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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펜싱 선수 김지연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2. 2001년~2010년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해 초등학생 때 태권도를 배웠으며, 중학교에 입학하면 태권도부에 들어가 태권도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였다. 그런데 진학한 중학교에는 태권도부가 아닌 펜싱부만 있었고, 김지연의 운동신경을 눈여겨본 체육 교사의 권유로 펜싱부에 들어간다. 당시(2001년) 여자 사브르 팀은 전국에 거의 없었고 여자 플뢰레가 대부분이었기에[1] 김지연도 플뢰레로 펜싱을 시작했다. 스스로 말하길 펜싱이 좋다기 보다는 펜싱부 언니들과 노는 것이 좋아서 펜싱을 시작했기에 열정도 없었고 실력도 늘지 않아, 개인전 32강도 들지 못하고 단체전에서는 만년 후보 선수였다고 한다.그저 그런 후보 선수였던 김지연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당시 부산 양운중학교 여자 사브르 펜싱부를 담당한 이수근 감독[2]이 부산디자인고등학교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김지연에게 사브르로 종목 전환을 제의한 것이다. 이후 이수근 감독은 "다혈질에 순발력까지 갖춘 지연이를 보고는 한눈에 '사브르 선수'라고 생각했다"고 인터뷰에서 스카웃한 이유를 밝혔다.
김지연은 당시 사브르를 잘 알지 못했지만 은사에 대한 신뢰와 경쟁이 치열한 플뢰레보다 선수층이 얇은 사브르가 유리하겠다는 판단으로 플뢰레에서 사브르로 종목을 바꿨고, 김지연에게 공격적이고 속도가 빠른 사브르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종목을 바꾸며 펜싱의 재미를 느끼고 열정이 생겼고 선수층이 얇아 출전기회도 늘어나며 급속도로 실력이 늘어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익산시청 코치로 부임하게 된 이수근 감독을 따라서 익산시청에 입단했다.
그러나 국가대표와 실력차이는 컸다. 2000년대 국내 여자 사브르 강자였던 이신미[3], 김금화, 김혜림 등 선배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며 번번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김지연은 포기하지 않고 소속팀 익산시청에서 훈련하여 실력을 키우며 국가대표 후보선수[4]로 선발되다가 22살에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국제무대 데뷔시즌인 2009/10 시즌, 대부분의 대회에서 예선 탈락했고 그나마 본선에 진출한 두번의 그랑프리에서도 64강에서 탈락하는 저조한 성적을 거둬 세계랭킹은 174위를 기록했으며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단체전 멤버에서도 탈락했다. 당시 국내 펜싱계는 '여자 사브르 메달권은 아직 무리.'라는 인식이 있었고 국내에서도 특별히 돋보이지 않았던 김지연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것이라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3. 2011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이 끝난 후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김지연은 16강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본 당시 펜싱 국가대표 총감독이자 여자 사브르 담당 김용율 감독은 추천선수 선발 규정에 따라서 김지연을 추가 국가대표로 선발하였고 2011년 1월 겨우 대표팀에 승선했다. 이렇게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24살의 무명선수는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세계 상위권 펜서로 급성장했다.2010/2011 시즌 첫 대회로 참가한 2011년 3월 모스크바 그랑프리에서 무명인 선수가 세계랭킹 10위권의 선수들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동메달을 획득하며 일약 여자 펜싱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이후 중국 톈진 그랑프리와 이탈리아 볼로냐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고 이전과 몰라보게 달라진 경기력을 보이면서 세계랭킹이 174위에서 163계단이나 상승한 11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이런 활약으로 김지연은 2011년 대한펜싱협회 최우수 선수로 뽑히고 펜싱계의 기대를 받았다.
