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T. 바넘 P. T. Barnum | |
본명 | <colbgcolor=#ffffff,#1f2023>Phineas Taylor Barnum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 |
출생 | 1810년 7월 5일 |
코네티컷 베델 | |
사망 | 1891년 4월 7일 (향년 80세) |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배우자 | 채리티 헬렛 바넘(1829~1873) 낸시 바넘(1874~1891) |
신장 | 188cm |
직업 | 사업가, 정치인 |
정당 | (1824~1854) (1854~1891) |
서명 |
[clearfix]
1. 개요
The Man, the Myth, the Legend
사나이이자 신화, 그리고 전설
당대에 바넘을 수식하는 대표적인 수식어.
미국의 서커스 단장 겸 흥행업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We've got something for everyone.)"란 문구를 사용했고, 이 말이 바넘 효과의 기본 명제와 잘 맞아떨어져서 그의 이름이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나이이자 신화, 그리고 전설
당대에 바넘을 수식하는 대표적인 수식어.
그가 1881년에 제임스 앤서니 배일리(James Anthony Bailey)와 협업하여 탄생한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는 1907년, 미국 내 유명한 서커스들 중 하나인 링링 브로스 서커스(Ringling Bros. Circus)에게 인수되는데, 이렇게 재탄생한 링링 브로스 앤 바넘 앤 베일리(Ringling Bros. and Barnum & Bailey)는 1960년대까지 큰 전성기를 누렸으며, 2017년 5월 21일을 끝으로 해체했다.
노예제 폐지, 의료 서비스 비영리화를 지지하는 등 진보적인 면모도 있었으나, 흥행을 위해 사기를 치거나 사기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등 속물에 가까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말로는 흑인과 장애인 차별에 반대하면서도 후술한 서커스에서 장애인을 희화화하는 프릭쇼를 대중화시킨 일이나, 80 넘은 흑인 여성을 서커스를 위해 학대하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인간의 복잡한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다.[1]
2. 유명한 일화
샴쌍둥이와 계약해 서커스를 했는데, 이들이 창과 앵 벙커(Chang, Eng Bunker, 1811.5.11.~1874.1.17.) 형제다.[2] 이들은 팔과 다리는 따로였으나 몸통이 붙어 있었다. 18세 때 태국에서 로버트 헌터라는 스코틀랜드 상인에 의해 부모로부터 팔려왔다. 그들의 부모는 이 때 헌터로부터 자식들을 어떻게 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 때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실제로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이 되자 이들을 지금으로 말하면 소속사에서 놔줬다.[3] 이후 두 형제는 완전한 자유인으로서 활동하다가, 돈이 필요해지자 다시 바넘과 일한다는 선택을 했다. 말년에 맹렬한 노예 해방 운동가가 된 바넘과 달리 이들은 은퇴하고 노예를 구입하여 농장을 경영하는 노예주가 되었다. 나중에 이들이 죽을 때에 창은 "잠자리에 들고 싶지 않아"라고, 앵은 창이 죽은 것을 보고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군,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했다. 앵은 창이 죽고 3시간 후에 죽었다. 사후 창과 앵의 시신이 부검되었는데 오직 간만 공유하고 있었다. 간 이외의 나머지 모든 신체는 정상인과 동일했다.챔프의 목에 $50,000의 현상금을 걸어 그게 유명해진 계기를 만들었다. 챔프의 시체라도 가지고 오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었지만 끝내 그 누구도 잡지 못했다.
조작으로 유명하다. 즉, 희대의 사기꾼. 이 양반이 한 말이 "대중은 속기 위해 태어난다."[4] 바넘은 이 비슷한 취지의 말을 많이 했는데 "사람들은 기만 당하기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대부분의 시간 동안 속일 수 있다.", "미국 대중의 취향을 과소평가해서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진실에 관심이 없고 그게 거짓이라도 재미 있기만 하면 쉽게 넘어가려 든다는 말.
석고로 카디프의 거인을 만들어 사기 전시를 했고, 평범한 흑인 할머니 조이스 헤스를 조지 워싱턴의 유모라고 사기를 치다가 관심이 시들해지자 익명으로 "그 여자는 인조인간이다!"라고 언론에 제보해서 큰 돈을 벌었다.
서커스 코끼리 점보가 죽자 아기 코끼리를 구하려다 죽었다며 스토리를 만들어 언론 플레이로 떼돈을 번 적이 있으며, 원숭이 상반신에다 연어 몸통을 붙여놓고 인어라고 속인 적도 있다. 이름은 피지의 인어.
