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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주요 관현악단 | |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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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오케스트라. 런던을 본거지로 하고 있다.2. 연혁
2차대전 후인 1946년에 지휘자 토머스 비첨이 사비를 들여 창단했다. 악단 명칭은 영국의 유서깊은 공연 기획 단체인 로열 필하모닉 협회에서 빌려서 사용하기로 했다. 비첨은 창단과 동시에 초대 수석 지휘자 겸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1961년에 타계할 때까지 악단의 육성에 주력했다.비첨 사후 후임으로 전년도부터 악단의 부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던 독일 출신의 루돌프 켐페가 부임했는데, 애초에 비첨의 개인 악단으로 출발한 탓에 비첨 사후 재정 지원자가 없어지자 갑작스레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게다가 로열 필하모닉 협회와도 상표권을 둘러싸고 격렬한 법정 공방이 시작되었고, 이 때문에 해당 협회 주최의 공연이 전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종래 로열 필이 상주 악단이었던 글라인드본 음악제에서도 1963년부터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면서 고사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하지만 말콤 사전트가 이 악단에 적극적으로 실드를 쳐주면서 서서히 정상화되기 시작했고, 악단 측도 로열 필하모닉 협회가 틀어쥐고 있던 런던 시내 대신 외곽인 런던보로의 영화관이나 소규모 공연장을 거점으로 공연을 진행했다.
1966년에는 오랜 법정 소송 끝에 협회로부터 명칭 사용권을 돌려받으면서 양자 간의 갈등도 해소되었고, 이 기간 동안 악단의 버팀목이 되었던 켐페도 1970년에 종신 지휘자라는 직함을 악단으로부터 수여받았다. 켐페는 1975년 BBC 교향악단으로 이임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후임으로는 헝가리 출신의 미국 지휘자인 안틸 도라티가 부임해 연주력 향상에 주력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불황을 타고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크게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 했다. 재정난으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과의 통합설이 여러차례 기사화되기도 했다. 결국 영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가까스로 해체 위기를 넘겼다.
도라티의 후임으로는 발터 벨러와 앙드레 프레빈,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유리 테미르카노프, 다니엘레 가티가 차례로 수석 지휘자 직책을 이어받았고, 2009년부터는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계 지휘자인 샤를 뒤투아가 수석 지휘자 겸 예술 감독으로 취임해 2010년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3. 역대 수석 지휘자
수석 지휘자 이외의 추가 직책은 별도 기록했다.- 토머스 비첨 (Thomas Beecham, 재임 기간 1946-1961. 음악 감독 겸임)
- 루돌프 켐페 (Rudolf Kempe, 재임 기간 1961-1975. 1963-1975 음악 감독, 1970-1976 종신 지휘자 겸임)
- 언털 도라티 (Antal Doráti, 재임 기간 1975-1978)
- 발터 벨러 (Walter Weller, 재임 기간 1980-1985)
- 앙드레 프레빈 (André Previn, 재임 기간 1985-1988 음악 감독, 1988-1992 수석 지휘자 역임)
-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Vladimir Ashkenazy, 재임 기간 1987-1994. 음악 감독 겸임)
- 유리 테미르카노프 (Юрий Темирканов, Yuri Temirkanov, 재임 기간 1992-1998)
- 다니엘레 가티 (Daniele Gatti, 재임 기간 1996-2009. 음악 감독 겸임. 퇴임 후 계관 지휘자 호칭 수여)
- 샤를 뒤투아 (Charles Dutoit, 재임 기간 2009-2018. 예술 감독 겸임, 성추문으로 2018년 사임)
- 바실리 페트렌코(Vasily Petrenko, 재임기간 2021-)
이외에도 핀커스 주커만이 2009년부터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4. 특징
초기부터 대부호이기도 했던 비첨의 쇼미더머니 덕에 런던의 관현악단들 중에서도 꽤 넉넉한 재정 상태를 자랑했는데, 비첨 자신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보다 이 악단을 더 아낀 것 같다. 실제로 그의 만년에 제작된 녹음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 악단을 지휘해 제작되었고, 많은 수가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다만 이름에 '로열' 이 들어가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이 악단이 '왕립 관현악단' 이라고 착각하기도 하는데, 연혁 란에 쓴 것처럼 로열 명칭은 로열 필하모닉 협회라는 공연 기획사에서 따온 것이지 영국 왕실에서 내려준 칭호는 아니다.
1960년대 중반에 겪은 재정난 때문에 이 악단의 체질 개선도 거의 필연적으로 이루어졌고, 로열 필하모닉 협회의 압력으로 인해 런던의 대규모 공연장 중에 상주 공연장으로 자리를 내주는 곳이 없을 정도로 입지가 좁았던 시절도 있었다. 이 때문에 21세기에 와서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같은 다른 악단들과 마찬가지로 굳이 런던에 국한하지 않고 노샘프턴과 크로이던, 크로울리, 로스토프트, 레딩, 다트퍼드 같은 주변 지역의 소도시들에 위치한 공연장들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런던 공연은 초기에 로열 앨버트 홀이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주로 개최되었는데, 명칭 문제 때문에 크게 데인 후 바비컨 센터 같은 다른 공연장을 쓰다가 2008년에 다소 규모는 작지만 음향 조건이 좋은 편인 카도건 홀의 상주 악단으로 들어가 있다. 물론 좀 규모가 큰 공연의 경우에는 페스티벌 홀이든 앨버트 홀이든 대관해 사용하고 있다.
