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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2:14:14

오언 하그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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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T_Sport.png
BT Sport
파일:Owen Hargreaves.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오언 하그리브스
Owen Hargreaves
본명 오언 리 하그리브스
Owen Lee Hargreaves
출생 1981년 1월 20일 ([age(1981-01-20)]세)
캐나다 자치령 앨버타주 캘거리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
[[캐나다|]][[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74kg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해설가
소속 선수 FC 바이에른 뮌헨 (2000~200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7~2011)
맨체스터 시티 FC (2011~2012)
방송인 BT Sport (축구해설가)
국가대표 42경기 (잉글랜드 / 2001~2008)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기타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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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국적의 前 축구선수, 現 축구해설가.

2. 클럽 경력

2.1. FC 바이에른 뮌헨

잉글랜드 선수로는 드물게 독일에서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1] 16살때 FC 바이에른 뮌헨 유스팀에 입단하여 두각을 드러냈고, 2000년 프로에 데뷔하여 좋은 모습을 보이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2006 독일 월드컵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인상적인 모습이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었다. 이후 2년여에 걸친 지리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챔스 우승 멤버이자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고 유스 출신인데다 나이까지 젊은 하그리브스는 바이에른의 미래에 포함되어 있는 전력이었고, 안 그래도 위세를 떨치던 시절에 비해 비교적 위상이 초라해진 시점이라 바이에른은 하그리브스를 절대 놔 줄 생각이 없었다. 2군에 처박고 경기를 내보내지도 않는 바이에른 특유의 강고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하그리브스의 고집도 만만찮아서 2007년 그는 17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게 되었다.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그렇게 보내기 싫어하던 선수였으나, 이 이적은 바이에른의 입장에서는 돌아보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후 하그리브스는 사이버 선수로 전락하게 되고 낭비될 연봉을 생각하면 거의 사기치다시피(...) 팔아먹은 셈은 것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건 하그리브스의 이적료가 고스란히 프랑크 리베리의 이적료로 투입되었다는 것.

어쨌든 2007-08 시즌 맨유에서 로테이션 멤버[2]로 활약하며 맨유의 더블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로 캐릭과 짝을 이루어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고,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1차적으로는 많은 활동량과 투쟁심 넘치는 플레이로 효과적으로 중앙을 장악했고, 2차적으로는 중거리슛과 프리킥을 통한 득점을 나름대로 쏠쏠하게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박지성을 밀어내고 결승전에서 오른쪽 윙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의 오른쪽 윙 기용은 퍼거슨 감독의 일종의 도박수였는데, 그 효과에 대해서는 축구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였다. 통했다는 의견이 반, 아니라는 의견이 반이었다.

일단 윙 한 자리를 호날두가 차지하고 있었고 중앙에는 그 시즌 당시 좋은 활약을 펼쳤던 캐릭과 백전노장 스콜스를 중앙에 배치하였는데, 윙 한 자리를 두고 긱스, 나니, 박지성 등이 경합하게 되었다. 그러나 단판으로 끝나는 챔스 결승전에서, 그리고 상대가 피지컬이 좋은 강력한 미드필더진을 구축하고 있었던 첼시였다는 점에서 퍼거슨 감독은 긱스, 나니, 박지성 대신 몸싸움 강하고 터프한 플레이를 하면서 '한 방'이 있는 하그리브스를 윙어로 배치하게 된 것. 그리고 상대적으로 득점력이 떨어지는 박지성은 벤치 멤버에도 포함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시즌인 2008-09 시즌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시즌 초반 3경기 출전 이후 무릎 부상을 당하며 바로 시즌 아웃.

2009-10 시즌에는 2009년 7월 호날두의 이적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얇아진 맨유의 미드필더 진영에서 좋은 활약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계속되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 막판에 경기 종료 직전 교체 출전으로[3][4] 결국 단 한 경기, 그것도 10초 정도 출전했으니 사실상 한 시즌을 통째로 쉬었다. 이로서 유리몸 확정.

2010-11 시즌 들어서 드디어 부상에서 복귀하나 했더니만, 선발 출장한 박지성의 인생 경기 울버햄튼 전에서 5분만에 햄스트링이 올라오는 부상을 입었다. 복귀가 점점 늦어지고 있었는데 2011년 3월 26일, 팀 훈련 중에 또 4주짜리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이 결국 시즌 아웃으로 판명되었다.

