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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 FIFA 월드컵 서독/조별 리그 1조&2조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1974 FIFA 월드컵 서독
1974 FIFA 월드컵 서독
조별 라운드 1조, 2조 3조, 4조
결승 라운드 8강 이후

1. 16강 1조
1.1. 1경기 서독 1 vs 0 칠레1.2. 2경기 동독 2 vs 0 호주1.3. 3경기 호주 0 vs 3 서독1.4. 4경기 칠레 1 vs 1 동독1.5. 5경기 칠레 0 vs 0 호주1.6. 6경기 동독 1 vs 0 서독1.7. 1조 총평
2. 16강 2조
2.1. 1경기 브라질 0 vs 0 유고슬라비아2.2. 2경기 자이르 0 vs 2 스코틀랜드2.3. 3경기 유고슬라비아 9 vs 0 자이르2.4. 4경기 스코틀랜드 0 vs 0 브라질2.5. 5경기 스코틀랜드 1 vs 1 유고슬라비아2.6. 6경기 자이르 0 vs 3 브라질2.7. 2조 총평

[clearfix]

1. 16강 1조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파일:동독 국기.svg 동독 3 2 1 0 4 1 +3 5
2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3 2 0 1 4 1 +3 4
3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3 0 2 1 1 2 -1 2
4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3 0 1 2 0 5 -5 1

1.1. 1경기 서독 1 vs 0 칠레

경기장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14일 16:00
(1974년 6월 15일 00:00)
국 가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득 점 1 0
득점자 브라이트너(18')

1.2. 2경기 동독 2 vs 0 호주

경기장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함부르크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14일 19:30
(1970년 6월 15일 03:30)
국 가 파일:동독 국기.svg 동독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득 점 2 0
득점자 쿠란(53')(자책)
슈트라이히(72')

1.3. 3경기 호주 0 vs 3 서독

경기장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함부르크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18일 16:00
(1970년 6월 19일 00:00)
국 가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득 점 0 3
득점자 오베라트(12')
쿨만(34')
뮐러(53')

1.4. 4경기 칠레 1 vs 1 동독

경기장 올림피아슈타디온
서베를린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18일 19:30
(1970년 6월 19일 03:30)
국 가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파일:동독 국기.svg 동독
득 점 1 1
득점자 아후마다(69') 호프만(55')

1.5. 5경기 칠레 0 vs 0 호주

경기장 올림피아슈타디온
서베를린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22일 16:00
(1974년 6월 23일 00:00)
국 가 파일:칠레 국기.svg 칠레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득 점 0 0
득점자

1.6. 6경기 동독 1 vs 0 서독

경기장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함부르크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22일 19:30
(1970년 6월 23일 03:30)
국 가 파일:동독 국기.svg 동독 파일:독일 국기.svg 서독
득 점 1 0
득점자 슈파르바서(77')

