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777><colcolor=#fff> 김동회 金東會 | |
별명 | 소공동 백작 김두한의 평생지기 |
출생 | 1918년 8월 10일 |
충청북도 괴산군 | |
사망 | 2004년 8월 25일 (향년 86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1918~1945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1948~2004 |
신체 | 185cm, 75kg |
직업 | 조직폭력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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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조직폭력배. 소공동 백작과 김두한의 평생지기라는 별명으로 유명하지만 김두한과의 관계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인물이다.2. 생애
충북 괴산 출신이지만 상경해서 일본인 상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김두한을 처음 만난 건 1939년의 일로, 유도를 승단한 김동회를 축하해주기 위해 3~4명이서 서울 관철동의 술집에서 축하연을 하던 중 10여 명쯤 되는 패거리와 시비가 붙어서 이겼다고 한다. 그 패거리는 자신들의 두목을 데리고 왔는데 그 두목이 바로 김두한. 서로 통성명을 한 둘은 같은 안동 김씨라는 것을 알고는 함께 술을 마시고 친구가 됐다고 김동회 본인이 회고했었다.[1]유도로 이름을 날려서 일명 하야시라고 불린 선우영빈[2]에게 스카웃되지만 광복 직전에 벗어나서 다시 김두한과 함께 일하게 되었고 아편 탈취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무사히 출소했다고 한다고 한다. 정진룡과도 교분이 있었는데 출소 후 다시 만나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정진룡이 김두한과 김동회를 위해 술자리를 열었는데 이상한 낌새를 느낀 김두한이 김동회를 데리고 나온 뒤 영영 적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본인이 밝힌 생애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김두한은 생전 인터뷰에서 김동회를 언급한 적이 없으며, 김두한을 다룬 신문기사를 봐도 신영균이나 조희창이나 김영태등 다른 간부들의 이름은 보여도 김동회 세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노년이 되어서는 야인시대[3]의 방영으로 김두한의 생애가 재조명받자 언론에서 김두한의 평생지기라는 타이틀로 소개받으며 자신이 기억하던 김두한의 모습과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했다. 매일 정장을 입고 소공동 롯데호텔 커피숍에 나타나서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4]했다고 하며 김두한의 평생지기라고 알려진 덕분에 그쪽 후배들, 심지어 조양은도 그를 큰형님이라고 부르며 예우했다고 한다.
위암을 앓다가 야인시대 종영 다음 해인 2004년에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논란
상술했듯이 김두한과의 관계가 불분명하다. 김두한의 회고록이나 생전 인터뷰 및 김두한의 부하들 관련 신문 기사에도 김동회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이미 고인이 된 김두한을 팔아먹은 사기꾼이라는 추측들이 많다. 이는 이상욱도 마찬가지. 다만 이상욱은 주먹패 시절 사용한 이름을 밝히기라도 했기에, 김두한의 직속부하만 아니었을 뿐이지 최소한 종로에서 활동했었던 주먹이었던 것은 증명이 되지만, 김동회는 그런 것이 없다.한편 일각에서는 김두한의 사후에 개명을 했거나, 주먹패로 활동할 당시엔 가명을 썼기에 언급이 없었던 게 아니겠냐는 주장도 있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엔 김동회가 자신이 개명했거나 가명을 썼었다고 밝힌 적이 없기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는 본인들만 알겠지만, 김두한의 후계자인 조일환은 그를 선배로 모셨다고 하며, 함께 야인시대 촬영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회가 사기꾼이라는 가정 하에 아예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이미 서술했듯이 김두한의 전성기 시절에 조일환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일제강점기 시절을 기준으로 두자면 아예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하는 나이었기에 김동회가 조일환한테까지 거짓말을 했다고 하면 설명이 된다.
과거 잠시 김두한 밑에서 생활했던 배우 조춘과 그의 동료 "짱구" 송종수에 따르면, 김두한과 하야시 사이를 김동회가 중개해 주었다고 하며, 싸움 실력이 뛰어났으나 조직생활을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즉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두한의 조직원은 아니었고 그냥 친구 내지 지인 정도였으며 싸움은 잘 했어도 주먹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위의 의문점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소위 말하는 반달이었다는 것. 다만, 정진룡에 대한 이야기나 김두한의 체포 사유 관련되어서 실제 사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한 걸 보면 김두한과는 알고 지내던 건 사실이되, 본인이 과장한 것도 있는 듯하다. 애시당초 조춘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김두한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을 시점에서 막 미성년자를 벗어난 정도여서 김두한, 하야시, 김동회의 관계를 직접 경험했을 세대는 아니다. 당장 출처의 영상에서도 김두한과 김동회의 관계를 증언하면서 '~하셨대, ~했다더라고.' 라는 어투를 쓰고 있다. 본인들도 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지, 직접 본 일이 아니라는 것.
