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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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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킨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클럽
파일:선덜랜드 AFC 로고.svg

33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주장
에릭 칸토나
(1996~1997)
로이 킨
(1997~2005)
게리 네빌
(2005~2010)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앤디 타운센드
(1994~1997)
로이 킨
(1997~2002)
스티브 스턴튼
(2002)
}}} ||
로이 킨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1998-99 · 1999-00
파일:PFA_UK_logo.png
파일:FWAlogo.png
베스트팀
파일:PFA_UK_logo.png
1992-93 · 1996-97 · 1999-00 · 2000-01 · 2001-02
파일:European_Sports_Media_logo.png
}}} ||
로이 킨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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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PL_명예의전당.png
<rowcolor=#a08d6f> 순서 연도 이름 포지션 구단 비고
<colbgcolor=#fff,#191919> 1 <colbgcolor=#fff,#191919> 2021 <colbgcolor=#fff,#191919> 앨런 시어러
(Alan Shearer)
<colbgcolor=#fff,#191919> 공격수 <colbgcolor=#fff,#191919> 블랙번 로버스
뉴캐슬 유나이티드
<colbgcolor=#fff,#191919> PL 통산 최다 득점(260골)
PFA 올해의 선수 최다 수상(2회)
2 티에리 앙리
(Thierry Henry)
공격수 아스날 PL 통산 최다 득점왕(4회)
PFA, FWA, PL 올해의 선수 최다 수상[1]
3 에릭 칸토나
(Eric Cantona)
공격수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 로이 킨
(Roy Keane)
미드필더 노팅엄 포레스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5 프랭크 램파드
(Frank Lampard)
미드필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첼시
맨체스터 시티
PL 미드필더 통산 최다 득점(177골)
6 데니스 베르캄프
(Dennis Bergkamp)
공격수 아스날
7 스티븐 제라드
(Steven Gerrard)
미드필더 리버풀 PL 통산 PFA 올해의 팀 최다 선정(8회)
8 데이비드 베컴
(David Beckham)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9 2022 웨인 루니
(Wayne Rooney)
공격수 에버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0 파트리크 비에라
(Patrick Vieira)
미드필더 아스날
맨체스터 시티
11 세르히오 아구에로
(Sergio Agüero)
공격수 맨체스터 시티 PL 외국인 통산 최다 득점(183골)
PL 최다 해트트릭(12회)
PL 이달의 선수 최다 수상(7회)
12 디디에 드록바
(Didier Drogba)
공격수 첼시
13 뱅상 콤파니
(Vincent Kompany)
수비수 맨체스터 시티 수비수 최초 헌액
14 페테르 슈마이켈
(Peter Schmeichel)
골키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톤 빌라
맨체스터 시티
골키퍼 최초 헌액
15 폴 스콜스
(Paul Scholes)
미드필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6 이안 라이트
(Ian Wright)
공격수 아스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7 2023 알렉스 퍼거슨
(Alex Ferguson)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최초 헌액
18 아르센 벵거
(Arsene Wenger)
감독 아스날
19 리오 퍼디난드
(Rio Ferdinand)
수비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 페트르 체흐
(Petr Čech)
골키퍼 첼시
아스날
PL 통산 최다 클린시트(202경기)
21 토니 아담스
(Tony Adams)
수비수 아스날
22 2024 애슐리 콜
(Ashley Cole)
수비수 아스날
첼시
23 존 테리
(John Terry)
수비수 첼시
23 앤디 콜
(Andy Cole)
공격수 아스날
뉴캐슬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풀럼
맨체스터 시티
노팅엄 포레스트

