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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20 02:13:50

로베르토 에르난데스(1980)

파우스토 카르모나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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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토 카르모나 저스틴 마스터슨 코리 클루버 셰인 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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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에르난데스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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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번호 55번
프란시스코 크루세타
(2004)
<colcolor=#fff>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2006~2012)
맷 랭웰
(2013)
탬파베이 레이스 등번호 40번
웨이드 데이비스
(2010~2012)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2013)
에릭 베다르
(2014)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27번
존 래넌
(2013)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2014)
애런 놀라
(2015~)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55번
스킵 슈마커
(2013)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2014)
맷 레이토스
(2015)
휴스턴 애스트로스 등번호 56번
폴 클레멘스
(2013~2014)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2015)
조 대처
(201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번호 32번
데이비드 아즈마
(2015)
로베르토 에르난데스
(2016)
리오 루이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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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RobertoHernandez.jpg
로베르토 에레디아 에르난데스
Roberto Heredia Hernández
[1]
출생 1980년 8월 30일 ([age(1980-08-30)]세)
산토도밍고
국적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미니카 공화국
신체 193cm / 122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CLE)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06~2012)
탬파베이 레이스 (2013)
필라델피아 필리스 (201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4)
휴스턴 애스트로스 (201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6)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연도별 성적5. 여담6.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도미니카 공화국의 前 야구 선수. 현역시절 포지션은 투수였다.

신분 위조 적발 전에 사용했던 이름인 파우스토 카르모나(Fausto Carmona)[2]로도 잘 알려져있다.

2. 선수 경력

2.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파일:FaustoCarmona.jpg
'파우스토 카르모나'로 알려졌던 인디언스 시절
2000년 12월,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입단했다. 순차적으로 마이너 레벨을 올린 카르모나는 2003년 싱글A에서 맹활약했고, 2004년을 앞두고 만 19세의 나이로 BA 선정 유망주 순위 76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상위 마이너 리그에서 적응기를 거치며 다소 주춤했지만, 2년 연속으로 퓨처스 올스타 게임 월드팀 멤버로 선정되었다.

2006년 4월 15일, 처음 빅리그로 콜업되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선발 데뷔전을 치렀으며, 6이닝 4K 1실점 호투로 데뷔 첫 승을 수확했다. 하지만 그 후 부진하며 불펜으로 이동했고, 6월 이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필승조로도 발돋움하나 싶었으나 7월 말부터 급격히 무너지며 3경기 연속 블론+패전을 기록하는 등 난타당했다. 결국 시즌 막바지에 다시 선발로 이동, 약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시즌을 마감했다. 데뷔 시즌 성적은 38경기(7선발) 74.2이닝 1승 10패 10홀드 3블론 ERA 5.42로 만 22세 루키의 첫 시즌임을 감안하면 그럭저럭인 성적.

하지만 2007년, 주무기 싱커의 완성도를 갈고닦은 카르모나는 기대 이상의 호투로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고, 어느새 CC 사바시아의 뒤를 받치는 인디언스의 2선발[3]로 팀의 ALCS 진출에 큰 공헌을 했다. 2007년 카르모나의 성적은 32경기 215이닝 19승 8패 ERA 3.06으로, 다승과 ERA 두 부문에서 AL 2위에 오르는 대활약을 했다.[4] bWAR는 6.1로 AL 10위였는데, 비교적 땅볼 유도 위주의 피칭으로 탈삼진이 워낙 적었던 탓에 FIP는 3.94였고 fWAR은 3.3으로 그렇게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카르모나가 2007년 한 해 맹활약한 건 주지의 사실이고, 여기에 ALDS에서 2차전에 선발로 나와 9이닝 1실점[5]으로 호투하며 팀 승리에 공헌하기까지 했다. 다만 ALCS에서는 보스턴을 상대로 두 차례 나와서 6이닝 11실점으로 시원하게 털렸다.

