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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8:38

대한식 소총

대한식 소총
파일:대한식소총.png
해외에서 보유 중인 제법 잘 보존된 대한식 소총의 이미지.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볼트액션 소총
원산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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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1952년
생산 부산 조병창
생산년도 1952년
사용국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기종
원형 99식 소총 (외형)
M1917 엔필드 (작동구조)
M1 개런드 (급탄구조 및 개머리판)
파생형 1호~8호
세부사항
탄약 .30-06 스프링필드
급탄 8발들이 내부탄창
M1 개런드 엔블록 클립
작동방식 볼트액션
총열길이 660mm
전장 1,180mm
중량 약 4kg (추정, 탄약 미포함) }}}}}}}}}

1. 개요2. 역사3. 특징4. 참고 자료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방위사업청의 소개 영상[1] 국방홍보원의 소개 영상[2]
대한민국에서 개발한 볼트액션 소총.

2. 역사

한국산 총기 개발사업은 8.15 광복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채병덕은 부평지역에 있었던 인천 일본육군 조병창 공장장(陸軍造兵廠工場長)에 재임 중 광복을 맞았다. 광복이 되면 구 일본군 조병창이 장래 한국군 창설에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될 거라고 보고 설비가 파손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잘 관리했는데, 미 육군 제24사단이 와서 이곳에 주둔하며 몽땅 때려부순 후 파묻어버렸다. 이후 부평지역(인천)에 있었던 조병창을 다시 지었다.[3]

그 결과 국방부는 육군 병기공창을 국방부 직할로 흡수하여 1949년 12월 15일에 병기행정본부를 창설하고 시설확충과 기술향상에 주력하던 중, 1950년 6월 15일에 부산에 제1조병창을 창설하고 인천 제2공장을 제2조병창으로 개편하였으며, 병기와 탄약의 학리적 연구와 시험제작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기술연구소를 창설하였다. 이로써 걸음마 단계이나마 군수공장이 첫 출발할 수 있었다. 그 후 6.25 전쟁의 발발로 부산을 제외한 모든 생산시설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 파괴됨에 따라 부산의 시설만을 이용하여 수류탄의 생산과 노획병기의 장비 등에 주력하였다. 그러던 중 전세의 역전으로 9·28수복이 이루어지자, 이 군수관련 기구들은 일시 서울로 이동하였으나 전세가 악화되어 다시 철수하게 되자, 제2조병창은 제주도로, 본부와 과학기술연구소는 부산으로 각각 이동하여 병기[4]를 생산하였다.

각 조병창은 1951년에 접어들면서 일본으로부터 수류탄 자재, 뇌관 도입선을 수입하여 타격식의 수류탄을 다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이와 더불어 99식 소총의 탄환과 대한식 소총 그리고 대인지뢰와 30kg 폭탄도 제조하기 시작함으로써 보다 발전하게 되었다. 국방부는 1952년 병기행정본부를 관리국으로 개편하고 제1조병창을 총포공장으로, 제2조병창을 탄약 및 화약 공장으로 운영하였으며, 이해 10월 1일에 제1·2조병창 및 과학기술연구소는 국방부 조병창 및 국방부 과학기술연구소로 각각 발족하게 되었다.

한편 이해 5월 31일부 조병중견기술자의 육성을 목적으로 한 기술원양성소를 설치하게 되어 제1기생 34명을 선발하여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게 한 다음 12월 27일에 제1기생 27명을 배출하였으며, 이어 제2기생 33명을 선발하여 입소시켜 교육을 실시하던 중 교육과정의 개편으로 종래의 교육기간 6개월을 1년으로 연장 실시하게 되었다. 국방부는 1953년부터 병기탄약에 대한 제조기술의 완전해결과 최신식 제조연구시설이 연구조사 및 시설도입을 추진하였다. 결과적으로 한국군은 그 해 안에 연구제조 기기를 목표량의 90%까지 도입 확보할 수 있게 되어 조병기술의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주력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군수 병기분야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한식 소총은 제식 배치에는 실패하고 시제품 단계에서 끝나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물자가 부족한 6.25 전쟁 초기이면 모를까 시간이 지나 한국군은 미국으로부터 물자와 무기를 공여받아 무장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공업 기술이 미약했던 한국에서 생산된 복제품과 수리 부품을 대량 생산할 이유가 없었다. 공여받은 M1911 권총, M1 개런드 등의 총기의 경우 미군이 2차 세계 대전 때 주력으로 운용한 것이라서 양도 많을 뿐더러 상태도 양호했다. 그래서 대량으로 가져와서 수리 부품이 필요하면 몇 자루 분해해 쓰면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M1 개런드는 반자동 소총이라 연사력도 좋고 더욱 많은 탄환이 장전되기에 굳이 볼트액션이라 연사력이 느리고 장탄수도 적은 대한식 소총을 생산할 필요가 더더욱 없어졌다. 물론 대한식 소총이 소량 생산된 분량은 있어서 광복식 콜트(M1911 콜트 복제)와 함께 외국인에게 수집된 사례가 있으며 위의 사진이 그것이다. 또한 2022년에는 국내의 모델링 맥스라는 곳에서 모형으로 대한식 소총을 복원하였다.

