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무형문화유산 | ||
푸노의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 Festivity of Virgen de la Candelaria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color: #1DA3B2" {{{#!folding [ 세부 정보 ] {{{#!wiki style="margin:-5px -1px -10px" | <colbgcolor=#1DA3B2><colcolor=#ffffff> 국가・위치 | <colbgcolor=#fff,#1f2023><colcolor=#000,#FFF> [[페루| ]][[틀:국기| ]][[틀:국기| ]] |
등재 연도 | 2014년 | |
목록구분 | 대표목록 | |
지정번호 | 956 | }}}}}}}}} |
[clearfix]
1. 개요
2.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의 기원(민간설화)
칸델라리아 성모 마리아 축제는 가톨릭 신앙의 요소와 동시에 안데스 세계관이 표현된 상징적인 요소들이 실재한다.티티카카 호수는 잉카제국의 기원이 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칸델라리아 성모는 푸노 사람들이 성스러운 호수로 여기고 있는 ‘티티카카 호수’에서 발현했다. 18세기 후반부터 푸노 사람들로 하여금 칸델라리아 성모는 수호성인으로 여겨졌다.
푸노 사람들은 투팍 아마루(Túpac Amaru)를 중심으로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저항하고 있었다. 푸노 사람들은 저항을 위해 촛불을 들고 삼포냐를 연주하며 칸델라리아 성모를 경배하면서 종교적 행진을 하였다. 이런 평화적 행진을 지배자들은 반란으로 인식하고 푸노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원주민들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자, 푸노 시민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칸델라리아 성모상을 앞세워 평화의 행렬을 거행하였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배자로부터 해방시켜준 칸델라리아 성모 마리아를 푸노를 지켜주는 ‘수호성인인 동시에 어머니’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3.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Festivity of Virgen de la Candelaria)’는 티티카카(Titicaca)호숫가의 푸노(puno)주의 푸노시에서 매년 2월에 진행된다.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는 가톨릭 전통과 안데스 세계관의 상징적 요소들이 혼합된 종교적, 축제적, 문화적 성격을 보인다. 즉,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는 혼합주의적 성격을 지녔다.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는 케추아족과 아이마라족 사람들을 중심으로 고유한 언어와 세계관, 기술, 음악, 춤 등을 중심으로 고유문화를 보존하고 있다. 동시에 푸노교구의 가톨릭 신자들 역시 무형유산의 담지자 및 연행자이다.3.1.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의 요소
축제는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적 표현 때문에 푸노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는 새벽미사로 시작된다. 이어서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정화 의식이 진행된다. 페루 전통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며 성모 마리아 성상이 푸노의 거리를 옮겨 다닌다. 여기서 성모 영보는 퍼레이드와 정화의식(덤불 태우기 등)으로 표현된다.4. 칸델라리아 성모 축제를 통해 바라본 페루의 성모 신심
페루의 각 마을에서의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축제들은 교도권에서 가르치는 성모 신심이라기보다는 마을 축제의 한 요소로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칸델라리아의 성모 축제’ 역시 이러한 모습을 많이 띠고 있다. 페루에서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나 역할에 대한 이해보다는 수호성인, 성녀에 대한 신앙이 확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페루에서는 가마에 성상을 모셔놓고 행렬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페루의 지역마다 수호성인 특히 성모님을 모시고 마을주민들이 모여 행렬을 한다. 그러나 기도나 미사를 중심으로 축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앙이 주가 아닌 마을의 축제를 위한 행사로 연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페루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보다는 자신과 더 가까운 성인에게 신심을 드러내는 것을 신앙으로 여긴다. 마리아 신심도 이와 비슷한 형태를 띤다. 페루에는 각 마을마다 성모 마리아 또는 성인을 공경하는 축제를 갖고 있다. 왜 이런 신심이 유독 발전했을까? 그 이유는 대표적으로 3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교리 교육의 부족이다. 페루 사람들은 성서나 교리, 성모 신심 등에 관한 지식이 약하다. 신도 수에 비해 사제 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보이는 것에 대한 외적인 것들이 크게 자리 잡고 작용을 하고 있는 듯하다. 2번째는 기복신앙이다. 생일, 축일, 기념일 등의 날에만 성당에 나와 미사에 참례하며 하느님께 복을 기린다. 마지막으로 조당이다. 동거, 재혼 등으로 인한 혼인조당[1]에 해당되는 신자들이 많아 성사를 포함한 여러 전례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그릇된 신심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페루에서 묵주를 목에 걸고 다니거나 차에 걸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작 묵주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교리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보이는 것, 외적인 것에 치우치게 된다고 여겨진다. 또한, 성사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느님의 복을 기리는 안수예절과 가마에 성상을 모시고 행렬을 하는 신심행위는 자신들의 문화와 상황 안에서 신앙생활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