전시회의 안내판에다 'Egress'라고 써 놓자 사람들은 또 다른 전시품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전시장 출구였다. 'Exit'에 비해 잘 쓰이지 않는 단어였기에 속아버린 것. 덕분에 출구로 나온 사람들은 전시장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입장권을 한 번 더 끊어야 했다. 여러 모로 사기꾼 기질이 넘치던 사람.
3. 사기꾼과 흥행업자 사이에서
초창기 바넘은 80대의 나이에 거의 전신마비 상태에 가깝던 흑인 여성 조이스 헤스를 160살이 넘은 사람으로 조지 워싱턴의 유모(wet nurse)였다고 사기를 치며 하루 10시간 동안 일을 시켰고[5] 사기 행각이 시들해지자 헤스가 인조인간이라고 언론에 익명 제보를 해 또 떼돈을 벌었다. 결국 사망한 그녀의 몸을 해부하여 전시한 일례가 있다. NBC 뉴스는 바넘이 헤스를 더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기 위해 술에 약한 그녀를 억지로 취하게 만들어 전시했다고도 비판한다. '톰 섬'으로 유명한 소인증 찰스 스트라튼의 경우 5살에 바넘의 쇼에 입단했는데, 쇼를 위해 어린 나이에 담배와 음주까지 했다는 말도 있다.또한 기형아나 장애인들을 전시하는 'freak show', 'side show' 등은 그 역사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이를 전국적인 쇼로 만들어 본격 흥행시킨 것 또한 바넘이었다.
코끼리 점보가 죽자 미화 스토리를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번에도 점보의 시체를 박제하여 전시한 건 덤. 또한 실제보다 크게 그려진 홍보지를 뿌려서 과장 광고를 했으며, 덕분에 당시에 점보는 거대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상술했듯 원숭이 미라에 마른 물고기를 갖다붙여 인어라고 거짓말을 치고 박물관 홍보에 톡톡히 써먹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고립된 장애인들을 데려다가 철장에 가둬 쇼를 하고, 남미 등 원주민을 납치해다가 쇼를 한 후 인기가 떨어지면 팔아치우거나 후원자들에게 줘버렸다는 것은 거짓 소문이다. 바넘은 너무 바빠서 납치하러 다닐 틈도 없었다. 위에 언급한 조이스 헤스의 경우 돈을 주고 사온 것은 맞다.[6] 예를 들어 샴 쌍둥이도 바넘이 태국에서 부모를 속이거나 해서 사온 걸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계약서를 쓰고 월급도 제대로 지급했으며 계약 기간이 끝나자 풀어주었다. 이들은 은퇴하여 미국 시민권을 얻고 노예 농장을 운영하다 두 형제 합쳐 10명이 넘는 자녀의 대학 수업료를 마련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자 다시 쇼비지니스계로 복귀했는데 이때 바넘과 다시 계약한 것이다. 미성년자를 데려올 경우에는 데려다 뭘 할 건지 부모에게 설명한 후 동의를 얻고 데려왔고, 단원들과 수익도 제대로 분배했으며 계약서도 꼬박꼬박 썼다. 심지어 불공정 계약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계약을 하였다. 심지어 상술한 가짜 인어를 홍보에 써먹을 때도 인어 원주인과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따박따박 지급했다.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서커스 단원들은 1856년 그가 부도했을 때도 그의 곁에 남았으며 상술했던 찰스 스트라튼 같은 경우 바넘이 어려울 때 금전적 지원을 해주며 사업 파트너가 되기도 했다. 스트라튼은 전국 장기 공연으로 엄청난 히트를 쳤고, 링컨 대통령이나 빅토리아 여왕에게 초청 받기도 했으며 전국적 스타가 되어 부유하게 살았다. 그가 45세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자 바넘이 동상을 세워주기도 한다. 바넘이 장애인들을 돈벌이에 이용하는 인간이라는 것은 물론 그들도 잘 알고 있었으나, 어찌되었든 멸시 받고 천대 받던 그들을 세상으로 끌어내준 인물인 것도 사실이었다. 돈만 되면 막장 짓도 잘만 하던 것과는 별개로 단원들에게 대우는 잘 해준 편. 단원들 입장에서는 애초부터 돈도 못 받고 조롱당하던 것을 떼돈을 받고 광대짓할때만 조롱받는 일로 바꿔놨으니 바넘에게 호감이 생기는게 이상하지 않다. 어차피 당시 사지 멀쩡한 하층민이 직장에서 받는 취급도 똑같이 끔찍했기도 하고 최소한 돈은 안떼먹으니 차라리 낫다고 느꼈을수도 있다.
