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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07:43:54

노벨경제학상

노벨 경제학상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10px"<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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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3334><colcolor=#cd9f51> 노벨경제학상
Nobel Memorial Prize in Economic Sciences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1]
주최 및 장소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스웨덴|]][[틀:국기|]][[틀:국기|]] 스톡홀름
상금 900만 SEK
100만 달러[2] (2018년 기준)
첫 시상년도 1969년
최근 수상자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대런 애스모글루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사이먼 존슨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제임스 A. 로빈슨 (2024년 기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관련 상3. 역대 수상자
3.1. 수상자 통계
4. 논란
4.1. 노벨상이 아니다?4.2. 국적을 가린다?4.3. 주류경제학만을 옹호한다?4.4. 수상자가 모든 시사/경제문제에 해박하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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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어 Sveriges Riksbanks pris i ekonomisk vetenskap till Alfred Nobels minne
영어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
한국어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경제학 분야의 스웨덴 중앙은행상

경제학 분야에 대하여 뛰어난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수여되는 노벨상의 한 부문. 노벨상 중 가장 늦은 1969년부터 스웨덴 중앙은행이 수여하고 있다.

2. 관련 상

3. 역대 수상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노벨경제학상/수상자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1. 수상자 통계

4. 논란

4.1. 노벨상이 아니다?

이 상은 스웨덴 중앙은행[4] 설립 300주년을 기념하여 제정된 상으로서,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으로 정한 시상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노벨 재단에서 수여하는 상이 아니므로 이 점에서 나머지 5개 부문과 차이가 있다.

이 상의 정식 명칭은 다른 노벨상과 다르게 '알프레드 노벨 기념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이다. 노벨의 유언에 의해 만들어진 나머지 5개 분야 노벨상은 정식 명칭이 'Nobel Prize in ~'으로 시작하지만[5], 노벨경제학상은 The Sveriges Riksbank Prize로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노벨상이 아니라 스웨덴 중앙은행상인 것이다. 그리고 노벨경제학상은 수상자에게 노벨 재단이 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노벨위원회도 경제학상에 대해선 “경제학상은 노벨상이 아니다(The prize in economic sciences is not a Nobel Prize)”라면서 “스웨덴 중앙은행이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을 제정했고, 이후 1901년부터 수여된 노벨상과 동일한 원칙에 따라 스웨덴 왕립과학원에서 선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노벨경제학상 메달에 새겨진 노벨의 흉상은 다른 노벨상들과 모양이 다르다.[6] 메달엔 ‘스웨덴 중앙은행’이란 글씨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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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 메달(왼쪽)과 노벨 경제학상 메달(오른쪽)

즉 형식상으로는 '노벨상'(Nobel Prize)이 아니며, 알프레드 노벨의 형의 후손[7]인 피터 노벨(Peter Nobel)은 노벨경제학상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노벨 조카의 손자이자 인권 변호사인 루드빅 노벨(Ludvig Nobel)은 노벨상 위원회가 노벨의 이름을 오용하고 있다고 아래와 같이 비난하였다.
"No member of the Nobel family has ever had the intention of establishing a prize in economics."(노벨 가문의 어느 누구도 경제학상을 만들 의도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Nobel despised people who cared more about profits than society's well-being, saying that There is nothing to indicate that he would have wanted such a prize and that the association with the Nobel prizes is a PR coup by economists to improve their reputation." (노벨 할아버지께서는 사회의 행복보다 사익을 더 많이 추구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다시 말해서 할아버지께서 그 따위 상을 원했다는 어떤 징조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을 주는 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일으킨 일종의(a) 홍보 쿠테타(PR coup)이다.)

다만 스웨덴왕립과학원이 선정해 ‘노벨 주간’에 수상자가 발표되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역시 노벨 생리의학·물리·화학·문학 부문 수상자들과 함께 매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왕으로부터 증서와 메달을 받는다. 시상식도 다른 부문 수상자들과 같은 장소에서 함께 치러진다.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도 노벨경제학상 카테고리도 당연히 존재한다.

따라서 해당 학계에서의 공신력이나 수상자 선정 과정에 대해서는 그 공정성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경제학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는 업계의 수많은 네임드 가운데에서도 경제학의 발전에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공헌을 한 학자로 평가받아 대단한 영예로 여겨진다.

즉, '노벨상'이라는 이름에 대한 정통성은 없지만, 그 권위는 타 노벨상과 동급이라는 것이다. 원래는 스웨덴 중앙은행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어야 할 상이 경제랑은 전혀 관계 없지만 스웨덴의 몇 안되는 자랑거리인 노벨상의 이름을 유명하니까 달자 하고 붙혀서 나온 것이니 '노벨상이 아니다'도 맞는 말이며, '수상자가 대단한 인물이다' 또한 맞는 말이다.

4.2. 국적을 가린다?

노벨경제학상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 중 하나가 지나치게 미국인 경제학자들에게 우호적인 상이라는 것이다. 역대 수상자들 가운데 미국 국적을 가진 학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국적상 미국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미국 연구기관(재직대학)에 소속된 사람들이 상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심사위원들이 국적을 차별해서라기보다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4.3. 주류경제학만을 옹호한다?

