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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9:46:16

눈의 진군

[[일본군/군가|
파일:일본 황실.svg
일본군가
軍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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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자막

1. 개요2. 상세3. 가사4. 대중 매체에서

1. 개요

눈의 진군([ruby(雪, ruby=ゆき)]の[ruby(進軍, ruby=しんぐん)])은 1895년에 발표된 일본 제국군가이다. 일본 제국 육군 군인인 나가이 켄시([ruby(永井建子, ruby=ながいけんし)]) 가 작사·작곡하였다.

이 문서의 표제어는 "눈의 진군"이지만 한국어로는 "눈 속의 진군"으로 옮기는 게 원뜻에 가깝다. 일본어의 'の'와 한국어의 '의'가 의미 상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The Snow March", "Snow March" 라고 부르거나 일본어 발음대로 "유키 노 신군(Yuki no Shingun)"이라고 부른다.

2. 상세

나가이 켄시(1865 - 1940)가 1895년 청일전쟁 당시 제 2군 군악대에 종군하면서 자기의 경험을 살려 작사, 작곡한 곡으로, 혹한기에 고생하는 병사들의 처지를 노래로 표현하였다.

음이 신나고 가사도 재미있으면서 처량한 병사들의 신세를 잘 나타내기 때문에 일본군 내부에서도 인기를 끈 대 히트 군가이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아직 전근대의 영향이 남아있어서 짚신을 군화삼았던 부대도 있었다. 도호쿠, 호쿠리쿠 출신이 아니고서야 습하고 더운 일본의 기후에서 자란 일본인에게 만주의 겨울은 가혹했다. 정작 가장 추운 지역인 홋카이도에 살던 주민들은 병역이 면제되었는데 다이쇼 시대는 홋카이도 개척 초기였던 만큼 환경이 더더욱 가혹했고 병역을 면제해 줘도 들어가서 살까 말까였기 때문이다.

이후 염세적이라 군가답지 않다는 이유로 가사가 일부 개정되고 태평양 전쟁 중에는 가창금지까지 먹었지만[1] 장병들은 잘만 부르고 다녔다.[2] 배경은 청일전쟁 당시 한반도 북부~만주지역이지만 기후가 눈이랑은 전혀 상관 없는 태평양 쪽에서도 즐겨 부른 곡이다. 외국에서도 발도대 다음으로 가장 인지도 높은 일본 군가이기도 하다.

이와 비견될 만한 곡으로는 1934년 작곡된 독일 해군가 우리는 마다가스카르에 정박했다가 있다. 이쪽은 눈의 진군보다도 훨씬 더 막장인데 가사가 마다가스카르 앞에서 암초에 박힌 상태로 좌초한[3] 배에 전염병이 돌고 물도 썩으며 결국은 선원들이 하나둘씩 죽거나 배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는 굉장히 암울한 내용이다. 낙하산 줄에 묻은 피라는 미국의 군가도 있는데 이건 공수부대 신참이 낙하산을 믿고 뛰어내리다 낙하산이 안 펴져서[4] 그대로 추락사해 그 시체를 수습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3. 가사

雪の進軍
1절
雪の進軍氷を踏んで
유키노 신-군- 코-리오 훈-데,
눈의 진군, 얼음을 밟으며

何れが河やら道さへ知れず
도레가 카와야라 미치사에 시레즈
어디가 강인지 길마저 모르는 채,

馬は斃れる捨てゝも置けず
우마와 타오레루 스테테모 오케즈,
군마는 쓰러져도 버리지도 못하고

此處は何處ぞ皆敵の國
코코와 이즈쿠조 미나 테키노 쿠니
이곳은 어딘가 모두 적들[5]의 나라[6]

儘よ大膽一服遣れば
마마요 다이탄- 입푸쿠 야레바
'될 대로 되라' 라며 대담히 한 개비 무니

頼み少なや煙草が二本
타노미스쿠나야 타바코가 니혼-
불안하게시리 담배는 또 두 개비네[7]


