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3-09 20:42:22

휴 드 코트네이(제2대 데번 백작)

파일:휴 드 코트네이(제2대 데번 백작).jpg
엑서터 대성당의 남쪽 익랑에 설치된 휴 드 코트니와 아내 마거릿 드 보훈의 석상
성명 휴 드 코트네이
Hugh de Courtenay
생몰년도 1303년 7월 12일 ~ 1377년 5월 2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데번 티버튼 성
사망지 잉글랜드 왕국 데번 엑서터
아버지 휴 드 코트네이
어머니 아그네스 드 세인트 존
형제 존, 엘레노어, 로버트, 토머스, 볼드윈, 엘리자베스
배우자 마거릿 드 보훈
자녀 휴, 토머스, 에드워드, 로버트, 윌리엄, 필립, 피터, 험프리, 마거릿, 엘리자베스, 캐서린, 앤, 조앤, 마거릿
직위 제2대 데번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2차스코틀랜드 독립 전쟁과 백년전쟁에 참여했다.

2. 생애

1303년 7월 12일 잉글랜드 왕국 데번 티버튼 성에서 초대 데번 백작 휴 드 코트네이와 바싱의 세인트 존 기사 존 세인트 존의 딸인 아그네스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제로 존[1], 엘레노어[2], 로버트[3], 토머스[4], 볼드윈[5], 엘리자베스[6]가 있었다.

1325년 제4대 헤리퍼드 백작 험프리 드 보훈에드워드 1세의 딸인 루들런의 엘리자베스의 딸로서, 당시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2세의 조카인 마거릿 드 보훈과 결혼했다. 1327년 1월 20일 23세의 나이에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333년 할리돈 힐 전투에 아버지와 함께 참전해 에드워드 3세가 스코틀랜드군을 물리치는 데 일조했다. 1337년 아버지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의회에 출석하여 '코트네이 경'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1339년 콘월에 상륙한 프랑스군을 아버지와 함께 격파했다. 1340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데번 백작위와 영지를 물려받았다.

1342년 에드워드 3세의 지휘하에 브레스트에 상륙하여 브르타뉴 공작위 계승 전쟁에 참전했다. 1347년 질병에 걸려서 군 복무에서 면제되었고, 거의 같은 시기에 의회 참석 의무에서도 제외되었다. 한 자료에는 '휴 드 코트네이'라는 인물이 리치필드에서 열린 토너먼트에 참여했다고 기술되었는데, 제2대 데번 백작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이후 병세에서 회복된 그는 푸아티에 전투에 참전해 흑태자 에드워드가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프랑스 국왕 장 2세 등을 생포하는 데 일조했으며, 1373년 데번의 왕립 삼림의 수석 관리인을 맡았다.

1377년 5월 2일 사망했고, 엑서터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사후 삼남 에드워드의 아들이자 그의 손자인 에드워드 드 코트네이가 제3대 데번 백작이 되었다.

3. 가족



[1] 1300 ~ 1349, 루이스 수도원장, 타비스톡의 수도원장[2] 1305 ~ 1330, 제3대 그레이 남작 존 그레이의 아내[3] 1309 ~ 1334, 데번주 모튼햄스테드의 기사[4] 1311 ~ 1362, 서머싯의 우튼 코트네이와 데번의 브릭섬 영주[5] 1313 ~ 1340, 기사[6] 1314 ~ 1364, 리슬 영주 바스톨로뮤 드 리슬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