수상자의 다수가 신고전파종합(neoclassical synthesis) 경제학자라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경제학계에서 신고전파 경제학=경제학이라 볼 수 있을 정도의 비중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자 외에도 합리적 선택 신제도주의 학파도 많이 받았다. 이게 왜 이러냐면 노벨상을 수상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이 수행한 연구로 인해서 수많은 여타 학자들이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전체 경제학계의 추후 연구 방향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9] 게임이론과 행동경제학이 대표적. 엘리너 오스트롬이 그나마 근래에는 주류경제학과 제일 거리가 있는 편이나 그녀가 속한 합리적 선택 신제도주의 학파의 통찰은 주류경제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즘도 비주류 경제학으로 손꼽히는 이들도 받았다.

4.4. 수상자가 모든 시사/경제문제에 해박하다?

노벨경제학상은 경제학 내에서도 특정 분야에서의 학문적 업적을 고려해서 주는 것이다. 경제와 시사에 대해 아는 게 많다고 주는 것은 아니다.

물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경제학 전공자로서 일반인보다 많이 알 거라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자기 분야 이외의 분야에 대해 해당 분야 전공자보다 더 잘 아는가?'라고 질문을 바꿔본다면, 아닐 확률이 굉장히 높다. 1960년대에는 매년 2,500여건~3,000여건 정도만 새로운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폴 새뮤얼슨처럼 대학자라 할 만한 사람은 정말로 '경제학'을 전공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 SSCI 등재지 등 국제적인 수준의 학술지에서 발표된 경제학 관련 article은 447,103건(2016말)에 달하고, 매년 22,000여건의 새로운 연구들이 추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 인간이 경제학의 모든 분야에 통달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다.[11] 기본은 알아도 그 해당 세부분야의 최신 연구성과까지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지는 못하다. 오히려 자신이 학부 시절 배웠던 (그리고 지금은 많이 수정된) 옛날 이론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고 해서 경제 시사를 전부 꿰고있다고 볼 수는 없으며 주로 그 사람의 주된 연구 영역이 무엇인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고 해서 모든 경제 문제의 명쾌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경제에 대해선 국내 전문가보다 모를 수도 있다.[12][13] 이런데도 진영논리에 휩싸인 미디어매체들이 수상자들의 이론이나 강연 한두마디를 앞뒤 맥락을 모두 짤라버린채 단편적으로 가지고 와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이것을 사방에 퍼나르면서 자신들의 신념을 강화하고 대중을 선동한다. 심지어 수상자들의 연구성과가 자신들의 주장에 부합하지 않으면 왜곡하는 짓도 저지른다. 2015년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저서 위대한 탈출한국경제신문이 내용을 왜곡해서 출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5. 기타



[1] 이 사진은 노벨상 메달의 모습인데, 사실 노벨 경제학상 메달은 위와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의 '노벨상이 아니다?' 문단을 참조바람[2] 한화 기준 약 13억.[3] 경제학자 겸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치인으로 무역장관을 역임했다.[4] 스웨덴 크로나의 조폐 및 발행을 담당하고 있다.[5] 단, 노벨평화상은 예외적으로 Nobel Peace Prize로 쓴다.[6] 사실 노벨평화상도 흉상의 모양이 다르기는 하다. 이쪽은 유일하게 노르웨이에서 시상해서 그런 듯.[7] 참고로 알프레드 노벨 본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8] 경제학뿐만이 아니라 현대 미국 정치학, 심리학 등은 수량적 모델과 과학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9] 수상자들의 면면을 조금만 봐도 알 수 있는 문제다.[10] 카너먼과 많은 연구를 함께한 아모스 트버스키는 96년에 이미 사망하였기 때문에 카너먼만 2002년에 수상하였다. 비슷한 사례로 블랙-숄즈-머튼 모형을 개발한 피셔 블랙, 마이런 숄즈, 로버트 머튼 3인 중에 피셔 블랙은 95년 사망하여서 이 업적으로는 숄즈 교수와 머튼 교수만 97년에 수상하였다.[11] 이것은 비단 경제학뿐만 아니라 역사학, 자연과학, 법학 등 많은 학문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21세기 들어서 통섭, 융합 같은 개념이 등장한 것에는 이러한 학문의 세분화, 파편화 현상에 대한 반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내과 의사한테 성형수술 상담을 받으면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의사니까 기본적인 것은 알겠지만, 성형외과 분야의 최신 경향이나 시술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당연히 수술 경험도 없을것이다.[12] 물론 우리나라도 G20에 들어갈 정도로 세계경제에서 나름 비중이 있지만, 그래도 미국/중국/일본/서유럽 등의 소위 핵심 세력들과는 여전히 격차가 존재한다. 해외 석학들이 한국 경제를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고 깊숙히 연구했을 가능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편적으로 제시하는 이론이나 연구방법론을 가지고 한국경제의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는 것은 국내 전문가들의 몫이다.[13] 경제학의 세부분과 중 하나인 경제성장론 분야에서는 한국 경제의 사례가 빠질 수 없는 내용이다. 한국 경제의 규모 자체도 작지 않은데다가 최빈국, 개도국에서 선진부국으로 성장한 거의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인 교수가 서술하고 미국에서 출간된 경제성장론 교과서의 표지 사진이 인공위성이 찍은 대한민국의 야경일 정도로 비중이 크다. 또 한국 경제학계내에서도 한국 경제의 성장은 여전히 활발하게 논의되는 주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