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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 1946년 월드컵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에서도 일부 경기 개최 | }}}}}}}}}}}} |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 ||
Coupe du Monde 1938 1938 FIFA World Cup France™ | ||
대회 기간 | 1938년 6월 4일 ~ 1938년 6월 19일 | |
개최국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
유치 확정일 | 1936년 8월 13일 | |
공인구 | 알렌 (Allen) | |
본선 진출팀 | 16개팀[1] | |
대회 결과 | ||
우승 | 이탈리아 (두 번째 우승) | |
준우승 | 헝가리 | |
3위 | 브라질 | |
4위 | 스웨덴 | |
수상 | ||
득점왕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레오니다스 다시우바 | |
이전·이후 대회 | ||
1934년 이탈리아 | 1938년 프랑스 | 1950년 브라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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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8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제3회 FIFA 월드컵. 제2차 세계 대전이 열리기 전에 개최된 마지막 대회이다.지역 예선에는 34개의 팀이 참가하여 14개의 팀이 본선에 진출하였고, 대회의 방식은 이전 대회와 마찬가지로 조별 리그 없이 녹아웃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렸다. 이탈리아가 결승전에서 헝가리를 4대2로 물리치고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 이어 사상 첫 월드컵 2연패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2. 개최지 선정
1936년 8월 13일 베를린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프랑스는 독일과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투표에서 승리하여 3번째 월드컵의 개최권을 따낸다. 이 결과는 남미 국가들의 큰 불만을 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저저번에는 남미에서 개최했고 저번에는 유럽에서 개최했으니 이번엔 우리 차례잖아. 우리 차례라고!! 내놔! 아니면 다른 대륙[2]을 주든지..." 였다[3]. 하지만 씹혔다.[4]3. 지역예선
자세한 내용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지역예선 문서 참고하십시오.지역예선에선 이런 일들이 있었다.
- 개최국 프랑스는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의 개최국인 이탈리아와 달리 지역예선을 거치지 않고 본선부터 편하게 축구를 했다. 그리고 전 대회 우승국인 이탈리아도 역시 지역 예선을 거치지 않았다. 이 시스템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 이어져오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부터는 우승팀의 자동출전 자격이 폐지되었다.[5]
- 프랑스는 열악한 경기장 시절 등으로 인해 개최권을 박탈당할 뻔 했으나 프랑스 출신 쥘 리메 회장의 노력에 힘입어 대규모 경기장 확장 및 신축 공사에 착수한 프랑스는 대회 개막 직전까지 밤샘 작업을 반복한 끝에 제대로 된 시설을 완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마 쥘 리메가 나서서 이것을 추진하지 않았으면 아마 다른 나라에게 빼앗겼을 것이다.
- 본래 대회 참가국 중 하나였던 오스트리아는 대회직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데 성공하면서 당시 1930년대 초반에 잘 나가던 ‘분더팀’ 오스트리아 선수들까지 모두 강제 흡수당하게 되었다. 이에 결국 이 대회는 당초 계획되어 있던 16강이 아닌 15강으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었는데,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는 독일이 1라운드에서(15강 토너먼트 10위) 바로 탈락한 총 세 번의 월드컵 중 첫 대회가 되고 말았다(...).[6][7][8]
4. 대회 포스터·마스코트·공인구
1938년 대회 포스터 |
마스코트는 여전히 없었지만 알렌(Balón Allen)이라는 인정구가 존재했다.