[1] PFA 올해의 선수 2회, FWA, PL 올해의 선수 3회.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black,#whit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2004년 아일랜드의 공영방송 RTÉ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명단이다.
<rowcolor=#191919>1위2위3위4위5위
존 흄 마이클 콜린스 메리 로빈슨 제임스 코널리 폴 데이비드 휴슨
공동 6위
노엘 브라운 스티븐 게이틀리 필 라이넛 패트릭 피어스 아디 로체
공동 11위
에이먼 데 벌레라 조 돌란 로니 드루 콜린 패럴 개럿 피츠제럴드
밥 겔도프 파드라그 해링턴 찰스 호히 셰이머스 히니 제임스 조이스
존 B. 킨 로이 킨 로넌 키팅 숀 레마스 잭 린치
폴 맥그래스 크리스티 무어 리암 니슨 대니얼 오코넬 대니얼 오도넬
브라이언 오드리스콜 마이클 오리어리 존 오셰이 소니아 오설리반 찰스 스튜어트 파넬
크리스티 링 테오볼드 울프 톤 루이스 월시 오스카 와일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아일랜드의 축구인
파일:로이 킨.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로이 킨
Roy Keane
본명 로이 모리스 킨
Roy Maurice Keane
출생 1971년 8월 10일 ([age(1971-08-10)]세)
아일랜드 먼스터 코크
국적
[[아일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 체중 78kg
종교 가톨릭 (세례명: 마우리시오)[1]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감독
해설가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코브 램블러스 FC (1989~1990)
노팅엄 포레스트 FC (1990~199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93~2005)
셀틱 FC (2005~2006)
감독 선덜랜드 AFC (2006~2008)
입스위치 타운 FC (2009~2011)[3]
아일랜드 대표팀 (2013~2018 / 수석 코치)
아스톤 빌라 FC (2014 / 수석 코치)
노팅엄 포레스트 FC (2019 / 수석 코치)
국가대표 67경기 9골 (아일랜드 / 1991~2005)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지도자 경력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6.2.2. 개인 수상
7. 킨에 대한 말, 말, 말8. 여담

[clearfix]

1. 개요

아일랜드의 전 축구 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였다. 애칭은 '키노'다.

현역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1998-99 시즌 트레블을 포함해 UCL 1회 우승, PL 7회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PFA 올해의 선수FW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고, PFA 올해의 팀에 5회 선정되었다. 그리고 맨유 시절 주장직을 8년이나 맡았을 정도로 리더십이 뛰어났고, 특유의 불같은 성격과 거친 플레이로도 유명했다.

2.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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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대표 경력

1991년에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고, 1994 미국 월드컵에서 활약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본선 진출을 이끌게 된다. 그러나 본선을 앞두고 실시한 전지 훈련에서 당시 아일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믹 매카시의 훈련 방법에 불만이 있었고, 훈련 내내 말싸움을 하며 불화가 이어지게 된다. 결국 매카시 감독이 킨을 돌려보내면서, 킨은 대표팀을 떠나 홀로 귀국하면서 2002 월드컵 본선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이후 국가대표에 소집하고 있었는데, 2004년 5월에 맥카시가 사임하고 브라이언 커가 새로 부임하였다. 그렇게 브라이언 커가 이끄는 대표팀에 다시 복귀하였으나, 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이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되자 2005년 10월 15일,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일단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경기장 전체를 종횡무진 누볐다.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돌아다니며 맨유에 있던 시간 동안 팀의 중심으로 있었다. 전술 이해도가 매우 높아서 항상 적재적소의 위치에 있었으며, 뛰어난 리더십으로 팀을 휘어잡았다.

