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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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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Police Department

1. 개요2. 역사3. 조직4. 계급5. 션 콜리어 순경 순직 사건6. 장비

1. 개요

파일:MIT PD Annual Rep_0829-19_0.jpg

신고 번호: 911[1]

MIT 경찰대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경찰기관이다.[2] '경찰대학'이 아니다. 주된 임무는 학교 시설 경비와 학생, 교직원들의 안전 유지이며, 경우에 따라 EMS와 합동으로, 혹은 단독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관할은 당연히 MIT 캠퍼스지만 그렇다고 캠퍼스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는 것은 아니며, 캠브리지 시경찰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인원은 2011년 기준 경찰관 51명, 행정직원 3명.

2. 역사

패치에서는 MIT의 설립 연도인 1861년을 기념하고 있지만 MIT 경찰대가 창설된 건 1957년이다. 캠퍼스 경찰대 창설 전에는 하비 버스틴이라는 경비원 한 명이 홀로 순찰을 돌았으나, 1957년 1월 캠퍼스에 도둑이 들끓자 버스틴은 혼자서 어떻게 학교 전체를 지키냐며 보안 부서를 증원해 달라고 학교 측에 탄원서를 넣었다. 학교 측은 버스틴의 제안을 받아들여 MIT 경찰대를 창설했다. 도둑 문제가 심각하기도 했거니와 캠브리지 시경이 학생들과 여러가지 이유로 갈등을 빚었기 때문에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받지 않으려는 의도도 반영되어 있었다.

학교 측은 버스틴에게 경찰관 선발 감독권을 주었고, 19명의 경찰관이 선발되어 1957년 8월부터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최초의 경찰대장은 매사추세츠 주경찰에서 근무하던 노먼 시드니 경감(captain)이 보임되었으며 9월 MIT 경찰대는 정식으로 출범했다.

MIT 경찰관들은 창설 직후부터 캠브리지 시경 경찰관들과 동일한 권한을 가졌으며 무기도 휴대할 수 있었다. 보통 새로운 경찰기관이 생기면 기존에 있던, 밥그릇을 빼앗기게 생긴 경찰의 견제를 받기 마련인데 MIT 경찰이 처음부터 보장을 잘 받은 걸 보면, 캠브리지시가 하버드MIT로 먹고 사는 교육도시이기 때문에 대학의 입김이 반발 세력보다 강했던 모양이다.

최초의 경찰관들은 대부분 지역 경찰청이나 군에서 이직한 이들이었다. 그들 입장에서야 전쟁터, 우범지대보단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게 훨씬 삶의 질이 높을 테니 망설임 없이 지원을 했을 듯하다.

1960년 학교 측은 보안 부서 내의 일반 경비원들과 경찰대를 분리하였다. 경찰대는 인사담당실 소속으로 이관되었고 하비 버스틴을 포함한 일반 경비원들은 그대로 후원연구부 보안실 소속으로 잔류하고 있었다. 그러다 1969년 경찰대는 다시 운영부학장실로 이관되는데, 이때 대폭 증원을 받아 시드니 경찰대장 외 경감 1명, 경위(Lieutenant) 1명, 경사(Sergeant) 4명, 순경(Patrolman) 35명, 행정직원 2명으로 규모가 늘어나고 무전기를 비롯한 통신장비도 지급받게 되었다.

1973년 최초의 경찰대장 노먼 시드니가 퇴직하고 제임스 올리베리가 2대 경찰대장이 되었는데, 올리베리는 본격적으로 지역사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MIT 주니어 비버 프로그램과 경찰관의 야간 동행 등 범죄 예방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능동적인 범죄 퇴치에 나섰다. 1974년에는 정식으로 구급차를 도입해[3] 의료 서비스 제공을 시작했으며 경찰관들 또한 응급구조 훈련을 전부 이수하였다.

1980년에는 ICAP라는 새로운 범죄 예방 프로그램이 시행되어 경찰견이 도입되었으며 특수활동부도 설치되면서 기존의 경비원과 별 차이가 없는 모습에서 제대로 된 경찰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1982년에는 인근 경찰청들과의 원활한 공조를 위해 보스턴 지역 경찰 긴급 무전망에도 가입하면서 보스턴 경찰청이나 하버드 경찰대와도 빠른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경찰 기록의 디지털화도 이 시기에 첫선을 보였다. 또 신입생들에게 범죄 예방 홍보 자료를 배부하여 캠퍼스 경찰대의 본분도 충족해나갔다.

올리베리 대장은 1987년 11월 30일 퇴직하고 앤 글래빈 경감이 3대 경찰대장이자 최초의 여성 경찰대장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글래빈 대장의 임기부터 MIT 경찰관들은 학교 소속을 넘어 대학이 위치한 미들섹스 카운티의 보안관 사무소 직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의미이냐면, MIT 교정을 벗어나더라도 미들섹스 내에 있다면 여전히 경찰 활동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1년에는 성범죄가 MIT 경찰의 집중적인 타겟이 되었으며 새로운 범죄 예방 프로그램들이 시작되었다. 교지에 경찰 기록들을 공개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또 자전거 순찰대를 설치, 8명의 경찰관을 투입하여 기존 도보 순찰 지역을 담당했다. 자전거 순찰대가 꽤 성공적인 근무를 이어나가자 95년에는 오토바이 순찰대도 설치되었다.

1998년에는 위기대응부가 경찰대 내에 설치되었다. 이들의 설립 목적은 학교 내에서의 강력 범죄 방지로, 무장괴한의 침입이나 학생, 교직원의 총기 난사 방지도 이들의 소관이었다.