5. 경기장
월드컵이 열린 도시와 구장은 다음과 같다.- 파리 / 스타드 올랭피크 이브 뒤 마누아[9] / 결승전 개최
- 파리 / 파르크 데 프랭스[10] / 개막전 개최
- 마르세유 / 스타드 벨로드롬[11]
- 보르도 / 스타드 두 파르크 레스퀴르[12]
- 스트라스부르 / 스타드 드 라 메이노
- 르 아브르 / 스타드 카베 베르트
- 랭스 / 스타드 오귀스트 델로누
- 툴루즈 / 스타드 샤푸
- 릴 / 스타드 빅토르 부케이
- 앙티브 / 스타드 포르 까레
6. 참가팀 정보
자세한 내용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참가팀 정보 문서 참고하십시오.7. 대회 진행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경기 | 대진표 |
A | 15강 2경기 이탈리아 2:1 노르웨이 | I | 8강 1경기 이탈리아 3:1 프랑스 | M | 4강 1경기 이탈리아 2:1 브라질 | P | 결승 이탈리아 4:2 헝가리 |
B | 15강 3경기 프랑스 3:1 벨기에 | ||||||
C | 15강 7경기 브라질 6:5 폴란드 | J | 8강 2경기[재경기] 브라질 1:1(2:1) 체코슬로바키아 | ||||
D | 1라운드 8경기 체코슬로바키아 3:0 네덜란드 | ||||||
- | |||||||
E | 15강 4경기 헝가리 6:0 네덜란드령 동인도 | K | 8강전 3경기 헝가리 2:0 스위스 | N | 4강 2경기 헝가리 5:1 스웨덴 | ||
F | 15강 1경기[재경기] 독일 1:1(2:4) 스위스 | ||||||
G | 15강 5경기 | L | 8강 4경기 스웨덴 8:0 쿠바 | ||||
H | 15강 6경기[재경기] 쿠바 3:3(2:1) 루마니아 | O | 3·4위전 브라질 4:2 스웨덴 |
- 이 표에서 1라운드의 경기에 붙어있는 번호의 순서는 팀의 성적이 아닌 경기 시작 순서를 우선했다.
7.1. 15강
자세한 내용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1라운드 문서 참고하십시오.1라운드 | |
이탈리아 | 노르웨이 |
프랑스 | 벨기에 |
브라질 | 폴란드 |
체코슬로바키아 | 네덜란드 |
헝가리 | 네덜란드령 동인도[17] |
스위스 | 독일 |
스웨덴[18] | |
쿠바 | 루마니아 |
-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8강 진출국.
7.2. 8강
자세한 내용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8강 문서 참고하십시오.8강 | |
이탈리아 | 프랑스 |
브라질 | 체코슬로바키아 |
헝가리 | 스위스 |
스웨덴 | 쿠바 |
-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4강 진출국.
7.3. 4강
자세한 내용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준결승 문서 참고하십시오.4강 | |
이탈리아 | 브라질 |
헝가리 | 스웨덴 |
-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결승 진출국.
7.4. 결승
자세한 내용은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결승 문서 참고하십시오.결승 | |
이탈리아 | 헝가리 |
-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우승국.
7.5. 우승
1938 FIFA 월드컵 우승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000 이탈리아}}}]] |
두 번째 우승 ★★ |
8. 최종 순위
순위 | 국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 | 승점 | 비고 |
[[이탈리아 왕국| ]][[틀:국기| ]][[틀:국기| ]] 이탈리아 | 4 | 4 | 0 | 0 | 11 | 5 | +6 | 8 | 우승 | |
[[틀:깃발|헝가리 | ]][[틀:깃발| ]][[헝가리 왕국| ]]4 | 3 | 0 | 1 | 15 | 5 | +10 | 6 | 준우승 | |
[[틀:깃발|브라질 | ]][[틀:깃발| ]][[브라질| ]]5 | 3 | 1 | 1 | 14 | 11 | +3 | 7 | 3위 | |
4 | [[스웨덴| ]][[틀:국기| ]][[틀:국기| ]] 스웨덴 | 3 | 1 | 0 | 2 | 11 | 9 | +2 | 2 | 4위 |