리더십, 활동량과 함께 킨의 장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은 훌륭한 수비 능력이다.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서 요구되는 모든 수비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갖췄다. 태클 능력 또한 기가 막혔다. 상대 선수의 드리블 상황을 효율적으로 끊어냈고, 공중볼 경합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가담해 대부분 우위를 가졌으며, 파트리크 비에라 같은 피지컬이 훌륭한 선수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쳤다. 이 수비력 덕분에 퍼거슨 감독은 03-04 시즌 리오 퍼디난드의 도핑 문제로 인한 장기결장으로 인해 중앙 수비수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킨을 중앙 수비수로 활용하기도 했고 꽤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 이러한 점은 항상 당당하고 근성 있게, 때로는 거칠게 플레이해서라도 언제나 이기고자 했던 그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덕분에 그가 주장으로 있을 때,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로이 킨의 수비력, 터프함 등을 보고 그가 그쪽 롤에 특화된 수비형 미드필더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 킨은 다재다능하고 무엇보다 흔히 말하는 공을 잘 차는 선수였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에는 공수 양면에서 기여 안하는 곳이 없는 만능형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에 가까웠다. 실제로 킨은 드리블과 패스 연계를 통해 페널티 박스까지 공을 운반해서 넣은 골이 많았을 정도로 후방에 머물면서 공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능력이 좋았다. 물론 이런 플레이가 가능했던 이유는 터치, 패스, 드리블 등 공을 다루는 기술들이 그의 거친 성격처럼 투박할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꽤나 유려했기 때문이다. 맨유 입단 초창기에는 후방에서의 플레이보다 에너제틱하게 필드 전역을 누비고 지속적으로 전진하여 공격에 가담하는 플레이를 선호했다고 본인이 직접 얘기하기도 했다. 다만 전반적으로 수비적인 기여도와 중원 장악력이 돋보이는 선수였던 것은 맞고 4-4-2 포메이션에서 그의 미드필드 파트너였던 폴 스콜스가 조금 더 앞쪽에서 공격에 가담하고 킨은 그보다 살짝 내려와 팀을 받혀주는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로이 킨이 전진해있는 상황에서는 폴 스콜스가 뒤를 봐주고 킨은 파이널 서드에서 공격을 지휘하고 공간 침투하는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했을 정도로 두 미드필더는 호흡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연하게 서로를 커버해줬다. 커리어 후반부에 맨유가 3미들 포메이션을 사용하고 킨도 나이가 듦에 따라 나중에는 확실한 홀딩 미드필더 역할에 집중하기도 했다.

스콜스와 같은 파트너 미드필더가 공격적으로 침투하면 로이 킨 본인은 후방 빌드업을 전담할 정도로 시야도 넓고 패싱력과 개인 기술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갖췄다. 열심히 뛰면서 전진하기를 좋아하고 후방에서 경기를 조립하는 플레이를 주도하기에는 자신 없었던 맨유 초창기 시절과는 달리 로이 킨의 빌드업 능력도 스콜스가 주전으로 도약하기 시작했을 즈음 이후부터는 오히려 그의 강점이 되어 후방에서 경기를 풀어주는 능력도 탁월했다.[4] 국내 축구 전문가 한준희 해설위원도 4-4-2 포메이션에서 가장 이상적인 중앙 미드필더로 로이 킨을 항상 첫손에 꼽았다. 맨유에서 스콜스와 함께 합을 맞출때에는 스콜스가 공격적으로 올라가면 아래로 내려와 다이아 4-4-2를 이루기도 했다. 스콜스도 킨도 체구가 작은 미드필더들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로빙스루패스를 가진 스콜스와 작은 체구를 커버하고도 남는 엄청난 수비력과 활동력을 가진 킨의 조합은 맨유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조합으로 손꼽힌다.

눈에 띄는 약점이랄 것은 없지만, 체구가 크지 않다는 것이 약점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굳이 꼽자면 본인의 단점으로 로이 킨 스스로가 훗날 인정한 바 있다.[5][6] 엄청난 스태미너를 제외하면 킨은 주력, 점프력, 가속을 붙이는 능력 등 신체적인 능력이 평범한 수준이었으며, PL의 특성상 이것을 킨의 약점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7] 하지만 비교적 평범한 신체 조건에 비해 굉장히 몸싸움을 잘 했으며, 소위 말하는 단단한 타입의 선수[8]였다. 선술했듯이 승부욕이 매우 강해 항상 적극적으로 플레이했기에 플레이가 거칠기도 했다. 성격은 딱 PL 최적화. 사실 선수로서 축구 자체만 따졌을 때는 딱히 약점이 없었고 가장 큰 약점은 그놈의 성질머리이다. 이성의 끈을 놓고 달려들다가 퇴장을 당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는데, 이는 팀 입장에서 당연히 엄청난 손해이고 경기 도중에도 상대팀의 타겟이 되기 쉬운 요소이다. 실제로 2001년 9월 15일, 맨유와 뉴캐슬의 경기에서 앨런 시어러는 경기 내내 씩씩거리는 킨을 보고 일부러 슬쩍 한 번 도발해봤는데 킨이 그 어그로에 홀라당 넘어가 공을 시어러의 머리에 던져 맞춰버렸고 퇴장을 당한 적도 있다.[9] 커리어 통산 레드카드를 무려 13번이나 받았다.

