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의 수상 및 영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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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트레이너) | 1999(트레이너) | 2004(프런트) | 2009(코치) | 2011(코치) |
대한민국의 농구인 | ||
<colbgcolor=#eeeeee,#191919> 김광 金光 | ||
출생 | 1967년 8월 15일 ([age(1967-08-15)]세)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3cm|체중 85kg | |
직업 | 농구선수(포워드/ 은퇴) 농구코치 | |
학력 | 홍익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졸업) | |
실업 입단 | 1990년 현대전자 농구단 입단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현대전자 (1990~1996) |
코치 | 대전 현대 다이냇/걸리버스 (1997~2000) 현대산업개발 여자농구단 (2000) 전주 KCC 이지스 (2006~2011) | |
프런트 | 전주 KCC 이지스 (2000~2006 / 홍보마케팅 팀장) | |
행정 | KBL (2022~ / 사무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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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전 농구선수, 전 지도자. 현재는 KBL 사무처장이다.2. 선수 시절
연세대를 졸업한 뒤, 현대전자 농구단에 입단했으나 1991년에 열린 농구대잔치 결선리그에서 당시 기아자동차 농구단 소속이었던 허재를 마크하는 과정에서 경기 중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히게 한 혐의로 불구속[1] 기소되어 대한농구협회로부터 15개월 출전정지가 결정되었고 1년 뒤에는 최고 150만원의 벌금형도 선고되었다. 이로 인해 선수 인생도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1996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3. 지도자 1기 시절
대전현대 시절 트레이너를 맡았던 김광. 사진 오른쪽에서 맨 뒤쪽에 있다.
현역에서 물러난 김광은 KBL이 출범한 첫 해에 곧바로 KCC의 전신인 대전 현대 다이넷의 트레이너 겸 부코치에 취임하면서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원년시즌의 성적은 최악이었으나 1997~98 시즌에는 상무에서 이상민과 조성원이 복귀했고, 신인 추승균과 외국인 용병 맥도웰의 입단, 또 1998~1999 시즌에는
그 후, 현대산업개발 여자농구단 코치에 취임하였지만 아무런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사임했다.
4. 프런트 시절
맨 왼쪽에서 현수막을 잡고 있는 분이 김광 홍보마케팅 팀장이다.
2000년부터 대전 현대의 홍보마케팅 팀장으로 프런트 일을 시작해 전주 KCC로 바뀐 이후에도 그대로 보직을 이어가며 2003-2004 시즌 팀의 3번째 우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5. 지도자 2기 시절
2006-2007 시즌부터 KCC의 코치에 취임하면서 감독 2년차를 맞이한 허재와 다시 한번 지휘봉을 잡게 된다. 그러나 이상민이 잦은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고, 표명일, 변청운, 백주익을 동부로 트레이드시킨 뒤 정훈, 김영만, 배길태를 3대3 트레이드를 영입시켰지만 팀의 악재 속에서도 그대로 벗어나지 못한 탓에 창단 이래 처음으로 최하위로 마감되었다.
2007~2008 시즌에는 FA신분이었던 서장훈과 임재현을 영입한 반면, 프랜차이즈 스타인 이상민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시키고 보상선수로 삼성 썬더스로 가게 되면서 KCC 팬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2] 하지만 이상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KCC는 최하위에 머무른 작년 시즌보다 더 좋은 상승세를 이어나가며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과 맞붙게 되지만, 3경기 모두 완패로 탈락하게 되었다.
2008~2009 시즌에는 미국에서 귀국해 1순위로 지명된 하승진을 드래프트 시키는 반면, 허재 감독의 불화설로 불만을 품은 서장훈을 전자랜드로 트레이드 시키고 강병현, 조우현, 정선규를 받아들이는 2대3 트레이드를 단행시키며 작년 시즌과는 달라졌던 팀의 지휘 노력 덕분에 다시 한번 라이벌 삼성을 상대로 마침내 팀의 4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2009~2010 시즌에는 혼혈 1순위 지명권으로 전태풍이 입단하게 되자 선발로 나간 추승균, 강병현, 하승진, 임재현과 함께 팀내 주전에서도 손꼽히는 선수로 인정받게 된다. 게다가 감독의 지도력 덕분에 공격 지시와 꿰 뚫어낸 돌파력을 잠재우면서 또 한번 성적을 최상위권으로 앞장서 나아갔다. 그러나 울산 모비스와의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에서 어이없는 작전지시와 집중력 등을 발휘시키지 못하였고, 6차전에서 일어난 최다 점수차 패배로 인하여 우승에는 실패한다.
2010~2011 시즌에는 다시 한번 우승컵을 얻기 위해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용병 크리스 다니엘스를 영입시켰다. 초반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하승진의 부상 때문에 성적도 하락세로 내려갔지만, 선수들의 외곽 수비능력과 잘못되었던 조직력을 수정하면서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원주 동부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길고 긴 접전 끝에 통산 5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최다 1위를 기록하게 만들었다.
6. 지도자 은퇴 후
팀의 5번째 우승 뒤 후임 코치직을 천정열에게 넘기고 KCC 본사 사무직으로 발령받아 부장을 거쳐 이사까지 지냈다. MBC every1에서 방송된 나인투식스에서는 前 KCC 선수인 전일우와 함께 출연했다.
2022년 9월 KBL 사무처장으로 임명되었다.
[1] 초반에는 분명 구속되었으나, 여드레만에 구속적부심을 거쳐 풀려났다.[2] 서장훈만 보호선수이고 이상민은 보호선수가 아니나며 트레이드 시켰냐는 등, 거센 반발과 항의가 잇따르자 70명의 서포터즈 회원과 팬들은 서초구 KCC 본사까지 찾아와 반대 항의 집회를 열면서 최형길 단장의 사퇴와 프런트 경질 요구, 그리고 이상민의 유니폼을 찢고 쓰레기 통에 버리는 과격한 행위를 실행했다. 그러나 이상민의 삼성 이적에 KCC 관계자의 답변은 전혀 없었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일부 팬들은 할 수 없이 등을 돌리고 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3] 이 사진은 2009-10 혼혈 드래프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원래는 마지막에 뽑아야 하는데, 나머지 9개 구단 팀이 1순위에 안 걸리게 되면서 뽑기는 면제되어 한번에 1순위를 얻게 된다. 앞에 있는 사람은 당시 대구 오리온스 감독이던 김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