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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10:52:45

데이비드 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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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시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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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FA_UK_logo.png
1990-91 · 1996-97
}}} ||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파일:external/upload2.inven.co.kr/i10870379664.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데이비드 시먼
David Seaman MBE
본명 데이비드 앤드루 시먼
David Andrew Seaman
출생 1963년 9월 19일 ([age(1963-09-19)]세)
영국 잉글랜드 사우스요크셔로더럼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93cm | 체중 93kg
포지션 골키퍼
소속 선수 리즈 유나이티드 FC (1981~1982 / 유스)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 (1982~1984)
버밍엄 시티 FC (1984~1986)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1986~1990)
아스날 FC (1990~2003)
맨체스터 시티 FC (2003~2004)
국가대표 75경기 (잉글랜드 / 1988~2002)

1. 개요2. 선수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로, 고든 뱅크스 - 피터 쉴튼 - 데이비드 시먼으로 이어지는 잉글랜드 골키퍼 계보의 위대한 수문장이다.

1990년대2000년대를 대표했던 잉글랜드와 아스날의 전설적인 골키퍼로, 아스날 구단 골키퍼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2. 선수 경력

1981년 리즈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지만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1982년 당시 4부 리그와 3부 리그를 전전하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에서 프로로 데뷔한다. 시먼은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에서 주전 골키퍼로 뛰게 되었고, 준수한 활약을 펼쳐 1984년 1부 리그의 버밍엄시티로, 1986년에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로 이적한다. QPR에서 시먼은 좋은 활약을 펼치며 주목을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1988년 국가대표에 처음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시먼은 점차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게 되는데, 그중 가장 관심을 보이던 아스날이 1990년 시먼을 영입한다. 정말 신데렐라의 표본.

2.1. 아스날 FC

아스날로 이적한 시먼은 이적 첫 해 아스날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시먼 본인은 프리미어리그 베스트11에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1993년에는 FA컵 우승을, 1994년에는 UEFA 컵 위너스컵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1994-95 시즌 UEFA 컵 위너스컵 결승에서 레알 사라고사의 모하메드 나임의 40m 중거리 슛#에 실점하며 사라고사에게 우승을 내주기도 했으나, 그래도 시먼은 클럽과 국대를 오가며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UEFA 유로 1996의 잉글랜드 주전 골키퍼로 선임된다. UEFA 유로 1996에서 시먼은 스코틀랜드전에서 개리 맥칼리스터의 페널티 킥을 멋지게 선방하며 2-0 승리에 큰 공을 세우고, 스페인과의 8강에서는 120분 간 무실점으로 버틴 뒤 승부차기에서 2개의 킥을 막아내는 활약으로 잉글랜드를 준결승[1]으로 이끌며 국민영웅이 되기도 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 점차 많은 외국인 선수가 영입되며 주전경쟁이 치열해지던 와중에서도 시먼은 부동의 주전으로서 활약했으며 1997-98 시즌과 2001-02 시즌 팀의 더블에 공헌했다.

그리고 2002-03시즌 시먼은 팀의 4번째 FA컵 우승에 공헌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2002-03 시즌 FA컵 4강전에서 환상적인 선방이 유명하다. 선수시절 마지막을 장식하는 슈퍼 세이브.

결국 옌스 레만이 등장하면서 아스날에 더 이상 시먼을 위한 자리는 없었고, 시먼은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88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로 처음 데뷔했으며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 참가하였으나 주전은 아니었고 피터 쉴튼과 크리스 우즈에 이은 3순위 골키퍼였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16강전에서 아르헨티나와 대결했는데 전반 4분에 PK로 한 골 실점하고 2-2 동점이 되어 승부차기에 돌입하는데 시먼은 1개를 선방해냈지만 아르헨티나의 로아 골키퍼는 2개를 막아내면서 패배했다.

여태까진 그래도 제몫은 해왔었는데 그러다 2002년 시먼은 큰 위기를 맞게 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한 시먼은 8강 브라질전에서 호나우지뉴의 루프 슛을 막지 못해 브라질에게 4강행을 내주고 만 것이다.



당연히 시먼은 패배의 원인으로 대차게 까였고[2][3], 마케도니아전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다.[4] 정작 시먼 이후 전 EPL 최고 골키퍼 중 한 명인 조 하트와 현 EPL 최고 골키퍼 유망주 중 1명인 조던 픽포드아론 람스데일이 등장할 때까지 약 10년 정도의 시기 동안 잉글랜드 국가대표가 믿음직스럽지 못한 골키퍼 자리 때문에 골머리를 썩혔던 것을 생각하면...

4. 플레이 스타일


큰 키와 긴 팔다리, 막강한 카리스마, 명민한 수비라인 조율, 번뜩이는 PK 선방 능력이 빛났으며, 덧붙여 반사신경이 발군이었는지라, 누가 봐도 골인 상황에서도 재빠른 펀칭으로 선방을 하였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파일:Keegan-Schmeichel-Seaman.jpg

[1] 정작 준결승에서는 독일에게 승부차기 끝에 6-5로 패배하면서 탈락했다.[2] 그래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베컴이 당한 정도의 수모는 아니었다. 은퇴 후 가진 인터뷰에서도 시먼은 노심초사하면서 귀국했는데 생각보다 팬들이 따뜻하게 자기를 맞아줘서 감사했다고 밝히기도.[3] 하지만 골 장면을 보면, 시먼이 아니라 야신조차도 속아넘어갈 만한 골이긴 했다. 호나우지뉴의 킥 자체도 좋았기 때문. 어찌 됐든, 고령의 주전 키퍼로서 노쇠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4] 이 경기에서 코너킥으로 실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