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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2 09:57:00

금강(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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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상 기록이 확인된 인물
김춘추, 김순정, 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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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신라의 상대등(上大等)
김알천 금강 김유신

<colbgcolor=#006494><colcolor=#fbe673>
신라 제10대 상대등
금강 | 金剛
출생 연대 미상
신라
사망 660년 1월
신라
재임기간
(음력)
제10대 상대등
655년 1월 ~ 660년 1월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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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494><colcolor=#fbe673> 성명 금강(金剛)
직위 상대등(上大等) }}}}}}}}}

1. 개요2. 생애3. 이름에 대해4. 기타

[clearfix]

1. 개요

신라 중대귀족이자 상대등.

2. 생애

655년 1월, 알천의 후임으로 상대등에 올랐다. 이후 660년 1월에 죽었다.

3. 이름에 대해

금강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실하여 알 수 없으나, 시대의 특성상 불교에서 유래된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 불교가 왕실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법흥왕 대부터 진덕여왕 대까지 신라에서는 불교에서 유래된 이름을 쓰는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단 주요 왕족들뿐만 아니라 김사다함과 같은 성골 시대 진골 귀족도 사용 사례가 있다.

불교에서 금강(金剛)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줄여서 금강경(金剛經)이 유명하며, 금강경은 대승 불교 초기에 성립되어 삼국시대 한반도에 가장 먼저 퍼진 불경 중 하나였다.[1]

금강은 불교의 분파 중 하나인 와즈라야나(밀교)의 이명인 금강승(金剛乘)을 뜻하기도 하였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때 잡밀(초기 밀교)이 들어왔다 통일신라 때 순밀(중기 밀교)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밀교에서 유래된 명칭일 수도 있다. 동시대 비담부파 불교상좌부 불교의 '아비달마'에서 유래된 이름이고 진지왕의 아들이자 김춘추의 아버지 용수대승불교의 창시자 용수보살에서 유래된 이름임을 고려하면 금강승에서 유래된 이름이 맞을 경우 금강 또한 진지왕의 아들일 수도 있다. 이 경우 금강은 579년 이전생이 되므로 655~660년 당시 80대의 고령이 되는데, 나이가 지나치게 많아지는 데다 김춘추의 할아버지뻘이 되기 때문에 아닐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불교의 신 중 하나인 금강신(金剛神)도 있다. 인왕의 이명 중 하나로 여래의 비밀 사적을 알아서 오백 야차신을 부려 현겁(賢劫) 천불의 법을 지킨다는 두 신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2] 금강신은 『화엄경』에서는 금강수(金剛手)보살과 같이 높은 보살의 깨달음을 얻은 존격이지만, 밀교 시대에는 금강살타(金剛薩埵)로 상승되었다.[3] 그러나 금강살타에 대한 관념은 상대등 금강의 세대보다 후대에 나타난 것으로 여겨지기에 금강신이라면 모를까 금강살타는 가능성이 떨어진다.

금강의 유래가 정확히 무엇이든 간에 불교에서 유래된 것은 확실하다.

4. 기타

초기 상대등은 금관국계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거물급 왕족이었는데, 금강은 태종 무열왕 대 상대등이었으며 문무왕 대 다음 상대등이 된 것이 그 김유신임을 고려하면 금강이 상당히 서열이 높은 왕족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초기 상대등은 상대등을 맡던 시절 하나같이 고령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금강 또한 상대등이었을 당시 상당히 나이가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1] 밀교의 경전인 《금강정 일체여래 진실 섭대승 현증대교 왕경》(金剛頂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大敎王經)은 670~690년대 가서야 성립한 것으로 보기에 시대상 가능성이 떨어진다.[2] 절 문 또는 수미단 앞의 좌우에 세우는데, 허리에만 옷을 걸친 채 용맹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왼쪽은 밀적금강으로 입을 벌린 모양이며, 오른쪽은 나라연금강으로 입을 다문 모양이다.[3] 금강살타는 비로자나여래의 자내증(自內證: 스스로의 마음으로 진리를 깨달음)을 체득한 붓다의 존격으로 추앙받지만, 여전히 대승 보살의 보현행원과 같은 이타적 실천자의 모습을 간직하기에 금강살타로 불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