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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7 03:10:24

필 닐

필 닐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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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svg

대행

리버풀 FC 주장
그레이엄 수네스
(1981~1984)
필 닐
(1984~1985)
앨런 한센
(1985~1988)
}}} ||
잉글랜드의 축구인
파일:phil-neal-620-613554012.jpg
필 닐
Phil Neal
<colbgcolor=#eeeeee,#191919> 본명 필립 조지 닐
Philip George Neal
출생 1951년 2월 20일 ([age(1951-02-20)]세)
잉글랜드 노샘프턴셔주 어체스터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직업 축구 선수 (풀백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웰링보로 타운 (1967~1968)
노스햄튼 타운 FC (1968~1974)
리버풀 FC (1974~1985)
볼턴 원더러스 FC (1985~1989)
감독 볼턴 원더러스 FC (1985~1992)
코번트리 시티 FC (1993~1995)
카디프 시티 FC (1996)
맨체스터 시티 FC (1996 / 감독 대행)
코치 피터버러 유나이티드 FC (1997~1998)
국가대표 50경기 5골 (잉글랜드 / 1976~1983)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감독 경력5. 근황6. 대회 기록
6.1. 선수6.2. 감독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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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축구인.
현역시절 리버풀 FC의 황금기인 '붉은 제국'의 일원이었고, 잉글랜드 축구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명이다.

2. 클럽 경력

1967년에 16세의 나이로 아마추어팀 웰링보로 타운에서 뛰다가 17세의 나이로 이듬해에 하부리그 팀인 노샘프턴 타운에 프로 선수로 데뷔하여 6년간 뛰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974년에 신임 감독 밥 페이즐리가 지휘하는 리버풀에 입단하였다. 당초 코벤트리 시티로 이적한 래리 르로이드의 공백을 어느정도 메꾸기 위해 영입되었으나, 이후 크리스 로울러가 떠나자 라이트 백으로써 실력을 만개시켰다.

그가 리버풀 소속으로 처음 나간 1974년 11월 16일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이적 동기인 테리 맥더모트와 같이 활동하여 라이벌인 에버튼과의 대결에서 0-0으로 비기긴 했지만, 페이즐리 감독은 그의 뛰어난 실력을 보고는 흡족했다.
첫시즌 닐은 좌우풀백을 가리지 않고 활약했으며, 리그 32R 첼시 FC전 팀의 경기막판 동점을 만드는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첫 공격포인트를 쌓았다.

이후 닐은 1975년 11월에 안필드에서 열린 UEFA컵 2라운드에서 레알 소시에다드를 6-0으로 이겨 첫 득점을 이룩했다. 이후 해당시즌 리그와 UEFA컵 전경기 출전하며 팀의 더블에 공헌했다.

그는 1977년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넣어 팀을 우승시키는 데 공헌했고, 1978, 1981, 1984년에 총 4번 유러피언컵을 들어올리는 데 기여하였다. 이로써 그는 페이즐리 시대에 데뷔한 리버풀 선수들 중에서 역사상 유일하게 4개의 유러피언컵을 손에 넣은 선수로 일컬어졌다.

필 닐은 철강왕으로 유명한 선수 중 한명이었는데 75/76시즌부터 82/83시즌까지 8시즌간 리그경기에 모두 출전했으며, 1976년 10월 23일부터 1983년 9월 24일까지 417경기에 연속으로 출전했다. 9월 24일 맨유전에 당한 부상으로 놓친 3경기 이후 127경기 연속 출전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꾸준했고 내구성이 탄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팀의 페널티킥 전담자이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득점을 기록해주며 리버풀이 붉은 제국시절 잉글랜드와 유럽을 호령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83/84시즌 유로피언컵 결승전 선제골로, 해당 득점으로 필 닐은 유로피언컵 결승전에서 2골이나 기록한 풀백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활약덕에 팬들은 그를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중 한명있던 브라질의 지쿠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 지쿠라고 불렀다.

팀 동료였던 리버풀의 레전드 골키퍼 레이 클레멘스는 필 닐은 매우 기술적인 선수인 동시에, 뛰어난 수비수로서의 자질과 공중경합능력까지 갖춘 훌륭한 선수였다며 극찬했다.


그는 11년 동안 팀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동안 그는 7개의 리그 우승, 4개의 리그컵 우승, 4개의 유러피언컵 우승, 1개의 UEFA컵 우승, 5개의 채리티 실드 우승, 1개의 UEFA 슈퍼컵 우승을 이루어내며 총 22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려서 리버풀의 전성기와 맥을 같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84/85 시즌은 참으로 비극 그 자체였는데, 팀의 주장인 그레이엄 수네스가 떠나면서 구심점을 잃은 리버풀은 리그에서 라이벌 에버튼에게 2위로 우승컵을 놓쳤고, 대신 유러피언컵에서만큼은 노력을 쏟아부어 유벤투스와 결승전에서 맞붙었으나 이른바 헤이젤 참사라고 불려지는 유혈 사태로 인해 경기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 주장인 닐은 경기를 연기하자고 했으나 이러한 수난 속에서 경기는 속개되었고 결국 유벤투스에 의해 1-0으로 패배했다.

이시점에서 닐은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노장이었고, 신예 스티브 니콜이 성장함에 따라 닐은 자신이 더이상 주전자리를 보장받지 못할 것을 깨닫게 된다. 이후 닐은 볼턴으로 이적해 선수겸 감독직을 수행하며 자신의 전성기를 함께한 리버풀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리버풀에서의 기록은 650경기 59골 45어시스트.

3. 국가대표 경력

1976년 3월 24일 웨일스전에서 풀타임으로 뛰며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78년 5월 북아일랜드와의 친선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데뷔골을 넣었다.

80년 유로 당시 벨기에, 이탈리아전 2경기 모두 선발출전했다.
82년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에 승선해 프랑스전 첫 월드컵 경기를 치뤘으며, 쿠웨이트전 풀타임을 소화해 팀의 승리에 공헌했다.

국가대표 기록은 50경기 5골.

4. 감독 경력

1985년부터 볼턴으로 이적하자마자 선수 겸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그러나 팀은 너무 부진하여 1987년에 4부 리그로 떨어졌으나 1988년에 3부 리그로 바로 복귀하고 1989년에 풋볼 리그 트로피를 따낸 뒤 감독직에 전념하여 팀을 리빌딩시켜 1990년과 1991년에 두 차례 3부 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나 각각 노츠 카운티트란미어 로버스에게 패배하여 2부 리그 승격이 좌절되었고, 닐은 1991/92 시즌을 끝으로 볼턴을 떠났다.[1] 이후 1993년부터 2년간 코벤트리 시티의 감독을 지내다가 1996년에 카디프 시티와 맨체스터 시티를 거치며 잠시 감독생활을 하다가 1997/98 시즌에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에서 잠깐 코치를 지낸 것을 끝으로 현재는 지도자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이다.

5. 근황

현재는 TV와 라디오 등지에서 축구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6. 대회 기록

6.1. 선수

6.2. 감독

7. 여담



[1] 공교롭게도 후임으로 브루스 리오크 감독이 부임하여 그 다음 시즌에 볼턴을 2부 리그에 승격시켰고, 곧이어 1995년에 프리미어 리그까지 승격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