcolor=#ffffe4,#323300>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1세
(Philippe I, Duke of Orléans)
루이 13세
(Louis XIII)
오스트리아의 아나
(Anne of Austria)
팔츠의 엘리자베트 샤를로테
(Elizabeth Charlotte of the Palatinate)
팔츠 선제후 카를 1세 루트비히
(Charles I Louis, Elector Palatine)
헤센카셀의 샤를로테
(Charlotte of Hesse-Kassel)
프랑수아즈 마리 드 부르봉
(Françoise Marie de Bourbon)
루이 14세
(Louis XIV)
루이 13세
(Louis XIII)
오스트리아의 아나
(Anne of Austria)
몽테스팡 후작부인
(Madame de Montespan)
모르트마르 공작 가브리엘 드 로슈아르
(Gabriel de Rochechouart, Duke of Mortemart)
디안 드 그랑세뉴
(Diane de Grandsei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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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이 14세몽테스팡 후작부인의 사생딸이다. 남편인 필리프 2세와는 친사촌 지간이다.[2] 부계로는 루이 13세의 증손녀였고 모계로는 루이 14세의 외손녀였다.[3] 본명은 엘리사베타 파르네세. 자신의 친자식들을 스페인 왕위에 올리기 위해 의붓자식들인 루이스페르난도를 핍박하는 악랄한 계모로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