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90년 6월 29일 시작된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민들의 대화이다.
대통령에 따라 정식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진행하는 대통령도, 타운홀 미팅 등을 이용하여 시민들을 불러모아서 변칙적으로 진행하는 대통령도[1], 하지 않는 대통령[2]도 있었고 소통 능력을 평가받는 잣대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 시초가 제6공화국의 첫 정부인 노태우 정권 때부터 실시되다 보니 사실상 6공의 정부 운영 기조이기도 하다.
2. 목록
2.1. 노태우
국민과의 대화를 처음 시작한 사람으로 당시에는 군인 출신 대통령의 이미지를 벗고 시민들과 가깝다는 이미지를 생성하기 위하여 만들었으며 # 일회성 행사에 그치긴 했으나, 저런 국가 지도자와 국민간의 소통이라는 개념부터가 거의 없던 시대[3]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4]
2.2. 김영삼
단 한 번도 진행하지 않았으며, 대국민 소통 창구도 기껏해야 신년 기자회견뿐이었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문민정부는 김영삼의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히 폐쇄적인 국정운영 기조를 가졌다.[5]문민정부의 지지율은 집권 초반 높았던 지지율과는 달리 집권 2년차부터는 지지율이 낮아졌는데, 이런 국정운영 기조도 여기에 한 몫을 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대국민 소통에 있어선 군사정권과 별 차이가 없다는 실망감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2.3. 김대중
당선인일 때 진행한 국민과의 대화에는 배우 유동근이 출연했는데 당시 최고 화제작 용의 눈물에서 맡은 역할에 맞게 친인척 관리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2.4. 노무현
그도 역시 진행했다. 전임 김대중과는 달리 대화는 잘 열지 않았으나 기자회견은 11번이나 할 정도로 나름 개방적이었다. 임기 첫 해에는 평검사들과 처음으로 소통을 시도했고, 권위주의적이지 않던 본인의 성격과 맞게 영화배우[6], 대학생들이 많이 나왔고 본인이 중요하지 않은 대화에는 농담도 던질 정도로 굉장히 밝고 유쾌했다는 듯했다. 특히 2006년에는 사상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대국민 소통을 진행했으며 다음, 엠파스, 네이트, 파란, 야후코리아 등 5개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주관해줬다.
2.5.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
이명박 때도 진행되었다. 이때는 대통령과의 대화라고 하였는데[7], 국민의 입장으로 보면 ‘대통령과의 대화’로 칭하는 것이 옳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분위기 자체는 그냥저냥 적당히 밝고 적당히 진지했다. 이때 조국 전 서울대 교수가 바로 옆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주고받기도 했다. 상단의 사진에서 이명박 바로 옆 단상에 서 있는 사람이 조국이다.
취임 후 2008년 방일 중에, 이명박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똑같이 일본 국민과의 대화를 위해 일본 방송에 출연하였다. 이때 사회자는 직전 노 전 대통령의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사회를 본 '초난강'으로 잘 알려진 쿠사나기 츠요시였다. SBS
2.6. 박근혜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기에는 국민과의 대화가 열리지 않았다.2.7. 문재인: 국민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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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국민과의 대화/문재인#|]] 부분을 참고하십시오.2.8. 윤석열: 국정과제 점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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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s-|]]번 문단}}}{{{#!if 문단10 == null & 앵커10 != null
문서의 [[#|]] 부분}}}}}}2022년 12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라는 제목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참석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각 부처 관계자 50명, 각 부처에서 엄선한 국민 패널 100명이었다. 진행 방식이 국민 패널이 질문을 하면 대통령이나 부처 관계자가 답변을 하는 방식이기에 사실상 국민과의 대화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질문내용과 질문을 하는 사람은 각 부처에서 미리 엄선한 사람이다. 당초 100분 분량으로 계획했으나, 실제로는 160분 가량 진행되었다.
이 방송이 생방송으로 진행된 것은 맞지만, 완전 자유 문답식 토의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질문자의 질문 순서, 질문 내용, 답변 내용은 미리 정해져 있었으며, 본 방송 진행 전 실제 질문자와 윤석열 대통령 대역이 리허설을 진행한 영상이 YTN에 의해 올려졌다가 삭제된 바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한편 머니투데이의 관련 기사에서도 본래 "사전 리허설이 없었던 만큼 일부 국민패널들은 질문 도중 긴장해 말을 더듬는 장면도 여과없이 방영됐다."라고 썼으나, 이후 "일부 국민패널들은 질문 도중 긴장해 말을 더듬는 장면도 여과없이 방영됐다."로 수정 편집 되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서 사전에 리허설을 진행했다는 점, 정부 부처에서 패널을 엄선하여 패널구성 자체가 편파적이라는 지적과 너무 친정부스러운 내용만 담겨 있었다는 비판이 뉴시스 기사에서 지적되었다. 야권 관계자 역시 친정부 목소리만 수용했다고 비판하였다.