동시대에 활약한 비에라와 비교했을 때, 빌드업 상황에서 패스 전개 능력이나 팀 내 플레이메이커로서의 다재다능함 면에서는 비에라보다 킨을 한 수 위로 평가하는 경향이 높고, 중원 장악 능력과 수비력에서는 일반적으로 피지컬이 더 좋은 비에라가 우위로 평가받는다. 전체적으로 보면[10] 압도적인 수비력, 준수한 볼 컨트롤 및 패싱 능력, 악바리 근성과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리더십까지 지닌 당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이자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맨유가 킨과 함께한 시간 동안 얻어낸 수많은 우승 트로피들이 이를 입증한다.[11]

5.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이후 06-07 시즌에 잉글리시 챔피언십 리그(2부)의 선덜랜드의 감독을 맡아 프리미어 리그로 팀을 승격시켰다. 재미있는게 이 때 선더랜드의 구단주 컨소시엄의 대표가 니얼 퀸[12]이었다. 07-08 시즌은 다소 고전했으나 그럼에도 인상적인 경기력을 몇 번 선보여 팀을 프리미어 리그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08-09 시즌 중반, 성적부진으로 사임했다.
파일:external/www.abc.net.au/r173030_653211.jpg

감독이 되면서도 성격은 못 버렸는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주변 집기들을 부쉈다고 한다. 그런데 선수들도 문제가 있었던 게 경기에서 졌는데도 라커룸에서 ABBA의 Dancing Queen을 틀어놓고 춤을 췄다고 한다. 물론 감독에게 들켜서 얻어 터졌다. 심지어 리저브 팀이 경기를 할 때 라커룸으로 찾아가 "1군에 올릴 선수가 있나해서 왔는데 하나도 없다"라고 말하면서 리저브 팀 선수들의 사기마저도 꺾었다. 이 때문에 그가 사임하자 선수단은 환영의 의사를 밝혔고 심지어 축하파티를 벌였다는 루머까지 흘러나온 정도가 아니라 진짜로 열심히 파티를 했다.

2부 리그 구단인 입스위치에 부임했을때 선수들이 군기가 빠졌다면서 선수들을 군대캠프에 보내서 굴렸으나한국형 지도자 성적은 더 하락하고 본인은 잘렸다. 선수로서는 일류였지만 감독으로서의 재능은 좀 없는 듯. 동료 선수도 그가 감독직에 대한 이해나 준비가 없는 거 같다고 평했다. 로이 킨 본인도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자 인생의 저점으로 입스위치 감독 재직을 꼽았다.

2013년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영입되었다. 그런데 감독이 마틴 오닐이었다.

2014년 아스톤 빌라의 수석 코치로 임명. 국가대표 수석코치와 겸직인듯. 아일랜드 대표팀에 집중하기 위해 2014년 11월 28일 아스톤 빌라의 코치직에서 사임하였다.

2018년 11월, 아일랜드 대표팀 수석 코치에서 물러났다.

이후 아일랜드 수석코치 시절의 감독인 마틴 오닐 사단에 들어가서 2019년 1월 31일 노팅엄 포레스트의 수석 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마틴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면서 같이 사임하였다.