아무튼 이러한 활약을 만 23세 시즌에 보여준 만큼 카르모나에 대한 인디언스 팬들의 기대감은 커졌고, 다가오는 2008년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하지만 2007년의 활약이 무색하게 카르모나는 2006년으로 롤백, 8승 7패 ERA 5.44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기록했다. 싱커 구위가 많이 떨어진 게 주 원인으로, 이로 인해 피안타율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가 제구까지 무너지며 삼진보다 볼넷이 많은 막장 피칭이 나왔다. 이러한 모습은 2009년에도 이어져서 5승 12패 ERA 6.32로 부진,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 받던 것과는 오만년 떨어진 부진한 모습만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사이 역 상을 수상하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그나마 팀이 순차적으로 CC 사바시아클리프 리를 팔아치우며 탱킹에 들어갔고 선수 본인의 나이도 적은 편이라 로테이션 한 자리는 계속 유지했지만, 이런 부진이 지속된다면 선수 본인의 향후 입지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

하지만 2010년, 모처럼 자신이 인디언스의 1선발인 이유를 증명하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33경기에 등판해 13승 14패 ERA 3.77을 기록했고, 210.1이닝을 소화하며 2007년 이후 3년만에 200이닝 돌파에도 성공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라면 이 해 클리블랜드 타선이 워낙 노답이라 승보다 패가 많았던 점 정도. 야구 본지 조금 된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당시가 바로 '추신수와 아이들'로 불리던 그 때의 클리블랜드 타선이다.[6] 기록상으로 이 해 클리블랜드 타선의 총 fWAR은 고작 11.0으로 AL 14개 구단 가운데 11위에 불과하며[7], 그 가운데 추신수의 fWAR이 6.1이니까 추신수를 뺀 타선 전체 fWAR이 4.9라는 의미다. 어떻게 보면 저 타선을 뒤에 두고 13승이나 한게 더 용할 지경이니 카르모나의 활약은 저평가할 이유가 없었고, 생애 첫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러한 활약 속에, 2011년을 앞두고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클리블랜드의 젊은 선발진에 대해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으며, 타선 보강이 어느정도 수반된다면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2011년, 저스틴 매스터슨과 조시 톰린이 성장하는 가운데 카르모나 혼자 그 전으로 롤백되면서 부진에 빠지며 선발진의 구멍이 되어버렸고, 이로 인해 클리블랜드는 선발 보강을 위해 우발도 히메네스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강수를 뒀지만 히메네스가 말 그대로 우발놈이 되어버리며 아까운 유망주만 날렸다.[8] 특히나 개막전에서 3이닝 10실점으로 박살나고 조기 강판된 사태가 하이라이트로, 메이저 리그에서 개막전 10실점은 1948년 이후 63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9] 2011년 카르모나의 성적은 32경기 188.2이닝 7승 15패 ERA 5.25. 하지만 시즌이 끝나고, 이정도 부진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사건이 터지고 마는데...

2012년 1월, 신분 위조가 적발되어 도미니카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동안 파우스토 카르모나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왔지만, 이 선수의 진짜 이름은 '로베르토 에레디아 에르난데스'로, 본래 1983년 12월 7일생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상단 프로필에서 보이듯 나이가 3살 많았다. 2007년의 커리어 하이도 만 23세가 아닌 만 26세 시즌에 달성한 것이고, 부진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 덕분에 선발진에서 꾸준히 활동했던 2008년과 2009년에도 이미 27~28세가 되어 어느덧 노망주 반열에 접어드는 나이였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카르모나, 아니, 에르난데스의 비자는 효력을 정지당했고, 클리블랜드 구단은 에르난데스를 제한 선수 명단에 올렸다.

2012년 7월 16일, 취업 비자를 재취득해 미국으로 복귀했고, 5일 후에는 MLB 사무국으로부터 신분 위조와 관련해 3주간의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징계 기간이 끝난 후 로스터에 복귀했지만, 3경기에 등판해 14.1이닝 15실점(12자책점)으로 부진했다. 그리고 어찌저찌 서비스타임을 다 채워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었다.

2.2. 이후

2012년 12월, 탬파베이 레이스와 1년 $3M에 계약했다. 5선발로 개막 엔트리에 합류했으나 크리스 아처에 밀려 시즌 막바지에는 불펜으로 전환되었다. 2013시즌 최종 성적은 32경기(24선발) 151이닝 6승 13패 ERA 4.89.

2014년을 앞두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년 $4.5M에 계약을 맺었다. 시즌 초반 부진을 겪었지만 5월부터 페이스를 되찾으며 로테이션을 돌았고, 7월들어 호투하며 ERA를 3점대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4년 8월 7일, 웨이버 트레이드를 통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다저스에서는 부상으로 이탈한 조시 베켓 대신 로테이션에 포함되어 총 9경기에 등판했으나, 그렇게 눈에 띄는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NLDS 엔트리에서 제외되고, 다저스가 NLDS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1승 3패로 탈락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4년 최종 성적은 32경기(29선발) 164⅔이닝 8승 11패 ERA 4.10으로, 선발로서 경쟁력이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나이가 어느새 33살이 되었고, 시즌 막바지에 부진한 탓에 새 팀을 쉽게 구하지 못했다.

