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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켄가르드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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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조직3. 시설4. 설정5. 특징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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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륙 본토 동남부, 산악 지대와 사막을 영토로 삼아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한 왕국. 비룡이 중심인 독특한 군대를 지녔으나 발모어 반란을 통해 건국된 제노이라에게 패해 국왕이 전사했고 멸망했다. 후계자인 왕자가 2명 있었으나 소식은 불명.

그 후 차남 길베르트의 생존이 판명. 독자적으로 병력을 다시 모아 바움라터를 탈환한 뒤, 재차 침공해 온 제노이라군을 해방군과 협공하여 격퇴에 성공. 드라켄가르드군의 재기를 내외에 주장했다.

길베르트와 해방군의 연합은 계속됐고, 마침내 왕성 솔드래거를 제노이라군에게서 탈환. 길베르트가 왕위에 올랐고 드라켄가르드 왕국은 부흥의 걸음을 내디뎠다.

2. 조직

3. 시설

4. 설정

5. 특징

자국에서 자라는 생물 용을 사역해 태운 용기사를 중심으로 한 군대는 그리폰으로 무장한 코르니아 왕국의 기사단보다 막강한 힘을 자랑한다. 코르니아와는 예부터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를 위해 미아 마을 근처 헤르슈탄 보루와 전쟁 도중에도 광산지대가 있는 프리츠트라제 요새를 세워 대응했다. 코르니아 왕국이 발모어의 반란으로 멸망하자 드라켄가르드의 휴고 왕은 이때가 영토확장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발모어의 반란을 피해 망명 하러 온 버지니아를 장남인 루트비히와 결혼시켜 장차 코르니아를 합병할 명분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제노이라 제국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한 맹공을 가했으며 드라켄가르드 왕국은 험준한 지형지물들을 이용해 그럭저럭 버티며 분투[1] 하기도 했으나 코르니아처럼 바르톨로의 지배술에 의해 왕가에 충성하던 이들이 지배당한 이후 배신을 하며 무너졌다.

제노이라에 의해 점령된 이후 일부 뜻있는 귀족들은 저항군을 만들었지만 탄탄히 준비해온 코르니아와는 달리 연계가 모래알 수준이라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해방군이 드라켄가르드 각 지를 해방할 때 리아랑 관련된 저항군을 조우하게 되고 리아의 중재 끝에 항구마을을 협공해 수복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저항군 내부에서 큰 반발과 코르니아 해방군을 믿을수 없다며 작전 예정시간보다 먼저 돌격했다가 위기에 빠진적이 있었다.[2]

길베르트와 어레인의 친밀도 대화 3단계에서 보다 세세한 설정이 밝혀진다. 드라켄가르드 왕국은 본디 코르니아에서 왕위 계승 분쟁에서 패배하고 추방당한 왕자가 세운 코르니아의 그림자 같은 나라였다. 국토의 상당 부분은 사막과 산악이라 농사도 목축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척박하다. 선왕 휴고가 코르니아의 귀족을 초대해 나라 각지에서 가져온 식재료로 정성껏 대접했으나 코르니아 귀족은 눈쌀을 찌푸리며 입도 거의 대지 않았다는 일화를 통해 드라켄가르드가 코르니아에 비해 빈곤한 나라임을 알려준다.

6. 기타

모티브는 스위스, 저지대(베네룩스), 독일 왕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헝가리+보헤미아+이탈리아[3]를 비롯한 신성로마제국 지역으로 추정.


[1] 힐다가 나오는 마을은 제노이라 군 침공 당시 험난한 지형을 적절하게 이용해 무려 6개월간 패퇴시키기도 하였다. 이에 제노이라군은 정면으로 안 된다 여겨 역병을 퍼뜨리는 약물을 인근 광산으로 옮겨 역병을 퍼뜨린 끝에 이겼다.[2] 이 저항군이 아무런 귀띔도 없이 무작정 행동한 것이라 병력을 집결시키기에 시간도 걸리니 조셉은 냉정하지만 저들을 버리고 천천히 공략해야 한다고 간언하지만 어레인은 기동력이 좋은 소수 정예로 구출한다는 계획을 짜내 이들을 구출하고 항구를 수복하는 계획을 짰다. 저항군은 자기네들의 독단행동으로 죽음을 각오했지만 해방군이 위험을 무릎쓰고 자신들이 농성하던 장소까지 와서 구원을 해주자 이후부터는 미안함 때문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이며 해방된 항구를 자신들이 어떻게든 지켜내겠다고 자처한다.[3] 투기장(콜로세움)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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