1.7. 1조 총평

톱시드는 개최국이자 이 대회 우승팀 서독. 사상 첫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서독의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2년 전 뮌헨 올림픽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바람에 안전 문제에 엄청난 신경을 써야만 했고, 선수들과 주민들 또한 이번에도 사고가 터지지 않을까 상당히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물론 분위기만 차분했을 뿐 월드컵 우승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는 높았다. 1970년대 들어서며 분데스리가의 위상이 상승하고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등의 특급 선수들이 상당한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에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후보는 단연 서독이었고 조에서도 무조건 1위를 차지할 거라고들 생각했다. 변수가 있다면 사실상 홈팀인 동독의 존재였는데, 사상 첫 월드컵에 출전한게 분단된 서독이었고 설상가상 같은 조에 편성되어 마지막 경기를 치르도록 되어 있었다. 당연히 축구팬을 떠나 많은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경기였다. 일단 첫 상대는 서독 vs 칠레, 동독 vs 호주. 남미의 강호 칠레를 상대로 1:0의 신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고 동독 또한 후반에 2골을 몰아넣으며[7]호주를 상대로 사상 첫 승리를 거머쥐었다. 두 번째 경기인 서독 vs 호주전은 서독의 3:0 승. 이로써 서독은 8강을 일찍 확정지었고, 전력에 큰 차이가 없었던 동독과 칠레는 난타전을 벌인 끝에 1:1로 무재배를 했다. 마지막 3차전에서는 칠레와 호주의 경기가 먼저 치러졌다. 첫 본선진출한 호주를 상대로 0:0으로 경기를 끝내는 바람에 2무 1패를 기록, 사실상 칠레의 8강 진출은 실패한 반면, 호주는 남미 칠레를 상대로 월드컵 첫 클린시트 승점 1점을 획득하며, 월드컵 14위를 기록하였다. 가장 기대되었던 함부르크에서의 서독 더비에서는 의외로 동독이 후반 32분 슈파바서가 결승골을 터뜨리며 서독을 주저앉히며 1위로 직행, 결승전과 더불어 최고의 이변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대회 직후 헬무트 쇤 감독은 우승을 했음에도 동독전 패배에 대해 사죄하고 해명하는 해프닝까지 겪었을정도. 다만 서독이 2차 리그에서 쉬운 상대를 만나기 위해서 동독과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2차 리그에서 맞붙은 상대를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조작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조편성이 여기만 너무 꿀조이고 나머지 조는 전부 죽음의 조가 되도록 편성했다. 일단 오세아니아[8]라는, 축구 최고의 불모지에서 온 호주, 1962년 월드컵 말고는 이렇다 할 성적을 못내고 있던 칠레와 같은 조가 되었다. 다른 조는 디팬딩 챔피언인 브라질, 유럽의 강호 유고슬라비아, 다크호스 스코틀랜드가 묶인 조, 월드컵 우승 2번의 우루과이, 유럽의 다크호스 네덜란드와 불가리아, 1958년에 결승에 오른 적이 있는 스웨덴이 묶인 조, 역시 월드컵 우승 2번의 이탈리아와 첫 월드컵을 준우승으로 시작한 강호 아르헨티나, 당대의 유럽의 강호 폴란드가 묶인 조로 동독과 서독이 속한 조만 대진표가 매우 널럴했고 나머지는 전부 죽음의 조였다.

2. 16강 2조

순위 국가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3 1 2 0 10 1 +9 4
2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3 1 2 0 3 0 +3 4
3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3 1 2 0 3 1 +2 4
4 파일:자이르 국기.svg 자이르 3 0 0 3 0 14 -14 0

2.1. 1경기 브라질 0 vs 0 유고슬라비아

경기장 발트슈타디온
프랑크푸르트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13일 17:00
(1974년 6월 14일 01:00)
국 가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득 점 0 0
득점자

2.2. 2경기 자이르 0 vs 2 스코틀랜드

경기장 베스트팔렌슈타디온
도르트문트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14일 19:30
(1974년 6월 15일 03:30)
국 가 파일:자이르 국기.svg 자이르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득 점 0 2
득점자 로리머(26')
조던(34')

2.3. 3경기 유고슬라비아 9 vs 0 자이르

경기장 파르크슈타디온
겔젠키르헨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18일 19:30
(1974년 6월 19일 03:30)
국 가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파일:자이르 국기.svg 자이르
득 점 9 0
득점자 바예비치(8'),(30'),(81')
자이치(14')
슈랴크(18')
카탈린스키(22')
보기체비치(35')
오블라크(61')
페트코비치(65')

2.4. 4경기 스코틀랜드 0 vs 0 브라질

경기장 발트슈타디온
프랑크푸르트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18일 19:30
(1974년 6월 19일 03:30)
국 가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득 점 0 0
득점자

2.5. 5경기 스코틀랜드 1 vs 1 유고슬라비아

경기장 발트슈타디온
프랑크푸르트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22일 16:00
(1974년 6월 23일 00:00)
국 가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스코틀랜드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득 점 1 1
득점자 조던(88') 카라시(81')

2.6. 6경기 자이르 0 vs 3 브라질

경기장 파르크슈타디온
겔젠키르헨 - 서독
경기일[A] 1974년 6월 22일 16:00
(1974년 6월 23일 00:00)
국 가 파일:자이르 국기.svg 자이르 파일:브라질 국기.svg 브라질
득 점 0 3
득점자 자이르지뉴(12')
히벨리누(66')
바우두미루(79')

2.7. 2조 총평

16강 조별리그 2조 톱시드는 브라질. 전 대회에서 압도적인 화력으로 세 번째 줄리메컵을 쥐면서 월드컵의 판도까지 바꾸어 놓았는데, 일단 줄리메컵의 영구 소유권을 가져간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 월드컵 개막전까지 개최국에서 전 대회 우승팀으로 바뀌게 했다. 그래서 이 대회부터는 개최국 서독이 아닌 전 대회 우승팀 브라질이 개막전을 치르게 되었는데[15], 확실히 4년 전보다는 전력이 많이 하락한 팀이었다.

