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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6:52:04

과학적 관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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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출현 배경3. 상세4. 의의5. 한계 및 개선안6. 관련 문서

1. 개요

Scientific Management

미국의 공학 기술자 프레더릭 테일러가 19세기 말부터 연구하고 발표한 이론. 발표 이후 1929년 대공황 이전까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조직 이론이자 생산관리 이론이다.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업 혁명[1]과 자연과학, 공학의 급진적인 발전, 엽관주의의 타파[2], 행정-경영의 일원화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론으로 과학적인 수치와 근거에 기초하여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이론이다. 생산과정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최소비용으로 최대 능률을 올리고자 하는 관리 이론. 여기에서 파생된 결과로는 프랭크 길브레스, 릴리안 길브레스 부부의 동작 연구(Motion Study)[3], 헨리 간트의 시간 연구(Time Study)와 간트 차트(Gantt Chart)[4], 그리고 독일의 전설적인 사회학자 막스 베버관료제가 있다. 프레더릭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론'이라는 이론을 창안하고 발전시켰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테일러 시스템(Taylor System), 혹은 아예 테일러리즘(Taylorism)이라고 하기도 한다.

사실상 현대 경영학산업공학의 효시가 된 이론이다. 과학적 관리론에 이론적 토대를 두고 객관적 기준에 의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에 따라 기업을 경영하는 방식이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까지 전파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영 방식이 제2차 세계 대전미국을 거치며[5]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여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정립되었다.

행정학에 적용할 경우 기업 경영과 공공 기관 행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공/사행정 일원론으로 축약된다. 기업 굴리는 거나 나라 굴리는 거나 굴리는 방식은 같다는 뜻. 또 공공 행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에서 정치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행정 이원론의 기반이 되는 이론이기도 하다.

2. 출현 배경

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 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제1차 산업 혁명, 그리고 19세기 말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제2차 산업 혁명을 거치며 영국, 미국, 독일 등 서구의 공업 국가들에서는 공장제 기계 공업을 통해 대량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근대 자본주의가 탄생하였다. 또한 당시 서구 사회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를 통해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적 사고관이 널리 퍼져있었고,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려는 연구와 시도도 역시 많았다.

19세기 말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철강 회사의 기술자인 프레더릭 테일러(Frederick Winslow Taylor)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한다. 자기가 일하던 공장의 노동자들이 자기가 맡은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고 반대로 최대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6] 이 때문에 공장의 생산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당시 공장의 관리직으로 승진했던 테일러는 비효율적인 경영 탓에 사회와 기업의 낭비가 극심하다고 생각했다. 또 노동자들이 열심히 근무하여 기업의 생산성이 좋아지면 재화를 더욱 값싸게 시장에 공급할 수 있고, 노동자들도 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7] 그래서 테일러는 기업을 생산적으로 경영할지,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효율적으로 일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고, '노동에 대해 객관적인 수치를 도입하여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테일러의 이러한 고민이 과학적 관리론이 탄생하는 원인이 되었다.

3. 상세

1911년 출간된 프레더릭 테일러의 저서 '과학적 관리론'(The Principles of Scientific Management)에 따르면 과학적 관리론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원칙이 있다.
First. They develop a science for each element of a man's work, which replaces the old rule-of-thumb[8] method.
첫째. 노동자의 작업의 모든 요소를 기존의 경험에 의존하는 방식 대신 과학적으로 판단할 것.

Second. They scientifically select and then train, teach, and develop the workman, whereas in the past he chose his own work and trained himself as best he could.
둘째. 업무에 맞는 적성을 가진 노동자를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훈련했던 기존 방식에서 과학적으로, 즉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선택해주고 훈련시키고 가르칠 것

Third. They heartily cooperate with the men so as to ensure all of the work being done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s of the science which has been developed.
셋째. 노동자들이 과학에 따른 원칙, 즉 객관적 지표를 바탕에 둔 원칙들을 따라 협동하여 업무를 완료할 수 있도록 할 것.

Fourth. There is an almost equal division of the work and the responsibility between the management and the workmen. The management take over all work for which they are better fitted than the workmen, while in the past almost all of the work and the greater part of the responsibility were thrown upon the men.
넷째. 관리자와 노동자가 경영에 있어 거의 같은 수준의 분업과 책임감을 가질 것. 예컨대, 임원과 같은 고위 경영진이더라도 적성에 맞는 업무라면 단순히 하위직 노동자, 중간관리자 등에 위임하지 말고 직접 맡아서 업무를 진행할 것.

