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현역 시절 때 탔었던 전차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현역 시절 때 탔던 그 퇴역 차량를 미국으로 이주한 뒤 자비로 구매해서 자신이 이용하고 있으며, 마약을 끊는 중인 비행 청소년들이 캠페인을 잘 이수하고 있으면 상으로 자신의 M47 패튼에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캠페인을 했다.
1950년대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을 통해 319량이 공여되었다. 냉전 시절 공산권 국가에 미제 장비가 공여된 첫 사례로, 이는 소련이 비동맹 노선을 겪고 있던 유고를 유고슬라비아-헝가리 국경을 통해 침공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이중 30량을 에티오피아에 지원하였다.
대한민국 국군은 1956년에 처음 1개 대대분을 인도받아 운용하기 시작, 1960년대 중반에 미군이 주한미군의 전차를 M48A2C로 대체하면서 이들이 이때까지 운용하던 잉여 M47[1]을 수령하여 총 531대를 수령, 그 전까지 운용하던 M4A3E8의 대체로서 군단 직할 전차대대의 주력 장비로 사용했으며 M36 GMC를 이 때 퇴역시켰다.
1975년 간첩선 한척이 동해 인근으로 남하하자, 이때 해군, 해경과 육상 해안포대가 놓친 간첩선을 임관 1년차였던 오정석 중장(당시 소위)이 직접조준사격으로 격침시키는 전과를 세우기도 하였다.
이어진 M48의 도입 이후에도 계속 현역을 지켰고, 큰 개수를 받지도 않았다. 단지 M48의 주포를 90mm M41,E1에서 105mm M68로 개량하면서 남은 잉여 90mm M41형 포를 M47 패튼에게 달아준 건 있다.
대한민국 국군의 운용 경험에 따르면 지속사격 정도의 발사속도이면 조준선 유지도 크게 어려운 건 아니고 엔진 마력에 여유가 있어 M48보다 진동과 소음이 적고 승차감도 좋았다고 한다. 타고 모는 사람에겐 전투실 내가 좁은 K-1 전차보다도 편한 전차였다고 한다.[2]
2003년 하반기에도 몇몇 보병사단 산하 전차중대에서는 현역이었으며, 2006년경에야 모두 퇴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대에도 서북도서방위사령부의 해안포나 전방 고정포로는 계속 운용되고 있다.[3] 하지만 이 또한 너무 오래되었다는 지적을 받아서 2017년부터 70mm 유도로켓인 비궁으로 전면대체되었다.
미확인된 이야기에 따르면 M47 이후의 퇴역전차들은 전시 치장물자로서 폐기되지 않은 채 대부분 보관되고 있다고 하며, 약 100여대로 추정된다.
2010년 후반기 DMZ 전방 모 보병부대에 고정포로 배치되어 있던걸 끌어내려선 중장비로 즉석에서 회썰듯 수십조각으로 썰어내 고철로 팔아버린 슬픈 역사가 있으며 이시기를 기준으로 치장장비로 있던 M47 전기 폐처리 조치되었다. 이후 고철로 팔리지 않은 전차는 구난 전차의 훈련용 교보재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이 국방tv에 잡혔다.'#' 대한민국 국군이 보유한 메티스M이나 현궁, BGM-71 TOW 같은 대전차 미사일 등의 시험 사격이나 훈련 등에 사용 되는 전차 표적들 대부분이 M47이다. 그 외에도, 군 생활하다 한번쯤 파주에 있는 전차 사격장 사로 중 가장 구석진 곳이나 커브길 주변 등등의 사로로 지나가 본 사람이 있다면 알겠지만 수풀에 완전히 가려 보이지도 않는 안 쓰는 사로를 보면 이 녀석이나 46 또는 48로 추정되는 패튼 시리즈 전차가 수풀 속 사로 안에 쓸쓸히 버려진 채 궁둥이와 옆 모습만 살짝 보이고 처박혀 있는 경우도 볼수있다. 이것들은 아마 부품으로 쓸 거 다 떼가고 남은 것만 둘 곳이 없어서 거기다 놓은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의 군사박물관이나 전적지 같은 곳에 가면 퇴역한 단차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당연히 무기로 사용할 수 없게 엔진과 주포 폐쇄기 등은 제외한 비무장 상태로 전시되었다. 그나마 재도장을 하는 등 관리를 하는 외부와 달리 내부는 관리를 안 해서 시뻘겋게 녹슬어 있는 경우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포탑의 해치가 열리는 것들이 몇 대 있어서, 놀러 온 초등생들이 전쟁놀이 한다고 매달리기도 한다. 육군훈련소와 제25보병사단 신교대 안에 90mm M36 사양, 제28보병사단 본부 입구와 모 대대 안, 제20기계화보병사단 본부대 앞에 90mm M41 사양으로 한 대씩 전시되어 있다. 수도권 기준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으면 용산구의 전쟁기념관이나 도봉구의 창포원 내에 있는 평화문화진지,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등지에 가면 된다. 하지만 평화문화진지에 있는 차량은 고증 도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재도장되었다.
