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김영준 金寧俊|Kim Young-jun | |
출생 | 1948년 3월 21일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現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줄포면) | |
사망 | 2024년 5월 15일 (향년 76세)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아주대학교병원 | |
장지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봉안당홈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줄포초등학교 (졸업) 줄포중학교 (졸업) 전주영생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상경대학 (경영학 / 학사)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경기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박사)[1] |
경력 | 경기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교수(2001~2013) |
종목 | 레슬링 |
신체 | 158cm, 68kg |
가족 | 배우자 배숙희 장남 김지훈[2] 장녀 김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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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체육인 겸 교수. 1972 뮌헨 올림픽에 참가했던 대한민국의 前 레슬링 선수다.레슬링 해설자로도 유명했는데 특히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심권호의 경기를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를 이용한 맛깔나는 감각으로 해설하여 빠떼루 아저씨로 불렸다.
2. 생애
전북 부안에서 8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린시절부터 한학을 공부한 아버지로 인해서 한문, 천자문, 명심보감, 사서삼경을 즐겨 읽었다.[3]전주영생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레슬링 선수로 활약했다. 1970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1972 뮌헨 올림픽,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했으며 1976년에 은퇴했다.
은퇴 후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대한주택공사에서 연구관리부장, 홍보실장 등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1983년부터 체육계로 다시 돌아와서는 1984년에는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았으며 이 때 금메달리스트가 된 유인탁 선수를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는 대한 레슬링 협회 이사, 91년에는 아시아 레슬링 선수권 대회 선수단장으로 활약했다.
이후 KBS의 올림픽 레슬링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며 친근한 해설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그가 유명해진 건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 벌어진 심권호의 경기였는데 이때 특유의 슴다체 어투와 해설 도중 흥분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사투리와 투박한 말투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그의 유행어가 바로 "아, 이럴 땐 빠떼루를 주얍니다!"
레슬링에서 선수를 매트 중앙에 엎드리게 하는 벌칙인 파테르를 특이한 사투리로 발음한 빠떼루라는 말로 전국적으로 매우 유명해졌으며 이로 인해서 그는 '빠떼루 아저씨'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래서 이 사람의 해설을 소재로 한 빠떼루 시리즈가 당대 PC통신 유머게시판에서 유행했었다.[4] 이 유명세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에도 출연했으며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엔 '빠떼루 아저씨의 시사만평' 코너까지 생겼다.[5]
이때부터 상대방이 무언가 큰 잘못을 했을 때에는 자, 저럴 땐 빠떼루를 줘얌다! 라는 말이 유명해지게 되었고 그의 유행어 덕분에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됐던 레슬링은 한때 인기 종목으로 급부상했다. 또한 90년대 후반 들어서는 시사평론가로도 변신하여 사회 질서와 규범을 해친 이들에게도 '빠떼루를 줘야 한다'는 뼈 있는 유행어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평소에도 사회나 시사적인 면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1990년대 있었던 각종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서 속사포같은 일침을 날렸는데 잼버리 파행, 순살 아파트, 양평 고속도로 부실공사, 지하차도 침수, 백화점 붕괴사고 등등 빠떼루를 줘야할 대상을 차고 넘친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1996 애틀랜타 올림픽의 열기가 지난 1년후인 1997년 말.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라는 무서운 빠떼루를 단체로 받고야 말았다.
저서로는 도서출판 퇴설당에서 1997년 2월 18일에 발간한 회고록인 '빠떼루 없는 세상만들기'가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아버지의 소원대로 면 서기가 못되고 운동만 해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레슬링은 제 인생 이었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그가 일생동안 얼마나 레슬링에 진심이었는지를 알수가 있는 대목이다.[6]
2002년 10월 13일에는 KBS의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여 자신에게 있어서 은인이나 다름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 3학년때의 담임선생님을 만나기도 하였으며 최근 방송에 출연한 매체는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의 심권호 편 (2022년 4월 17일:292회)과 배성재 캐스터와 함께 해설을 맡은 MBN 국대는 국대다 (2022년 5월 14일:10회)가 있다.
3. 이력
1964년 레슬링 입문1967년 국가대표 상비군 발탁
1970년 방콕 아시안 게임 동메달, 대통령표창 수훈
1972년 대한주택공사 홍보실장
1972년 뮌헨 올림픽 국가대표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1976년 은퇴. 대한주택공사에 들어가 호남지사 과장, 연구관리부장, 홍보실장 역임.
1980년 대한 레슬링협회 감사
1980년 국제레슬링연맹 FILA 국제심판
1982년 경기 지도자 2급, 체육부장관 표창장 수훈.
