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김대승 감독이 연출을 맡은 로드무비 형식의 한국 영화. 유지태(최현우 역), 김지수(서민주 역), 엄지원(윤세진 역) 주연으로 2006년 10월 26일 개봉하였다.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피해자들과 주변인들이 사고의 상처로부터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2. 시놉시스
사법시험을 패스하고 1995년 검찰청 사법 연수생으로 일하고 있던 현우는 어리버리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가진 인물로, 대학시절 연애로 오랫동안 사귀어 약혼까지 마친 방송사 PD인 민주와 결혼을 앞두고 즐겁고 바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6월 29일 오후 밀려드는 업무와 회의에 퇴근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검찰청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민주가 안쓰러워 근처의 백화점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보낸다. 하지만 그 백화점은 다름 아닌 삼풍백화점이었고, 약속 장소로 가는 현우의 두 눈 앞에서 백화점 건물이 무너지며 그 자리에서 민주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내게 된다.10년 후인 2005년 중견 검사가 된 현우는 죽은 민주를 잊지 못하고 독신으로만 살아오면서 매우 차갑고 냉혈한 성격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날, 예비 장인이었던 약혼녀 민주의 아버지가 그에게 찾아와 딸이 남긴 유품인 다이어리를 건네주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민주가 결혼 후 신혼여행을 위해 만든 여행 계획서였다. 생전에 여행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하는 방송국 PD로 국내 곳곳의 여행지를 둘러본 민주가,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 생각했던 여행지들을 엄선하여 현우와의 신혼여행 코스로 만든 것이다.
그가 맡았던 한양글로벌 분양사기 사건의 배후가 정치권과 관련되면서 외부로부터 압력이 들어와 난항에 빠지자, 담당 부장검사는 현우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사건에서 손을 떼게 하며 잠시 근신해 있기를 권한다. 그동안 민주를 잊기 위해 쉼없이 검사 일만 해 온 현우는 휴식 차원에서 그리운 연인 민주와의 추억을 곱씹어 보고자, 지난번에 받았던 다이어리에 적힌 신혼여행 계획서를 따라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게 된다.
홀어머니에 철부지 동생과 살고 있는 아가씨 세진. 밤에 불을 끄고 잠을 자지 못하고 취업을 위해 면접장에 가지만 문이 쾅 닫히는 소리에 놀라 숨이 턱 막혀 결국 면접을 포기하고 뛰쳐나가는 그녀의 특이한 행동에서 정신적으로 무엇인가 큰 상처가 있음을 암시한다.[1] 면접장에서 놀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세진은 여행을 떠나는데 여행하는 동안 현우와 자꾸 길에서 마주치고, 현우 앞에서 민주처럼 행동하며 심지어는 다이어리에 적힌 민주의 문장들을 그대로 따라하기까지 한다. 과연 세진이란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3. 특징
남녀의 애정을 다루는 멜로물의 느낌이 강하지만 사실 이 영화의 공식적인 장르는 주인공들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주요 설정으로 작용하는 로드 무비다. 임권택 감독의 문하생으로 8년간 연출부 생활을 거치며 대한민국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로케이션 전문가가 된 김대승 감독이 우이도 사구, 소쇄원, 불영사, 내연산 12폭포 등 국내 여행 명소들을 영화 촬영지로 선정하여 가을의 풍경에 잘 어울리게끔 멋지게 촬영하면서, 개봉 당시 가을로 여행지를 테마로 한 국내 여행이 꽤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여행 중에 주인공인 엄지원이 옛날 왕복 2차선 시절의 7번 국도를 정확히 묘사한 명대사는 그야말로 압권이다."사실 동해바다와 소나무들이 있어서 7번 국도가 아름답다고들 하지만요, 저런 어촌마을이 있고 그 안에 저렇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있어 이 길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이 길을 가다가 만나는 마을들은 꼭 한 번씩 이름을 불러줘야 할 것 같아요. 병곡, 후포, 평해, 월송, 덕산..."
영화 상의 주연은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이지만, 유지태와 엄지원이 실질적인 주연이라 봐도 된다. 김지수가 맡은 민주라는 캐릭터는 극중 초반부에서 백화점 붕괴사고로 사망하는 설정이라서 김지수가 실제 영화에서 나머지 두 배우들보다 모습을 드러내는 빈도는 적은 편이며, 대신에 극중 현우와 세진이 여행을 하는 여러 장면들과 맞물린 회상씬에서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거나, 다이어리에 썼던 민주의 글을 김지수가 내레이션으로 읽는 목소리 출연 형식으로 자주 나오게 된다.특히 엄지원이 맡은 의문의 여인 세진의 캐릭터는 김대승 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주요설정인 죽은 연인의 환생과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 개봉 전에 세진의 정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많았다. 물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번지점프를 하다와는 다른 설정이다.
