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3-19 19:36:30

귀룡아



1. 개요2. 무공

1. 개요

풍종호의 무협소설 『투검지(鬪劍誌)』에 나오는 신주십삼파(神州十三派)인 원후파(元侯派)의 시조, 귀후(鬼侯)가 남긴 신검(神劍)이다. 그가 중원까지 도망친 독룡(毒龍)을 쫓아 원무산에서 베고, 전리품으로 이빨을 뽑아 금정(金精)과 백철(白鐵)을 섞어 만들어낸 검이 귀룡아(鬼龍牙)이다. 그렇지만 귀둔(鬼遁)을 사용할 줄 알았던 독룡은 절대 죽기 싫었는지 스스로를 전변(轉變)시켜 요룡(妖龍)이 된다. 이에 귀후는 더는 처단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아 태극혼돈진(太極混沌陣)으로 요룡을 봉인하며, 열쇠로 삼은 귀룡아는 양검(陽劍)과 음검(陰劍)으로 나눈다. 이 중 음검은 안 그래도 상황에 따라 검을 골라 쓰는 취향을 가져 여러 자루의 검을 지니고 다녔던 그가 밤이 되면 일단 제일 먼저 뽑았던 특별한 검이다.

후일 귀후는 거둔 후계자자 주법(呪法)에 능하지 못하자 요룡의 봉인을 계속 지키겠다는 임무의 증표로 양검만을 전한다. 이로써 양검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따라 대대로 원후파의 장문인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수신보검(守身寶劍)이 된다. 반면에 음검은 귀문(鬼門)의 인연을 따르도록 검총(劍塚)에 묻는다. 불행이 따르는 귀연(鬼緣)은 될 수 있으면, 잇지 않는 것이 좋기에 하늘에 뜻에 맡긴 것이다. 그리하여 무공만이 아닌 무술(巫術)에도 능한 후대의 계승자가 나타났을 때, 나뉜 전승을 합쳐 요룡을 완전히 처단할 수 있게 안배한다.

1,0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음검의 인연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원후파와 연관된 귀문의 인연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음검과 연을 맺기 이전에 영호가(令狐家)에 요청해 구음현공(九陰玄功)을 먼저 가르쳤었다. 이것이 잘못된 방법으로, 그리되면 음검은 그 귀문의 인연자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그릇됨은 태형도인(太衡道人)과 구귀(九鬼)를 따라 검총을 털러 온 금모하 때문에 드러난다. 몰래 도둑질하러 온 것이라 구음현공을 익힐 수 없었던 꼬맹이가 음검을 꺼내면서 순서가 틀렸음을 원후파의 장로들인 원후오귀(元侯五鬼)는 깨닫는다.

아무튼, 오래도록 묻혀있었던 귀룡아 음검은 꺼낼 당시만 해도 녹이 슬어 검게 물들고, 붉은 반점이 흘러내릴 듯이 찍힌 데다가 칼자루의 가죽은 곰팡이가 보송하게 튀어나올 만큼 낡디낡은 상태였다. 한쪽 칼날은 완전히 이가 나가서 뭉툭한 것이 톱니도 안 남은 꼴에, 다른 한쪽도 그냥 톱니처럼 듬성듬성한 것이 칼날이라 부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런 쓰레기나 다름없던 음검이 태형도인의 귀기(鬼氣)를 얻어 번뜩이는 금색의 칼로 바뀐다. 품은 선명한 백색의 칼날은 쇠라도 썩썩 갈라 버릴 듯하게, 탱탱하며 윤기가 흐르는 녹색 가죽은 미끈하여 얼굴이 어렴풋이 비칠 지경이었다.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검임을 알 수 있는 귀룡아 음검은 하필 귀후가 남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원후오귀로 인해 태형도인의 조각난 시신으로 인피갑(人皮匣)을 두르게 된다. 원래라면 금모하는 양염(陽炎)의 힘을 갖춰 낮을 꺼릴 필요가 없으며, 무림고수가 익힌 정종심법(正宗心法)의 영향에도 자유로워졌어야 하는 것을··· 잘못된 검갑을 갖추는 바람에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 더구나 금모하는 요룡과 싸우는 것보다 팽가(彭家)와 엮인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원무산으로 돌아와 영호인의 조언을 들은 그는 음편을 본래 있던 자리로 되돌린 다음, 자신만의 영검(靈劍)을 제작한다.[1]

2. 무공


[1] 영호인이 사려 깊게 전후 사정을 알려줬어도 금모하는 팽하려에 대한 적개심으로 양검까지 거두라는 그녀의 말을 거부한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옳았다. 금모하가 귀후의 전승을 완전히 이을 경우, 영귀도(靈鬼刀)를 가진 팽하려는 그보다 더 강해질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