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삼총사 | ||
무토 케이지 | 쵸노 마사히로 | 하시모토 신야 |
신(新) 투혼삼총사 | ||
타나하시 히로시 | 나카무라 신스케 | 시바타 카츠요리 |
레이와(令和) 투혼삼총사 | ||
우미노 쇼타 | 츠지 요타 | 나리타 렌 |
闘魂三銃士
[clearfix]
1. 개요
1984년 데뷔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프로레슬러 쵸노 마사히로, 무토 케이지, 하시모토 신야 세 선수가 결성한 스테이블 혹은 이 세 선수를 뭉뚱그려 부르는 호칭.투혼삼총사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세 선수 모두가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이후로 촉망받는 신인 3명을 투혼삼총사로 묶어 명명하기 시작하여, 신 투혼삼총사, 레이와 투혼삼총사와 같은 아류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2. 투혼삼총사
좌측부터 쵸노 마사히로, 무토 케이지, 하시모토 신야 |
투혼삼총사 헌정 베이퍼웨이브 영상 |
같은 시기에 신일본 프로레슬링 도장에서 수련하며 각별한 관계였던 쵸노 마사히로, 무토 케이지, 하시모토 신야는 1988년 7월 2일 푸에르토리코에서 투혼삼총사를 결성하였다.
이후 동년 7월 29일 아리아케 콜로세움 흥행의 메인 이벤트 후지나미 타츠미, 기무라 켄고, 코시나카 시로와의 6인 태그 매치로[1] 투혼삼총사의 이름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링에 데뷔한 그들은 점점 인기와 위상을 높여갔다. 결국 1991년 최초의 G1 클라이맥스에서 4강에 이들 모두가 올라갔고, 쵸노 마사히로 대 무토 케이지 투혼삼총사 내전으로 열린 결승에서 쵸노가 우승을 차지하며 이 세명은 모두 신일본의 간판이자 메인이벤터로 자리를 확고이 하였다.
이들은 라이벌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4천왕[2]과 함께 일본 프로레슬링 2세대로서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세대를 넘어서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신일본 이외에도 WCW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며 북미에서도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4천왕이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을 통해 카와다 토시아키를 뺀 나머지 멤버가 프로레슬링 NOAH로 이탈한 것처럼 투혼 삼총사도 21세기 들어 무토 케이지가 신일본의 이노키즘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했고, 하시모토 신야가 ZERO-ONE이라는 단체를 창단해 독립하면서, 이후 신일본 링에서 세 선수가 동시에 선 흥행이 없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를 이끈 투혼삼총사가 2005년 데뷔 20주년을 맞이하여 무토 케이지, 쵸노 마사히로, 하시모토 신야가 다시 신일본의 링에 서는 흥행을 준비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갑작스런 하시모토 신야의 사망으로 결국 영원히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
3. 신(新) 투혼삼총사
좌측부터 시바타 카츠요리, 타나하시 히로시, 나카무라 신스케 |
신(新) 투혼삼총사 3인의 입장곡 |
2000년대부터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차세대 주자를 밀기 위해 타나하시 히로시, 나카무라 신스케, 시바타 카츠요리를 두고 "신(新) 투혼삼총사"로 묶어 부르기 시작했으나 그다지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선택 받은 신의 아이"로 불리며 엄청난 푸쉬를 받던 나카무라 신스케는 그리 큰 반향을 얻지 못했고, 타나하시 히로시는 경기력의 수준이 별로였으며, 셋 중 가장 나은 경기력을 보였던 시바타 카츠요리는 아예 신일본을 탈단하고 종합격투기로 외도를 하는 등 신 투혼삼총사는 결국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고토 히로오키가 성장한 이후에는 고토를 시바타 카츠요리 대신 넣어 신 투혼삼총사로 하자는 말도 있었을 정도.
하지만 타나하시 히로시와 나카무라 신스케는 결국 부단한 변모 끝에 신일본의 탑 페이스와 탑 힐로 자리매김하며 단체를 암흑기에서 구해냈고, 결국 2010년대를 기점으로 오랫동안 방황하던 시바타 카츠요리 역시 신일본의 링으로 돌아옴으로써 3인은 다시 재회하여 한 링 위에 서기에 이르렀다.
이후 나카무라는 북미 진출후 WWE에서 성공을 거둠으로써 이후 아스카나 이요 스카이등 여러 일본 레슬러들이 북미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입지전적인 레슬러가 되었고, 타나하시는 신일본의 상징이자 에이스로 남아 많은 사랑을 받으며 결국 신일본 프로레슬링 사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시바타 또한 여러 신인들을 양성하였고 이후 AEW로 북미에 진출함으로써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와 같이 신 투혼삼총사 또한 여러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4. 레이와(令和) 투혼삼총사
좌측부터 우미노 쇼타, 나리타 렌, 츠지 요타 |
그리고 20년 뒤인 2022년과 2023년 사이에 각광받는 유망주가 또 3명 등장하면서 투혼삼총사의 계보는 이어지게 됐다. 주인공은 우미노 쇼타, 나리타 렌, 츠지 요타.[3] 다만 시바타에게 직접 지도받은 나리타를 제외하면 신 투혼삼총사와의 관계는 거의 없다.[4]
하지만 24년 현 시점 시점 레이와 투혼삼총사는 명명 당시의 혹평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성장이 정체되어 일본 현지에서도 비웃음 당할 정도로 평가가 하락하였다. 우미노는 여러 캐릭터를 덧붙인것 같은 캐릭터성과[5] 애매한 경기력, 비호감적인 행보로 인해 선역임에도 야유를 듣는 수준에 이르렀고, 나리타는 시바타 2호기라는 혹평을 지우기 위해 턴힐 하였지만 여전히 무색무취에 그나마 장점이었던 경기력 마저도 죽어버렸다는 평을 받고있다. 츠지는 좋은 경기력과 준수한 개성으로 그나마 투혼삼총사 중에서 호평을 받고 있지만 수많은 타이틀 도전과 결승 진출에도 불구하고 낸 성과는 뉴 재팬 컵 우승과 NEVER 6인 태그팀 챔피언밖에 없다는 점에서 고토 히로오키의 무관 경기력 셔틀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투혼삼총사로 뽑히지 않은 우에무라 유야, 오오이와 료헤이, 후지타 코세이가 더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 투혼삼총사를 교체해야 된다는 의견도 나오는 중.
5. 여담
2023년 무토 케이지의 은퇴 흥행 무토 케이지 그랜드 파이널 프로레슬링 '라스트' 러브의 메인이벤트 무토케이지 대 나이토 테츠야 경기에서 무토 케이지가 하시모토의 상징 케사기리 찹과 DDT를 연달아 사용하며 장내에 하시모토 콜이 울려퍼졌고, 경기 이후에는 중계석의 쵸노를 링 위로 불러 진정한 은퇴 경기를 진행함으로써 과거 투혼삼총사의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 흥행을 선보였다.북미에서는 투혼을 제외한 The Three Musketeers로 흔히 불린다.