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漢奸
/ 한족을 배신한 자를 이른다. 외국 침략자와 내통하거나 부역, 협력해 한족 혹은 중화민족에 해를 끼친 사람을 말한다. 즉, 매국노를 일컫는 말로 외세에 중국을 팔아넘긴 자다. 표준 중국어로는 한젠(hàn jiān)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의 친일파라는 말처럼 중국에서도 '한간'이라는 말은 그냥 매국노나 민족 반역자를 이르는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단어만 놓고 봐도 '민족 반역자'라는 명칭과 사실상 의미가 똑같다. 당연하지만 중국인들 사이에서 큰 모욕을 주는 단어 중 하나다. 차라리 그냥 "배신자"라고 불러 달라고 할 정도.
중국에서 '한간'으로 대표되는 인물로는 근대 이전에는 진회, 근대 이후에는 중일전쟁 때 일본 제국에 크게 협력한 왕징웨이, 청나라 황족 출신인 카와시마 요시코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1]
2. 유래와 의미 변화
유래는 청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옹정제와 건륭제 때 묘족의 반란이 있었는데 청 조정은 이걸 한족이 사주한 거라고 여기고 배후 세력을 "한간"이라고 욕했다. 이때의 의미는 "(만주족 지배자들 상대로) 역적 행위를 하는 한족", 즉 "한족인 간첩" 정도의 의미였다그러다가 청 말기 아편전쟁 전후로 외세 열강에 빌붙어 앞잡이가 되어 솔선하여 민족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스파이, 매국 행위를 일삼는 이들을 "한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같은 한족을 등쳐먹은 배신자", 즉 "한족 상대로 간첩"으로 뜻이 바뀐 것이다.
이는 중국어가 조사를 매우 자주 생략하기 때문에, "한간"이 원래는 형용사+주어가 쉽게 목적어+주어로 전용된 케이스다. 한족들도 대부분 이 유래를 모르고 청나라 말기에 매국노들을 지칭하기 위해 처음 고안된 말이겠거니 생각한다.
청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중화민족 이데올로기로서 중화민족에 만주족을 포함시킴으로써 한간의 대상은 더 이상 '한족'뿐만 아니게 된다. 즉, 만주족이라도 한간으로 낙인찍을 수 있었고, 카와시마 요시코가 여기에 포함된다.
한간 문제가 더욱 심화된 것은 1931년 만주사변으로 시작해 1945년까지 이어진 중일전쟁 시기였다. 이 시기 일본에 협력하는 자들이 급격히 늘어나 이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다. 사실 한간 문제는 중화민국 초창기의 21개조 요구(1915년)와 1919년의 5.4 운동 시기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으로 위안스카이. 중일전쟁이 터진 후 왕징웨이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일본에 부역하게 되는데 당연히 일본을 등에 업고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자들도 있었고 일본을 이길 수 없으니 대화로 평화를 얻자는 순수한 의도로 시작한 인물들도 있었으나 결국 협잡배나 이상주의자들이나
중일전쟁에서 중국이 승리한 후 장제스는 처음에는 일본 점령지의 치안과 행정을 회복하기 위해 한간들을 등용했지만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자 가차없이 한간들을 처벌했다. 한간들을 처벌하면 한간들의 재산을 뺏을 수도 있고 민심도 얻을 수 있으니 중국국민당은 한간 처벌에 매우 열심이었다.[2] 반면 애초에 항일 투쟁에도 덜 적극적이었던 중국공산당은 한간들을 별로 처벌하지 않았다.
국공내전으로 국민당이 대만으로 피난하면서 대부분은 중국공산당에 의해 형식적인 처벌과 전향을 통해 풀려났지만 국민당은 천궁보를 비롯해서 핵심 한간들은 모조리 목을 따고 달아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국의 역사가 페어뱅크는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이유 중 하나가 한간 처벌이 너무 가혹한 탓에 부와 권력을 가졌던 한간들이 공산당에 붙어버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 공산당도 국공내전 종전 후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정권이 안정되자 필요가 없어진 한간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수용소에 처박았으며,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당시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과 공안을 동원해 린치와 처벌을 가하는 등 국민정부 시절에도 처벌받지 않은 한간들도 예외는 없었다.
