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백작 배우: 벨라 루고시 |
1. 개요
1931년작인 <드라큘라(1931)>에서는 벨라 루고시가 연기하였다.2. 드라큘라 백작을 정립하다
흡혈귀 영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드라큘라 배우, 최초로 드라큘라를 연기한 벨라 루고시는 본인의 혈통이 동유럽인 헝가리 출신인 탓도 있어[1], 외모는 물론이고 의상, 심지어는 발음에서도 오늘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드라큘라의 이미지의 완벽한 전형(典型)을 구축했다. 흑백 영화 시절에 나온 그 어떤 드라큘라 영화도 루고시의 짝퉁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였다.[2] 더불어 드라큘라를 떠오르게 하는 검은 망토가 달린 턱시도 옷차림도 이 영화에 나온 이미지가 크나큰 영향을 남겼다.작중 행적은 원작과 비교할 때 방향성 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원작에 등장한 드라큘라 백작과 마찬가지로 세계정복을 목표로 삼고 있는 거창한 악당이기도 하다. 다만 원작과는 달리 하커가 아닌 렌필드를 이용해서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며, 파티장 등에서 여자들을 꼬드기다가 하커와 반 헬싱의 추격을 받고 심장에 말뚝이 박혀 사망한다. 참고로 죽는 장면은 화면에 나오지도 않는다.
유니버설 판의 드라큘라는 미스테리하고 카리스마 있는 악당의 느낌이 강한데, 여성이 드라큘라를 보는 순간 매료되는 등의 묘사는 루고시 버전이 정립시킨 것이다. 그러나 신사 같은 겉모습 뒤에 숨은 야수같은 모습도 묘사되는데, 반 헬싱과의 대담에서 그를 공격하려다 십자가를 보고 돌아서는 모습은 한 마리 짐승 같은 야만성을 표현한다.
벨라 루고시 특유의 부리부리한 눈빛 연기와 카리스마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동유럽풍 느낌을 자아내는 독특한 헝가리식 억양 덕분에 당시에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그 연기는 오늘날에도 무척 인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만 벨라 루고시가 본래 연극 배우였던지라 오늘날 관객이 보기에는 다소 거창하고 과장된 느낌일 수도 있다. 원작에 나왔던 드라큘라 백작의 유명한 대사를 어느정도 재해석해서 재현하기도 하였는데, 일부는 오늘날에 봐도 매우 인상적이다. "나는 와인은 마시지 않소."[3]나 "한번도 인생을 끝까지 살아보지 않은 사람 치고는 현명하구려, 반 헬싱."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벨라 루고시는 드라큘라 전문 배우로 대중에 인식되었으나, 특유의 연극적이고 거창한 연기 스타일이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한 탓에 말년에 비참하게 몰락하였다. 더불어 모르핀 중독에 시달리기 까지 하면서 왕년의 부귀영화가 무색할 정도의 가난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벨라 루고시는 아들과 아내의 의사에 따라 드라큘라 백작의 복장과 함께 묻혔다.
3. 기타
-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등장한 영에 속편이 있다는 사실이다. 제목은 <드라큘라의 딸>인데, 벨라 루고시가 출연한 영화와 내용이 이어진다. 작중 등장하는 드라큘라의 딸은 탐욕스럽고 사악한 아버지와는 달리 인간 세계에 섞이고 싶어 하지만, 흡혈귀 특유의 흡혈 본능 때문에 좌절하는 비극적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본인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처럼 처녀의 피를 탐하기 때문에 마치 레즈비언처럼 느껴진다.[4]
-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스페인어판이 동시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스페인어가 거의 제2공용어 노릇을 한다는 점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데, 원래 필름에 성우가 더빙한 게 아니라 아예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배우를 따로 기용해서는 영어판과 같은 세트에서 찍었다. 왜 굳이 자막을 사용하지 않았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193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유성영화에 자막을 넣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5]
- 재미있는게 루마니아 사람은 이 영화를 상당히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 위에 나왔듯이 블라드 체페슈를 드라큘라의 모티브로 삼은 것 때문에 루마니아에선 드라큘라란 작품과 캐릭터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드라큘라를 연기한 벨라 루고시가 헝가리 출신[6]인데 헝가리는 오랫동안 영토 문제로 인해 루마니아와 관계가 나쁘기 때문. 자신들의 역사적인 인물을 악역으로 묘사하는데 그 악역을 연기한 배우가 하필 원수지간인 나라 출신이니 루마니아 사람 입장에서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사실 드라큘라는 원작 소설부터 헝가리 계통이며 이는 소설의 드라큘라는 블라드 체페슈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이다.
- MBC에서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 중계 방송 당시 루마니아 선수단을 소개할 때 자료 화면으로 해당 드라큘라의 사진을 사용하였다. 이는 외교적인 결례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루마니아인들은 루마니아를 드라큘라와 연결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1] 현재 그의 고향 루고지는 루마니아 영토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헝가리가 트란실바니아를 루마니아 왕국에게 빼앗겼다.[2] 문제는 루고시 본인도 평생 이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3] 영어로는 "I do not drink...wine"이라고 약간 뜸을 들이며 얘기한다.[4] 한편 전작에서 드라큘라를 살해한 반 헬싱은 살인자로 몰려 감옥에 수감되는 신세가 되다(...).[5] 당시에는 모든 대사를 화면 중간중간에 글자로 삽입하거나 혹은 해설자(변사)가 대사를 대신 읽어주던 무성영화 시대를 지나서 이제 막 유성영화 시대로 진입하던 때였다. 기껏 귀로 듣는 영화를 보러 왔는데 예전처럼 글자를 읽는 것은 촌스럽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사람들은 유성영화에 자막을 넣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또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문맹률이 지금보다 높았던 까닭도 있었다.[6] 벨라 루고시는 미국으로 이주해서 활동하긴 했지만, 자신이 헝가리인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고 계속 정체성을 유지했다. 영어도 제대로 배우려 하지 않다 영화 활동을 하면서 겨우 영어를 익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