4. 2012년
4.1. 국제대회
첫 대회인 프랑스 오를레앙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시작으로 그랑프리와 월드컵에서 은,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올림픽 직전 세계랭킹 5위[5]에 올랐다. 이는 한국 여자 사브르 역사상 최초로 세계랭킹 TOP 5에 든 것으로 김지연은 동시에 랭킹 15위 내 선수에게 주는 런던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획득하였다. 국내 펜싱계에서는 상승세를 탄 김지연의 동메달 가능성을 점쳤지만, 결승 진출은 기대하지 않았다. 세계 여자 사브르의 BIG 3 마리엘 자구니스 , 올하 하를란 , 소피아 벨리카야의 전력이 압도적이라 판단했고 김지연의 상대전적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준결승에 진출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4.2. 2012 런던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 준결승에서 승리한 후 포효 |
후반전이 시작되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구니스에게 무력하게 끌려가던 김지연은 5-12, 7점차까지 점수 차가 벌어졌고 누가봐도 자구니스의 결승 진출이 확정적이었다. 중계진들도 힘을 내서 동메달 결정전을 대비해야한다는 식으로 방송을 했고, 시청자들 중 일부는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껐으나 김지연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 하나 점수를 내며 따라가던 김지연은 마침내 13-13 동점을 만들었고 결국은 15-13, 기적같은 역전승을 만들었다.[6] 자구니스와의 준결승 경기는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들 중 하나로 꼽히며 강렬한 임팩트를 주었다. 기세를 탄 김지연은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러시아의 소피아 벨리카야와 전반 팽팽한 경기를 펼치다가 후반에는 완전히 압도하며 15-9로 승리하였고 한국 여자 펜싱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또한 한국 펜싱 최초의 사브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며 아시아 선수로 역대 5번째, 여자 아시아 선수로는 2번째, 여자 사브르 아시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본인의 국제대회 첫 금메달을 올림픽 금메달로 장식하는 기적의 업셋을 이루고 세계랭킹 4위로 2011/12 최고의 시즌을 마무리했다.
올림픽 후 많은 인터뷰, 방송, 행사 등을 소화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으나 많은 스케줄로 인해 몸살이 나서 링겔을 맞고 국내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컨디션이 나빠졌다. 또 일부는 올림픽 시즌에만 반짝한 플루크가 아닌가라는 의문의 시선도 보내기도 했다.
5. 2013년
2013년 5월 미국 시카고 월드컵 |
6. 2014년
2013/14 시즌 1월 오를레앙 그랑프리에서 은메달을 따며 순조롭게 시작했지만 이후 대회에서 거듭 8강 진출에 실패하다가, 5월 베이징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7월 아시아선수권을 2연패하고 세계랭킹 6위를 기록하며 여전히 세계 정상급 선수임을 보였다.처음으로 출전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강력한 개인전 금메달 후보로 꼽혔으나 후배 이라진에게 패배하며 은메달을 걸었고, 단체전에서는 3번 마지막 주자로 출전하였다. 결승전에서 4연패를 노리는 중국을 맞이하여 33-40으로 리드하던 9바우트 마지막 선수로 나서서 41-41 동점을 허용했으며 마지막 4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한국 여자 사브르 사상 첫 아시안 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7. 2015년
순조롭게 흘러가던 선수생활은 골반 부상을 입으며 슬럼프가 찾아왔다. 한쪽 다리를 주로 쓰는 펜싱 종목의 특성과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빠른 스텝을 강조한 한국 펜싱 훈련법으로 왼쪽 고관절은 연골이 전부 닳아 버렸고 김지연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 통증으로 인하여 특유의 역동적인 플레이는 나오지 않았고 스피드가 생명인 사브르에서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2014/2015 시즌 모든 그랑프리와 월드컵에서 입상하지 못했고 아시아 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따며 3연패에 실패했다.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고 재활에만 메달렸고 경기에는 진통제를 맞고 출전하는 상황에서 국내대회 성적도 나빠져 국가대표 선발도 장담하지 못했고, 세계랭킹은 13위로 대표 선발이 되더라도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해졌다.8. 2016년
8.1. 국제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은 통과했으나 시즌 초 월드컵과 그랑프리에서 부진하며 세계랭킹은 추락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다리를 절둑거릴 정도의 부상이었지만 김지연은 포기하지 않고 재활을 하여 2016년 2월 벨기에 신트니클라스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따며 1년 9개월만에 세계대회 메달을 획득한다. 몸상태와 경기력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4월 아시아 선수권에서는 동메달에 머물렀으나, 중국 포산 월드컵에서 은메달을 획득한다. 세계랭킹은 7위로 상승하여 올림픽 사브르 개인전 출전권을 획득했으며, 한국 여자 사브르 최초로 단체전 출전권도 획득하며 2연속 올림픽 출전을 결정지었다.8.2.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사브르 개인전 32강에서 응우옌을 상대로 15-3으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8강에서 굴루타에게 13-15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평소답지 않게 예민한 모습을 보였는데 결국 리드를 하다가 역전을 당했다. 8월 13일 단체전 8강 우크라이나와 경기에서 마지막 선수로 나와 올하 하를란을 상대로 분전하였으나 40-45로 패배했다. 5-8위 결승전에서는 프랑스를 45-40으로, 폴란드를 45-41로 꺾으며 최종 5위로 두번째 올림픽을 마감했다.9. 2017년