3. 기타
- 다만, (특히 중일전쟁기에) 일본에 저항하지 않았거나 협력했다는 이유로 모든 인물을 국가를 버린 한간이라고 이름표를 붙이면 곤란하다. 매국노 역시 이에 포함되는 내용으로, 혼돈이 휩쓰는 전쟁기의 상황에서 적에 대한 '저항'과 '협력'은 이분법적으로 명확히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당시 중국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더더욱. 티모시 브룩 교수와 고려대학교 박상수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일본과 함께 일한 중국인들을 줄곧 부역으로 내모는 것은 중국적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괴뢰)점령정부의 지도자들은 실제 일본이 범아시아주의에 대한 선전을 지원해주기를 바라는 성명을 냈지만, 소수의 사람들 외에 일본의 전쟁 목적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중략) 어떤 합작자도 점령하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잠정적인 것, 즉 완전한 주권이 중국인 자신의 손에 들어올 때까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근대 중국의 친일합작>, 티모시 브룩, 2008. 35~36p."...먼저, 본고는 ‘협력주의(collaborationism)’ 개념의 중국 적용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유럽의 전시 협력 연구에서 이 개념은 점령 세력과의 이념적 동일시에 기반한 자발적・적극적 협력을 의미해 왔으나, 중국의 경우 일본 제국주의나 아시아주의에 대한 실질적인 이념적 헌신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프랑스 파시스트들이 독일의 대의를 내면화하고, 프랑스의 국익보다는 유럽의 파시스트 신질서 건설을 추구하였던 반면, 중국의 협력자들은 현실적인 생존 전략과 국가 이익의 확보를 목표로 삼았다."글로벌 비교의 시각으로 본 중국의 戰時 협력(1937-1945) ― 왕징웨이(汪精衛) 정권에 대한 비교 분석 ―, 박상수, 동양사학연구 제173집, 2025.12. 30p.
- 한국에서의 친일파라는 말이 그렇듯 중국에서도 제국주의 일본의 만행을 옹호하는 수준이 아니라 단순히 일본을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한간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합한족(한국을 열렬히 좋아하는 중국인)들도 한간으로 매도당한다. 그 외에도 오늘날 중국에서는 홍콩, 대만 독립운동 지지자나 중국이 거부하는 (서구식) 민주주의 등에 호의적인 중국인들도 한간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 국민교육을 무산시키고,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으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이끈 조슈아 웡을 제1세계에서는 민주화 투사로 찬양하고, 중국에서는 한간, 즉 매국노로 부른다고 한다. 기사
- 한국에서도 해방 직후 '한간'(韓奸)이라는 말이 시인 정지용 등에 의해 잠시 쓰인 적이 있다.# 한족을 뜻하는 漢이 아닌 한민족을 뜻하는 韓이 쓰인 것으로, 일본 식민지 체제에 협조한 한국인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4. 한간 목록
4.1. 청말민초
4.2. 만주국
4.3. 왕징웨이 정권
4.4. 몽강연합자치정부
4.5. 기타
- 스여우싼 - 인생 자체가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마지막에는 일본과 손을 잡으려다가 부하들에게 생매장당했다.
- 일본 극우사관 성향의 중국인들
리샹란- 1945년 이전까지의 행적을 보면 한간이긴 한데, 애초에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 이후에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 같이 보기
[1]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대만의 대부호인 구셴룽(辜顯榮)도 '한간'으로 보고 있다. 그는 청일전쟁 때인 1895년에 일본군이 타이베이를 점령하도록 도왔고, 그 뒤로도 대만의 사회 운동을 탄압하고 식민지 통치에 협조해 어용신사(御用紳士)라는 별명을 받았다. 덕분에 구셴룽 일가는 일본의 비호 아래 호의호식했다. 일본의 항복 이후로도 구셴룽 일가는 줄을 잘 타서 지금까지도 대만의 정, 재계에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2] 국민당은 한간 외에도 일제와 협력했다고 간주된 집단을 매우 가혹하게 탄압했다. 대표적으로 만주족이 있는데 이전에 열강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악평+만주국으로 확인사살. 조선족도 친일 이미지가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