5 | [[체코| ]][[틀:국기| ]][[틀:국기| ]] 체코슬로바키아 | 3 | 1 | 1 | 1 | 5 | 3 | +2 | 3 | 8강 |
6 | 프랑스 | 2 | 1 | 0 | 1 | 4 | 4 | 0 | 2 | |
7 | [[스위스| ]][[틀:국기| ]][[틀:국기| ]] 스위스 | 3 | 1 | 1 | 1 | 5 | 5 | 0 | 3 | |
8 | 쿠바 | 3 | 1 | 1 | 1 | 5 | 12 | -7 | 3 | |
9 | [[루마니아| ]][[틀:국기| ]][[틀:국기| ]] 루마니아 | 2 | 0 | 1 | 1 | 4 | 5 | -1 | 1 | 15강 |
10 | [[나치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독일 | 2 | 0 | 1 | 1 | 3 | 5 | -2 | 1 | |
11 | [[틀:깃발|폴란드 | ]][[틀:깃발| ]][[폴란드 제2공화국| ]]1 | 0 | 0 | 1 | 5 | 6 | -1 | 0 | |
12 | [[노르웨이| ]][[틀:국기| ]][[틀:국기| ]] 노르웨이 | 1 | 0 | 0 | 1 | 1 | 2 | -1 | 0 | |
13 |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 벨기에 | 1 | 0 | 0 | 1 | 1 | 3 | -2 | 0 | |
14 |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네덜란드 | 1 | 0 | 0 | 1 | 0 | 3 | -3 | 0 | |
15 |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네덜란드령 동인도[19] | 1 | 0 | 0 | 1 | 0 | 6 | -6 | 0 | |
- | [[오스트리아 연방국| ]][[틀:국기| ]][[틀:국기| ]] | 0 | 0 | 0 | 0 | 0 | 0 | 0 | 0 | 해체 |
- 재경기 승패 결과는 순위에 반영하지 않는다.45페이지 참조
9. 수상
- 득점왕
10. 기록실
- 최초 득점 – 요제프 가우헬 (독일), vs (스위스), 29분 (1라운드)
- 최초 퇴장 – 한스 페서 (독일), vs 스위스, 연장 6분 (1라운드)
- 최초 페널티 킥 – 프리데리크 셰르프케 (폴란드). vs 브라질, 23분 (1라운드)
- 최초 멀티골 – 장 니콜라 (프랑스). vs 벨기에, 16분&69분 (1라운드)
- 해트트릭
- 레오니다스 (브라질), vs 폴란드 (1라운드)
-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 (폴란드), vs 브라질 (1라운드)
- 구스타브 베테르스트룀 (스웨덴), vs 쿠바 (8강)
- 하뤼 안데르손 (스웨덴), vs 쿠바 (8강)
- 최다 득점 경기 - 브라질 6 vs 5 폴란드, (1라운드)
- 최다 득점차 경기 – 스웨덴 8 vs 0 쿠바 (8강)
- 최초 역전승 - 쿠바 2 vs 1 루마니아 (1라운드 재경기)[20]
- 자책골
- 무득점팀
11. 뒷이야기
-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8강전은 내용적으로 명승부였을 뿐 아니라, 양 팀 선수들이 보여준 페어플레이 정신에 힘입어 월드컵 역사에 긍정적인 기록을 남겼다.[21] 당시 유럽 국가들간의 정세로 보나 양국 국민 감정으로 보나 이 경기가 화합의 장이 되기에는 어려운 무대였고 프랑스인들의 반파시스트 시위로 일부 이탈리아 원정팬들까지 곤욕을 치렀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파란색으로 유니폼 색깔이 겹친다고 베니토 무솔리니를 상징하는 검은색 유니폼까지 입고 왔으니 프랑스 홈팬들의 반감은 더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났을 때 프랑스 선수들은 승리한 이탈리아 선수들과 포옹을 나누며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했고, 홈 관중들 역시 프랑스 국기와 이탈리아 국기를 양 손에 들고 흔들며 38년 대회를 '평화의 제전' 분위기로 몰고 갔다. 그러나 그들은 2년도 되지 않아서, 엄청난 원수지간이 된다.
- 폴란드의 후보 골키퍼로 이 대회에 참가한 발터 브롬(Walter Brom)의 생일은 1921년 1월 21일로 대회 참가 당시 나이는 17세 4개월이었다. 현재까지도 단연 FIFA 월드컵에 참가한 골키퍼 중 역대 최연소 참가 기록이다.