또한 노동자들의 태업을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시하여, 생산량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봤으며, 이러한 형태의 임금 지급 형태가 과학적 관리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다. 당시 직관과 경험으로만 이루어지던 비효율적인 경영 방식을 객관적인 지표에 바탕을 둔 과학적 경영 방식으로 전환하고, 경영자와 노동자가 기업의 운영에 같은 책임을 지고 이익 역시 공평하게 나누며, 기업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업무를 찾아 효율적으로 업무를 해결하고, 노동의 비효율을 막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임금 상승과 같은 물질적 요인으로 노동자를 유인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4. 의의

과학적 관리론은 당시 서구 사회에 엄청난 변혁을 가져왔다. 수백 년 전부터 경영자의 직관이나 경험 따위의 주관적인 요소만으로 비효율적인 경영[9]을 하던 기업들이 객관적 수치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영을 시작함으로써, 비전문적 경영에 의한 손실이 상당히 상쇄되어 기업의 이윤 창출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10] 또 과학적 관리론에 영향을 받아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이어졌으며, 그 결과 산업공학경영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고, 산업공학과 경영학은 현대 사회의 필수적인 학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5. 한계 및 개선안

과학적 관리론은 당시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에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당시 기업가들은 과학적 관리론에서 노사 간의 합의와 협동을 중요시하는 부분이나, 경영진과 노동자가 기업의 운영에 똑같은 책임을 지고 그에 따른 기업의 이익 역시 공평하게 나눈다는 부분, 또 노동자들의 성과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부분 등 기업가에게 불리한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11]

기업가들은 또한 이 과학적 관리론을 통해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을 효율적이고 과학적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았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는 기업의 편이었으니. 테일러가 과학적 관리론에서 주장했던 중요한 내용들은 다 빼먹고 자기들에게 편하도록 곡해하여 받아들인 셈.

어쨌든 이렇게 왜곡된 과학적 관리론을 받아들인 경영자, 기업가들을 테일러리스트(Taylorist)라고 불렀고, 과학적 관리론은 노동자의 인격은 철저히 무시하고, 노동자를 단순한 숫자, 부품 따위로 바라보는 비인간적인 이론으로 매도당한다.[12]

과학적 관리론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힐 수 있는 것이 헨리 포드의 포디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이것 역시 인간을 대체가능한 부품, 그 노동자의 가족 및 인간관계는 그 부품의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봤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런 과학적 관리론의 악영향이 가장 잘 드러난 매체가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 정도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것은 당시 공장의 노동환경이다. 노동자들이 최대로 일할 수 있게 동선을 짜고, 휴식시간이나 식사시간 등은 최소로 줄인다. 예를 들면 화장실 이용 때문에 업무에서 빠졌다가 다시 복귀하는데 시간을 1분 30초를 줬다는 전설까지 도는게 이 방식이다.

결국 과학적 관리론은 조직의 운영과 관리에 있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능률을 향상시키기는 하였으나, 노동자를 단순히 경제적 욕구와 생리적 조건에 의하여 지배되는 기계적인 존재로만 보게 만드는 한계가 있었다. 흔히 경영학, 행정학에서 X이론으로 요약되는 인간형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환경과의 상호작용, 사회, 심리적 요인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소홀히 취급했다는 점을 비판받는다. 그 예시로 호손 효과, 동기 위생 이론을 꼽을 수 있다.

행정학에 있어서는, 공공기관의 효율 이상으로 정치라는 외부 항목이 필수적으로 개입되는데도 이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러한 과학적 관리론에 바탕을 둔 물질적, 기계적 경영 방식은 1929년 대공황을 기점으로 그 한계를 드러냈고, 이에 반발하여 인간의 감성적, 사회적 측면 등 비물질적 요소를 포함하여 생산성의 증대를 꾀하는 경영 이론인 인간관계론이 등장하게 된다. 다만 인간관계론 역시 모두 관리 방법 중심의 경영 이론으로 관리자 계층이 우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노동자를 '급여 인상'이라는 유형의 미끼 대신 '동기 부여'라는 새로운 무형의 미끼를 통해 관리자가 조종할 수 있는 생산 수단 쯤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인간관계론 역시 외부 환경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폐쇄적 관점을 견지하였다. 또한 조직 목표와 개인 목표는 모순되지 않고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과학적 관리론과 인간관계론 모두 기업이 잘 되어야 노동자도 잘 된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필요하다면 기업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비민주적인 생각의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6. 관련 문서


