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자 Foggia | |||
국가 | 이탈리아 | ||
지역 | 풀리아 | ||
면적 | 507km2 | ||
인구 | 153,143명[1] | ||
시장 | 마리아 아이다 비숍 | ||
시간대 | UTC+1 (서머타임: UTC+2) | ||
- 이탈리아어: Foggia
1. 개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의 도시이다. 풀리아 북부 일대에 동명의 프로빈차를 이룬다.2. 어원 및 발음
포자의 어원은 구덩이를 뜻하는 라틴어 포베아(fovea)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추정이며 중세 그리스어로 불을 뜻하는 포티아(fotia)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로마자 철자 'gia'에 이끌려 흔히 '포지아'로 적으나 [dʒa]이기에 '자'로 적는 것이 맞다.
3. 역사
포자는 신석기 시대 때 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고대 시대 때는 그리스인이 이 일대에 정착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 후 아르고스의 왕 디오메데스가 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1세기 후반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 로베르 기스카르가 포자 일대에 위치한 습지를 배수하고 매립하면서 였다. 그 후 구기에르무 2세가 포자에 대성당을 건립하였으며 13세기 시칠리아 왕국 시절 사실상 그 수도 역할을 수행하였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시칠리아 국왕 프리드리히 2세의 주된 거처였다. 그는 포자를 레갈리스 세데스 인클리타 임페리알리스(Regalis Sedes Inclita Imperialis)라고 말했는데 이는 제국 궁전 유적 입구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 남부는 지중해 중앙에 위치해 수많은 이민족들의 침략을 받았고 더구나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 지중해 무역의 중요성이 감소하자 도시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때 연 이어 일어난 지진은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놨고 특히 1731년에 일어난 지진은 도시의 3분의 1을 파괴하였다. 하지만 포자를 다스리던 아라곤 왕국은 양을 키우게 했다. 이로인해 왕실 금고는 풍족해졌고, 왕국 전체에 가장 큰 세수가 되었지만 정작 농민들은 가난해졌다. 이는 포자 시민들의 불만을 키웠으며 이탈리아 통일 운동 때 많은 시민들이 카르보나리에 가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1차 세계 대전 동안 이 도시는 전쟁을 피해 도망치는 수많은 베네치아 시민들을 수용했으며 같은 기간에 3개의 공항과 미국 조종사를 위한 비행 학교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포자는 연합군 공군으로부터 중요한 비행장과 조차장에 대한 집중 폭격을 받았다. 1943년 7월 22일 포자는 100대가 넘는 B-17 플라잉 포트리스의 폭격을 받았다 . 도시는 황폐해졌고, 7,643명의 주민이 사망하고 7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1943년 8월 19일, 포자의 조차장은 233대의 B-17 과 B-24 리버레이터 폭격을 받아 도시의 잔해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9,581명이 사망했다. 참고로 포자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도시 답게 마피아가 판을 치고 있으며 2021년에 마피아 침투로 인해 지방 자치 단체가 해산되기도 했다.
4. 경제
포자는 남부 이탈리아의 주요 밀시장이기도 하며 수박과 토마토로 유명하다. 농업 부문은 예전만큼 중요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포자 경제의 핵심이라 예로부터 이 지역은 "이탈리아의 곡창지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5. 자매도시
[1] 2020년 1월 1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