- 브라질의 수비수 나리스는 선수 겸 팀닥터라는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였다.
- 이 월드컵 참가자중 마지막 생존자는 피에트로 라바로 2006년 11월 5일 9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2. 이후
하지만 이탈리아가 우승하고 난 1년 후. 세계는 대대적인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그로 인해 월드컵이고 뭐고 전부 중단되었고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의 개최까지는 12년이 걸리게 된다.그리고 이후 60년 뒤 프랑스에서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었고, 개최국인 프랑스가 사상 최초로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1] 후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여 오스트리아가 사라졌으나, 엄연히 16개국 진출국을 확정 된 후 스웨덴이 부전승 한 것으로 되었다.[2] 하지만 교통도 교통이지만 아프리카는 현존하는 대부분 국가들이 식민지였고, 아시아도 아프리카만큼은 아니었어도 식민지가 많은 데다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축구 인프라와 수준이 너무 떨어지긴 했다.[3] 원대로 남미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지만 FIFA로부터 원 개최국으로 약속받은 아르헨티나가 FIFA에게 거나하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개최권을 브라질에게 빼앗기게 된다. 아르헨티나는 그 원한으로 1954년 스위스 대회마저 불참한다.[4] 쥘 리메가 직접 FIFA를 압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FIFA 위원들이 쥘 리메의 노고를 생각하는 뜻에서 23표 중 19표를 주었다.[5] 세네갈 쇼크 때문이 아니라 대회 시작 전에 이미 자동출전권을 폐지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6] 참고로 다음 1라운드 탈락은 2018년에 무려 80년 만에 일어나게 되었다[7] 다만, 독일은 78년 월드컵 때도 2라운드 8강 조별리그에서 탈락(6위)한적이 있고, 그 후 2018월드컵에서 최초의 1라운드 32강 조별리그 탈락(22위)을 당한 것이다.[8] 이후, 독일은 80년만의 월드컵 1라운드 탈락이자 최초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후 불과 4년만에 또다시 연이어 월드컵 1라운드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고 말았다.[9] 또 다른 이름은 스타드 올랭피크 드 콜롱브. 파리에는 월드컵을 개최한 구장이 2개가 있다. 이곳은 1924년 올림픽 당시 메인 스타디움이었다. 또한 1938년 월드컵의 결승전도 이곳에서 개최되었다.[10] 1897년에 개장된 매우 역사 깊은 구장이다. 1932년과 1972년에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쳤으며, 1972년엔 거의 새로 짓다시피한 대공사를 거쳤다. 현재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구장이다.[11]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홈구장. 1998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가 네덜란드에게 떡실신당했던 구장이 바로 이 곳이고, 데니스 베르캄프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유명한 쓰리터치 결승골을 성공시켰던 곳도 이 곳이다.[12] 지롱댕 보르도의 홈구장. 현재의 이름은 스타드 샤방-델마. 자크 샤방-델마는 1947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48년간이나 보르도 시의 시장을 지낸 정치인으로 이 사람이 사망한지 1년 후 이 사람의 이름이 구장에 헌정되어 현재의 스타드 샤방-델마가 되었다.[재경기] 첫경기 무승부로 재경기. 당시의 월드컵에서는 승부차기가 없었다.[재경기] [15]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어 아예 없어졌다.[재경기] [17] 현재 인도네시아이며,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18]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어 아예 없어졌기 때문에 스웨덴은 자동으로 2라운드 8강에 진출.[19]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20] 같은 시간에 치러졌던 다른 1라운드 재경기인 스위스와 독일의 경기에서도 역전승이 나왔지만 이 경기가 시간상으로 역전이 더 빨리 되었다.[21] 사실 이런 일들을 포함하여 월드컵으로 세계 평화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에 쥘 리메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 대회에서 베니토 무솔리니가 월드컵을 파시즘 선전에 악용하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