[1] 정확히는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하여 본격적인 대량 생산 시대를 연 제2차 산업 혁명.[2] 다시 말해 인맥이나 충성심같은 주관적인 요소보다 능력이라는 객관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사람을 쓰기 시작했다는 뜻.[3] 노동자의 작업 동작을 효율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생산 능률을 향상시키고자 실시한 연구이다. 쉽게 말해 가령 공장의 노동자가 볼트를 조인다던지, 접착제를 바른다던지 하는 등의 움직임(동작) 하나하나를 일일이 연구하여 시간을 줄이는 움직임을 개선하도록 연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길브란트 부부는 벽돌 공장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동작마다 하나하나 영상으로 촬영하고 동작마다 역시 하나하나 시간을 잼으로써, 가장 효율적인 동작을 찾아내고, 촬영한 영상을 노동자들의 교육 교재로 활용하였다.집념의 부부[4] 기업의 생산 계획에 따른 노동자의 작업 계획량과 실제 작업량을 막대그래프로 그림으로써, 노동자의 작업량을 관리, 통제하도록 고안된 차트이다. 예를 들면, 라디오 공장의 노동자가 8시간에 걸쳐 100대의 라디오를 만들어야 한다면, 먼저 예상되는 생산량(100대의 라디오), 시간(8시간)을 그래프로 그리고, 노동자가 실제로 일한 시간과 만든 라디오의 숫자를 그래프로 그려 넣음으로써 먼저 그린 그래프를 따라잡는 식이다. 이를 통해 관리자는 생산 시간과 생산량을 그래프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며, 효율적으로 사람을 굴릴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간트 차트는 1950년대까지 기업에서 널리 이용되었으며, 막대그래프를 통해 차트를 만들었기에 '막대그래프 차트'로도 불렸다.[5]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과학적 관리론을 바탕으로 한 초기 경영학을 통해 당시 적국이었던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등의 추축국들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군수물자를 생산하였다. 여기에 미국의 천연자원 및 인적자원과 같은 잠재력이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미국은 명실상부 소련, 영국, 중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최대 물주가 될 수 있었다. 덕분에 미국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6] 당시에는 노동자가 일한 양에 따라 급여를 받는 성과급 급여 제도가 보편적이었는데, 기업가들이 원가를 낮춘답시고 일을 열심히 하면 작업 수당을 깎아버렸다. 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할수록 손해를 보니 일을 하지 않으려 들었다.[7] 가령 구두 공장의 노동자들이 효율적으로 근무하면 구두의 생산 단가가 떨어져 가격 역시 하락하고, 1년에 구두를 한 번만 사서 신을 노동자가 더 싼값의 구두를 1년에 서너 켤레씩 살 수 있게 되어 기업가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8] '경험 법칙'이라는 뜻으로, 이제까지 경험에 따라 사리 판단을 하는 것을 말한다.[9] 이렇게 경영자의 주관에 의한 비효율적인 경영 방식을 배회 경영, 혹은 표류 경영(Drifting Management)라고 한다. 뚜렷한 원칙이 있는 경영이 아니라 단순히 경영자 마음 따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표류하듯 경영한다는 의미이다. 경영학이 고도화, 전문화된 지금 생각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효율의 극치이지만, 오늘날에도 의외로 이런 곳이 많다. 경영자라고 전부 경영학을 공부하진 않으니까.[10] 공산주의국가인 소련에서도 과학적 관리론은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과학적 관리론은 스탈린에 의한 소련의 공업화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제1차 5개년 계획의 실행에 필요한 공장은 미국인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그 공장을 돌리는 엔지니어 또한 미국인 엔지니어가 훈련시켰으며,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계획적 구식화라는 개념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병기의 생산에 활용되어 결과적으로 소련의 승리를 이끌었다.[11] 인센티브를 제공하긴 했다. 그러나,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들의 실적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것이어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가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실적이 높은 노동자를 기준으로 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대 노동자들은 인센티브 제도를 없느니만 못한 제도로 생각했다. 소련의 경우, 스탈린 정권 시기에 인센티브 제도를 시행하자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부활이라며 크게 반발한 일도 있었다. 벨 에포크 ~ 전간기 시대 노동자들이 인센티브 제도에 대해 반대하던 것이 이유가 없던 게 아닌 셈이다.[12] 블라디미르 레닌 역시 과학적 관리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처음 과학적 관리론을 접했을 때는 이러한 부작용을 보고 과학적 착취 체제(Scientific system of sweating)라고 언급하였다. 물론 그 이후에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논의되는 주제이며, 러시아로 확장되는 주제는 바로 미국인 엔지니어 '프레더릭 테일러'의 '체제'이다.' 라고 언급하며 그 영향력을 인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