축구팬들 중에서 하그리브스가 5주 후에 무사히 복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조기 은퇴의 우려까지 대두되었다. 그리고 하그리브스는 계약기간 4년 중 3년을 침대에 누워서 지내게 되었다. 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의 심정도 타들어가겠지만, 이런 선수를 바라보는 구단과 팬의 심정 또한...

하그리브스 측에서 1년 무상으로 뛰겠다고 제의했으나 알렉스 퍼거슨이 그런 것은 서로를 위해 좋지 않다고 거절 의사를 확실히 하여 더이상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결정되었다. 하그리브스의 무급 제안에 퍼거슨 감독은 그런 것은 선수의 자존심에 흠을 내는 것이라며 정말로 그럴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방출당했다.

2.3. 맨체스터 시티 FC

파일:Hargreaves_2656059.jpg
이후 토트넘 홋스퍼 FC이나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등의 프리미어 리그 팀들과 이런 저런 썰이 나다가 2011년 9월 1일, 적극적인 선수 영입을 추진하는 맨체스터 시티 FC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출전 경기에 따라 임금을 지급한다는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클래스를 믿고 맨시티 측에서 준 마지막 기회라는 평가.

주로 리그컵 경기에서 뛰다가 버밍엄 시티 FC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그런데 2011년 9월 말 경기 후에 갑자기 맨유 의료진이 자신을 마치 기니피그처럼 다뤘다면서 비난하는 인터뷰를 했다. 뜬금없이 한 소리인데다가 계약기간 거의 전부를 부상으로 빠졌었고, 그래도 계약해지를 하지 않고 꾸준히 치료를 해준 전 소속팀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 게다가 맨시티와 계약할 당시에 비난하는 맨유 팬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해한다면서 응원하는 팬들도 있었기에 그를 비난하는 팬들에게 퍼거슨 감독이 그의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인터뷰를 하며 옹호해주기까지 했는데 더더욱 배은망덕한 노릇. 이 인터뷰 뒤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측이 공식 반박을 했는데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으며, 맨체스터 시티와 계약할 때 그쪽에 관련 의료기록을 전부 제공했으며 맨체스터 시티 의료진도 적절한 치료였다고 동의했다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식 반론 이후에 하그리브스 측에서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장기간 재활훈련하면서 쌓인 극심한 스트레스와 울분을 토해내느라 엉뚱한 상대를 잡고 화풀이했다는 의견이 많다. 이후로 그나마 그를 지지해주던 맨유 팬들은 거의 다 떨어져나갔으며 이후에 다시 그가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가 나자 이전과는 달리 모두 꼴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덕분에 그의 별명은 기니피그리브스, 기니피그 선수가 되었다.

하그리브스는 22일 칼링컵 경기를 치르고 트위터에 현재 몸상태를 알리는 사진을 한장 올렸다.

파일:attachment/오언 하그리브스/Hargreavesknee.jpg
기분 최고야. 근데 얘들아. 기억이 안나서 그런데 경기 끝난 후에 무릎이 이렇게 되는게 정상이지? 맞지?(...)
그런데 저 트위터는 인터넷 상의 합성사진 장난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어쨌든 26일 종아리에 경미한 부상을 입고 16강전에 결장하여 명불허전 글라스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투명 드래곤 놀이하다가 2012년 5월, 공식적으로 방출되었다. 맨시티가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1경기, 13분만 뛰었기 때문에 메달도 못 받았다. 그리고 그 뒤로 아무런 소식이 없으며 정말 투명화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 전까지는 네티즌들이 하그리브스로 투명 드립을 자주 쳐서 그런 방향의 존재감이나마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로 잊혀지고 말았다.(...) 맨시티에서 방출된 이후로는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서 훈련하고 있다고는 하나 QPR도 제대로 된 계약을 제시하진 않았다. 이후 사실상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캐나다에서 태어났으나[5] 잉글랜드인 아버지와 웨일스인 어머니를 뒀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잉글랜드, 웨일스, 캐나다 국가대표팀 중 하나에서 뛸 수 있었고, 독일에서 5년 이상 거주한 시점에서 어느 국가대표로도 활동하지 않았기에 독일국대에서 원하고 본인도 원한다면 절차만 밟으면 후천적으로 독일국가대표팀에서도 뛸 수 있었다. 이러한 복잡한 배경은 그가 세계의 톱 클래스 선수가 되었을 때 대표팀 선택을 둘러싸고 어떤 국적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원인이 되었다.