영화 접속, 클래식,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의 OST를 담당했던 조영욱이 이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아 OST를 제작하였으며, OST 앨범 수록곡들 가운데 모차르트, 헨델, 차이코프스키 등의 유명 클래식 음악가들의 명곡들도 담겨져 있어 음악을 통해 차분하고 수수한 가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 밖에 이 영화를 뮤직비디오로 사용한 비공식 OST로 김현철과 거미가 듀엣으로 부른 '우리 이제 어떻게 하나요'와 위의 유튜브 영상으로도 감상 할 수 있는 김연우와 차지연[2]이 함께 부른 'When You Cry, When You Smile'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라는 굵직한 소재가 영화 시나리오의 핵심이긴 하지만, 시놉시스에서 보듯이 사실 이 영화는 붕괴사고의 재연드라마 성격으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기에 관련 장면은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에 두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붕괴씬은 수 십년이 지난 시기에 보아도 오싹할 정도로 생각보다 괜찮게 재현했지만, 실제 백화점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어 반영 오류 문제도 있고 제작비 문제로 세트 구성도 단촐한 편이라 일부러 주방장 몸에 불을 붙이는 등의 시각적 효과를 가미했다고 김대승 감독이 코멘트로 밝히기도 했다. 위의 유튜브 영상은 건물 외부와 내부 등 두 파트로 나눠진 붕괴씬을 적절히 혼합하여 편집한 영상으로, 실제 영화의 영상보다 붕괴 소요 시간이 배로 길어지다 보니 댓글들 중에 실제로 20초만에 붕괴했는데 영상에서 붕괴 시간이 왜 이리 오래 걸리냐고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백화점 붕괴씬과 구조현장 모습의 촬영을 위해 총 1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미니어처 제작, 실사 촬영, 컴퓨터 그래픽 등의 특수기법을 사용하였다. 미니어쳐는 실제 삼풍백화점과 같이 지상 5층, 지하 4층의 중앙홀로 이어진 2개동 건물의 외관을 가진 1/5 크기로 2개월에 걸쳐 제작되었으며, 무너져 내린 백화점의 폐허 현장은 부산에서 3000㎡가 넘는 공간과 지하 6m 깊이의 거대한 현장을 약 3개월에 걸쳐 만들었다. 무너진 백화점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사용된 구조물의 잔해만 2.5톤짜리 덤프트럭으로 30대 분량이었고,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위해 촬영현장 배경에 배치해놓은 12m 규모의 컨테이너 박스가 38대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였다.
정식 개봉 전에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영화로 선정되어 상영되는 등 작품성은 나름 갖춘 것으로 보이나, 개봉 후 최종 관객수로 621,602명을 기록하며 흥행에는 완전 실패했다.
4. 등장인물
- 주연
유지태 - 최현우 역
김지수 - 서민주 역
엄지원 - 윤세진 역 - 조연
최종원 - 민주 부 역
박승태 - 민주 모 역
임종윤 - 부장검사 역
정진오 - 황 선배 역
방은미 - 세진 모 역
차운용 - 세훈 역
이봉규 - 불영사 스님 역 - 우정 출연
박철민 - 박 수사관 역
5. 촬영지
- 신안 우이도 사구
정선 동강
담양 소쇄원
포항 내연산 12폭포
울진 월송정
울진 불영사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 영화에서는 자연휴식년제 중이라 가지 못했다.
정선 증산역(민둥산역)
정선 아우라지역
평창 월정사 전나무숲길
영월 선돌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6. 여담
2006년 10월 9일 영화 제작 보고회에서 주연배우 유지태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게 안타깝다"고 발언을 하여 상당한 화제가 되었는데, 이로 인해 삼풍백화점 자리에 들어선 대상 아크로비스타 입주자들이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등 다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사실 유지태는 작품활동을 하면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관련해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되었는데, 사고 현장에 추모비나 추모공원조차 하나 없고 그 자리에 엉뚱한 건물이 들어서 있는 것이 말이 안된다 생각했던 듯. 사실 이것은 우리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도 유지태와 마찬가지인 입장인데, 유명 연예인이 공식석상에서 대놓고 말한게 해당 건물 입주자들 귀에는 상당히 거슬렸던 것이다.
특이하게 개봉 3일 전인 2006년 10월 23일에 영화의 시나리오를 기초로 한 동명의 소설이 먼저 발간되기도 했다. 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민주가 남긴 다이어리를 따라 떠난 여정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현우와 세진, 두 주인공의 각각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어 현우의 시점만을 중심으로 그린 영화와 차별된다. 영화 속 7번 국도를 따라가는 여행의 다양한 정보를 담은 '현우와 민주의 7일간의 신혼여행'이라는 여행 가이드북을 선물로 증정하여 나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제목도 가을로이고 주요 배경이 되는 계절도 가을인데, 실제 촬영일정상 불가피하게 겨울에 촬영한 장면도 꽤 되는 바람에 촬영시 배경 구성에도 애로점이 많았다고 한다. 등산로 촬영 장면의 경우 스텝들이 앙상한 나뭇가지에 단풍잎을 붙이거나, 절벽 끝에 스텝이 매달려 단풍잎이 달린 소품 나뭇가지를 들고 있기도 했을 정도며, 아우라지역 촬영분의 경우 촬영 당시 함박눈이 내린 뒤라 플랫폼에 눈이 수북히 쌓여 있어서 전 스탭들이 제설작업을 깔끔히 하고서 촬영해야 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붕괴사고의 생존자로 등장하는 윤세진이 여행을 통해 참사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신경정신학적으로 분석한 영상도 있다.
여행 계획서로 사용된 다이어리는 영화 미술팀에서 직접 수작업으로 제작한 것으로 그 속에 그려진 그림지도가 상당히 이쁘게 잘 그려져서 이를 컨셉으로 시중 문구점에 유사한 상품들이 판매되기도 했다.
제작 과정에서 상당히 문제가 많아서 감독이 마음 고생이 심했던 걸로도 유명하다.
[1]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부상자나 생존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PTSD로 불리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실제 사례들로, 세진이 붕괴사고의 생존자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2] 2011년 나는 가수다에서 임재범의 첫 경연곡인 '빈잔'의 무대에서 멋진 피쳐링으로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배우 및 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