2절
燒かぬ乾魚に半煮え飯に
야카누 히모노니 한-니에 메시니
덜 구운 건어물에 설익은 밥에

憖生命のある其の內は
나마지 이노치노 아루 소노 우치와
죽다 만 목숨이나마 붙어있는 한은

堪へ切れない寒さの焚火
코라에키레나이 사무사노 타키비
참아낼 수 없는 추위에는 모닥불

煙い筈だよ生木が燻る
케무이 하즈다요 나마키가 이부루
연기만 날 수밖에 생나무를 태우니[8]

澁い顔して功名噺
시부이 카오시테 코묘우 바나시
떨떠름한 얼굴로 늘어놓는 무용담

「すい」と云ふのは梅干一つ
스이토 이우노와 우메보시 히토츠
멋부린다 하는 말이 우메보시 한 개네[9]
(간주)
3절
着の身着のまゝ氣樂な臥所
키노미 키노마마 키라쿠나 후시도
입던 옷만 달랑 걸치고 속편한 잠자리

背囊枕に外套被りや
하이노- 마쿠라니 가이토- 카부랴
배낭을 베개 삼아 외투 덮으니

背の溫みで雪解け掛ゝる
세나노 누쿠미데 유키 토케카카루
등의 온기로 눈이 녹기 시작하네

夜具の黍殼シッポリ濡れて
야구노 키비가라 십포리 누레테
깔아놓은 지푸라기 축축하게 젖으니

結び兼ねたる露營の夢を
무스비 카네타루 로에이노 유메오
꾸어지지 않는 노영의 꿈을

月は冷たく顔覗き込む
츠키와 츠메타쿠 카오 노조키코무
달은 차갑게 얼굴은 내밀고 들여다본다


4절
命捧げて出て來た身故
이노치 사사게테 데테키타 미유에
목숨을 저당잡혀 나온 몸이었기에

死ぬる覺悟で吶喊すれど
시누루 카쿠고데 톳칸- 스레도
죽겠다는 각오로 돌격하지만

武運拙く討死にせねば
부운- 츠타나쿠 우치지니 세네바
무운이 나빠 전사하지 않으면

義理に絡めた恤兵眞綿
기리니 카라메타 쥿페이마와타
의리로 묶인 위문주머니가

そろりそろりと頸締め掛ゝる
소로리소로리토 쿠비 시메카카루
슬금슬금 목을 조르려 들겠지[10]

どうせ生かして還さぬ積り[11]
도-세 이카시테 카에사누 츠모리
어차피 살려서 보내 줄 생각은 없을 테니

가사를 요약하면 "너무 추워 죽겠는데 배고프기까지 해서 밥이나 먹자니 밥은 꽝꽝 얼어있고, 기분이라도 푼다고 담배나 태우려는데 너무 추운 나머지 두 개비가 붙어 딸려 나오고, 싸워도 승산이 없어 힘들고 우울하고, 그렇다고 지고서 살아 돌아가봤자 욕먹을 게 뻔하고, 그런데 죽는 것마저도 마음대로 못한다. 에라이 X발... 될되로 되라" 정도. 비록 일본 제국의 군가지만 가사 자체는 군국주의적인 면모는 안 보이고 오히려 개고생하는게 뼈저리게 느껴지는 노래다.

4. 대중 매체에서


핫코다 산 참사를 그린 영화 <핫코다산(1977년)>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걸즈 앤 판처에서 아키야마 유카리에르빈이 정찰나갈 때 불렀다. 배경이 러시아를 모티브로 한 프라우다 고교라 눈속을 헤치고 다니는 전차와 잘 어울린다고 제작진이 판단한 모양이다. 해외에서의 인지도는 이 때를 기준으로 관심이 급격히 올라갔다.

