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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00:26:20

금시조

金翅鳥 / 金始祖

1. 가루다의 한자 표기2. 이문열의 소설
2.1. KBS TV 문학관 드라마 금시조
2.1.1. 등장인물
3. 대한민국무협소설 작가4. 드라마 신기생뎐의 등장인물5. 시조(금)

1. 가루다의 한자 표기

2. 이문열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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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금시조
작가이문열
장르중편소설
발표현대문학 1981년 12월호
수록금시조 (동서문화사, 1983)
제1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전상국
(1980)
이문열, 오정희
금시조
동경
(1982)
김원일
(1984)
예술의 본질을 다룬 이문열의 중편소설. 1982년 제1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서예의 정상인 석담(스승)과 고죽(제자)의 일대기를 다룬 단편이다. 두 주인공은 각각 전통적 예술론과 순수예술론을 대변한다. TV 문학관에서 신구김흥기의 연기 대결이 볼만하다. 오리엔탈리즘 덕분인지 유럽에서 제법 인정받은 몇 안 되는 한국 소설 중 하나. 서예가들이 주인공인 작품 답게 등장인물들을 아호로 지칭하는 것이 특징이다. 풍문에 의하면 석담은 석재 서병오(1862~1936), 고죽은 죽농 서동균(1902-1978), 초헌은 소헌 김만호(1908-1992)의 인물을 모티브로 하였다. 실제로 석담의 관상명정을 고죽이 쓴다던가 영면 직전에 자신의 작품을 대거 불태우는 등의 일화는 실화에 기반한 에피소드이다.

이 작품은 「들소」, 「시인」 등과 함께 작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신념을 소설화한 이문열의 대표적인 '예술가 소설'이다. 작중의 주된 갈등은 서예에 천부적 소질을 지닌 고죽(古竹)과 그의 스승 석담(石潭) 사이의 서로 다른 예술관으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참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두 대통령[1]이 글을 받아갈 정도로 이름을 날렸던 서예가 고죽이 죽기 직전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고죽은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는 도망간후 숙부의 손에 의해 키워졌으나 숙부가 독립운동 관계로 망명하자[2] 숙부의 친구인 석담에게 위탁된다. 고죽이 어마어마한 재능을 타고났음을 우연히 본 석담은 노발대발해서 서예를 가르치지 않고[3] 집의 종으로 부리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고죽이 서예 신동임을 알게 된 석담의 친구 운곡의 강권으로[4] 수하생이 되나, 세월이 흐를수록 예술은 사람들의 역사와 생활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석담과[5]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 이루어야 할 이상적인 것이 있다는 고죽의 대립은 심해진다.[6]

결국 고죽은 스승과의 트러블로 가출해서 주색잡기에 빠지고, 다시 돌아왔으나 또 한번 서로간의 대립으로 갈라선다. 세월이 흐른 후 고죽은 자신의 방황을 돌아보며 스승에게 돌아가기 전 자기정화를 꾀하나, 석담은 그 사이 사망했다. 석담은 유언으로 고죽이 자신의 관상명정[7]을 쓰게 하였고, 스승과 제자는 화해 아닌 화해를 하게 된다. 그러나 고죽의 정신적 방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고죽은 자신의 작품을 하나 둘씩 모으게 되고 그것을 하나하나 평하지만 무엇 하나 마음에 완벽히 드는 것이 없고 부족한 점만 보여, 자신이 이룬 것이 모두 불쏘시개임을 통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진짜로 태워버린 후 타오르는 불속에서 자신이 꿈꾸었던 순수 예술의 발현인 금시조를 보게 된다. 특히, 이 장면에서 값비싼 고죽의 작품이 모두 재가 되는 것을 아까워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과, 후련해하는 고죽의 대비가 매우 인상적이다.

금시조는 인도신화의 가루다와 같은 존재이다. 작중에서는 금시벽해 향상도하[金翅劈海, 香象渡河] 라는 서화로 대표되는 예술과 학문의 경지가 나오는데, 그 뜻은 (금시조의)금색날개가 바다를 바르고, (향상이라는)코끼리가 물살을 가르는 그 웅혼한 기세를 뜻한다. 작중 스승과 제자 모두가 일생을 바쳐 추구하는 경지이다.

2.1. KBS TV 문학관 드라마 금시조


1983년 KBS에서 방영한 TV 문학관 68화작으로 방영된 드라마. 이문열이 원작 및 감수를 맡았고 정하연 작가가 각색 및 극본을 맡았으며 장기오 PD가 연출을 맡았다. 배우 김흥기, 신구가 주연으로 나온다.

