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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우크라이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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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우크라이나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고대2.2. 중세2.3. 근세2.4. 근대2.5. 20세기2.6. 21세기
3. 문화 교류4. 교통 교류5. 대사관6. 관련 문서

1. 개요

그리스우크라이나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고대부터 그리스와 우크라이나는 교류가 많았다. 또한, 문화, 종교에서도 공통점이 많이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기원전 7세기 이래 고대 그리스그리스인들은 흑해 연안까지 진출하여 활발하게 교역한 바 있었다. 흑해 연안에 진출한 그리스인들은 항아리에 담은 올리브유포도주를 판매하고 을 수입하였다. 드니스테르 강 하구 간석지에 티라, 드네프르 강 하구 간석지에 건설된 올비아, 오늘날 세바스토폴 근처에 건설된 케르손네소스, 페오도시아, 오늘날 케르치라고 불리는 판티카파이온, 이 외에도 파나고리아, 오늘날 로스토프 인근의 타나이스 등등 폴리스들이 건설되었다.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역사가 헤로도토스 역시 올비아에 거주했던 바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 발칸 반도 흑해 연안에서는 그리스인들이 세운 유적, 보물들이 많이 발굴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스키타이라고 불렀으며 드네프르 강을 보리스테네스 강이라고 칭했다.[1] 종종 크림 반도나 우크라이나의 스키타이족들이 전쟁 포로가 되어 그리스 폴리스에 수입될 때도 있었는데 그리스에서는 스키타이 출신 노예들을 경찰로 활용하였다 한다.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인들이 자신들보다 피부가 희고 머리색이 옅다며 이들을 히페르볼레오이(켈트족)와 동류의 하얀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 반도는 식량을 자급하기 쉽지 않았고 이러한 연유로 흑해에서 식량을 지속적으로 수입해와야 했으나 알렉산드로스 3세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정복하면서 상당수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 반도와 이오니아를 빠져나가 시리아와 이집트 각지에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리스 반도의 인구 압력이 감소하였다. 흑해에 잔류한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반도의 폴리스들과 교역 규모가 감소하면서 점차 보스포로스 왕국같은 자급자족 공동체로 바뀌었다.

로마 제국이 영토를 확장하면서 흑해 연안 상당 지역도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크림 반도를 중심으로 한 보스포로스 왕국은 로마의 보호국이 되었으며, 우크라이나 해안지대 서안은 명목상 모이시아 속주(Moesia Inferior)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방어가 힘든 우크라이나 평원지대는 사르마티아, 고트족의 차지였다. 서기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잠시 흑해 북부 평원의 여러 부족집단들을 평정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다. 외려 체르노젬 지대의 고트족들은 발렌스 황제가 지휘하는 동로마군을 격파한 후 로마 제국 각지를 약탈한 이래 이래 로마 제국의 존망을 끊임없이 위협하기도 했다.

2.2. 중세

로마 제국이 서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어지면서 그리스 문화권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고트족들이 빠져나간 흑해 북부 흑토지대에 슬라브인 얀테족 등등이 정착한 것을 계기로, 5세기 ~ 6세기에 이르면 슬라브족들이 이동하면서 그리스 반도 및 그 이북 지역에도 슬라브족들이 정착했다. 서기 6세기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불가리아에 걸쳐 정착한 슬라브인들(스클라베니족과 얀테족)이 외국인들에게 친절하며 정절을 지키고 자유를 사랑한다는 다소 긍정적인 내용을 남겼다.

루스 카간국을 세운 노르드인들이 흑해와 카스피해 방면으로 남하하여 드니프로 강 일대의 동슬라브족들을 규합하고 키예프 루스를 세웠다. 동로마 제국의 통치하에서 그리스 지역과 키예프 루스는 교역이 활발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포르피로게니토스는 당시 키예프의 상인들이 페체네그인들의 약탈을 피해 무리를 지어서 드네프르 강을 건너 비잔티움으로 항해해 왔다는 기록을 남겼다. 서기 968년에는 니키포로스 2세의 요청에 의해 스뱌토슬라프 1세가 이끄는 키예프 루스 군대가 불가리아 제1제국을 침공하여, 도로스톨(오늘날의 실리스트라) 부근에서 불가리아 군대를 격파하였다. 스뱌토슬라프가 불가리아를 점령하는 찰나 페체네그인들이 수도 키예프를 침공하면서 루스 군대는 불가리아에서 퇴각하여 키예프로 돌아가 다시 페체네그인들을 격퇴하였다. 키예프 시민들은 스뱌토슬라프가 원정을 나가있는 동안 자신들이 모두 페체네그인들에게 노예로 잡혀 팔려나갈 뻔 했다고 불평하는 내용도 나오는데, 당시 페체네그는 키예프 루스와 동로마 제국 양측 모두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듬해 니키포로스 2세가 암살당하고, 요안니스 1세가 새로 동로마 제국 황제가 되었다. 동로마 제국에게 기만당했다고 생각한 스뱌토슬라프는 동로마 제국 군대와 전쟁을 치르고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압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강화 조약을 맺었다. 스뱌토슬라프는 불가리아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고, 크림 반도에 있는 동로마 영토를 건드리지 않으며 동로마 제국의 동맹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신 동로마는 스뱌토슬라프의 군대가 키예프로 돌아가는 길에 식량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동로마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22,000여 명 분의 식량이 제공되었다고 한다. 강화 조약을 맺고 돌아가던 스뱌토슬라프는 드네프르 강 급류에서 페체네그인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는데,[2] 이를 두고 동로마 제국에서 페체네그인들에게 미리 스뱌토슬라프의 귀로를 찔러줬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경우도 있다.