보존 상태는 좋지는 않지만 대한식 소총 6호, 대한식 소총 7호의 이미지 자료가 있다.

2020년에 전쟁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대한식 소총 4호와 7호의 실물을 공개했다.

3. 특징

당시 대한민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여러 볼트액션 소총들을 강하게 참고한 소총으로, 전반적인 외형은 구 일본 제국99식 소총을 닮았고, 장전손잡이나 리시버 부품은 미국M1917 엔필드를, 그리고 개머리판과 급탄 구조는 M1 개런드에서 따 왔다. 그에 따라 당시 대부분의 볼트액션 소총들이 5발들이 스트리퍼 클립을 사용해 장전하고 있었던 반면 대한식 소총은 개런드의 8발들이 엔블록 클립을 사용해 장전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당연히 당시 국군의 주무기였던 개런드의 탄을 호환해 보급을 일원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반자동소총인 개런드의 경우 전탄 소모 시 빈 탄 클립이 특유의 "팅" 소리와 함께 자동으로 배출될 수 있었지만, 볼트액션 구조인 대한식 소총은 클립 자동 배출 기능은 없었고 대신 총몸 왼쪽의 이젝터 멈치를 눌러 클립을 수동으로 배출해야 했다.

외형적으로는 소총 상부에 태극 문양과 함께 한자로 해당 소총의 호수를 기입했고, 측면에는 총기의 제작된 년원일을 단군기원으로 각인해 놓았다.[5] 그 옆에는 총번도 각인되어 있는데, 현재 전쟁기념관에서 보관 중인 7호 소총의 각인이 95번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8호까지 통틀어서 100정 가까이 생산되었다고 추측된다.

4. 참고 자료

5. 둘러보기

냉전기의 대한민국 군경의 보병장비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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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대한민국 군경보병장비
개인화기 소총 볼트액션 소총 <colbgcolor=#fefefe,#393b42>38식 소총, 44식 기병총, 99식 소총, M1903, M1917, 대한식 소총
반자동소총 M1 개런드, M1 카빈
자동소총 M1918A2, M2 카빈, M14, M16A1, MX 소총, K2
기관단총 톰슨 M1928A1, M1A1, M3, M3A1, K1, K1A
산탄총 S&W M916TG, M1200TG, 스티븐스 67/77TG, FABARM SDASS(초기형)TG
권총 자동권총 M1911A1, K5
리볼버 M1917, 콜트 디텍티브 스페셜, CAL-38, M10 M&PP, M19P, M36P
지원화기 기관총 92식 중기관총, M1917A1, M1919A4, M1919A6, M73, M60, M2, K6, M134C
유탄발사기 M7, M8, M79, M203, K201, 페더럴 37mm 최루탄 발사기TG
대전차화기 M9, M20, M20A1K, M18, M20, M67, M40, M72 LAW, K.LAW, BGM-71
화염방사기 M2, KM202A1
박격포 M1, M2, M29, KM29A1, KM181, KM187, M2, KM30
견인포 M101A1, M101A2, M114, M59,KH178, KH179
맨패즈 재블린 지대공미사일
유탄 MK2, MK3A2, M26, M61, M67, K75, K400
지뢰 M14, M15, M16, M18A1, M19
특수전화기 소총 볼트액션 소총 SSG 69, 마우저 SP66
반자동소총 PSG1P
자동소총 CAR-15, XM177
기관단총 UZI, Mini UZI, MAC-10, MAC-11, MP5A3, MP5SD3
권총 PPK, 베레타 92SB, 92F, P7M13P, M459
산탄총 M1897, M1912, M870
냉병기 도검류 신군도, 경찰도, 30년식 총검, KM7, KCB-77
TG: 경찰이 시위 진압을 위한 최루탄 발사용으로 사용
P: 군 이외의 경찰이나 대통령경호실 등이 사용
취소선: 테스트만 치른 후 제식 채용되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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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한국군의 운용장비 | 파일:gun_icon__.png 냉전기 보병장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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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장비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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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상에서 소개하는 대한식 소총은 4호이다.[2] 영상에서 소개하는 대한식 소총은 6호와 7호이다.[3] 미국측 보고서에 따르면 채병덕의 주도하에 M1을 복제한 한국형 반자동 소총, 그리고 한국형 볼트액션 소총의 시제품을 만들었다 한다. 대한식 소총은 채병덕이 개발한 소총을 계속 발전시킨 것으로 추정된다.[4] 이때 부산진 콜트(광복식 권총)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5] 1952년 당시에는 단기를 대한민국의 공식 연호로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와 같이 서력기원으로 연도를 표기하게 된 것은 1962년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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