2015년 2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선발진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개막 로스터 진입에 성공했으나, 5월 하순부터 부진에 빠진 끝에 불펜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7월 29일, 제드 라우리의 부상 복귀와 함께 DFA되었고, 웨이버를 통과한 후 8월 9일에 최종 방출되었다.

2015년 12월 18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스프링 트레이닝에 초청되었다. 개막 로스터 탈락 시 옵트아웃을 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후 개막 로스터에서 밀려나자 조항을 발동해 다시 FA로 풀렸다. 하지만 새 팀을 구하는 대신 토론토와 계속해서 훈련하며 몸을 만들고 4월 20일 다시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으나, 콜업 기회를 잡지 못하고 7월 3일에 방출되었다.

2016년 7월 15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이후 8월에 땜빵으로 콜업되어 두 경기에 등판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다시 DFA되었다. 이후 트리플A로 계약이 이관되었고, 시즌 종료 후 FA로 풀렸다. 이후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활약하며 새 팀을 알아봤지만, 결국 다른 팀을 구하지 못하고 빅 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2018년에 윈터리그에 잠시 등판한 전적이 있으나, 이후 별 다른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조용히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3. 플레이 스타일

최대 97mph가 나오는 강력한 싱커를 주무기로 했던 땅볼 투수. 비교적 패스트볼 구위가 좋았던 시기에도 패스트볼은 30%가 넘지 않도록 제한했고, 피치 레퍼토리의 절반 가량을 싱커로 채웠다. 다만 이러한 스타일상 팀 내야 수비진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안타까운 점이라면 에르난데스가 뛰던 당시 클리블랜드의 내야 수비진은 평균 이하 수준이었다는 점. 패스트볼과 싱커 외에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구사하며, 패스트볼 구위가 떨어진 2010년 이후로 이 두 공의 구사율이 크게 늘었다.

4. 연도별 성적

5. 여담

6. 같이 보기


[1] 사실 스페인어 작명법은 이름-부계 성-모계 성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아버지 성을 가져온다면 '로베르토 에레디아'가 된다. 에르난데스가 된 이유는 확실하지 않은데, 본인이 모계 성을 사용하는 것을 선택했거나, 혹은 신분 위조 적발 당시 미국 언론들이 Heredia을 성이 아닌 미들 네임으로 보고 에르난데스라고 부른 게 정착된 것일 수도 있다.[2] 국내에서는 이를 적당히 영어식 발음으로 읽어 '카모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3] 특히나 2005~2006년 2년 연속으로 200이닝을 먹고 준수한 선발로 성장한 클리프 리가 2007년에 커리어 로우를 찍은 탓에 카르모나의 활약은 더욱 빛났다. 물론 2008년부터 리교수와 카르모나의 커리어는 정반대로 뒤집힌다.[4] 다승 선두는 보스턴 레드삭스조시 베켓, ERA 선두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존 래키였다. 참고로 사이영 위너는 팀 동료 CC 사바시아.[5] 경기가 1:1 동점으로 연장에 접어들며 승리나 완투는 기록되지 않았다.[6] 이 항목에 있는 클리블랜드 라인업 사진을 보면 말 그대로 한숨밖에 안 나올 것이다.[7] 그 클리블랜드보다 밑에 있던 팀은 캔자스시티 로열스(9.9), 볼티모어 오리올스(9.6), 시애틀 매리너스(2.2) 되시겠다. 그나마 캔자스와 볼티는 추신수를 뺀 클블 타선보다는 fWAR이 높기라도 했지, 수비로 일낸다로 유명한 2010년 시애틀은 총체적 난국이었다.[8] 그나마 히메네스를 받아온다고 보낸 유망주 가운데 흥한 선수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 클리블랜드에게는 그나마 위안 요소. 나중에 드류 포머란츠가 올스타에 선정되긴 했지만 콜로라도를 떠난 후의 일이며, 콜로라도가 포머란츠를 댓가로 오클랜드에서 브렛 앤더슨을 받아가긴 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9] 1948년 당시 워싱턴 세네터스의 개막전 선발투수가 12실점을 기록한 바 있는데, 그 선수가 다름 아닌 인디언스는 물론 MLB HoF에도 헌액되어 있는 얼리 윈이다. 참고로 당시 얼리 윈은 무려 8⅓이닝을 소화했기 때문에 2011년의 카르모나와는 비교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