2022년 2월, 선덜랜드의 감독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상태이다. 만약 선덜랜드로 돌아간다면 13년만에 돌아가는 셈. 그러나 최종적으로 알렉스 닐이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킨의 복귀는 없던 일이 되었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1.2. 개인 수상

6.2. 감독

6.2.1. 대회 기록

6.2.2. 개인 수상

7. 킨에 대한 말, 말, 말

지금까지 함께 한 선수 중 로이 킨이 단연 최고이며, 그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경기하는 모든 곳에서 축구 선수와 맨유에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다.
알렉스 퍼거슨
모두가 킨을 진정한 리더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또한 믿을 수 없는 기량을 갖춘 선수기도 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오늘날 어느 팀에서도 활약할 수 있다.
조니 에반스
나는 로이 킨을 보고 배웠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일단 그가 그냥 좋았다. 지금도 좋아한다. 정말 훌륭한 리더이자, 환상적인 선수였다. 퍼스트 터치는 다른 그 누구보다 훌륭했다. 킨과 함께 피치로 걸아갈 때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리더십이다. 그게 내가 이 클럽에 있는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대런 플레처
로이 킨은 이 라인업[13]에 들 자격이 있다. 나는 그의 광팬이었다. 그의 박스 투 박스 플레이를 공부했고 그라운드에서 많은 싸움을 즐겼다. 그는 최고의 선수이다.
로이 킨이 첫번째다. 나머지? 램파드는 최고의 골 넣는 미드필더였고, 스콜스는 최고의 축구 선수였고, 비에라는 최고로 힘든 상대였다. 하지만 PL 역사상 가장 위대한(Greatest) 미드필더는 로이 킨이다.
스티븐 제라드, PL 최고의 미드필더를 뽑아달라는 질문에.[14]
주장 로이 킨은 모든 책임을 다 짊어질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리오 퍼디난드
난 로이 킨을 상대로 뛰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같은 경기에서 열정을 공유했고, 그는 맨유의 좋은 주장이자 리더였다. 그를 상대할 때는 항상 어려운 것을 알았다. 그는 위너다.
파트리크 비에라
내가 어렸을 때 로이 킨은 내가 사랑했던 선수였다.
에릭 다이어

8. 여담

8.1. 알프잉에 홀란드 사건

파일:SillyGlamorousEwe-size_restricted.gif
파일:external/e1.365dm.com/955927_3213624.jpg
알프잉에 홀란드[39]와의 백태클 복수극 일화로 유명하다. 알프잉에 '알피' 홀란드가 로이 킨을 부상입힌 뒤 "별 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라고 외쳤고, 이를 기억하고 있던 로이 킨이 5년 후 알피 홀란을 부상입히고, 홀란드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인데, 일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첫째, 로이 킨은 홀란드에게 백태클을 시도하다 부상당한 것이다. 둘째, 홀란드가 로이 킨에게 말했다는 "별 것도 아닌게 까불고 있어" 또한 사실이 아니다. 로이 킨이 백태클에 실패하고 필드에서 뒹굴고 있었는데, 홀란드가 "다친 척 하지 말고 일어나."고 말한 것이 왜곡된 것이다. 셋째, 알피 홀란드가 로이 킨의 태클로 당한 부상은 경미한 타박상이었다. 홀란드는 끝까지 경기를 소화했고, 며칠 뒤엔 국가대표 경기에도 출전했다. 넷째, 알피 홀란드는 로이 킨을 고소하려 했으나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 로이 킨과 알피 홀란드는 그 이후에도 3~4번이나 만난 적이 있다.

로이 킨의 자서전에는 "공 가져가는 건 좋은데, 다신 나한테 엄살 피우지 말라고 하지 마라", "알피 홀란드는 정당한 대가를 치른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언급한 '정당한 대가'라는 게 엄살피우지 말라는 홀란드의 말에 대한 것인지, 홀란드가 입은 부상 자체를 의미하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로이 킨은 인터뷰에서 부상을 입힐 의도로 홀란드에게 백태클을 한 건 아니지만 홀란드를 아프게 할 의도는 있었다고 말했다.