프랑스 오를레앙 월드컵에서 개인전 은메달을 목에 걸며 순조롭게 시즌을 시작하였다. 2016년 12월 멕시코 그랑프리에서 동메달, 2017년 1월 뉴욕 월드컵에서 은메달, 2월 아테네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포디움에 들었다. 6월 15일 홍콩에서 열린 2017 아시아선수권에서 3년 만에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시즌랭킹도 3위로 상승했다.2017 세계선수권 단체전 결승 진출 후 환호 |
10. 2018년
2018년 1월 미국 볼티모어 월드컵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받았으며, 3월 그리스 아테네 월드컵에서는 단체전 준우승을 했다. 5월 모스크바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6월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본인의 4번째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세를 몰아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여자 사브르 최초로 2년 연속 메달을 획득했다. 8월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개인전에서는 동메달, 단체전에서는 우승하며 2017-18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11. 2019년
2018-19 시즌 국가대표에 선발이 되었으나 8주 이상의 부상(고질적인 골반 부상)으로 시즌 초반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2019년 1월 미국 월드컵으로 복귀했고 3월 그리스 월드컵에서 개인전 동메달을, 4월에는 서울에서 열린 그랑프리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5년부터 열린 서울 사브르 그랑프리 대회에서 처음으로 딴 메달이며, 그랑프리 결승에 진출한 것도 2014년 1월 프랑스 오를레앙 대회 이후 5년 만이었다. 이런 상승세를 바탕으로 5월 세계랭킹 3위에 올랐다.2019년 서울 사브르 그랑프리 결승전 |
12. 2021년
12.1. 국제대회
2020년 2월, 마지막 목표이던 2020 도쿄 올림픽을 5개월 가량 앞둔 시점에서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대형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된 가운데, 기적적인 속도로 재활에 성공하며 당해 국내 복귀 및 우승하였고, 다음해인 2021년 도쿄올림픽에 승선했다.12.2. 2020 도쿄 올림픽
개인전 16강에서 미국의 마리엘 자구니스에 패하여[7]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단체전 8강에서 최다득실을 기록하며 팀을 준결승으로 이끌었다. 준결승에서 러시아에게 패배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10점 차까지 벌어졌던 경기를 서지연과 윤지수가 역전을 시켜주었으며 40대 38로 돌입한 마지막 9바우트에서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탈리아에 45-42로 승리하여 동메달을 획득했다.[8]13. 은퇴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5개월 앞두었던 2023년 4월에 고질적인 골반 부상등으로 인해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하였다. 조금 더 뛸 수 있지 않겠냐는 주변의 말이 있었지만 이제 후배들에게 기회가 가는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후배들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바톤을 잘 이어받았으며 당시 SBS에서 해설을 하던 김지연도 매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였다.[1] 여자 사브르는 올림픽 펜싱 종목들 중 가장 늦은 2004 아테네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국내에서는 1998년 처음 여자 사브르가 도입되었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 국내 여자 사브르 팀은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4개에 선수는 겨우 18명인 상황이었다. 짧은 역사와 격렬한 사브르의 특성상 현재도 여자 사브르 선수의 숫자가 펜싱 종목들 중 가장 적다.[2] 2007년부터 익산시청 여자 사브르팀을 담당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익산시청 펜싱부 총감독이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 김지연을 가르친 은사다.[3]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첫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이다.[4] 펜싱은 8명의 국가대표를 선발하여 FIE 세계랭킹 상위 4명이 단체전 멤버로 출전한다. 8명 이외에도 만 23세 미만의 상위 4명을 협회 대표선수라는 명칭으로 선발하여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육성한다.[5] 정확히는 4위에 올랐으나 올림픽 직전 5위로 한계단 하락했다.[6] 그리고 이 장면은 그 후로 9년 후 남자 사브르 개인전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의 루이지 사멜레가 대한민국의 김정환을 상대로 완벽하게 재연했다.[7] 자구니스는 이로써 런던 올림픽 준결승전에서의 뼈아픈 역전패를 설욕했다.[8] 남현희, 김정환 이어 세번째이자, 여자 선수 한정으로 남현희 이어 개인전과 단체전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두 번째 여자 선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