반면 조선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행사에 대해 적기에 실시된 대통령의 첫 대국민 직접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돌발적인 실수가 없었다며 최근 상승세를 탄 지지율 상승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패널 선정 단계부터 신경을 써야 하고 더욱더 적극적인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
시청률은 MBC 0.438%, SBS 0.641%, KBS 1TV 0.957%, JTBC 0.271%, MBN 0.529%, 채널A 0.575%, TV 조선 1.892%으로, TV조선을 제외한 모든 방송국에서 1% 아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2.9. 이재명: 지역별 타운홀 미팅
- 공식적으로 "국민과의 대화" 또는 "대통령과의 대화"라는 제하로 간담회가 열린 적은 없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간담회를 열 때는 중대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 그 지역에 가서 해당 지역 주민들을 불러모아서 간담회를 여는 타운홀 미팅 방식을 주로 쓰는 만큼, 특정 지역의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열리는 간담회는 넓은 의미에서의 국민과의 대화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지역별 타운홀 미팅에서의 패널들은 대통령이 시위하던 사람들을 들어와보라고 해서 들어간 제주항공 관련 유족들을 제외하면 SNS를 통해 공개선발한다.
- 다만 2025년 6월 25일, 광주권 시민들을 불러모은 뒤 "타운홀미팅"이라는 간담회를 연 적은 있었다. 호남 군공항 이전 관련 갈등을 주제로 열었지만 실상은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 등 지역 현안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 2025년 7월 4일, 충청권 시민들을 불러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여기서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의 태도로 인해 나름 호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토론 자체에 대해서는 지역 상황, 시민들의 민원을 들어줘야 할 자치단체장들이 불참한 것, 시민들의 토론 태도 및 내용과 관련하여 개인 민원실이 되었다,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을 대통령이 한다, 지자체장 및 시민들의 태도로 인해 또 다른 의미로 중앙집권제가 되었다는 혹평이 많았다. 이 혹평과 관련하여 풀뿌리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반성한다는 평가도 있었다.
- 2025년 7월 18일에는 부산광역시에서 부울경 시민들을 불러모아 타운홀 미팅을 개최하려고 했으나#, 2025년 여름 한반도 폭우 사태로 인해 취소되었다가# 7월 25일에 박형준 부산광역시장과 함께 다시 열리기로 했으며,# 해당 날짜에 미팅이 열렸다.
- 2025년 9월 12일에는 강원특별자치도에서 강원권 주민들을 불러모은 뒤 타운홀 미팅이 열렸다.#
3. 기타
- 비슷한 대국민 프로그램은 한국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정기적으로 여는[8] 국민과의 대화,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의 <안녕? 대통령> 등이 있다. 푸틴은 자신이 비판도 받아들이는 쿨한 인물이라는 점을 내세우기 위함이라지만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직설적이고 강한 비판도 등장하는 편이다.[9]
4. 참고 자료
5. 같이 보기
[1] 이재명. 광주권 시민들을 불러모아서 간담회를 연 것이 시초이며, 이후 충청권 시민들까지 불러모았다.[2] 김영삼, 박근혜. 한술 더 떠 박근혜는 기자회견조차 잘 열지 않고 대국민 담화를 주로 이용했다.[3]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거 운동을 할 때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으로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긴 있었다. 이 외에는 지방 순시 때 몰래 일반 버스에 타서 버스 승객들이랑 박정희 본인을 물고 뜯는다던지, 유신 전까지는 이렇게 특이한 행보를 간간히 보이곤 했다.[4] 다만 이승만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경무대에 국민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도 있었다.[5]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겠지만 김영삼은 민주화 운동을 한 시기 군사정권의 요주의 인물이었던지라 보안이 중요했기에 믿을 만한 일부 측근과 비밀리에 행동하는 스타일이 몸에 배었던 듯하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실시 등의 업적들을 이런 식으로 추진했다. 정부 공식 라인을 활용하기보단 신뢰할 수 있는 실세 몇 명과 철통 보안하에 일을 추진하고 마지막에 깜짝 공개하는 스타일. 신속하고 효율적이긴 했으나 지나치게 폐쇄적이었다.[6] 그 중 하나가 이준기. 2006년 인터넷 대화 '양극화, 함께 풀어갑시다' 때 스크린 쿼터제에 대한 질의응답을 진행했다.[7] 대통령과의 대화는 1990년에 노태우도 했었다.[8] 2001년부터 열었다.[9] 대표적으로 "러시아 헌법을 어겨가면서 대통령 직위를 두 번이나 해먹어 놓은 주제에.. 언제쯤 헌법을 준수할래?", "왜 아직도 테러리스트들한테 못 이기나요? 우리나라(러시아)는 힘이 세잖아요.(스테판, 당시 8세)", "연금이 9,000루블인데 집세가 7,000루블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푸틴 씨, 넌 진짜로 국민들이 이렇게 짜여진 질문으로 이루어진 서커스를 믿을 거라고 생각하니?", "메드베데프, 추바이스, 쿠드린 이 3명을 언제쯤 되어야 은퇴시킬 생각이야? 넌 걔네들이 안 지겹냐?", "총리(메드베데프)가 말하길 국가에 돈이 없다고 하던데 국가은행 총재는 돈이 많다는군요. 이놈들은 서로 딴 나라에 사는 겁니까?", "부패다, 부패다!, 부패했다!!" 등이 있다. 어느 정도 검열이 들어갔음에도 그 내용이 신랄한 것으로 보아 당시 러시아 정부의 부정부패가 상당히 심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