2000년에는 윌라드 볼터 순경이 디자인한 제복이 채택되면서 창설 이래 최초로 근무복이 변경되었고 폴 발렌티노 순경이 디자인한 패치 역시 적용되기 시작했다.

글래빈 대장은 MIT 공공안전부장으로 승진하면서 2001년 경찰대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녀의 자리는 시드니처럼 매사추세츠 주경찰에서 이직한 존 디파바가 맡게 되었다. 그러나 9.11 테러의 발생으로 이직이 지연되면서 그는 12월이 되어서야 MIT로 올 수 있었다. 디파바 대장은 조직 개편을 시행해 학교 순찰, 지역사회 순찰, 인적계발 3개의 부서를 설치했으며 부서장들에 경위들을 임명했다. 기동사령부도 설치되면서 자전거 / 오토바이 순찰대는 이곳으로 이관되었고, 대니얼 코스타 경위의 지휘 아래 경찰의장대 또한 조직되었다.

2006년 경찰대 본부는 현재의 위치로 이사했고 스트래턴 학생회관에 출장소도 설치되면서 MIT 경찰대는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3. 조직

4.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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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aptain_insignia_gold_svg.png
파일:US-O1_insignia_svg.png
파일:Massacusetts_State_Police_Sergeant_Stripes.png
없음

5. 션 콜리어 순경 순직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sean collier.jpg
고향 소머빌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모습.
파일:20130424174105-2_0.jpg
동료 경찰관들에 의해 운구되는 그의 관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직후, 션 콜리어 순경이 근무 도중 폭탄 테러범인 차르나예프 형제와 교전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MIT 경찰대 최초의 순직자라 경찰대 내부는 물론 대학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테러가 발생하고 3일 뒤인 2013년 4월 18일, FBI는 범인 식별에 난항을 겪자 CCTV에 찍힌 테러범들의 사진을 대중에 공개하여 제보를 받으려 하였다. 이에 범인들은 보스턴을 벗어나려 했으나 그 전에 화력을 강화하기 위해 총기를 구하려 시도했고, 대범하게도 경찰관을 죽이고 그의 총을 빼앗기로 하였다.

18일 1025시, 27살의 소머빌 출신 순경 션 콜리어는 스타타 센터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순찰차를 몰고 출동하려다 차르나예프 형제의 기습 총격을 받았다. 형제는 그의 권총을 빼앗으려 했지만 콜리어 순경은 총을 붙잡은 채 끝까지 버텼고 결국 5발의 총을 더 맞게 된다. 콜리어의 예상 외로 강한 저항에 당황한 테러범들은 그의 건 홀스터의 잠금장치를 풀지 못해 끝내 총을 탈취하지 못한 채 도주해버리고 만다.

콜리어 순경은 동료 경찰관이 발견한 직후 보스턴매사추세츠 종합병원으로 급히 이송되었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고향 소머빌을 떠나 MIT 경찰대에 입사한 지 불과 4년 만에 닥친 비극이었다.

일주일 뒤에 열린 그의 장례식은 뉴잉글랜드 지역은 물론 캐나다에서까지 찾아온 경찰관 수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MIT 교내에서 치러졌으며 학교 측은 11월 25일 그를 기리기 위해 이름을 딴 션 콜리어 메달을 제정하기도 했다. MIT 경찰대와 별개의 기관인 캠브리지 경찰청은 순직 경찰관 명단에 그의 이름도 함께 올려주었다. MIT 교내의 추모공간은 2년 뒤인 2015년 4월 정식으로 설치되었으며, 콜리어가 순직한 곳의 광장 이름은 캠브리지 시장 주도 하에 그의 이름을 따 개명되었고, 콜리어의 가족과 동료들은 그의 이름을 딴 장학금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음 해 보스턴 마라톤에 참여하기까지 했다. 단 한 명의 공무원 순직자도 허투루 떠나보내지 않고 감사할 줄 아는 미국 사회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패트리어트 데이도 콜리어 순경의 마지막을 묘사하고 있다.

6. 장비

파일:cruiserandfire.jpg
캠브리지 소방청 소방차와 MIT 경찰대 순찰차

[1] 단, 휴대폰으로 전화할 경우 케임브리지 시경이나 메사추세츠 주경찰에 우선적으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사실 그렇지 않아도 그냥 시경에 떠넘겨버리는 경우가 많다.(...)[2] 미국의 경찰제도는 기본적으로 지방자치 체제라 주마다 다른데, 주 안에서도 지역마다 강한 지역색을 띈다. 학교경찰의 경우도 아예 그 일대 치안을 담당하는 정식 경찰서인 경우, 인근 경찰서에서 파견나온 경찰이 근무하는 경우, 이름만 경찰인 사설경비원까지 다양하다. 사설경비인 경우도 무시 못 하는게, 일부 사설경비대는 경찰이 올 때 까지 테러범등에 대한 초동조치로 활동하기 때문에 화기로 무장하고 자체적인 SWAT 팀까지 있다. 경찰서와 업무협약을 맺은 곳도 있고, 전직 경찰들이 편한직장 찾아서 옮겨가는 자리인 경우도 많아 사실상 전현직들간 커넥션이 있다고 봐도 좋다.[3] 기존까진 순찰차를 구급차 겸용으로 썼다.[4] MIT 고위 교직원들과, 학교를 방문하는 주요 인사들에 대한 경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