일단 펠레제르송이 은퇴했고, 지난 대회에서 주장으로서 정신적 지주였던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토히스도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했고, 결정적으로 펠레의 뒤를 이을 재목이었던 토스탕망막박리에 걸려 한창 절정인 나이인 26세 때 은퇴를 선언한 상태였다. 그래도 자이르지뉴-히벨리누가 아직 건재했고, 감독 또한 선수로서는 16년 전12년 전에, 감독으로서는 4년 전 우승컵을 들어올린 전설의 마리우 자갈루였다. 펠레와 제르송, 아우베르투, 그리고 토스탕의 공백을 얼마나 잘 채워줄 건가가 이번 대회의 핵심이었는데... 이럴 수가! 개막전부터 무재배를 시전했다.

유고슬라비아와의 개막전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0:0으로 끝내버린 것. 유고가 아무리 유럽의 강호라지만 우승을 노릴 만한 전력은 아니었고, 브라질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팀이었다. 결과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4년 전의 화려한 플레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화려한 개인기와 끈끈한 팀웍으로 상대 수비를 농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전과는 달리, 오히려 브라질이 수비에 치중하면서 전과 같은 개인기도 팀워크도 보여주지 않았다. 영원한 우승 후보의 자존심은 벌써 금이 가기 시작하고, 이 와중에 옆동네에서 스코틀랜드가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게 2:0으로 승리하며 월드컵 사상 첫 승을 쏘아올리며 조 1위를 차지한다.

두 번째 경기, 유고슬라비아 vs 자이르 전에서는 무려 9:0이란 압도적인 스코어가 나왔다. 여기에도 비화가 있는데 당시 자이르의 '독재자'가 대표팀의 참가금을 자이르 정부가 전액 회수한다고 현지 체육부 장관을 통해 선수단에게 통보한 것이다. 당연히 선수단의 사기는 급락했고[16] 이런 상황이었으니 당연히 자이르는 유고슬라비아에 탈탈 털리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다.[17] 게다가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경기 시작 18분만에 세 골이 먹히자 골키퍼까지 교체하는 병크를 저지른다. 수비가 안 돼서 골이 먹힌 건데 주전을 빼 버리니 오히려 6골이 더 먹혀 9:0이라는 굴욕의 점수차가 나오게 된 것. 개막전에서 브라질과 비기고 아무리 승점 자판기라지만 자이르를 9:0으로 떡바른 유고슬라비아는 8강 능선에 거의 다가섰고, 브라질은 스코틀랜드를 상대로도 0:0으로 무재배하며 또 다시 굴욕을 당한다.

마지막 경기에서야 자이르지뉴, 히벨리누, 바우두미루의 득점으로 자이르를 3:0으로 눌렀지만, 세계 최강이라던 브라질이 듣도 보도 못한 팀에 겨우 3:0으로 이기고 나머지 경기에서 무득점을 했다.[18] 3득점 무실점, 한 경기당 겨우 한 골로 8강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세계 최강 브라질에는 어울리지 않은 결과였고 덩달아 전 세계 언론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는다. 유고슬라비아 vs 스코틀랜드 전은 1:1 무재배. 자이르를 9:0으로 바른 유고슬라비아가 1위로, 겨우 2:0으로 이긴 스코틀랜드는 1승 2무를 기록하고도 골득실에 밀려 월드컵 9위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이 대회에서 유일하게 패하지 않은 나라가 된건 덤. 이 대회를 시작으로 5회 연속 월드컵에 올라온 스코틀랜드지만, 갈 때마다 골득실에 밀려 단 한 번도 2라운드 진출을 해 보지 못하는 징그러운 징크스 또한 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30년 후 유로 2004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7] 첫 골은 자책골이었다.[8]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시아로 이적한 것은 2006년 월드컵 이후였으며 그 이전에는 오세아니아로서 출전했다.[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15]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이어진다.[16] 선수단은 기권패까지 고려했지만 이것조차 독재자 모부투가 본인이 경기를 보고 싶다고 막았다.[17] 여담으로 국내에서는 유고슬라비아인 비디니치 감독이 유고슬라비아에게 져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감독을 경질하고 현지에 있던 체육부 장관을 감독 대행으로 앉혀 이 사단이 났다는 루머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모든 경기를 비디니치 감독이 지휘했다.#[18] 덤으로, 이 경기에서 자이르 선수인 음웨푸 일룽가는 브라질이 프리킥을 차려던 도중에 갑자기 벽에서 나와서 공을 밖으로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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