복수극 자체는 많이 부풀려졌지만, 로이 킨이 알피 홀란드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일련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로이 킨은 홀란드를 여러번 비난했다. 킨이 홀란드를 걷어찼을 때 다른 시티 선수들이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았는데, 그건 홀란드가 머저리이기 때문이며, 홀란드가 머저리라는 건 시티 선수들도 전부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식의 망언을 하기도 했다.

이후 알프잉에 홀란드는 시간이 흘러서 로이 킨에 대한 악감정은 이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다 잊었다고 한다.

8.2. 크리스 이글스 폭행

리오 퍼디난드의 회고에 따르면 로이 킨이 복귀 전 2군에서 뛸 때 당시 신인이었던 크리스 이글스가 자신에게 태클하자 돌아서서 주먹으로 턱을 가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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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싸움닭인 대외적 이미지와 별개로 상당히 독실한 신앙인이다. #[2]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3] 09/10 시즌 중 부임, 10/11 시즌 중 경질.[4] 로이 킨이 맨유에 입단한지 얼마 안 됐을 시절에 당시 맨유의 주장이었던 브라이언 롭슨이 그에게 더 높은 수준의 미드필더가 되기 위해서는 빌드업에 좀 더 관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5] 외모의 한 부분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냐는 게리 네빌의 질문에 키가 좀 더 컸으면 좋을 것 같다고 답하였다.[6] 다만 이 작은 체구라는 약점은 로이 킨이 이것을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정신력을 얻었기 때문에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그의 성공을 이끌어 냈다고도 볼 수 있다.[7] 피지컬의 어느 부분에서도 킨에게 밀리지 않는 파트리크 비에라만큼은 아니지만 최상급의 피지컬을 가진 스티븐 제라드, 그들보다 느리지만 그것을 빼면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피지컬을 가진 프랭크 램파드가 PL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지금까지 불리는 것에서 과거 PL의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다. 신체적인 점에서 타 선수들에 비해 불리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영국 팀에서의 실패를 의미했다. 어느 리그라도 피지컬이 우수하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유리하다.[8] 현역 선수로 예를 들면 황희찬, 은골로 캉테, 제르단 샤키리 같이 다부진 체형을 가진 선수.[9] 이 일 때문에 아직도 둘의 관계는 껄끄럽다고 한다.[10] 국내에서는 킨의 전성기 시절 영상을 라이브로 본 세대가 극히 적고 해외축구의 본격적인 태동기인 2000년대 초반이 비에라의 전성기였기에 그 당시 30대 초반에 접어들어 하락세로 넘어가는 킨이 저평가를 많이 받는다. 또 국가대표 활약상에서 비에라는 월드컵 우승 및 준우승과 유로 우승의 커리어를 가졌고, 킨은 1994 미국 월드컵에서의 활약상 이외에는 아일랜드의 전력상 한계가 있기에 대표팀 커리어로 들어가면 킨이 많이 불리해진다. 다만, 해외에서는 국대 활약상을 제외하면 오히려 킨을 더 쳐주는 경향이 있다.[11] 다만 알렉스 퍼거슨은 자서전에 본인이 생각하는 월드클래스 선수에 로이 킨을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정말 많은 논란거리가 되었다. 피터 슈마이켈, 데이비드 베컴과 함께 퍼거슨이 월드클래스라고 평가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가장 논란이 되었던 선수였다.[12] 둘의 악연은 2002 월드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3] 제라드가 선정한 역대 유럽 축구선수 베스트 11.[14] 자서전 출간 당시의 인터뷰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로이 킨>램파드>비에라>스콜스라고 순위를 매겼다.[15] 로이 킨이 스카이스포츠에서 "경기 끝나고 상대 선수와 친근하게 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건 안된다. 경쟁자끼리 뭐하는 거냐"라고 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한 인터넷의 반응은 '아저씨, 이건 축구예요. 