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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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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1. 개요2. 규격3. 규격 외4. 역사 / 관련제도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external/www.graphic-design-employment.com/a4-paper-dimensions.jpg
국제표준화기구가 제정한 종이 표준규격(ISO 216)에 따른 210mm × 297mm 크기의 사무용지.[1]

복사/프린터 용지규격의 표준화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규격이지만, 하필 미국처럼 다른 규격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Letter(종이) 같은 규격과 종종 비교된다.

A4를 포함한 종이의 규격 전반에 대해서는 종이/규격 문서 참고.

2. 규격

3. 규격 외

4. 역사 / 관련제도

1922년 독일공업규격(DIN) 476호가 시초가 되어 사무용 용지규격 표준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 물론 그 때 갑자기 표준이라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예전부터 점차 발전시켜가며 사용해 온 규격이긴 했다. 용지 규격이 통일되면 회계장부 등을 쌓고 묶어서 보관할 때 매우 편리해지는 이점 등이 있고, 때마침 타자기가 보급/표준화 되던 시기였으므로(1910년 즈음) / 타자기에 들어가지 않는 종이는 외면받기 십상이었으므로, 1950년대 즈음까지 많은 국가에서 용지규격 표준화 정책을 도입하게 된다.

1938년 토너를 이용한 건식복사기가 발명되었고, 소위 제록스의 시대가 열린다. 원활한 "급지" 기능이 중요하므로, 이쯤되면 용지를 기계에 맞춰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1975년 A4용지를 비롯한 용지 규격이 ISO 표준으로 제정된다. 관련 자료는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신문, 출판서적, 포스터 등의 인쇄물에는 본 규격을 필히 따를 필요가 없다고 언급한다.[9]

대한민국에서의 과거 용지규격은 '전지(全紙)' 기반이었고, 공문서[10] 및 사무용지로는 '16절지(切紙)' ('전지(全紙)'를 4번 접은 사이즈)를 주로 사용하였다.[11] 그러다가 7~80년대 복사기가 수입/보급되면서 사무실/학교/문방구에서 '복사용지'로서의 A3/A4/B4 등 규격용지의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1985년에는 공문서 규격, KS규격(공업진흥청 규격), ISO 복사용지 규격 등의 혼용/규격난립에다가 종이아껴쓰기 사회분위기 때문에 종이규격 관련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90년대 들어서 각 가정에까지 잉크젯 프린터가 보급되어[12] A4규격은 사실상 표준용지로서의 지위를 완벽히 굳히게 된다.

대한민국 법률로도 A4 사용원칙이 법정되어 있다. 행정부에서는 대통령령인 「행정 효율과 협업 촉진에 관한 규정」 제7조 제6항(1991년 구 대통령령 제13390호 제10조 제4항)에 따라 정부 공문서의 원칙적인 규격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법부(대법원)에서도 민사소송규칙 제4조 제2항(2002년 구 대법원규칙 제1761호 제4조 제2항)에 따라 민간에서 작성하는 소송서류도 A4 용지에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5. 여담

6. 관련 문서



[1] 숫자를 30cm 같이 단순하게 맞추지 않은 이유는 가로세로 비율을 √2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 A0의 넓이를 1㎡로 맞추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2] ISO 216 B0를 예로 들면, 한 모서리가 심플하게 1m이고, 즉 1000mm × 1414mm 규격을 갖고 있다.[3] mm 단위 가로 세로 기준으로 계산하면 999,949mm^2. 다만 mm 이하의 오차는 절삭작업에 의해서도 발생하니 그 정도 오차는 살짝 무시할 수 있다.[4] [math(\displaystyle \frac{1000}{\sqrt[4]{2}} \approx 840.89642)]와 [math(1000 \sqrt[4]{2} \approx 1189.207115)]를 반올림한 값.[5] 길이에 [math(1:\sqrt{2})]를 그대로 쓸 수 없으므로, 반으로 자를 때 밀리미터 이하 소수점은 무시한다.[6] 특히, 대다수의 공공기관은 문서의 전산화 여부와 관계 없이 반드시 현물로 보유, 관리해야 하는 문서가 상당히 많은데, 이러한 문서를 모두 중질지로 바꿀 경우 서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문서 입출고 부담이 꽤나 경감된다.[7] A4를 달랬더니 '여긴 미국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경험담이 있다.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Legal 용지를 잘라서 쓰는 걸로 땜빵하는 교포들이 많다고.[8] A5용지 크기인 국판의 배라는 의미라고 한다.[9] 보통 이 경우에는 신문사·출판사·인쇄소의 장수만세 인쇄기 규격에 맞추어 제작된다.[10] 정부공문서규정 (각령 제137호, 1961. 9. 13., 제정)#[11] B계열 규격이라고도 하는데, B(JIS - Japanese Industrial Standards) 규격과 B(ISO) 규격은 다소 차이가 있다.[12] 이 말인 즉, 타자기에 먹지를 대고 복사하던가 등사기를 쓰던 시절은 옛적에 끝나고,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는 시대가 이미 열려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1984년 IBM PC AT, 1985년 인텔 80386, 1989년 인텔 80486 출시. 다만 한국과 시차가 꽤 크게 존재하므로, 한국기준 컴퓨터의 보급내력은 세운상가, 용산전자상가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1990년 한글과컴퓨터가 출범, 아래아한글이 보급되었다. (그 이전에도 1.0 또는 1.2 버전이 세운상가를 통해서 배포되었음) 다만, 컴퓨터 보급과 A4 사용에는 시차가 있는데, 컴퓨터가 한창 보급되던 시기에는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 사용이 주류였기에 80컬럼 혹은 132컬럼 전산용지가 주로 쓰였고, 현재의 A4 문서를 출력하는 잉크젯 프린터레이저 프린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13] 전지, 원지 등으로 불리며, 한 폭이 대략 1m 내외이다. 대자보, 벽보, 상소 등의 유물로 당시의 전지 규격을 알 수 있다.[14] 로열(Royal) 사이즈라고 한다. 현재의 로열 사이즈와는 다소 다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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