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 조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인 1954년 영자지인 코리아타임스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갔다가 기자로 전업했고 1974년 한국일보 창간 20주년을 맞아 순회 특파원이 되었다. 그렇게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 총리 등과 릴레이 인터뷰를 했으며 이어 월남 패망(1975년) 직전인 1974년 10월 응우옌 반 티에우 월남 대통령과 단독인터뷰를 했고, ‘반정(反政) 절정…티우의 고민’이라는 해설 기사를 실었는데 ‘보좌관들 부패는 바로티우의 부패’, ‘광범위한 요구에 체제 위협 우려’라고 붙인 부제가 유신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를 계기로 한국일보 기자들이 10월 24일 총회를 개최한 뒤 ‘민주언론 수호 결의문’을 채택한 사실이 외신에 보도됐고, 때마침 동아일보가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채택하며 이는 후일 ‘10·24 언론파동’으로 불리게 되었다.한편 1973년에는 코리아타임스 오피니언 페이지에 기생관광을 빗댄 외국인 글을 실었다가 관광산업을 저해하는 ‘이적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2003년 말 정진석·박창석 교수와 함께 한국 영자신문 역사를 체계적으로 엮은 최초의 단행본 ‘한국영어신문사’를 펴냈다. 또 2004년까지 코리아타임스에 ‘홍순일 칼럼’, ‘서울 퍼스펙티브’ 칼럼을 쓰는 등 꼭 50년간 신문기자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