1984년 LA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1986년 KBS 해설위원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KBS 레슬링 해설가
1988년 대한 레슬링협회 이사
1988년 서울 올림픽 KBS 레슬링 해설가
1991년 아시아 레슬링 선수권대회 선수단 단장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KBS 레슬링 해설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KBS, MBC, SBS 레슬링 해설가
1996년 뉴 한벗 라이온스 클럽 회장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참가 KBS, MBC, SBS 레슬링 해설가
1997년 27년간 일해온 대한주택공사 정년퇴직. 이후 제 15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TV 연설원, 이회창 후보의 정치특보로 정계입문.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KBS 레슬링 해설가
1998년 경기대학교 체육학부 겸임교수
1998년 스포츠 리서치 평생회원
1998년 한국 체육 과학회 부회장
1998년 21세기 스포츠포럼 회원
1998년 한국행정, 경영학회 평생회원
1998년 한국체육학회 평생회원
1998년 현재 한국학교체육학회 부회장
1999년 KBS 스포츠 해설위원회 회장
1999년 21세기 국가경영연구회 이사
1999년 재경 전주 영생중고 총동문회장
1999년 제8회 일.한 건강교육심포지엄 겸 제47회 일본교육 의학회 대회 참여위원
1999년 제8회 일.한 건강교육심포지엄 논문발표
2000년 경기대학교 총동문회 부회장
2000년 국민대학교 스포츠산업대학원 강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KBS 레슬링 해설가
2001년 경기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교수 재중
2001년 제10회 한.일 건강교육심포지엄 논문발표
2002년 세계 한민족공동체 재단 상임이사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KBS 해설위원
2002년 전북체육인모임 회장
2003년 경기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교학부장
2003년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
2003년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상임이사
2004년 경기 고양-일산을 총선 출마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지지
2013년 한민족 공동체 재단 부총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 재선임
2014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오산시장 출마(새누리당)
4. 은퇴 후
1996년 전북일보사 체육부문 전북대상과 2002년 대한체육회 체육상 연구상을 수상했다.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특보를 맡아 잠시 정치권에 몸담기도 했다. 1998년부터는 경기대 체육학부에서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기 시작해서 학생들을 지도했으며 2001년부터는 스포츠 과학 대학원 교수로 2013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0년 12월 4일 TV 내무반 신고합니다 수도방위사령부 통신단 편 병영 쾌지나 코너에 특별출연하였다. #
2007년에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으며, # 2013년부터는 한민족 공동체 재단 부총재, 윤봉길 기념 사업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2014년 6월 4일 치러진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오산시장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대한주택공사(현:LH)에서 일했던 것을 바탕으로 그동안 주거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대해서 앞장서왔다고 한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2017년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기서도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악습이나 편법이 판치는 부조리 관행을 냉철하게 지적하였다.링크
2024년 5월 15일, 수원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76세. #
[1] 박사 학위 논문: 스포츠 조직의 조직문화와 조직 유효성의 관계(2000. 2)[2]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장. 2009년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상무인 정눈실과 결혼하였다.[3] 이는 선수 생활 은퇴시에 운동에만 올인하여 집중했던 사람들이 앞으로는 뭘 할지 몰라서 방황의 길을 걸을때나 사회생활을 할때의 대비책으로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훗날 라디오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관한 시사평론 관련방송을 진행했을때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했다.[4] 실제로 1996년 8월 30일에 청담문화사에서 해당 서적을 펴낸바 있다.[5] 단독 프로그램이 아닌 당대 최고의 청취율을 자랑하는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 쇼의 한 코너로 편성되었다. 특히나 1996년 8월 23일자 방송에서는 한국 대학생 총 연합의 무분별한 행위를 보다 못해서 한총련 빠떼루 줘야 함다. 라는 말로 일침을 날리기도 했는데 이게 기사화까지 될 정도였다. 참고로 이때 당시에는 한총련이 '연세대 사태'로 인해서 국민의 지탄을 받을 때였다.[6] 뿐만 아니라 해당 책에서는 예술의 전당에서 소풍을 온 초등학생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해서 '레슬링 해설가 김영준'이라고 써줬더니 한 학생이 '에이, 빠떼루 아저씨라고 써주세요' 라고 했던 일화나 본인이 길을 걸으며 지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저기 빠떼루 간다' 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어떤 택시기사는 택시비도 안 받는다고 하고 시장에 갔다가 평소 좋아하던 젓갈이 있어서 들여다봤는데 그를 알아본 주인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싸주면서 '빠떼루 아저씨한테는 돈 안 받는다'라고 밝혔다. 애틀랜타 올림픽의 선풍적인 인기로 인해서 '빠떼루 아저씨 때문에 레슬링을 보게 됐다"는 말에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거절하지 못한 일화도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