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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7 01:52:50

해럴드 시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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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old Shipman (1946년 1월 14일 ~ 2004년 1월 13일, 향년 57세)

1. 개요2. 범행 이전 삶3. 범행 수법4. 체포
4.1. 살인 동기
5. 파장
5.1. 언론 보도
6. 최후7. 대중매체

1. 개요

영국의사이자 연쇄살인범.

1990년대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환자들에게 치사량의 헤로인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공식적으로 살해한 사람만 무려 215명으로, 유럽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손 꼽히는 인물이다.

2. 범행 이전 삶

해럴드 시프먼은 1946년 트럭 운전사인 해롤드 프레드릭 시프먼과 베라 브리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장과정에서 특히 어머니와 친밀했다고 한다. 럭비 선수와 교내 육상팀 부주장으로 활동하는 등 평범하게 성장하는듯 했지만 1963년 17살 때 폐암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사건이 일어난다. 말기 암 환자였던 어머니는 집에서 의사에게 모르핀을 주사받았고, 이것이 그의 범행대상과 범행수법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1964년 고등학교를 졸업, 1966년 부인 프림로즈와 결혼한 그는 1970년 리즈 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고,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가 계속해서 근무 중 발작을 일으켜 기절하는 등 이상한 사건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시프먼은 동료들에게 자신이 간질을 앓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후 스스로 모르핀과 같은 아편류 진통제인 페치딘을 주사하고 공문서 위조 등의 범죄를 저지르며 약물을 얻은 것이 발각되어 1975년 병원에서 해고되고, 의사자격도 박탈된다.

재활원에서의 생활로 페치딘 중독에서 벗어난 그는 1977년 다시 의사자격을 회복한 후, 맨체스터 인근 하이디라는 마을의 더니브룩 의료센터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환자들을 따뜻하게 대했으며,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주민들과 환자들은 이 인자한 웃음을 띤 수염투성이의 의사를 아주 좋아했다. 1983년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등 인망을 쌓았으며, 1993년에는 마침내 개인병원을 개원한다.

3. 범행 수법

범행 수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우선 환자를 예정도 없이 방문해서 치사량의 헤로인을 주사하여 죽이고 유유히 빠져 나온 뒤, 시체를 발견한 유족들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면 그가 현장에 나타나 그들을 위로해 주며 온갖 슬픈 척을 하다가 사망 증명서에 서명해 주는 식으로 자연적인 돌연사로 위장하였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50~60대의 고령이었고, 시프먼은 마을 내에서 아주 평판이 좋았기 때문에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4. 체포

1997년, 장의사의 딸인 데비 브램보프라는 여성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닫게 된다. 시프먼의 환자였다가 살해된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돌연사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었던 것. 옷을 잘 갖춰 입은 상태로 편안하게 앉아 있거나 긴 의자 위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같은 지역 의사와 검시관에게 이런 의문점을 알리고 1998년 3월 검시관은 영국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곧 수사에 착수해 환자들의 사망 증명서를 조사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경찰이 그의 전과나 경력을 확인하지 않는 등 부실수사가 이어졌고, 그해 4월 경찰은 증거불충분으로 수사를 종결한다. 이후에도 시프먼은 살인을 이어나갔으며 잡히기까지 3명의 희생자가 더 나오게 된다.

1998년 5월, 해럴드 시프먼은 캐슬린 그룬디 부인을 살해했다. 그녀는 한때 하이드 시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80세의 나이에도 유난히 건강했던 사람이었다. 시프먼은 치사량의 다이아폴핀을 투여해 그녀를 죽인 후 직접 사망증명서를 기록했고, 사인은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였다. 또 그는 그녀의 이름으로 된 유언장을 위조했는데, 그 내용은 그녀의 전 재산인 38만6000파운드(약 5억8049만원) 를 모두 시프먼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를 수상하게 여긴 그룬디의 딸이자 변호사인 안젤라 우드러프가 경찰에 다시 수사를 의뢰한다. 영국 경찰이 매장된 그룬디의 시신을 다시 꺼내 부검을 실시한 결과 치사량의 다이아몰핀이 검출되었다. 시프먼은 자신이 작성한 진료기록을 통해 그룬디가 마약중독자라고 해명했지만, 조사결과 진료기록은 그런디 사후에 작성된 것이 밝혀진다.

4.1. 살인 동기

그에게 희생된 환자의 대부분은 50~60대의 여성으로,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자택에서 돌연사했다. 한때 시프먼의 동료였던 의사 존 폴라드(John Pollard)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선에서 설명 가능한 이유는, 그는 환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 자체를 즐거워한 것같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감정 그 자체에 그는 만족했는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시프먼은 환자가 생명을 잃어 가는 순간의 흥분을 즐기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진단되었다.[1]

5. 파장

처음에 하이디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친절한 이웃이자 신뢰하던 의사가 연쇄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실제로 어떤 소매상 주인들은 자신들의 가게 창에 ‘우리는 믿을 수 없다’라고 적은 전단을 내붙일 정도였다고 한다.

2000년 1월, 시프먼은 15명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최고형인 최소 40년 동안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15회 선고받았고 영구격리대상자로 분류되었다.[2] 하지만 이후 영국 정부의 추가 조사가 이루어졌고, 시프먼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사망자 숫자는 최소 215명, 최대 345명에 달한다는 엄청난 결과가 나오게 되면서, 하이드 마을 주민들은 물론 영국 전역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다만 사형제도가 폐지된 영국인지라 이미 법정최고형을 받았기 때문에 시프먼을 재기소하지 않고 그냥 혐의에 포함시키고 끝났다.

5.1. 언론 보도

<데일리 익스프레스>는 이 사건에 대해 “의사를 믿지 못한다면 누구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조사 위원회는 의사가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개혁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는 사설을 내놓았다.

<인디펜던트>도 “이제 환자들이 의사들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끔찍한 사례를 계기로 환자들은 의사들의 소견이나 2차 견해를 묻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의사들은 환자들이 권리를 주장할 때 섣불리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데일리미러>는 “모든 의사들의 내부에 대량의 살인마 기질이 잠복해 있다고 간주해서는 안 되며, 시프먼 한 사람 때문에 나머지 전부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서는 안 된다”며 국민들의 신중한 대처를 당부하는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이 신문은 또 “시프먼의 행각은 의료행위에 대한 독자적인 감독이 한심할 정도로 허술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며 의사들에 대한 감독 강화를 거듭 촉구했다.

6. 최후

해럴드 시프먼은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되었지만 자신의 죄를 끝까지 부정했고, 2004년 생일 하루 전에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7. 대중매체


[1] 실제로 그의 범행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부유층부터 빈곤층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고, 그룬디 부인을 제외하면 재산에 손대려 한 흔적도 전혀 없었다. 영국 경찰도 재산을 가로채기 위한 목적의 범죄는 아니라고 봤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2] 이 과정에서 변호사가 사기꾼이라는 게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다.(대중한테 크게 지탄을 받는 중범죄자들을 주로 변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