녹음은 비첨 시대 이래로 악단의 중요한 돈줄이 되고 있고, 켐페와 도라티, 벨러, 프레빈과 아슈케나지 등 후임 지휘자들 대부분이 RCA와 데카, 필립스 등에 이 악단을 지휘해 녹음을 한 바 있다. 1981년에는 루이스 클라크의 편곡/지휘로 클래식 명곡과 디스코 리듬을 합친 메들리 형식의 음반인 '훅트 온 클래식스(Hooked on Classics)' 를 내놓아 유례없는 대박을 치기도 했고, 1986년에는 아예 악단 자체의 음반사를 차려 음반 시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물론 이보다 한참 전인 1969년에는 딥 퍼플과도 협연하는 진귀한 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키보디스트였던 존 로드가 야심차게 준비한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 라는 록밴드와 관현악의 협주곡을 실황녹음으로 취입했다.[1] 영국 악단 치고는 크로스오버 쪽에 꽤 일찍 발을 들여놓은 셈인데, 이 때문인지 1987년에는 아예 '로열 필하모닉 콘서트 오케스트라(Royal Philharmonic Concert Orchestra)' 라는 하부 조직을 만들어 이 분야를 전담케 하고 있다.
2000년대에서는 국내의 유명 메탈 밴드 N.EX.T와 협연을 하기도 했다.
5. 로열 필하모닉 콘서트 오케스트라
앞서 쓴 것처럼 로열 필의 하부 조직으로, 로열 필이 클래식 위주로 활동한다면 이 쪽은 팝이나 록 등 대중음악 쪽의 아티스트들과 협연하거나 대규모 야외 공연에 참가하는 팝스 오케스트라 성격을 가진 악단이다. 다만 로열 필처럼 상설 악단은 아니고, 공연이나 녹음 일정 때마다 단원들을 모집해 조직하는 비상설 관현악단이다. (간혹 단원들 중에는 로열 필의 단원들이 몇 사람 들어가기도 한다.)야니의 'Yanni Live at the Acropolis' 나 스팅의 'Symphonicity' 에서 이 악단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외에도 엑스 재팬의 'ART OF LIFE' 나 서태지의 'Seotaiji Symphony' 에서도 이 악단이 참가해 연주한 바 있다. 다만 톨가 카쉬프[2]가 퀸의 음악을 편곡/지휘한 'Queen Symphony' 같은 경우처럼 로열 필 콘서트가 아닌 로열 필이 참가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이름이 비슷하다는 문제 때문에 두 악단이 완전히 같은 조직인 줄 아는 사람도 꽤 있고, 심지어 몇몇 공연 기획사에서는 이 점을 악용해 영국에서 공연하고 있는 로열 필이 다른 곳에도 같은 시간에 출연하는 낚시질을 하다가 소송드립을 먹기도 했다. 2006년에는 한국에서도 낚였다.
서태지 심포니 공연 때도 주최 측에서 악단 이름을 'Royal Philharmonic' 이라고 애매하게 표기하는 바람에 또 어설프게 낚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이 나왔고, 이에 대해 기획사 측에서 로열 필 멤버가 참여하는 특별 편성된 악단이라고 다소 두루뭉술하게 해명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공연 기획사 측이 클래식 관현악단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빚어진 논란으로 볼 수 있다. 비상설 악단이긴 하지만, 앞서 언급되었듯이 로열 필의 주요 멤버가 끼기도 하며 서태지 심포니 공연도 그런 케이스였고, 앞서 설명에도 나오듯이 딥퍼플과의 협연을 계기로 로열 필하모닉 콘서트라는 별도 조직이 탄생했기 때문에, 클래식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보기엔 어쨌든 기원은 로열필에 있으니 그게 그거라 인식하기 쉽다.
또한 이렇게 두 조직을 섞어 오케스트라를 편성했을 경우, 뉴스 자막용 헤드라인이나 기사용 제목을 뽑을 때 제목이 너무 길어진다는 고충도 있다. '서태지와 톨가 카쉬프'까지만 해도 제목 분량이 꽤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니셜로 ROP and ROCP라고 표기할 수도 있었지만, 이것만 봐서는 무엇의 줄임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제대로 설명하자면 별도의 설명문이 따로 필요했을 것이고, 결국 언론에서는 두루뭉술하게 '로열필'로 줄여서 표기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악단의 성격이 다르므로 엄연히 구별해야 할 부분. 조선일보 음악 담당 한현우 기자가 쓴 서태지 인터뷰 기사에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있다.[3]
이 공연에서 로열 필하모닉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섞어서 편성한 것은 록밴드와 합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서태지도 자신의 음악에 박자를 맞추기에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더 낫다고 말했다. 대중음악을 연주한 경험은 로열 필하모닉 콘서트 오케스트라가 더 많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6. 음반 목록
- Hooked on Classics 시리즈
- Hooked on Classics
- Can't Stop The Classics
- Journey Through The Classics
- Hooked on Classics 4: Baroque
- The Classics in Rhythm
- Hooked on Classics 2000
- Hooked on Themes
- Hooked on Instrumentals
- Hooked on Instrumentals Classics
[1] 다만 이 때 록 음악을 고깝게 보던 로열 필 노장 멤버들의 반응이 영 좋지 않았고, 지휘자였던 말콤 아놀드가 간신히 설득한 끝에 가까스로 협연이 성사되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2] 서태지 심포니때도 이 분이 오케스트라 편곡·지휘를 담당했다.[3] 다만 애초에 다루는 분야가 다르므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관계라기보다는 클래식 전문 오케스트라와 팝스 오케스트라의 관계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