극장판에서도 등장한다. 웃기게도 일본군을 상징하는 팀인 치하탄 학원종이장갑 전차대가 세인트 글로리아나의 전차대를 향해 생각 없이 반자이 돌격하다가[12] 잔뜩 격파당하는 장면에서 이 눈의 진군이라는 군가가 흐른다. 이 장면 자체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일본군의 돌격작전을 희화한 장면이기 때문에 당시 일본군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며 부른 이 군가를 다시 선택한 듯하다. 중반부 대학 선발팀과의 전투 직전 타 학교들과 함께 오아라이 여학원 지원을 위해 파견 나왔을 때도 BGM으로 깔린다.

슈퍼로봇대전 UX에서 사야 크루거나카지마 소우비 수색을 위해 나섰을 때 이 노래를 부른다. 조난당했을 때 부르면 힘이 나는 노래라고 리처드 크루거가 가르쳐 줬다고. 유머는 이들은 이때 조난당하지도 않았다는 거(...). 길을 잃었다고 할 때 '하늘은 우리를 버렸다'고 하는 건 핫코다 산 참사를 다룬 영화인 '핫코다 산'의 대사다.

[1] 지들 딴에는 신이 지켜주시는 절대 외세한테 지지 않을 국가의 군대에서 군인들이 부른다는 군가 내용이 "아이고 사서 개고생이네"인데 이걸 상부가 좋게 봤을 리는...[2] 패전하고 후퇴하면서 불렀다고...[3] 가사 내용상 무풍지대에 갇혔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4] 정확히는 산줄이 몸에 엉켜서.[5] 청일전쟁의 주요 격전지였던 랴오둥 일대는 1월 평균 기온이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지며 시베리아 기단의 강풍까지 합쳐 체감온도가 영하 30도까지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전쟁 도중에 사병, 장교 가릴 것 없이 동상을 피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었다.[6] 청나라는 하나인데 갑자기 "모두"가 나와 이상하게 여길수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國(くに)는 국가 간 국경이 아닌 랴오둥 일대의 마을, 즉 군현들을 의미하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의 정서상으로는 와닿지 않는 표현이나 전통적으로 지방봉건제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고키시치도(율령국)이 곳곳에 있었고, 이 영향으로 일부는 1940년대까지도 도부현의 경계를 국경(国境、くにざかい)라고 부르기도 했다. 설국의 첫 문장이 대표적이다. 그보다 더 이른 1890년대의 일이니, 전형적인 일본문화가 녹아든 표현으로 보면 될듯.[7] 담배가 얼어붙어서 두 개비가 나왔다는 뜻이다. 일본어로 두 개비(にほん)가 일본(にほん)과 발음이 같다는 것을 이용한 일종의 언어유희이기도 하다. 재수없게 담뱃대 두 개비가 붙어서 나왔다는 뜻도 되지만 일본에 희망이 없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8] 고체연료나 숯같은 게 보급될 리는 없고, 대부분 근처의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불을 피웠을 텐데 보통 생나무를 장작으로 쓰려면 1달은 말려야 하지만 전쟁할 때 그럴 시간은 없으니 그냥 아무거나 주워다가 태우는데 습기로 인해 잘 안 타고 엄청난 연기로 인해 잠은 설치게 되고 연기 때문에 불을 끄거나 멀어지자니 얼어죽을 것 같은 상황인 듯 하다.[9] '멋지다', '세련되다'는 뜻의 粋와 시다는 뜻의 酸い의 발음이 똑같다는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다. 이 상황에 자랑한답시고 무용담을 나눠봤자 씁쓸하기만 하다는 뜻이다.[10] "위문주머니 같은 것도 보내주는 나라를 위해서 끝까지 싸우다 죽어야 하며, 죽지 않은 녀석은 충성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는 당시 일본군의 분위기를 보여준다.[11] 중일전쟁 당시 "어차피 살려 보내줄 생각은 없을 테니까" 라는 가사로 인해 군의 사기가 저하된다는 이유로 일본군 사령부에 의해 "어차피 살아 돌아갈 생각은 없으니까(生きては歸らぬ積り)"로 개사되었고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아예 이 곡 자체가 가창 금지당했다.[12] 애초에 치하탄의 전력은 치하하고가 전부였지만 세인트 글로리아나는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처칠 전차마틸다 II로 반격했으니...... 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