키예프 공국은 동로마 제국과 교역하면서 정교회를 받아들이고 키릴 문자를 받아들였다. 스뱌토슬라프 사후 키예프 루스의 지도자가 된 블라디미르 대공(볼로디미르 대공)은 6천여 명 규모의 바랑인 친위대를 파견하여 바실리오스 2세의 황위 계승 전쟁을 도왔다. 블라디미르 대공은 그 대가로 동로마 제국의 황녀를 자신에게 시집보낼 것을 요청하였으나, 내전을 마무리지은 바실리오스 2세는 동로마 제국의 황족을 야만족에게 시집보낼 수는 없다며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었고, 그러나 블라디미르는 크림 반도의 동로마 제국 영토를 공격하여 점령한다. 결국 바실리오스 2세는 크림 반도를 돌려받기 위해서 약속했던 대로 안나 공주를 블라디미르에게 시집보내게 되는데, 이 사건을 전후하여 고대 슬라브 신화를 믿던 키예프 공국은 정교회로 개종하게 되었다.

키예프 공국이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되면서 그리스 지역과의 관계가 상당부분 단절되었다.

2.3. 근세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그리스인들이 거주하던 크림 반도의 테오도로 공국 역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당하고 이렇게 그리스와 크림 반도 양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17세기부터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 지역을 정복하고 크림 칸국을 멸망시켰다. 크림 칸국의 통치하에 있던 우룸인들은 러시아 제국측에서 그리스인들의 후손들로 간주하여 아조프 해 북부로 이주시켰다. 이들은 여타 러시아인이나 우크라이나인들과 다를 바 없는 정교회 신도였다보니, 수백년도 되지 않아 여타 우크라이나의 슬라브인들과 급속히 동화되어 버렸다. 우룸인들은 크림 타타르어를 사용하는 주민들 중 정교회 신도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들 중에는 조상이 고트족인 경우, 그리스인인 경우 등등 다양했으나, 크림 반도를 손에 넣은 강대국들은 이들의 존재 관련해서 마음대로 해석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이들을 우룸인들을 그리스인들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며, "러시아 제국이 위대한 그리스의 영광을 다시 넣었다"고 자랑스러워했으나 다른 한편으로 후대 2차대전 당시 나치독일은 우룸인들을 "위대한 고트족들의 마지막 남은 후손"이라고 생각해서 크림 반도를 정복하는 즉시 이들을 해방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작 나치독일이 크림 반도를 점령할 당시 순혈 우룸인들은 한 명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에 고전 그리스어식 도시를 세우기도 했다. 예컨대, 마리우폴, 오데사 등등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들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근방에 세워진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어원을 따왔다.

2.4. 근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 반도의 그리스인들이 봉기하자 러시아 제국은 우크라이나 돈 카자크들을 이용하여 그리스 내 봉기군들을 지원하는 등 오스만 제국을 견제했다.

그리스는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뒤에 왕국이 되었지만, 우크라이나 일대는 러시아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 이어졌다.

2.5. 20세기

러시아 제국이 1918년에 혁명으로 몰락하고 소련이 생겨났다. 우크라이나 지역은 잠시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되었다가 소련과 폴란드에 의해 멸망되었고 우크라이나 서쪽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소련에 편입되어 소련의 공화국이 되었다. 그리스와의 관계는 소련 해체이전까지 이어지지 못했다가 91년에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된 뒤에 공식 수교했다.

2.6. 21세기

양국은 정교회를 믿는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내에도 그리스인 공동체가 존재한다.

로도스 섬 등 그리스의 인기 관광지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소매점이나 놀이시설 등에서 불가리아인이나 알바니아인 이외에도 우크라이나인 이주노동자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있는 흑해 그리스인우룸인 차별 문제를 그리스 언론에서 보도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22년 7월 16일, 그리스 북부에서 우크라이나 민간 화물기가 추락해 승무원 8명이 전원 사망했다.#

2024년 10월. 우크라이나와 그리스가 양자 안보협정을 맺었다#

3. 문화 교류

양국은 정교회를 믿고 있다는 공통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화교류가 일부 존재한다. 양국의 정교회 수장들이 교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리스에도 정착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4. 교통 교류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존재한다.

5. 대사관

키예프시에 주 우크라이나 그리스 대사관, 아테네시에 주 그리스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존재한다.

6. 관련 문서



[1] 헤로도토스는 자신의 역사서에서 스키타이인들과 그리스인들 사이의 교류에 관하여 스퀼레스 왕의 일화를 남긴 바 있다. 스퀼레스의 어머니는 그리스의 폴리스 출신이었으며 아들에게 그리스어를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다. 스퀼레스는 왕이 되고 나서도 그리스식 생활을 선호해서 올비아에 자주 찾아갔는데, 그것에서 신하들을 교외에 남겨둔 채 자기는 그리스인들과 어울려 그리스인으로 살았으며, 스키타이인들을 다스릴 때만 스키타이인들에게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스퀼레스가 올비아에 몰래 그리스인 부인을 따로 두고 별개의 가정을 차린 일은 물론 당대 그리스 하층민들의 컬트로 악명 높았던 디오니소스 신앙에 빠졌다는 점이 알려지자 분노한 스키타이인들은 스퀼레스의 동생을 대신 왕위에 올렸고, 스퀼레스는 고유의 관습을 저버렸다는(왕위 계승권을 꼬이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는 일화이다.[2] 페체네그인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스뱌토슬라프의 두개골을 가지고 술잔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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