구미대학교 소장 M47 패튼
구미대학교 캠퍼스 내의 특수건설기계과 건물 앞에 M47 한 대가 전시되어 있는데, 단순 모형이 아닌 실제로 국군에서 운용한 전차이다. 왜 대학교 캠퍼스에 전차가 있냐면, 특수건설기계과가 대한민국 국방부와 업무 협약된 학과이기 때문. 사진의 M47 패튼 옆에도 M113 장갑차와 KM9 제독차가 전시되어 있다.
원래 자위대는 M47 패튼을 주력 전차로 채용할 계획이었고, 시험용 1대를 들여와서 실험을 했는데 당시 일본의 교통 인프라로는 M47이 너무 무겁고, 일본의 도로는 커녕 철도로도 수송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탈락시키고 대한민국에서 운용하던 M36 전차 기반으로 일본에서 운용하기 용이한 전차를 자체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과물이 바로 61식 전차다.[5]
이라크가 노획한 60여 대를 인수받았다.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의 M48 패튼 및 기타 이스라엘군 기갑과 웨스트뱅크 공방전에서 치열한 교전을 치른 경험이 있다.[6] 그 가운데 몇몇은 M-51한테 격파되었다. 다만 그래도 다른 아랍 국가들보다는 제대로 싸워보기라도 한 케이스인지라 이집트, 시리아 등의 형제 아랍국가들보다야 대내외적으로 나은 대접을 받았다.
총 1347대를 도입했다. 1974년 키프로스 침공 당시 쓰였고 1대가 키프로스 측에 노획당했다. 이후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대 PKK 전에 투입되었으며 90년대 이후에는 M48 패튼 및 M60 전차로 대체되었다. 현재 이스탄불 군사 박물관에 보관 및 전시된 1대와 키프로스 전쟁 당시 손실한 1대를 빼고 전량 매각 및 해체되었다.
소말리아 연방정부의 붕괴 이전 소말리아 국민군이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25대를 구매했다. 소말리아 내전[7] 당시 1대 빼고 전부 손실했으며 그 1대는 미국이 회수했다.
[1] 주한미군은 미군에서도 비교적 장비 개선이 늦는 편이어서, M47을 1956년까지, M48A2C를 1974년까지, M48A5를 1980년대 후반까지 운용했다.[2] 적절한 임무만 부여된다는 조건하에서 전차병에게 전차의 공/방 성능이상으로 신뢰도와 안락함 또한 중요한 요소다. 2차대전 소련군 전차 승무원들이 수치상으로는 T-34 전차와 큰 차이가 없는 M4 셔먼을 선호한 것도 이런 이유다. 반면 셔먼으로 동체급의 4호 전차뿐 아니라 6호 전차 티거나 5호 전차 판터, 티거 2같은 체급 차이가 큰 전차들까지 상대해야했던 미군 전차 승무원들의 입장에서는 셔먼의 성능에 불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3] 북한의 해안포와 마찬가지로 갱도 진지나 벙커에서 운용된다.[4] 전방사수를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5] 61식의 경우 중량이 철도수송등의 이유로 35톤으로 제한되었는데, 이마저도 처음엔 25톤급으로 상정했다가 설계상의 문제와 현역 자위관들의 반대로 올린것이다. 25톤으로는 장갑이 지나치게 얇아지는데다가 당시 탑재할 계획이었던 90mm 주포의 반동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철도수송을 고려한건 61식까지의 이야기고, 74식 전차부터는 철도수송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6] 그 당시 요르단 군도 M48을 보유하고 있어 이스라엘군 소속 M48과 요르단 군 소속 M48끼리 맞붙은 경우도 존재한다. 다만 이스라엘군은 주로 이집트 방면에 M48을 배치하고 요르단, 시리아 방면에는 센추리온 전차를 주로 배치해서 위와 같이 양 측의 M48끼리 교전한 경우는 드문 편이다.[7] 1980년대 말의 내전부터의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