바넘은 미국 남부의 노예 제도를 비판하며 에이브러햄 링컨의 공화당 정부를 적극 지지했다. 원래 민주당원이었으나 민주당이 노예제를 지지하는 캔사스 네브라스카 법에 찬성하자 탈당하고 노예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으로 갈아탄다. 당시는 1854년으로 아직 미국 전역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되기 전이었다. 자신의 극장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연극으로 상연하거나 노예 제도를 풍자하는 쇼를 공연하여 노예 제도에 대한 북부인의 의식 전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남북 전쟁이 벌어지자 남부 연맹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가 아내 옷을 입고 도주하다 체포되었다는 허위 전단을 대대적으로 남부 지역에 뿌려 남부군에 심리적 타격을 주는 등 북군의 승리에도 기여했다. 장기간의 내전으로 상처 받은 미국인들은 바넘의 쇼를 보며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철도에도 상당히 관심이 있었는데, 이는 철도를 통한 빠른 이동이 자신의 쇼 사업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철도에도 많은 투자를 하였으며 막대한 이익을 누리게 된다.[7]
돈벌이에 장애인을 이용하고 흑인 여성의 공개 부검을 추진한 행적이 있으면서도 말년에는 정치에 투신하여 코네티컷 주의 브리지포트 시장이 되었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노예 해방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최초의 비영리 병원인 브리지포트 병원을 세웠고 각종 교육 기관을 설립하였으며 대학 설립 재단, 자연사 박물관 등의 단체에 여러 차례 기부했다.[8] 이러한 바넘의 업적을 기리는 동상도 존재한다. 물론 말년에도 계속한 서커스 사업의 동물 학대로 비판 받기도 하나, 바넘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당시엔 동물권이라는 개념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던 시기라 그걸 가지고 문제를 삼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출처. 이러한 양면적인 행적 때문에 여러 모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4. 매체에서
주로 돈을 밝히는 탐욕적인 부자 이미지로 그려지며 특별한 물건이나 존재 등을 보면 "이런 건 바넘의 박물관에나 어울리지"라는 언급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1980년 초연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바넘>이 P. T. 바넘의 생애를 바탕으로 한 극이다. 한국에선 2018년 <바넘:위대한 쇼맨>이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 외계인 삐에로에서 "세상에는 바보들이 많다." 는 말은 남긴 사람으로 나온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바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 위대한 쇼맨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바넘의 전기격 영화이다. 휴 잭맨[9]이 주역을 연기한다. 아무래도 가족 영화라는 특성상 타 매체들과는 달리 부정적인 부분은 대폭 축소되거나 밝게 묘사되고, 그가 승승장구하는 부분만 부각돼서 나와 현실의 인물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우며, 미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출 사기를 치는 장면이나 돈만을 좇다 가족과 단원들을 소홀히 하는 장면 등 부정적인 묘사가 없는 건 아니나 영화의 연출로 인해 전형적인 가족 영화의 위기 전개 요소로만 취급될 뿐이다. 영화의 평론가 평을 깎아 먹은 주 원인 중 하나. 재미있는 것은 영화에서 바넘의 쇼가 그러했듯 영화 역시 눈과 귀가 황홀해지는 노래와 퍼포먼스에 일반 대중들이 호평하고, 꽤나 민감한 주제에 실존 인물을 왜곡(미화)했다는 점에서 비평가들의 혹평이 교차하고 있다는 점이다.
5. 기타
[1]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American slave owners (미국인 노예 주인)으로 분류하고 있다.[2] 샴쌍둥이 문서에 들어가면 첫 번째로 나오는 사진이 이 형제다.[3] 즉 현대의 계약처럼 추가로 연장하든가 아니면 놓아준다고 생각하면 쉽다. 사실 현재라면 그게 당연한 것이긴 한데 당시에는 부모에 의해 팔려왔으면 사실상 서커스에서 노예처럼 평생 일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넘은 이들과 계약했을 때 제대로 계약서를 썼고 또한 계약서대로 이행한 것이다.[4] "호구는 1분에 한 명씩 태어난다(There's a sucker born every minute)"라는 말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으며 이 말의 출처는 불분명하다. #[5] 사실 1835년 기준 80살만 되어도 조지 워싱턴과 일생이 겹친다.[6] 바넘의 단원이었던 애니 존스를 어느 골상학자가 납치했다가 붙잡힌 적은 있었다. 아마 이런 사실이 와전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존스가 한 번 납치 당했던 이후에는 항상 그녀의 어머니가 옆에 붙어있었다고 한다.[7] 실제로 철도 사업은 상당히 성공하여 미국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에 일조했다.[8] 상술한 인어도 박물관 홍보로 써먹었던 걸 보면 원래 박물관 사업 등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9] 바넘과 키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