캐나다 캘거리 풋볼힐 FC에서 유명주로 명성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일찌감치 발탁해서 정성을 들였다면 캐나다 국가대표 에서 뛸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연령대에서든 발탁된 적이 없었고 바이에른 유스팀으로 넘어간뒤에 유럽에서 알려져 웨일스 U-19 대표팀에 선발되어 3경기를 소화했고 바이에른 1군무대에 데뷔한 2000년에는 잉글랜드 U-21대표팀으로 갈아타 3경기를 소화했다.

결국 2001년 8월 31일에 네덜란드와의 런던 홈경기에서 잉글랜드 성인대표팀에 데뷔하였다. 이는 잉글랜드 축구역사상 잉글랜드에서 단 한 번도 산적없는 사람이 국가대표팀 선수로 뛴 두번째 사례이다. 그 이후 2002, 2006 월드컵과 2004년 유럽선수권에 선발되어 활약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주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이지만 공격형과 수비형 미드필더 어느 포지션으로 뛰어도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팀 사정에 따라 주로 오른쪽 윙, 풀백으로도 뛸 수 있는 만능의 선수이다.

활동량이 많고 투쟁적인 플레이가 일품이며, 오른발 크로스의 정확도와 오른발로 차는 프리킥 또한 훌륭하다. 몸이 그럭저럭 쓸만하던 시절에는 제라드 vs 램파드 논쟁을 정리할 뒷처리 전담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기량과 커리어만 보면 월드클래스라고 부르기엔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지만 유리몸이라는 심각한 약점이 발목을 잡았다. 바이에른 뮌헨에선 핵심 미드필더였으며 당장 실력이 없었다면 맨유에서 바로 내쳤을 것이나 그를 위해 몇년을 더 기다려줬으며 맨시티에서 그를 영입한건 순수하게 실력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몸이 실력과 재능을 못 따라간 안타까운 케이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기타

7. 같이 보기

1 제임스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테리 · 6 캠벨 · 7 베컴 · 8 스콜스 · 9 루니
10 오언 · 11 램파드 · 12 브리지 · 13 로빈슨 · 14 P. 네빌 · 15 · 16 캐러거 · 17 버트
18 하그리브스 · 19 J. 콜 · 20 다이어 · 21 헤스키 · 22 워커 · 23 바셀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벤예란 에릭손

1 로빈슨 · 2 G. 네빌 · 3 A. 콜 · 4 제라드 · 5 퍼디난드 · 6 테리 · 7 베컴 · 8 램파드 · 9 루니
10 오언 · 11 J. 콜 · 12 캠벨 · 13 제임스 · 14 브리지 · 15 캐러거 · 16 하그리브스 · 17 제나스
18 캐릭 · 19 레넌 · 20 다우닝 · 21 피터 크라우치 · 22 카슨 · 23 월콧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벤예란 에릭손


[1] 비슷한 케이스로는 제이든 산초가 있다. 다만 산초는 유소년 시절에는 잉글랜드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도르트문트에서 프로데뷔를 한 케이스이다.[2] 당시 맨유는 수비진이 아니면 대부분 로테이션 시스템을 운영했으며, 특히 체력 소모가 심한 MF 진영의 경우에는 호날두를 제외하면 모두가 로테이션 멤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었다. 하그리브스의 경우에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하여 출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중요한 경기에는 그래도 비교적 자주 출장하였다.[3] 사실 말이 종료 직전이지, 후반 추가시간 막판 투입된지 10초(..)만에 경기가 끝나버렸다[4] 그럼에도 무려 헤더로 볼터치를 하는데 성공해 모든 이들을 웃프게 만들었다.[5] 캐나다의 국기는 아이스하키이나 정작 그는 축구와 농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스하키팀 중에서는 캘거리 플레임스를 어린이 때부터 응원해 왔다고 한다.(BBC 인터뷰 발췌)[6] 이탈리아 잡지 구에린 스포르티보에서 23세 이하 축구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7] 유리몸의 대명사인 로번은 17이고 유리몸 끝판왕인 디아비도 17이다. 하지만 부상 빈도 20을 찍으신 분이 있으니.... 결국 하그리브스도 시리즈를 거듭하며 부상빈도 20을 찍었다.[8] 본래 옌스 예레미스가 그 자리였으나 4강전에서 받은 경고누적으로 인해 출장이 불가능했다.[9] 그러나 사실 이건 퍼거슨이 예전부터 오언의 팬이었기 때문에 성공했던 이유가 크다.[10] 알다시피 손흥민은 오랜 독일 생활로 독어가 유창하다. 하그리브스 역시 데뷔 이후 7년간 독일에서 지냈으니 독어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