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에 대한 내용은 정왕동 문서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92271, #2531a2 20%, #2531a2 80%, #192271); color:#fbe673"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be673>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고왕 | 무왕 | 문왕 | 폐왕 | 성왕 | |
<rowcolor=#fbe673> 제6대 | 제7대 | 제8대 | 제9대 | 제10대 | |
강왕 | 정왕 | 희왕 | 간왕 | 선왕 | |
<rowcolor=#fbe673>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
대이진 | 대건황 | 대현석 | 대위해 | 대인선 | |
왕태자 · 건국 이전 지도자 · 발해부흥운동 군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A2D5B, #4A2D5B 20%, #4A2D5B 80%, #)" 고조선 · 부여 · 원삼국 · 고구려 · 백제 · 가야 · 신라 · 탐라 · 태봉 · 후백제후삼국 ·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 대한민국 임시정부 · 조선건준 · 대한민국}}}}}}}}}}}}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5px -10px; padding: 5px 0px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19c22, #e3ba62 20%, #e3ba62 80%, #c19c22); min-height: 29px" {{{#B22222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bgcolor=#FFEFA7,#5A004A> 삼국 - 남북국 - 후삼국 | |
신라 | 건원(建元) | 개국(開國) | 대창(大昌) | 홍제(鴻濟) | 건복(建福) | 인평(仁平) | 태화(太和) | |
고구려 | 영락(永樂) | 연수(延壽) | 연가(延嘉) | 영강(永康) | 경(景) | 건흥(建興) | |
발해 | 인안(仁安) | 대흥(大興) | 보력(寶歷) | 중흥(中興) | 정력(正曆) | 영덕(永德) | 주작(朱雀) | 태시(太始) | 건흥(建興) | 함화(咸和) | |
태봉 | 무태(武泰) | 성책(聖冊) | 수덕만세(水德萬歲) | 정개(政開) | |
후백제 | 정개(正開) | |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 ||
고려 | 천수(天授) | 광덕(光德) | 준풍(峻豊) | 천개(天開) | |
조선 | 개국(開國) | 건양(建陽) | |
대한제국 | 광무(光武) | 융희(隆熙) | |
대한민국 | ||
대한민국 | 대한민국(大韓民國) | 단기(檀紀) | }}}}}}}}}}}} |
등극한 강왕의 아들 | ||
제7대 | 제8대 | 제9대 |
정왕(定王) | 희왕(僖王) | 간왕(簡王) |
<colbgcolor=#2531a2>발해 제7대 국왕 定王 | 정왕 | |
시호 | 정왕(定王) |
연호 | 영덕(永德) |
성씨 | 대(大) |
휘 | 원유(元瑜) |
왕자 | 대연진(大延眞) |
작위 |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 |
출생 | 770년대 전후[1] |
사망 | 812년 (향년 30대) |
재위기간 | 809년 ~ 812년 (3년) |
[clearfix]
1. 개요
발해의 제7대 가독부. 이름은 대원유(大元瑜)이고 강왕의 아들이다. 연호는 영덕(永德). 동생으로 희왕과 간왕이 있고 아들로는 대연진 (《책부원귀》 <외신부> 조공 기록(810년 11월))이 있다.문왕 대흠무의 정책을 계승했으나 즉위 후 불과 3년 만에 붕어했기에 별다른 업적은 없다. 행적과 치적이 전해지지 않으나 아들이 있었음에도 동생인 희왕이 권지국무로서 국정을 대리하다 왕위를 승계한 것으로 보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2. 연표
- 810년 1월 고재남 등을 당에 사신으로 보내다
- 810년 4월 고남용 등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다
- 810년 9월 고남용 등이 일본의 수도에 도착하다
- 810년 11월 아들 대연진을 당에 사신으로 보내다
- 811년 4월 일본의 사신이 당도하다
- 811년 12월 당에 사신을 보내다
- 812년 9월 신라 헌덕왕이 급찬 숭정을 사신으로 보내오다
- 812년 정왕이 죽고 아우 대언의가 권지국무로서 국사를 대리하다
[1] 아버지인 강왕이 750년대 무렵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정왕은 770년대 전후에 출생한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