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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21:51:42

냉궁

1. 개요2. 상세3. 드라마에서의 묘사4. 유사 사례



1. 개요

중국 황실에서 주로 죄를 지은 황족들과 후비들을 유폐했던 일종의 감옥 같은 공간이다. 통상적으로 지정되는 위치는 보통 궁의 편벽된 곳이었다.

2. 상세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지는 않지만, 심리적으로도 이곳에 갇히는 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라, 그렇게 된 황족들과 후비들은 웬만하면 내내 줄곧 울기만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도 감옥이나 다름없어, 냉궁에 유폐되면 황궁 경비병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청소도 따로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겨울에도 땔감 등을 잘 지급해주지 않아 이름처럼 실제로도 몹시 추워 냉궁이라 일컫는다. 이외의 생필품도 잘 지급되지는 않는 편이다. 그렇다보니, 밥을 해먹기는 커녕, 삼시세끼 수발을 받아오며 자란 황족들과 후비들에게는 이곳에 갇히는 것은 가혹한 수감 생활이나 마찬가지라 죽음 다음으로 혹독하게 여겨졌다.

중국산 양산형 게임 광고에는 뭐만 했다 하면 냉궁으로 보내버린다.

3. 드라마에서의 묘사

중국을 배경으로 한 사극들에 주로 등장하며, 특히 궁중 암투를 주로 다루는 드라마에서 더욱 빈번한데, 한국 드라마 기황후에서 타나실리 황후 및 기황후가 첩여 시절 갇혔던 것으로 묘사되었다. 왕과 비에서도 한명회신숙주가 냉궁에 갇히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또한 중국 드라마 옹정황제의 여인에서는 하상재, 여씨(죽기 직전), 여빈, 화비(죽기 직전), 기귀인(폐위 이후) 등이 보내지는 등의 묘사가 있었다.

옹정황제의 여인의 후속작인 여의전에서는 주인공인 오라나랍 여의와 여의의 궁녀인 예심, 색탁륜 아약, 길태빈 등이 보내진다. 궁 밖에서는 궁 안에서 만든 물건이 인기가 있어서, 냉궁 사람들이 자수를 놓거나 해서 물건을 만들면 시위가 궁 밖에 나가 물건을 팔고, 수익을 시위와 냉궁 사람들이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여의와 길태빈이 그렇게 한다고.

이와 동일한 시대를 다루는 드라마 연희공략에서는 대가빈 김씨(당시에는 가귀인)가 아들인 4황자 영성을 이용해 당시 가빈 김씨의 양육권 박탈 이후 영성을 돌보던 한비 휘발나랍 숙신을 모함하려다 상황이 들통나 김답응으로 강등되고 보내졌고[1] 순귀비 소씨(순비 소정호)가 자신을 따르던 유비 가리엽특씨[스포일러]의 5황자 영기를 이용해 영비 위영락을 모해하려다 실패하고 이와 함께 효현순황후 부찰 용음의 7황자 영종을 죽게 한 일이 드러나자 소답응으로 강등 후 보내졌다.[3]

다른 중국 드라마 무미랑전기에서는 황후 왕씨숙비 소씨가 폐위되어 이곳으로 보내지고 여기에서 죽음을 맞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4. 유사 사례

한나라 시대에는 이와 비슷한 '영항'이라는 궁녀를 가두는 감옥이 있었다. 이곳에는 여후에 의해 척부인이 유폐되기도 하였다.

청나라 시대에도 강희제의 아들 황태자 윤잉이 폐위되어 죽을 때까지 감금되었다. 또한 황실 종친들의 부서인 종인부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옹정제 시대에 옹정제의 즉위에 방해가 되었던 그의 형제들을 유폐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외에도 완의국,세답방,신자고 같은 빨래나 오물을 다루는 부서로 죄를 지은 궁녀를 보내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에도 에스키 사라이(Eski Saray, 구 궁전)라고 불리는 비슷한 개념의 장소가 있었다. 본래는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한 이후 제국의 정궁으로 사용되던 곳이었으나 톱카프 궁전이 지어진 후 황제와 하렘은 톱카프 궁전으로 옮겨가고 에스키 사라이에는 하렘에서 문제시 된 궁녀들과 황제의 총애를 잃은 후궁들, 폐위된 전임 황제의 애첩들과 모후 등을 이곳에 기거 하도록 했다. 오스만 제국 하렘 관련 창작물에서 눈물과 탄식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1] 극중에서는 ‘북삼소’라고 표현한다.[스포일러] 다만 진심으로 따르던 건 아니었고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과 5황자의 목숨을 구했던 영비 위영락의 은혜를 갚는다.[3] 둘은 공통적으로 원한을 품고 있던 계황후 휘발나랍 숙신에게 목이 졸려 살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