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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uby(名護屋, ruby=なごや)][ruby(城, ruby=じょう)][1]일본 사가현 가라쓰시의 옛 성이다. 한국에서는 일본 3위의 대도시로 유명한 아이치현 나고야시의 나고야 성과의 구분을 위해 사가의 옛 지명인 히젠을 붙여 '히젠 나고야성(肥前名護屋城)'이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 한자 표기로는 名古屋라고 쓰는 나고야시와 구분된다.
2. 상세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중요 후방 거점이었다.[2] 20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성이었으며, 대형 조선소와 항구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임진왜란 1592>에서는 한자 없이 나고야라고만 표기해서 시청자들을 당혹케 했다. 그러나 이런 표기가 당대 기준으로는 오히려 타당할 수 있다. 센고쿠 시대 당대에는 지명의 한자표기법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치현 나고야도 名古屋라는 표기 외에 名護屋, 那古野, 那古屋 등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견되며 아예 한자 표기 없이 가타가나로만 표기한 경우도 있다.[3] 히젠 나고야도 名護屋를 이 지역에서 유래한 성씨를 표기하는 데 쓰고 정작 지명은 名古屋라고 적은 문헌도 발견된다. 같은 음의 지명을 한자 표기로 구별하는 건 에도 시대 이후 지명 표기가 통일되면서부터의 이야기이다. 규슈에 있는 나고야 성의 지도상 위치를 아이치현의 나고야로 표기한 오류야말로 가장 큰 병크일뿐(...).
임진왜란이 끝난 뒤로는 당연히 쓸 일이 없어져 폐성되었다. 이 후 테라자와 히로타카가 카라츠 성을 축성할 때 히젠 나고야성의 자재를 사용하여 지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성의 흔적들은 시마바라의 난 이후 막부에서 반란군의 거점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파괴해버렸고, 히젠 나고야성의 오테몬은 다테 가문의 거성인 센다이 성으로 옮겨 지었다[4]는 얘기가 있다. 그 오테몬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남아있었으나 1945년 일본 본토 공습으로 소실되었다.
현재는 성터(해자) 남쪽에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1] 名古屋라고 쓰면 아이치현의 도시가 된다.[2] 전초기지로 설계된 성이었으므로 당시의 다른 성과 달리 천수각의 규모도 엄청나게 거대했다.[3] 아이치현 나고야는 에도까지 가는 조선 통신사들이 거쳐가는 도시였는데, 통신사들이 남긴 기록인 사행록에도 名古屋과 名護屋, 鳴古屋이라는 표기가 혼용되어 있다.[4] 실제로는 옮긴 게 아니라 그 모습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이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