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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7 13:44:29

노량: 죽음의 바다/역사 재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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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 정보등장인물줄거리평가흥행역사 재현성

1. 개요2. 전투 이전
2.1. 고증2.2. 고증오류
3. 전투 전반
3.1. 고증3.2. 고증오류
4. 전투 후반
4.1. 고증4.2. 고증오류
5. 총평

1. 개요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의 역사 재현성을 정리한 문서.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 전투 이전

2.1. 고증

2.2. 고증오류

3. 전투 전반

3.1. 고증

3.2. 고증오류

4. 전투 후반

4.1. 고증

4.2. 고증오류

5. 총평

전체적인 고증 상태가 엉망이다. 전반적인 전투 전개, 전투 위치 고증은 실제 역사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거북선의 사용, 준사의 활약은 영화적 각색이라 하더라도 조선군 복장 고증과 화기류 고증은 전혀 안 되어 있다. 이순신 함대가 시마즈 함대의 옆을 치며 사용한 진법은 첨자찰진(삼각형의 돌격형)임에도 그저 늘어서서 돌격한다. 또한 조선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명나라군이 지나치게 무능하게 묘사된다. 이 정도면 역사 영화가 아니라 판타지로 봐야 할 정도.
임용한 박사가 본 영화의 고증 감별을 하기도 하였다.


[1] 그 이전에는 영화 성웅 이순신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노량해전 당시 일본군 최고 수장으로 묘사되거나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최고 수장으로 등장하는 등 지속적으로 고증 오류가 있었다.[2] 애초에 진린광둥어를 쓰는 광둥성 출신이라 오늘날 베이징 기준의 표준중국어를 쓰는 걸로 나왔으면 고증 오류였다.[3] 기사에는 편의상 ‘고대 중국어’라고 서술됐지만 당연히 근세 중국어이다.[4] 전국시대 시절, 요시히로의 능력으로 규슈 정벌이 거의 성공하기 직전이었는데, 마지막 상대였던 오토모 가문이 히데요시에게 원군을 청했고, 결국 히데요시의 원군 때문에 요시히로는 체급차이에 의한 중과부적으로 정벌했었던 대부분의 영토를 토해내고 규슈 남부만 영지로 인정받아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었다. 거기다가 히데요시가 요시히로를 시마즈 가의 가주로 인정해줬지만, 히데요시가 강제로 박아놓은거라 형인 요시히사에 대한 가신들의 충성 갈등, 거기다가 요시히로의 아들인 타다츠네도 요시히사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에 타다츠네도 가주 쟁탈전에 참전할 수 있는 등, 집안 내 갈등도 있었다. 임진왜란도 이런 어수선한 집안사정 때문에 늦게 참전했고, 그나마도 상대적으로 급에 안 맞는 병력(1만 5천 정도)만을 끌고 갔다. 히데요시의 생애에도 나오는 서술대로, 임진왜란 때문에 영지의 존망(예: 쓰시마 섬)이 걸린 문제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 규슈의 요시히로를 포함한 서일본 지역의 경우는 최전선에서 소모당할게 뻔하니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히데요시의 심복들인 칠본창조차 이미 입지전적인 출세를 해서 만족스러운데 또 전쟁을 하다가 죽어버리면 다 끝일 정도라, 기본적으로 다들 기껏 평화가 왔는데 또 전쟁이라니 하면서 싫어했다. 요시히로도 히데요시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했지, 적극적으로 침략할 생각은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침략자로서의 행보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이왕에 했으니까 적어도 본전은 챙겨야겠지라고 생각하면 쉽다.[5] 영화에도 나오지만 싸울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이순신에 의해 고립당해 식량난에 처했고 장도 해전에선 무려 40여 척의 전선을 잃는다.[6] 여담이지만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선 고니시가 퇴각하다 길목마다 배치된 조선 수군에게 매복당하고 먼 발치에서 이순신에게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는 걸로 나오는데 그 역시 사실이 아니다.[7] 보통 오방색을 기준으로 제작된다.[8] 이로부터 3일 후 절이도 해전이 있었다.[9] 피휘 문제로 실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한자로 개명하는게 거의 관습처럼 굳어져서 그렇다. 이방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렇게 했다. 이성계 역시 왕조를 개창하고 나서 단(旦)으로 바꿨다.[10] 당신을 임금 취급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11] 소신기전중신기전 발사 장면이 한 차례씩 등장한다.[12] 당시 판옥선에는 전후좌우 모두 포를 설치해 운용했다. 포에 바퀴가 달린 것도 포 자체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서라기 보다 조선 수군이 다양한 포를 운용했기 때문에 포의 종류를 바꾸기 위한 용도로 보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13] 조선 측 기록으로는 침몰된 조선 함선에 대한 언급이 없고, 시마즈 측에서 4척을 침몰시켰다고 하지만 거북선이란 언급은 없다.[14] 등자룡은 실제로 노량 해전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용맹히 싸웠다. 참고로 영화에서는 시마즈 대장선에 월선하여 월도를 휘두르다 전사하지만, 실제론 자신이 타고 있던 판옥선에서 월선한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명 수군이 함포 조준을 실수해 등자룡의 판옥선에 불을 냈는데,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시마즈군이 집중 공격을 퍼부어 결국 침몰하게 되었다.[15] 전투의 격렬함이나, 어떻게든 탈출하려는 일본 함대와 어떻게든 1명이라도 더 붙잡아 죽이려는 조명연합군의 모습에서 영화보다 실화가 더 치열하다.[16] 오응태도 참전하지 않았는데 충청수사가 굳이 참전했다는 묘사보다는 차라리 이순신이 충청수사로 하여금 고니시를 견제해서 고니시가 협공을 시도 못 한 것처럼 각색하는 편이 더 나을 뻔 했다.[17] 첫 번째 총탄 공격 직후 망가진 북채가 나오는 장면과 주위의 송희립 등 다른 휘하 장병들이 이순신의 몸을 치료하거나 지혈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에 첫 번째 총탄이 북채에 맞은 것임을 알 수 있다.[18] 다만 노량해전에서 총탄을 맞고도 생존한 다른 장수는 여럿 있다.[19] 대표적으로 불멸의 이순신, 징비록(드라마)[20] 이렇게 적들을 살려보내서는 올바로 이 전쟁을 끝낼 수 없다. 반드시 열도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기어이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어야 한다[21] 선조실록에 이덕형권율이 교차로 보고했고, 군공청(전쟁의 무공을 조사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조직)도 이처럼 기록했다. 그런데 인조가 반정으로 집권한 후 선조수정실록을 작성하며 이순신의 조카 이완이 지휘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완이 북을 쳤다는 기록은 전쟁 당시 어떤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는 손문욱이 광해군파였기 때문에 인조반정 후 그의 군공을 줄이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22] 과장이 있지만 진린은 거의 생포될 뻔한 상황을 겪는다.[23] 조명연합수군의 피해는 500~800명 가량이었던 반면 일본군은 최소 1만명을 크게 상회하는 피해(기록마다 다르지만 전력의 2/3 이상을 잃은 것이 교차검증된다.)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24] 이순신은 철저한 준비와 전략을 통해 아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직접 지휘한 전투에서 사상자 수가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적었다. 거의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을 겨우 수습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치른 명량해전의 전사자는 10명이며, 한산도 대첩의 전사자는 2명에 그쳤다. 조선 수군 사상 최대 피해를 입은 건 바로 원균이 지휘한 칠천량 해전으로, 이쪽은 전사자가 7~8000명대로 추정되며 수많은 함선을 잃으면서 명량해전 전까지 조선 측이 남해안의 재해권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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