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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41b4d><colcolor=#fff> 종류 | 교도소 |
운영주체 | 법무부 교정본부 대전지방교정청 |
개소 | 1908년 |
소장 | 김봉영 |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로 21-45 (금흥동) |
서신주소 | (32546) 충청남도 공주우체국 사서함 13호 |
연락처 | 041-851-3200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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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 1908년 04월 11일 - 공주감옥으로 개청
- 1914년 - 외감옥 부지에 이전 신축
- 1923년 05월 05일 - 공주형무소로 개칭
- 1950년 - 공주형무소 6.25 전쟁으로 전소
- 1952년 3월 - 공주형무소 가건물로 복구
- 1961년 12월 23일 - 공주형무소를 공주교도소로 개칭
- 1978년 09월 13일 - 현재 위치로 기관 이전
공주교도소의 역사는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주는 충청감영이 있던 곳으로 부설 감옥이 있었는데 공주 향옥이 그 당시 부설 감옥이었다.[1] 공주교도소의 시초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공주시 교동 3번지에 개청한 공주감옥이 그 시초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1923년 공주감옥을 공주형무소로 개칭하여 400~500명 정도를 수용하였고 치안유지법을 위반한 사람들과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투사 분들도 종종 수용되기도 했다. 이때 공주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수감자들은 그 당시 일본의 교정 목적이었던 작업을 통한 교육과 교화, 사회적응력 함양을 이유로 막대한 노동력 착취를 당하기도 했다.[2]
▲ 공주형무소 전경 |
부칙 <법률 제858호, 1961. 12. 23.>
①본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②단기4242년 10월 18일 칙령 제243호 조선총독부감옥관제는 이를 폐지한다.
③본법시행 당시의 교도소, 소년교도소는 본법에 의하여 설치된 것으로 간주한다.
④본법시행 당시의 타법령중의 형무소, 소년형무소 및 형무관은 본법에 의한 교도소, 소년교도소 및 교도관으로 각각 설치, 개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①본법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②단기4242년 10월 18일 칙령 제243호 조선총독부감옥관제는 이를 폐지한다.
③본법시행 당시의 교도소, 소년교도소는 본법에 의하여 설치된 것으로 간주한다.
④본법시행 당시의 타법령중의 형무소, 소년형무소 및 형무관은 본법에 의한 교도소, 소년교도소 및 교도관으로 각각 설치, 개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공주교도소로 기관명을 개칭한 후에 1978년 09월 13일 낡은 옛공주형무소 시설에서 지금의 위치로 기관을 이전하여 지금까지 이르렀다.
3. 조직 및 수용구분
- 총무과
- 보안과
- 직업훈련과
- 사회복귀과
- 복지과
- 의료과
4. 주요 수감자
- 유관순 - 공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다 붙잡혀 공주형무소에 투옥되었다.
- 오동진 - 독립운동을 하다 옛 동료 김종원(金宗源)의 밀고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44년 공주형무소로 이감되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 김복한 - 파리 강화 회의에 보내는 독립청원서 작성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1919년 07월 29일 징역 1년을 선고받아 공주감옥에 투옥되었다.
- 황석영
5. 사건 사고
- 1947년 08월 31일 공주형무소에서 수감자 200여명이 탈옥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당시 수감중이던 수감자 200여명이 장총 10여점과 탄약들을 강탈하고 탈옥하였으며, 이에 충청남도는 계엄을 선포하고 탈옥 죄수를 은닉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같은 날 오전 07시에 탈옥 죄수 23명을 검거하였고, 이후 10일 만에 모든 죄수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 1950년 07월 09일 공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정치사상범들과 보도연맹원 수감자들이 왕촌 살구쟁이에서 400~700명이 집단으로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형된 사람 중 여순 사건과 관련된 수감자들이 대다수였으며, 당시 시체를 묻으려 미리 파 놓은 구덩이가 시체로 덮여 부족해지자 처형당할 사람들에게 구덩이를 파게 시킨 후 그 구덩이 앞에서 처형을 다시 시작했다.
- 2021년 공주교도소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다.[3]
6. 여담
- 정신질환수용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교도소이다.
- 공주IC 바로 앞이 위치해있어 교도소 중에서는 접근성이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