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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철 金觀喆 | |
출생 | 1920년[1] |
평양 (추정) | |
사망 | 1987년 이후 (향년 67세 이상) |
대한민국 일대 (추정) | |
신체 | 190cm | 120kg |
직업 | 조직폭력배, 정치깡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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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의 인물. 김두한의 부하인 깡패로 키 190cm[2]에 120kg 체중의 거한이었다고 한다. 김두한의 보디가드로 얼굴이 황소만큼 크고 용감했다고 한다.김동회, 이상욱 등 실제 우미관 패 생존자들의 인터뷰나 글에서 항상 일관되게 190cm 거인에다가 천하무적의 파이터로 표현된다.
2. 생애
평양 출생이라는 주장이 있으며[3] 김두한의 수하로 우익 정치깡패로 활동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대한민청에서 김두한의 별동대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정진룡 살인 사건 당시 김두한과 함께 법정에 서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다.6.25가 끝날 무렵, 대부분의 정치깡패들이 그러했듯이 그럴듯한 직함 하나를 받아 밥벌이에 나서는데, 김관철의 소속은 건중친목회였다. 이 단체는 자유당과 폭력배들이 결탁하여 미군의 불하 물자를 독점 입찰하여 폭리를 취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 하나 더하면 민중시보사 라는 정체불명 신문사의 업무부장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건중친목회의 활동 중 이권 문제로 인해 깡패들 사이에 내분이 발생. 결국 김두한이 김관철에게 위협사격을 하는 막장 사태가 발생하였고, 이에 열받은 김관철이 김두한을 고소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제3대 국회의원 선거 불과 두 달 전에 일어난 탓에, 김두한은 국회의원 당선에는 성공했으나 이 사건의 여파로 감방에 갈 처지가 되어 버렸다. 김관철은 이후 김두한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였으나, 친고죄가 아닌 탓에 김두한에 대한 기소는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이상할 정도로 시간을 질질 끌었고, 2년 뒤인 1956년이 되어서야 선고유예되었다.[4] 이 사건의 여파로 김관철은 주먹 세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주먹계에 은퇴하고 여러 술집과 카바레 등의 사업을 하며 살았다.
[5]
그 후인 1987년에 경향신문에서 대한민청에 대한 연재기사를 냈을 때 김관철이 신영균 등 옛 대한민청 동지들과 함께 모여 사진을 찍은 것이 자료로 남아있긴 하다. 그리고 이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왕초
직접적인 등장은 없고 언급만 되는데, 1954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두한을 김관철이 살인 미수로 고소해 김두한은 경찰서에 가고, 자유당에 많은 무소속 의원들을 입당시키려는 김동식(아베)이 김두한에게 풀려나고 싶으면[6] 자유당에 입당하라 한다. 이때 김두한을 연행한 경찰이 김동식의 수하 한철민(센세이) 종로경찰서 서장인데 한철민 역의 배우가 야인시대에서 김관철을 연기한 이정용이다.3.2. 드라마 야인시대
자세한 내용은 김관철(야인시대) 문서 참고하십시오.4. 여담
김두한에 맞먹거나 혹은 그 이상으로 싸움실력이 강하다고 추정되는 인물이다. 김관철은 엄청난 거구에 구마적에 준할 만큼 괴력의 소유자인 데다 단 한 번도 지는 걸 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이상욱에 의하면 김두한[7]과 김관철이 실제로 붙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부하들이 보는 앞이고 의욕에 불타 있는 김관철과 달리 김두한은 이겨봐야 본전에 졌다가는 잃을 것이 많아서 술 한잔을 사주며 위기를 모면한 듯한 모습을 보인적이 있었다고 밝혔다.[1] 1954년 권총 위협사건시 기사에 34세로 나와 있다. 그에 따르면 1920년 생이 되는 셈. 다만 김두한이 당시 37세로 나와 있어 세는 나이일 가능성이 있다. 세는 나이일 경우 1921년생.[2] 키가 179cm라는 설도 있으나 1987년 경향신문에 나온 밑의 사진에 나온 김관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키가 크고 나뭇잎까지 키가 닿고 어깨 넓이와 다리, 팔 길이를 보면 190cm가 현실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키가 179cm가 맞다고 해도 179cm든 190cm든 당시 기준으론 장신이었다.[3] 장호근이 쓴 실화소설들에선 평양 출신으로 나온다. 이 장호근의 부친이 바로 상하이 독수리 장천용으로 장호근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친구인 시라소니를 삼촌으로 따랐다고 한다. 야인시대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4] 불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위협사격까지 했는데 상식적으로 선고유예가 가능할지 생각해 보자. 참고로 최소한 현재의 대한민국 기준이라면 절대로 선고유예가 나올 수 없다. 그만큼 그 당시 시대적 상황 자체가 지금과 달라도 한참 달랐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선 지금도 이 정도 죄질의 범죄는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죄질이 큰 범죄들에 대해서도 돈 있고 백 있으면 선고유예는 물론 아예 증거 불충분 등으로 무혐의 처리되거나 아예 기소조차 안 되는 경우도 많긴 한데 그만큼 중남미와 아프리카가 지금도 부패 수준이 심하다는 증거이자 50년대의 대한민국이 현재의 중남미나 아프리카 급으로 부패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김두한의 경우는 이 사건이 자유당의 정치공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두한의 말이 대체로 믿기 어렵거나 뻥이 많기는 한데, 당시 신문에도 왜 하필 당선되고 나서 이런 일을 터트렸냐거나 정치공학적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기사들도 있긴 했었고, 김관철이 김두한에 대해서 좋은 쪽으로 증언을 해 줬다거나, 선거운동도 같이 했다거나 하는 유리한 정상들이 있기도 하니 판단은 알아서 하길 바란다.[5] 빨간색 동그라미에 있는 인물이 김관철.[6] 김두한은 감옥가도 좋다면서 배짱을 부리지만, 문제는 교도소에 수감되면 의원직을 잃게 되는 상황이었다.[7] 김두한도 당대를 주름잡던 최고의 주먹이었지만, 무용담의 대부분이 본인 피셜이고 명성을 지키기 위해 실제 1대 1 맞짱에서 기습적으로 급소를 노리는 등 치사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룰이 있는 격투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권을 위해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생존을 다툰 싸움이니 딱히 비겁하다 보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