전쟁이 아니라'였다.[16] 파일:킨 사우스게이트.webp[17] 이런 행동의 업보가 터지면서 결승까지 갔지만 에버튼 FC에게 1대0으로 석패하며 준우승에 머물었다.[18] 식단에 패스트푸드가 나왔으니 말 다했다.[19] 훈련시설이 전혀 준비가 안되어있는 사이판에서 훈련을 했다. 훈련용 공, 콘, 골키퍼 장갑조차 없었고 운동장은 떡잔디여서 부상위험이 컸다.[20] 정작 불화가 있었던 니얼 퀸은 훗날 선덜랜드에서 감독과 구단 수뇌부로 다시 재회하게 된다. 게다가 아일랜드는 킨 없이도 16강에 올라갔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16강 스페인전에서도 1:1로 비겼으나 승부차기로 패해 아쉽게 탈락. 이겼다면 한국의 8강전 상대가 되었을 것이다.[21] 다만 축구선수로서는 자기가 더 나은 선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22] 로이 킨, 파트리크 비에라, 게리 네빌. 참고로 네빌은 비에라가 자길 위협했다며 비에라를 탓하고 비에라는 화를 참지 못한 로이 킨을 탓하며 킨은 자기 선에서 문제를 해결짓지 못한 네빌을 탓한다.[23] 사실 사건 이전에 관계가 괜찮았을때도 서로 직업적으로 존중했을 뿐, 사적으로는 가깝지 않았다고 한다.[24] 게리 네빌은 둘 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고 절대 지기를 싫어한다는 점에서 둘을 서로의 거울 같았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둘의 사이가 좋게 끝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둘의 비슷한 성향 때문에 키노게이트 이전부터 미묘한 긴장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키노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걸로 인한 팀 미팅(참고로 이 미팅은 정말 끔찍했다고 한다)까지 열리는 순간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거라 직감했다고 한다.[25] 이 과정에서 당시 맨유의 단장이었던 데이비드 길은 로이 킨에게 주는 구단 성명서에 11년 반 동안의 헌신에 고맙다고 하는 오류도 범했다. 로이 킨은 맨유에서 12년 반을 뛰었다.[26] 마틴 퍼거슨[27] 퍼거슨이 영국 축구계, 그리고 세계 축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대차게 까는 인물은 정말 드물다.[28] 퍼거슨과는 달리 베컴과 킨의 사이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29] 평소 로이 킨이 하는 발언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별말 없이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스타일을 선호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든 점을 어필하는 스타일은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30] 출처[31] ##[32] 다만 포그바의 재능에 대해서는 항상 높게 평가한다. 단지 그에게 부족한 축구적인 규율을 늘 아쉬워한다. 또한 램파드도 포그바에게 재능은 훌륭한데 겉멋이 너무 많이 들어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했다고 평가받았다.[33] 그래서 그런지 축구 외적인 것에 잡음이 없고 헌신적인 선수인 조던 헨더슨을 좋아한다. 선덜랜드 감독 시절에 헨더슨을 지도했던 로이 킨은 헨더슨이 리버풀로 이적한 뒤로 방송에서 캐러거에게 헨더슨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당시 헨더슨은 리버풀에서 좋은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던 시절이었다.[34] 아일랜드인은 술을 좋아한다는 스테레오타입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아일랜드는 술 문화가 발달되어있는 나라다.[35] 은퇴한지 한참 지난 지금도 술을 안마신다.[36] 체지방률이 4%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는 필드 위에서 부딪히고 힘을 내면서 뛰어야하는 축구선수에게 과도하게 낮은 체지방률이다. 몸에 지방이 너무 적어서 경기중에 추운 적도 많았다고 한다.[37]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의료진이 코로나 백신을 만들어도 킨은 걔네들은 그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할 것이라는 등으로 써먹는다.[38] 퍼디난드가 맨유에 오기 전에 뛰었었던 클럽들을 말한다.[39] 엘링 홀란드의 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