2.1.1. 등장인물

"내 일찍이 네놈의 천골(賤骨)을 알아보았더니라. 가거라! 넌 진작부터 저잣거리에 나앉았어야 할 놈이었다. 용케 천골을 숨기고 오늘날에 이르렀으니 이제 나가면 글씨 한 자에 쌀됫박은 후히 받을게다!"
배우는 신구. 영남지방 유림이자 학자이며 어린 시절에는 흥선대원군도 감탄했을 만큼의 신동이었다고 한다. 서당 훈장도 겸하고 있고 친구인 고죽의 숙부에 의해 고죽과 첫 만남을 가진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죽을 탐탁지 않게 봤는지 문하생으로 거두지 않고 종으로 일을 시켰으며 고죽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성향을 보인다. 그러다가 친구이자 같은 유림인 운곡의 당부에 따라 일시적으로 고죽을 서실에 들여놓았으나 다시 강경책으로 돌아서서 일꾼으로 격하시켰다. 이후에는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사상을 가진 고죽과 갈등을 빚었으며 고죽의 건방진 태도에 화가나서 벼루를 던지기도 하였다. 고죽과 결별한 이후에는 와병으로 죽은 것으로 나오며 결국 말년에 가서야 고죽의 재능을 인정하며 죽기 직전에 그에게 관상명정을 쓰도록 부탁한다.
"자식도 없고 처자도 없고 스승도 없는 천하의 고죽이 왜 나 같은 늙은이를 알고 있는고?"
“그 뜻을 알겠는가? 관상명정을 쓰라는 건 네 글을 지하(地下)로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석담은 그만큼 네 글을 사랑했단 말이다. 이 미련한 작자야……”
배우는 김인태. 석담의 친구이자 영남지방의 유림. 시문, 학문, 의학, 바둑 등 7가지 재능을 가져서 7능이라 불렸고 신동이라 불렸던 인물이었다. 처음에 고죽을 만났을 때 그의 재능을 일찍이 보며 제자로 받아들이겠다고 할 정도로 고죽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그러나 고죽이 석담과의 갈등 이후 결별하게되자 스승도, 처자도 없는 후레자식이라며 증오하는 태도로 바뀌게 되었다. 다만 석담의 장례식에서 고죽에게 자신의 관상명정을 쓰라는 석담의 유언을 전달하며 석담이 그만큼 고죽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고죽과 매향 사이에서 난 딸.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음에도 아버지인 고죽을 헌신적으로 보살핀다.
고죽의 제자. 고죽이 마지막으로 아호를 지어준 인물이다. 성은 김 씨인데 이는 고죽의 딸 추수가 그를 김 군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확인된다. 참고로 원작 소설과 TV 문학관 판의 묘사가 좀 다른 인물인데 원작에서는 젊은날의 고죽이 그의 스승인 석담과 갈등했던 것처럼 그 역시 스승인 고죽과 예술관을 두고 갈등하고 있으며[8], 고죽이 죽은 후 고죽의 작품이 사이비였다는 극언까지 퍼붓지만 극화판에서는 그저 스승의 말을 잘 따르는 수제자로 묘사되었다.[9] 초헌이 고죽의 사후에 극언을 내뱉은 이유는 처음에는 스승을 따르며 극찬하던 수제자였으나 고죽이 죽기전 자신의 작품을 불태울 때 고죽의 작품 중 나라에서 인정해서 훈장까지 받은 작품을 내놓지않으려 하다가 고죽의 압박에 결국 작품을 내던지고 고죽이 불태우는 걸 망연자실한채로 본다. 초헌은 그 작품을 자신이 도달해야하는 경지로 생각하고 오르려하는데 고죽은 그것마저도 결함이있다며 불태우니 열등감이 폭발해 고죽은 사이비라는 극언을 하게된 것. 다만 고죽의 사후에 높은 평가를 받지못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고죽에게 극언을 한 것도 좋은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군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에 제자들 중에서도 평가가 안좋다는 언급이 있으며, 고죽이 작품을 모두 불태우고(금시조의 환영을 보고) 죽고 사람들이 고죽의 행위를 이해를 못하면서도 자신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며 초헌과 달리 추앙했기에 초헌은 실력도 떨어지는데다 불순한 가치관을 이유로 스승을 매도했기에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10]

3. 대한민국무협소설 작가

4. 드라마 신기생뎐의 등장인물

배우는 이대로. 금어산의 아버지, 금라라의 할아버지. 임성한다운 네이밍센스이다. 물론 같은 작품에 아수라에 비하면...

5. 시조(금)

이 쪽은 금나라 시조(金始祖)이다.


[1] 시대상으로 보아 이승만과 박정희인 것 같다.[2] 이후 연락이 끊긴다. 나중에 그의 곁으로 갈 기회가 오긴 하나 결국 돌아가지 않는다.[3] 실력이 개판이라서가 아니라 지나친 기교 때문에 주화입마에 빠질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4] 실력이 아까우니 자네가 거두지 않으면 차라리 나에게 보내라고 했다.[5] 석담은 일제 강점기와 망국으로 인해서 차라리 작품을 남길 수 없다고까지 한다. 고죽은 그런 석담을 한심하다고 조롱하다가 연적으로 얻어맞기까지 한다.[6] 극화판에서는 잘렸지만 고죽의 제자와 고죽간에도 이런 대립이 있다. 고죽의 제자는 고죽 사후에 고죽은 사이비라는 폭언까지 한다.[7] 관에 적어 넣는 글. 다시 말해 석담은 저 세상에 갈때까지 고죽의 글을 가지고 가겠다는 것으로 진정한 실력자로 인정한 것이다.[8] 석담은 예술작품은 생활을 담아야한다는 가치관, 고죽은 예술작품은 그 예술로서 평가받아야 한다는 가치관이라면 초헌은 예술작품이 남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졌는데 초헌의 가치관이 질이 떨어진다. 초헌의 가치관에서 돈이 안되거나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않은 예술작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미이기 때문.[9] 원작에서는 수제자가 아닌 제자 중 한 명이다.[10] 고죽도 초헌처럼 스승인 석담과 대립했지만 뒤에서 석담을 사이비라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또한 가치관도 고죽과 석담은 각자의 신념에 따른 것으로 석담은 유언으로 자신의 관상정명을 고죽이 적게하여 그의 가치관을 인정했는데 초헌은 예술을 명성을 얻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인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