김동회가 야인시대에 등장하지 않은 것이 김두한과의 관계가 거짓이라는 논란 때문에 제작진들도 김동회를 아예 등장시키지 않은게 아니겠냐는 설, 제작진들이 김동회를 김두한 팔아먹은 사기꾼으로 확신하고 등장시키지 않은게 아니겠냐는 설도 있다.[5]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김두한 본인도 동시기에 활동했던 여러 주먹들을 팔아먹은 적이 있다는 것. 대표적인 피해자로는 구마적과 신마적이 존재한다.
4. 대중매체에서
4.1. 영화 장군의 아들
배우는 이일재.[6] 극중 이름은 김동해였다.어린시절 음식서리를 하다 잡힌 것을 수표교 거지패였던 두한이 구해준 인연이 있다. 이후 성년이 되어 하야시에게 뛰어난 주먹실력을 인정받아 중용되고, 경성 변두리 주먹들을 꺾어 하야시패로 복속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신마적이 그게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데도 왜 일본의 앞잡이 행세를 하는지 다그치나, 조국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현실이 더 좋은 것이라 반론한다. 마찬가지로 성년이 되어 종로의 주먹세계에 들어온 두한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1편에서는 과거의 인연을 두한이 인지하지 못한 채 상대패거리의 적수로만 대했다. 하야시에게 신마적의 린치를 복수삼아 쳐들어와 난장판이 된 싸움 한복판에서 두한과 1:1 대결을 하나 패배한다.[7]
2편 초반부 하야시의 종로 습격을 피해 도망치던 두한을 일격에 쓰려뜨리고, 한동안 하야시패가 종로를 세력권에 두는 등 기세가 좋았으나, 이내 김기환이 종로를 떠나고 각성한 두한 패거리들이 조선 주먹패들을 규합하자 예봉을 꺾기위해 다시한번 1:1로 두한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이때 수표교 거지 시절 일화를 들려주며 그제서야 두한이 동회를 알아채고, 종로 댓거리에서 시리즈를 통틀어 멋진 대결씬을 선보인다. 결국 두한에게 다시 패배했으나, 묘령의 술집 여인 송채환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이내 종로를 함께 떠나 새로운 삶을 희망했지만, 이 시기 두한이 헌병대 장교를 폭행하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송채환이 헌병대장과 동침을 하여 두한을 석방시키지만, 그 길로 송채환은 홀로 종로를 떠나고, 두한에 대한 원망과 번민이 함께 쌓였던 동회도 독립운동을 도모하고자 종로를 떠난다.
3편에서는 만주에서 두한과 재회하고 독립군 대신 국경을 넘나드는 밀수업자가 되어있었다. 쌍칼 몰래 생아편을 팔아넘기려 했으나 마적단의 함정에 빠져 두한과 함께 린치당하고 아편만 뺏기게 되었다. 이를 분하게 여겨 밀매책을 수소문한 끝에 두한이 일당 중 한명을 족치게 되지만, 이를 알게된 마적단 두목이 두한과 동회를 잡아들이게 했으나 쌍칼 패거리가 막아선 사이 분전끝에 두한과 헤어진다.
이 후 꽤 건실한 상사를 운영하게 되어 하야시와 거래를 틀 정도로 어느정도 거물이 된 그는 징용으로 종로 건달들이 모조리 와해될 위기를 두한에게 경고하지만, 쪽바리 꼬붕짓이나 하는 주제에라는 조롱만 들은 채 화가 난 두한에게 쫓겨나게 된다. 이 후 두한이 장은실에 빠져 종로를 소홀히한 사이 쳐들어온 하야시패들에 의해 죽을뻔 한 것을 단신으로 구출하게 되고, 그 길로 이번엔 하야시의 본거지로 함께 쳐들어가 두한의 복수를 돕지만, 최후에는 옛 오야붕이었던 하야시에게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을 용서해달라 청하고 난자당하여 거의 초주검이 된 두한을 데리고 종로 거리를 나서며 영화가 끝난다.
[1] 다만 김동회는 구 안동 김씨로 25세손 회(會)자 항렬을 쓰며, 김두한은 신 안동 김씨로 27세손 한(漢)자 항렬을 쓴다.[2] 김두한이 언급한 하야시라는 야쿠자가 한국인 선우영빈이라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 이 항목의 주인공이다.[3] 다만, 본인은 등장하지 않았다.[4] 소공동 백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유다. 김동회 본인은 가족들 모두 미국으로 떠나서 생계가 어려웠는데 후배들이 지원해준 돈으로 손님들에게 커피를 대접했다고 한다.[5] 제작진은 야인시대를 제작하며 신문 기사나 회고록에서 짧게 스쳐가는 이름들까지 등장시킬 정도면 조사를 철저하게 했다는 건데, 김동회는 그 어디에도 이름이 실리지 않은 탓에 의심해볼 만도 하다,[6] 마찬가지로 김두한의 생애를 다룬 야인시대에서는 이정재의 부하이자 화랑동지회 내에서 가장 큰 조직을 이끌고 있는 김동진으로 출연했다.[7] 동회는 풀컨이었지만 두한은 하야시패들을 상대한 후라 약간 지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